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711
3부 126화 군주의 의무
“첫째, 사건 자체를 부정하고 속히 빠져나가는 겁니다. 물론 한국이 사건을 공개할 우려가 있습니다만, 증거와 증인도 없을뿐더러, 황실의 체면이 걸려 있는 이상, 황제도 쉽사리 공개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건 안 될 말이오! 그럼 황제는 더욱 진노하겠지. 20년 동맹에 이런 모욕을 가하고 빠져나가자고? 그건 배신이오! 짐의 명예가 용납하지 않소!”
한국에 외교적 약점을 잡히고 싶지 않은 영국 정부 일각에선, 부정하고 빠져나가는 방법을 고려했다.
하지만 그건 조지 5세가 용납하지 않았다. 대영제국의 군주이자, 해군 장교로서 절도 있는 삶을 삶았던 그의 명예심이 ‘배신’을 용납하지 않았다.
로이드조지도 국왕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는 걸 예상했다.
“그렇다면 둘째, 한국 황제에게 무조건 사과해야 합니다. 이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면 치명적입니다. 원하는 걸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속히 해결해야 합니다.”
“절대로 알려져선 안 되지. 필요하다면 에드워드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합시다.”
웨일스 공이 타국의 군주에게 무릎을 꿇는다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지만, 그만큼 사안이 심각했다.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폐하. 한국 황제는 교활할 정도로 영민한 정치가입니다. 분명히 이 사건을 기회로 삼아 정치적 대가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럼 어디까지 내줘야 할지가 문제입니다.”
“만약 정치적 대가를 요구한다면, 원하는 대로 해 줘야겠지. 하지만 그럴 리가 있겠소? 한국 황제는 명예로운 분이오.”
조지 5세는 ‘군주 대 군주’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로이드조지는 ‘정치가 대 정치가’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 경우에는, 로이드조지의 예상이 이선의 본심에 더 가까웠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각은 이 사건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폐하께서는 웨일스 공께 전문을 보내 주십시오.”
“알겠소. 나 원 참! 윈저 왕조, 아니 영국 역사상 이렇게 부끄러운 일이 또 있겠는가!”
조지 5세는 수치심과 실망감으로 혀를 찼다. 그는 장남이 왕위를 계승할 미래가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계대전 이후 여러 유서 깊은 왕조들이 혁명으로 무너지는 걸 본 조지 5세는, 왕조의 미래에 대해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영국민이 에드워드의 실체를 모르므로 열렬히 지지했지만, 그 방탕한 사생활이 드러나면 어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이러다간 이놈이 왕 노릇이나 제대로 할지 의문이군. 단단히 혼을 내서 정신머리를 차리게 해야지.’
조지 5세는 어떻게든 왕위계승자인 장남을 갱생시킬 생각이었다.
만약 그래도 안 된다면, 결혼을 앞둔 차남 ‘버티(앨버트)’라는 대안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 *
부왕으로부터 전문을 받아 든 에드워드는 대경실색했다. 세상에 거칠 것이 없는 탕아인 에드워드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대상이 부왕이었다.
조지 5세는 장남을 신랄하게 꾸짖으며, 더 이상 왕가의 명예를 더럽히지 말고 즉각 한국 황실에 사과하라고 명했다. 부친으로서의 명이 아닌, 국왕으로서의 명령이었다.
“제기랄, 일이 이렇게 커지다니. 망할 계집!”
에드워드는 이서아가 원망스러웠다.
“비밀을 지키기로 해 놓고선, 한국 황제도 모자라 부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하다니!”
잘못된 비난이었다. 애초에 자신의 처신이 문제였다는 걸, 에드워드 자신도 인지하고 있었다.
“세상에 여자라고는 널렸는데, 내가 어리석었지. 대체 뭘 믿고 동양 왕실의 여자를 건드렸담.”
한국 황제의 진노를 전해 들은 에드워드도 겁이 나긴 마찬가지였다. 황제는 당장이라도 에드워드를 요절낼 기세였다. 유교 국가의 왕족을 잘못 건드렸다는 걸 그때야 깨달았다.
만나서 사과하기조차 두려웠지만, 부왕의 명령이 있는 이상 따라야 했다.
“황제 폐하, 영국 황태자가 알현을 청해 왔습니다.”
“짐의 심기가 몹시 불편하여 만나지 않는다고 전하라.”
이선은 짐짓 알현을 거부했다. 출국일은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일부러 애를 태울 생각이었다.
‘어디 속 좀 태워 봐라.’
한국 정부는 그동안 웨일스 공을 고토록 환대했던 황제와 황실이 갑자기 외면하는 것을 보고,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황실은 입을 봉하고 있었다. 이선은 엄명을 내려 궁내부에 입단속을 명한 상태였다. 아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황제께서 알현을 거부하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먼저 프린스 영을 찾아 사과를 구해 보시지요.”
에드워드는 쪽팔림을 무릅쓰고 안동궁을 찾았다. 하지만 이영도 단호하게 만남을 거부했다.
“돌아가십시오. 만나지 않으시겠답니다.”
황제에 이어 친왕에까지 문전박대를 당하자, 에드워드도 슬슬 위기의식을 느꼈다.
‘큰일 났네. 이러다 사과를 못 하고 떠나면 부왕이 가만히 안 있을 텐데. 만약 외부에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지?’
에드워드는 결국 특사단을 붙잡고 늘어졌다.
“황제 폐하와 프린스 영 모두 나를 만나 주지 않는군요. 아무래도 아직 분노가 안 풀리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중재에 나서 주십시오.”
특사단은 한숨을 쉬었다. 사고는 에드워드가 쳤는데, 뒷감당은 자신들이 져야 했다.
영국 특사단에서도 경운궁에서 황제의 역린을 감당했던 4인만이 진실을 알고 있었다. 이들은 외부로 소문이 안 나가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특사단은 경운궁으로 입궐하여 알현을 청했다. 이선은 이번에는 알현을 허용했다.
“그래, 무슨 말을 하려고 온 거요?”
“폐하. 대영제국 국왕 폐하께옵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시고, 웨일스 공 전하의 사과를 받아 주셨으면 하십니다.”
대사가 국왕의 긴급전문을 이선에게 전달했다.
조지 5세는 영국 왕실을 대표해 송구하다는 뜻을 밝혔다. 국왕이 이렇게 나온 이상, 이선도 계속 분노만을 표명할 수는 없었다.
“귀국 국왕 폐하께서도 충분히 내 입장을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하오. 만약 다른 나라의 왕족이 폐하의 제수를 희롱하면 어찌 되겠소?”
“······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폐하께서 이리 말씀하시는 이상, 웨일스 공의 사과는 받겠소. 단, 조건이 있소.”
이선은 엄격한 어조로 말했다.
“웨일스 공이 직접, 짐이 보는 앞에서, 영친왕과 친왕비에게 사과하시오.”
“예, 마땅히 그리하겠습니다.”
“짐은 이 사건의 본질이, 단순히 웨일스 공 개인의 일탈이라고 생각하지 않소. 지난 40년간 누적되온, 영국이 한국을 업신여기는 태도의 연장선이라 생각하오.”
“그, 그건 오해이십니다, 폐하.”
“짐은 이번 기회에 이 문제를 확실하게 짚고 넘어야 가겠소.”
마침내 청구서가 날아온다는 생각에, 특사단은 고개를 숙였다. 내각에서는 어디까지 양보해 줄 수 있는지를 통보해 왔다.
“짐은 귀국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하는 바이오······.”
* * *
이선의 요구사항은 런던으로 즉각 전달되었다. 전문을 받아든 로이드조지는 놀랐다. 그는 즉시 국왕을 찾아 보고했다.
「대한제국 황제는 대영제국 황태자의 사과를 받아들인다. 영국 왕실의 명예를 위하여, 이 사건에 대하여 철저히 비밀을 지킬 것을 약속한다.」
“보시오, 역시 한국 황제는 명예로운 분이시오. 이권이나 보상금을 요구할 리가 있나.”
조지 5세는 기뻐했다.
로이드조지 내각은 한국이 중국 이권의 일부나 보상금을 요구하리라고 추측하고, 비밀을 지키는 대신 약간의 보상을 해 주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한국 황제는 추상적인 요구만을 해 왔을 뿐이었다.
「대한제국이 진정으로 귀국에 원하는 바는 한 가지다. 우리를 동등한 동맹으로 예우하고, 동맹의 헌신에 상응하는 대가를 바랄 뿐이다. 장차 귀국의 전향적인 태도를 기대한다.」
“한국 황제의 말이 옳소. 한국이 영국의 동맹으로서 20년간 헌신해 왔는데, 그간 우리가 오해의 여지가 있을 법한 행동을 했지. 이번 일로 크게 분노했을 터인데도 관대히 넘어가 준 한국 황제께 감사드리며, 정부는 한국이 실망할 일이 없도록 배려를 아끼지 마시오.”
“예, 폐하. 삼가 명을 받듭니다.”
로이드조지는 고개를 숙였지만, 속으로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차라리 이권을 요구하는 게 낫지, 이래서야 앞으로 목줄이 차인 꼴이 아닌가! 심리적으로 엄청난 빚을 안겨 놓았으니, 우리가 알아서 대가를 지불해야 할 상황이군. 하여튼 한국 황제는 교활한 자야!’
과연 로이드조지의 분석은 틀리지 않았다.
‘여기서 청구서를 바로 들이밀면 하수(下手)지. 마치 내가 제수씨를 미끼로 삼아 책략을 꾸민 것 같잖나. 무형의 빚을 지어 놨으니, 이제 알아서 청구서를 작성하겠지. 백지수표랄까.’
타국에 감당할 수 없는 차관(借款)을 안긴 후, 결국 실질적인 통치권 장악까지 나가는 게 영국 식민제국의 특징이었다. 대표적으로 1870년대 이집트가 그렇게 주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선은 영국에 재정적인 빚은 안기지 않았지만, 대신 막대한 심리적 빚을 안기고 말았다.
“대영제국 국왕 폐하께서는 한국 황제 폐하의 관대함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 우의에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짐은 군주이자 가장으로서 아직도 분노와 수치의 감정이 남아 있지만, 존경하는 대영제국 국왕 폐하의 신의를 믿기에 모두 거둘 것입니다.”
이선은 ‘권위에 심대한 상처를 받은 유교적 군주-가장’이지만, 조지 5세를 믿고 동맹국 영국을 배려해 인내하겠다는 자세를 연기했다.
“영국이 소중한 동맹국인 한국을 업신여긴다는 건 명백한 오해입니다만, 그간 영국의 방식이 오해의 여지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는 결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영국은 알아서 이선이 원하는 사항을 내밀었다.
1. 한영일동맹의 만료에 대비하여, 한국의 안보 우려를 고려해 앞으로도 외교적이고 군사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2. 영국은 워싱턴 회의에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한다. 해군 군축조약에서 한국은 제외될 것이며, 한국은 건함의 자유를 갖는다.
3. 영국은 만주에 대한 한국의 특별한 이익을 인정하고, 만주에서 행동의 자유를 지지한다.
4. 영국은 소비에트 러시아에 맞서는 한국을 지원하며, 한국의 보호를 받는 아무르 임시정부를 인정한다.
‘당장 필요한 걸 다 얻어 내고, 영국에 앞으로도 심리적인 빚까지 안겨 놨지. 채무기한은, 최소한 조지 5세가 국왕으로 남아 있는 한 계속되겠지.’
이선은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이선이 가장 상대하기 어려웠던 외국은 단연 영국이었다. 영국만큼 치밀하고 집요하게 외교를 하는 나라는 없었다.
언제나 영국의 하위 파트너였던 한국이, 동등한 관계를 넘어 우위를 점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영국에 목줄을 채워 놨다는 것이었다.
웨일스 공의 영친왕비 추행 사건이 대외적으로 드러날 경우, 영국 왕실의 위신 추락을 넘어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될 수 있었다.
‘가뜩이나 근래 인도를 비롯한 영국의 아시아 식민지에서 반영 항쟁이 심화되고 있는데, 이 사건이 알려진다면?’
1921년. 웨일스 공의 인도 방문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마하트마 간디와 인도 국민의회가 주도하는 대대적인 불복종 운동을 이어 갔다.
특히 11월의 봄베이(뭄바이) 항쟁은 이른바 ‘웨일스 공 폭동(Prince of Wales riots)’으로 불릴 정도로, 대영제국의 상징인 웨일스 공의 방문에 대대적인 항의 보이콧을 하고 파업과 저항이 이어졌다.
시위현장에서는 간디의 초상화와 함께, 이선의 초상화도 종종 모습을 보였다.
이선이 제국주의 열강의 아시아 식민지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준 게 없음에도, 이선은 여전히 ‘아시아의 자주를 위해 투쟁하는’ 우상으로 떠받들어졌다.
시인 타고르가 이선과 한국을 찬양하는 시를 쓴 것처럼, 인도인들은 막연히 ‘아시아의 희망’인 이선이 독립을 지원해 주리라 믿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필 웨일스 공이 대한제국 황족을 희롱하고 하필 한국 황제가 격분했다는 소식이 세계에 퍼진다면, 식민당국의 강경한 진압으로 일시적으로 잠잠해졌던 인도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뻔했다.
‘아시아인의 희망’으로 떠오른 한국 황제가 반영(反英)의 아이콘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영국에는 악몽이지. 제발 그 상황만은 피하고 싶을걸.’
1921년은 대영제국 최악의 위기라고 평가될 만큼, 아일랜드와 이집트에 이어 인도에서도 전국적인 반영 항쟁을 경험하게 된 영국의 대외정책은 소극적으로 변했다.
워싱턴 회의에서 미국에 전적으로 협조하게 된 것도, 영국의 소극성을 반영했다.
아시아-아프리카 식민지 해방을 선동하는 소비에트 러시아가 건재한 상황에서, 영국이 이런 ‘사소한’ 문제로 러시아를 견제하는 중요한 동맹국인 한국에 분노를 안겨 준다는 건 보통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에드워드의 추행 한 번에 역사가 바뀌는구나. 역시 불륜 한 번에 세계사를 바꾼 윈저공다워!’
절묘하게 국제정세가 맞아떨어지는 상황에서, 예기치 못했던 에드워드의 추행이 모든 일을 한 번에 해결해 주는 열쇠 역할을 한 셈이었다.
대영제국 황태자, 웨일스 공 에드워드는 육촌동생 루이 마운트배튼을 대동한 채로 알현을 청했다.
대한제국 황제 이선, 영친왕 이영, 영친왕비 이서아만이 배석한 중명전에서 에드워드는 고개를 숙였다.
“저 웨일스 공 에드워드는, 잘못된 행위를 저질러 대한제국 황실에 깊은 우려를 안긴 것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연미복을 입은 에드워드는 실크해트를 벗고 동양식으로 깊게 고개를 숙였다. 해군 대위 정복을 입은 루이는 황제를 향해 거수경례했다.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은, 무엇보다 피해자인 영친왕비요. 친왕비에게 다시 사과하시오.”
“친왕비 전하. 제가 비록 술에 취했다고는 하나, 전하께 큰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
“영친왕은 접반사로서 그 누구보다 웨일스 공을 위해 헌신했는데도, 아내가 모욕을 당했소. 아내의 명예는 곧 남편의 명예요. 만약 내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영친왕은 목숨을 걸고 결투를 신청했을 거요.”
“친왕 전하. 전하의 호의에 감사를 드리지는 못할망정, 큰 누를 저지르게 되어 송구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영과 이서아 부부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듯, 무거운 표정으로 말없이 사과를 받았다.
“황제 폐하, 제가 폐하께 얼마나 큰 심려를 끼쳤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무례한 짓을 저지른 제게 용서받을 기회를 주신 폐하의 관대함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단 한 번도 이런 일을 겪어 본 적이 없는 에드워드로서는, 여러 번 고개를 숙이는 게 굴욕적이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명백한 자신의 잘못이었고, 부왕 조지 5세는 최상의 예의를 표하며 사과하라고 명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소. 하지만 통치자, 남의 위에 설 권리를 가진 군주는 그만한 의무도 갖는 법이오. 언제나 행동에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하지요.”
“명심하겠습니다.”
“웨일스 공은 내일이 생일이라고 들었는데.”
“예, 내일이면 스물여덟이 됩니다.”
“잊지 못할 생일이 되겠군. 전하는 장차 제국의 군주로 군림할 분이니만큼, 오늘의 일을 철저히 기억하고 다시는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될 것이외다.”
이선은 아버지가 자식에게 따끔히 훈계하듯이 충고했다. 에드워드는 거듭 고개를 숙였다.
1922년 6월 22일.
이날은 한국 역사뿐만 아니라, 영국 역사상 기이한 하루로 남을 터였다.
작가의 말
??? : 아라사 오랑캐에 이어 영길리 오랑캐까지 유학의 왕화로 계몽하다니… 크도다, 왕화의 덕이여!
유교맨 조선의 예-의는 러시아 황태자에 이어 영국 황태자까지 감화시킵니다!
마침내 혐성국에 예의의 목줄을 채운 대한제국. 유교 세계혁명은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사실 어떤 왕족이 국빈 방문와서 저런 실수할까 싶은데, 윈저공 자체가 개연성 치트키라 써먹었습니다. 실제론 외국 나가서 큰 실수는 저지른 적 없습니다만, 전편에서 언급한 프랑스 매춘부나 유부녀에 대한 집착은 고-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