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712
3부 127화 황실 여인의 삶
6월 23일. 웨일스 공 에드워드의 28세 생일을 축하하는 환송연을 끝으로, ‘한영수교 40주년 기념 대영제국 황태자 방한’ 일정은 마쳤다.
‘공식적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기에, 양측의 극소수 인원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선이나 에드워드 모두 속마음을 숨기고 미소 짓는 건 익숙한 일이었으므로, 마지막 환송연도 화기애애하게 마쳤다.
“그간의 환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폐하. 저와 영국 특사단은 황제 폐하와 한국 황실, 한국 정부와 한국민의 호의와 환대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웨일스 공 전하께서 방한해 주신 덕에 짐과 우리 국민 역시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귀국 국왕 폐하께 안부 말씀 전해 주시고, 만대에 우호가 계속되길 바랍니다. 언제든지 다시 찾아와 주십시오.”
‘미쳤냐? 내가 이 굴욕을 당했는데, 여길 왜 다시 오냐? 이쪽은 지도에서도 쳐다보지 않을 거다.’
‘한심한 호색한 자식. 너 같은 망나니를 후계자로 둔 네 부왕이 참 딱하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 보지 말자!’
속으로는 경멸과 비난을 퍼부으면서도, 이선과 에드워드는 웃으면서 악수를 했다.
이선은 에드워드에게 대한제국 최고 훈격인 대훈위금척대수장을 수여했다. 조지 5세에 이어 부자가 모두 수훈 대상이 되었다.
1919년 이선이 영국을 방문했을 당시 조지 5세로부터 가터 훈장(Order of the Garter)을 수훈한 것에 대한 답례였다.
“대영제국 특파대사 에드워드 황태자 전하에게 특별히 금척 대수훈장을 수여하여, 우의와 친애를 더욱 두터이 하고자 한다. 전하는 한영관계의 증진에 특별한 공훈을 세웠으며······.”
‘그 어떤 대한의 외교관도 이루지 못한 영국의 목줄 잡기를 실현하였으니, 어찌 최고위 훈장으로 보답하지 않겠는가?’
이선은 근엄한 태도로 훈장을 수여했지만, 속으로는 웃고 있었다. 에드워드의 ‘실수’ 한 번으로 한국은 처음으로 영국에 외교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영국 왕실이 앞으로도 적잖은 시간 동안 계속될 ‘마음의 빚’이었다.
* * *
“이번 영국 황태자 방한 행사를 무사히 치른 데에는 영친왕의 공이 컸다. 노고에 감사하네.”
영국 사절단이 한국을 떠난 후, 이선은 영친왕 부부를 경운궁으로 불러들여 공로를 치하했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제가 오히려 폐하와 황실에 심려를 끼쳐 드린 것 같아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는 최선을 다했고, 오히려 친왕비가 봉변을 당했지. 제수씨, 얼마나 마음고생이 컸소? 짐 역시 웨일스 공이 그런 참담한 일을 저지를 자라고는 상상도 못했소. 참으로 미안할 따름이외다.”
황제이자 시아주버니가 미안해하자, 이서아는 고개를 숙였다.
“송구할 따름입니다. 제 실수로 인해 한국과 영국의 우호관계에 문제가 생겼을까 걱정했습니다.”
“실수라니오, 그 무슨 말을. 친왕비는 올바른 처신을 한 겁니다. 나는 오히려 감사를 드리고 싶소.”
‘그대 덕에 영국의 목줄을 쥐게 되지 않았나? 내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대를 미인계로 쓴 셈이 되어 버렸군. 영과의 혼인을 허락할 때만 해도,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선은 아름답고 총명한 제수씨를 보면서, 마르가리타의 젊은 시절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마르가리타를 닮았어. 페테르부르크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자의식 강하고 당돌한 아가씨라고 생각했을 뿐인데. 영의 복이자 우리 황실의 복이구나.’
애초에 정통성 있는 적자였던 이영이 왕위계승권에서 멀어지기 위해 선택한 결혼이었지만, 참으로 잘한 결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친왕비에게 감사의 뜻으로 뭘 선물하고 싶은데. 원하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말해 보시오.”
“아닙니다, 폐하. 저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이서아는 황송해하며 손을 내저었다. 예전의 그녀였다면 사양하지 않고 받았겠지만, 이미 한국 황실의 법도에 익숙해진 터였다.
“서봉장은 이미 수훈했고, 뭐가 좋겠소? 영친왕은 어찌 생각하는가?”
“폐하, 제 아내가 무슨 공이 있다고 감히······.”
이영도 황송해했다. 서봉장(瑞鳳章)은 여성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대한제국 황실 여인들은 이미 수훈 대상이었다.
“단순히 공로라든지 그런 게 아니오. 머나먼 나라,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가면서도,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친왕비의 모습에 감탄했기 때문이오. 친왕비의 선례와 노력이 있었기에, 태자가 원하는 국혼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소. 나는 군주이자 아비로서 제수씨에게 감사하고 있소.”
이선의 감사는 진심이었다.
아나스타샤 브론스카야, 즉 영친왕비 이서아의 선례가 없었더라면 이진과 타티야나의 국혼은 쉽사리 성사되지 않았을 터였다.
러시아인 아나스타샤 브론스카야가 아닌 ‘한국인 이서아’가 되기 위해 노력하였기에, 외국인과의 국혼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여론을 돌릴 수 있었다.
“폐하, 그렇다면 제가 감히 한 가지를 청해도 될지요?”
이영은 놀라서 아내를 쳐다보았다. 언제나 처신을 조심하는 그로선, 눈짓으로 뭐가 됐건 청하지 말라 하였지만, 이서아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개의치 말고 무엇이든 말해 보시오.”
이선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사실 아나스타샤 브론스카야에게 있어, ‘한국인 이서아’로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영친왕비 전하’로서는 더욱 그러했다.
보수적인 종친들은 외국인 친왕비를 못마땅하게 여겼으며, 특히 시어머니인 황태후 김씨는 여전히 용납하지 못했다.
“도대체 네가 처신을 어떻게 하였기에, 이런 참담한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오백 년 왕조 역사상 이런 일은 없었다! 이런 망측한 일이라니!”
황태후는 ‘그 사건’에 대해 아는 극소수 인사 중의 한 명이었다. 이선은 최대한 모르게 하려고 했지만, 다름 아닌 친아들에게 발생한 일을 황태후가 모를 수가 없었다.
“너는 여기가 아직도 서양인 줄 아느냐? 대한의 친왕비가 되어 어찌 영국 황태자와 단둘이 술을 마실 수 있단 말이냐!”
“자전(慈殿, 태후)께옵서 심려하심은 지당하오나, 영친왕께서 접반사이니 친왕비가 영국 태자를 접대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하물며 그 당시에는 친왕께서 취하시어······.”
“황후. 내가 내명부의 일도 모두 황후에게 일임했다지만, 이 일만큼은 관여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아들에 관한 일입니다.”
황후 김아영이 동서(同壻)의 편을 들려고 하자, 황태후는 단호한 어조로 잘랐다.
지금껏 모든 사안에 극도로 처신을 조심히 하던 황태후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지아비가 술에 취했으면 객(客)을 내보냈어야지, 어찌 아내가 접대를 해! 친왕비가 기생이라도 된단 말이냐? 이래서야 네가 그 탕아를 유혹한 것과 뭐가 다르느냐?”
황태후는 ‘그 사건’을 서양인 며느리 탓으로 돌렸다. 유학자 가문에서 태어나 보수적인 유교적 교육을 받은 황태후로선, 남편이 술에 취했다는데 아내가 외부인의 접대를 맡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잘못은 ‘탕아 황태자’가 저지른 것이었지만, 그 빌미는 며느리가 제공했다는 게 황태후가 내린 결론이었다.
‘남녀유별도 모르는 저 음탕한 서양 문화가 우리 황실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서양 계집까지 물을 흐리고 있으니.’
황태후는 이선이 황실에 서양문화를 이식하고 서양인과 국혼을 올리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차마 황제에게 비판을 가할 수는 없었다.
유교적 삼종지도(三從之道)에 철저한 황태후로선, 황실의 가장이자 법적 장남인 이선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었다.
‘서양식 행사를 치르고, 왕실 여인들이 그 낯부끄러운 서양식 의복을 입는 것까지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어찌 황실의 제사를 올리고, 후계자를 생산할 황태자비가 이방인일 수 있는가! 열성조께 부끄러운 일이 아니냐! 말세로다!’
황태후가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황실의 대통을 이을 후계자, 대한제국 3대 황제이자 조선의 29대 군주가 될 미래의 증손자가 혼혈아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19세기 조선의 사고방식을 가진 황태후로선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게 다 저 계집이 선례를 만들어서 이렇게 된 게 아닌가! 고얀 것, 내 아들의 앞길을 망친 것도 모자라서······.’
황태후는 진작부터, 아들이 계승권에서 멀어지기 위해 이서아를 택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황형에게 맞서지 말고 은인자중하라고 조언한 건 자신이었다지만, 하필 아들이 그 방법으로 서양 여인과 결혼했다는 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백인 여자들이 그토록 음란하다던데, 영국 황태자를 홀린 것만 봐도 빤히 보이는구나. 저 고양이 같은 얼굴과 베갯머리 송사로 내 순진한 아들을 속였겠지!’
서양인들이 동양인에 인종적 편견을 갖고 있듯,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보수적인 동양인들은 가슴 위를 훤히 드러내는 ‘헐벗은 옷(드레스)’을 입는 서양 여성들은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여겼다.
이성 관계에 대해 순진하다 못해 무지함 그 자체였던, 영국 유학 이전의 이영을 기억하는 황태후로선, 빼어난 미모를 지닌 이서아는 특히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황태후의 의심은 거의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황제의 성총을 흐리게 하여 외국 공주를 황태자비로 들이게 하다니······. 요망한 것!’
이서아의 갑작스러운 ‘유교 코스프레’에, 황태후는 처음에는 놀라워하면서도 ‘유교의 왕화가 서양인도 감화시키는구나’라고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게 황태자비 간택의 밑밥을 깔기 위한 작전이었다는 걸 알게 되자, 황태후의 분노는 임계점에 이르렀다.
지시를 내린 건 이선이었지만, 황태후의 분노는 황제가 아니라 ‘요망한 계집’, 즉 이서아에게 향하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없기에 망정이지, 이 소문이 밖으로 퍼진다면, 친왕의 명예, 아니 우리 황실의 명예가 땅에 떨어질 터!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 송구하옵니다. 다 제가 부덕한 탓입니다.”
어디까지나 ‘그 사건’의 피해자인 이서아로선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황실의 큰 어른이자 시어머니에게 맞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난 네가 언젠가 반드시 이런 사달을 낼 줄 알았다. 난 무엇보다 황태자비가 네 잘못된 처신을 배워서 태자를 잘못 보필할까 걱정이야!”
황태후의 분노는 국혼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자신이 직접 황태자비의 일에 개입하진 않았다.
물론 황실의 큰 어른으로서 개입할 수 있었지만, 그건 내명부의 수장이자 황태자비의 시어머니인 황후의 몫이었다. 황태후는 황제와 황후의 권위를 존중했기에 선을 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마음껏 하대할 수 있는, 며느리를 야단치는 자리에 굳이 황후를 불러, ‘내명부의 수장이자 시어머니로서 이방인 며느리를 어찌 다뤄야 하는지’ 보여 주고 있었다.
‘어머님도 참······.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아영도 시어머니의 뜻을 이해했다.
유교 명문가에서 태어난 건 마찬가지라지만, 근대적 신교육을 익히고 진보적인 남편과 평생을 함께한 아영으로선 굳이 동서나 며느리를 조선왕조의 방식으로 대하고 싶지 않았다.
‘내 아들이 사랑해서 한 국혼이 아닌가. 그럼 아들의 뜻을 존중해 줘야지. 물론, 정치적 의미도 있겠지만······.’
아영은 아들과 타티야나의 결혼이 사랑을 이룬 일이라 여기면서도, 냉철한 정치가인 남편이 원하는 목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자신은 이 국혼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며느리도 아끼고 사랑해 줄 터였다.
아무도 국혼이 단순히 사랑만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타티야나의 친언니인 올가조차도, 국혼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사회적 의미에 고심하고 있었다.
‘이래저래 한국 황제 폐하께 깊은 은혜를 입었으니, 우리 또한 한국을 위해 도움이 되어야겠지. 한국이 원하는 건 무엇일까. 프리모리예(연해주)와 아무르가 소비에트에 맞서 한국의 방벽이 되는 걸까?’
올가는 거듭 고심했다.
‘이제 대한제국과 러시아제국은 혈통으로 묶이게 되었다. 알렉세이는 대한제국 황태자의 처남이고, 나는 처형(妻兄)이 되지.’
마지막 차르 미하일 2세의 생사를 알 수 없는 현재, 로마노프 왕가 계승서열 1순위는 니콜라이 2세의 아들 알렉세이, 2순위가 니콜라이의 사촌인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이었다.
하지만 임시정부와 소비에트를 지지했던 경력이 있는 키릴을 싫어하는 왕당파가 많았고, 차라리 차르의 장녀인 올가가 로마노프 대공과 결혼해서 계승을 원하는 이들이 적잖았다.
‘제정복고가 당장 어렵더라도, 로마노프 왕가가 극동에서 중요한 세력으로 자리 잡아야 해. 다행히 아무르 정부의 실력자들이 우리에게 우호적이니까. 타냐가 한국 황실과 결혼한 덕도 있겠지.’
아무르 정부에는 제정복고파가 상당했고, 특히 군부에서 그런 경향이 강했다.
군부 ‘3대장’ 중 디테히리스 장군은 노골적인 왕당파였다. 콜차크 제독과 브랑겔 장군은 공화국을 지지했지만, 차르라는 존재가 정통성 강화에 도움이 된다면 받아들일 여지가 있었다.
아무르 정부가 사실상 군부독재로 나아가고 있는 이상, 제정복고가 불가능한 꿈은 아니었다.
올가 자신은 과거 계승권을 포기하고 전러시아 임시정부에 ‘시민’으로서 충성을 맹세한 바 있었으나, 임시정부가 붕괴했으니 맹세의 제약도 사라진 터였다.
올가는 아픈 동생이 차르로 거론되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으나, 만약 제정복고의 기회가 온다면, 자신이 나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모님이나 한국 황제는 정치를 잊고 살라고 했지만, 나는 로마노프 왕가의 후예. 한국 황제 폐하께 은혜도 갚아야 하고. 최소한 5남매 중에 맏이인 나는 의무를 다해야 해.’
올가가 새삼 실속도 없는 제위가 탐이 나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300년 통치자인 로마노프 왕가의 명맥을 잇고 싶었다. 극동의 작은 영역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올가는 자신의 속내를 이서아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제 막 황태자비가 된 동생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고, 대한제국 황실에서 그들의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이서아뿐이었다.
“여대공 전하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정통 러시아의 재건은 제 아버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저도 정통 러시아를 재건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어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친왕비 전하.”
“하지만 지금 저나 태자비께서 나서는 건, 모양새가 안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황태자비 전하는 조심스러운 처지니 더욱 그렇습니다. 한국에는 출가외인(出嫁外人)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왕가에 시집을 온 이상, 저나 황태자비는 이왕가의 여인입니다.”
이서아는 남편 이영이 처신을 얼마나 신경 쓰는지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이 황실 보수파로부터 얼마나 백안시(白眼視)되는지도 알고 있었다.
올가도 이서아의 조심스러운 반응을 충분히 이해했다.
“당장 뭘 하자는 건 아닙니다. 저희는 이미 이왕가에 막대한 은혜를 입었는데, 더 신세를 질 수 있겠어요? 다만 아무르에서 제정복고의 목소리가 커진다면, 그 목소리를 대한제국 황실에 전달해 주는 분이 필요합니다.”
이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부담이 따르는 일이니만큼, 황태자비인 타티야나가 그런 역할을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자신이 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언젠가 제가 나서야 할 일이 있다면, 그리하겠습니다.”
이서아 자신도, 극동에서라도 로마노프 왕조가 존속되기를 바랐다. 그게 로마노프 왕가와 이왕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타티야나를 대신해서 자신이 대신 비난받는 악역이 되고, 총알받이가 되어 주어야 했다.
평생 로마노프 왕조와 러시아에 충성을 다한 부친을 위해서라도.
‘어차피 나는 미움받는 데 익숙해져 있으니까.’
이서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외국 왕실, 문화가 다른 동양 왕가에 시집을 온 자신이 택한 운명이었다.
작가의 말
지금 시각으로 보면 황태후가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겠지만, 저 시대 관점에서 보면 저게 정상이고 이선-아영 커플이 지나치게 진보적입니다. 이영-이서아 커플은 소설적 허용이고…
20세기에도 ‘시집살이’가 얼마나 혹독했는지 괴담들이 많지요.
아무리 현대화되어도, 왕실은 대개 보수반동일수밖에 업습니다.
일본 황실이 얼마나 반동적인지 보면 알수 있지요. 재벌가 영애인데도 평민이라고 미친듯이 시집살이 당한 미치코 황후도 마사코 황태자비에게 내리갈굼 시전하는거 보면… 멀쩡한 인간도 미쳐버리게 만드는게 왕실인듯 싶습니다.
유교국가였던 조선왕실이 존속했더라면 그 못지않게 괴담이 난무했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