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72
– 72화에 계속 –
72화 근대의 통치 원리
1882년 10월 24일. 사은사 이선은 김홍집, 어윤중과 함께 귀국하여 임금에게 복명(復命)했다.
“이번의 협상이 잘 처리된 것은 아주 다행한 일이다. 무역 장정이 체결되고 차관을 내 주다니, 황상의 은혜와 중당의 배려가 지극하다.”
“모두 주상 전하의 성덕이십니다.”
“내가 무슨 공이 있는가? 경들의 공이다.”
임금은 모든 외교적 성과를 맏아들이 거두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 고빙(雇聘)한 전 천진 주재 덕국 영사 목인덕이 성상을 알현하길 바라며 인천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묄렌도르프는 목인덕(穆麟德)이라는 조선 이름까지 지어두었다.
“어서 한성으로 들어오라고 하라.”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서양과 국교조차 없던 나라에서, 서양인 고문관을 채용하게 된 것이다.
이선이 직접 묄렌도르프와 말을 타고 한양으로 오는데, 조선에 합법적으로 입국하여 한양에 들어오게 된 최초의 서양인인 묄렌도르프를 보려고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얼굴 허옇고 눈이 시퍼렇다니. 도깨비가 따로 없군.”
“서양 오랑캐가 조선에 올 줄이야. 세상이 바뀌긴 바뀌었군.”
“어허, 임금님과 국태공께서 부르셨다고 하지 않는가. 완화군 대감께서 직접 모셔가는 걸 보면 모르겠나?”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면 옳은 일이겠지.”
“아무튼, 참 기이하구먼. 서양인들은 다 저리 생겼나?”
“중국에 있을 때도 관심을 많이 받았습니다만, 이 정도는 아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조선 백성들의 기대가 큽니다, 헤어 묄렌도르프. 아니, 목인덕 공.”
묄렌도르프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단순한 호기심이 가장 많았다. 사람이 너무 모여들어 행로에 방해가 될 지경이었다.
“목인덕의 입경에 잡인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라.”
대원군이 명을 내려 인파를 통제하게 했다.
한양으로 들어온 목인덕은 바로 이튿날 경복궁에서 임금을 알현하기로 했다.
“내일 국왕 전하를 뵙게 되었습니다. 저야 중국에서 10년 넘게 살아 동양의 예법에는 밝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만, 국왕을 뵙는 것은 처음이니 아무래도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왕자께서 저를 도와주십시오.”
“물론 그래야지요.”
“국왕을 알현할 때 뭐라고 말씀드리면 되겠습니까?”
이선은 간략한 궁궐 예법과 간단한 조선어를 알려 주었다.
“내가 조선어를 로마자로 적어줄 터이니, 이대로만 외어서 말하십시오.”
10월 26일. 묄렌도르프는 서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조선의 임금을 알현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독일의 외교관 제복을 차려입고 프로이센의 훈장을 단 묄렌도르프는 조선 왕실에서 제공한 가마를 타고 왕궁에 들어섰다.
경복궁의 높은 단 위에는 임금이 앉아있고, 그 곁에 대원군과 조정의 대신들이 시립해 있었다.
묄렌도르프는 걸어들어와 임금 근처에 이르자 동양의 예법에 따라 안경을 벗고, 고개를 깊숙이 숙여 예를 표한 후 외었던 조선어 문장을 읊었다.
“외신(外臣)이 귀국에 오니 기쁜 마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성심을 다하겠사오니, 군주께서도 외신을 신임하옵시기를 바라나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외웠지만, 발음과 억양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동양식 예법을 갖추고 조선어를 열심히 쓰려 한다는 그 자체로 묄렌도르프는 호감을 주는 데 성공했다.
“경이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조선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이오.”
임금의 말은 중국어로 통역되었고, 중국어가 유창한 묄렌도르프는 중국어로 화답했다.
이선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통역하려다가, 왕자가 통변을 하면 체면이 깎인다는 대원군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매번 내가 나설 수도 없고, 빨리 서양 언어에 능숙한 역관을 양성해야지.’
묄렌도르프가 임금을 알현한 지 1시간도 채 안 되어, 관직 개편이 있었다.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을 신설하니, 영정종경부사 이선을 독판통리아문사무로, 예조참판 김홍집을 협판통리아문사무로, 전 천진 주재 덕국 영사 목인덕을 참의통리아문사무로 임명한다.”
기무처에서 독립하여 외교를 전담할 부서인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 흔히 외아문(外衙門)이라 부르게 될 부처를 신설했다. 장관급인 독판으로 이선을, 차관급인 협판으로 김홍집을, 국장급인 참의로 묄렌도르프를 임명했다.
서양인이 관직에 임명된 건 처음이었고, 이선이 조정의 정식 직함을 맡게 된 것도 처음이었다.
조선 최초의 외무부에 해당하는 관청으로, 이선과 묄렌도르프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독립 외교 부서를 창설한 것이다.
단숨에 정3품에 해당하는 당상관직에 임명된 묄렌도르프는, 열성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묄렌도르프는 독일인 특유의 성실함을 발휘하여, 쉬지 않고 일을 업무를 추진했다.
‘묄렌도르프가 지금의 조선에 꼭 필요한 인재인 것은 분명하군.’
일본과 처음 조약을 맺은 이래 지금까지 제대로 된 관세 협약을 맺은 바가 없어 그때까지 무관세로 일본의 물건들이 들어와 조선 시장을 잠식하고, 조선의 미곡은 헐값으로 일본에 넘어가는 현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묄렌도르프가 제일 먼저 추진한 일은 조미 조약의 관세율에 근거하여 일본과 관세 조약을 새로이 맺고, 제물포와 원산, 부산에 근대적 해관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해관(海關)의 초대 총세무사를 겸직하게 된 묄렌도르프는 해관 창설자금으로 20만 냥 차관을 새로 도입하고, 청 해관에서 근무 중인 서양인 직원들, 특히 고국인 독일인 직원들을 뽑아 조선 해관에 배치했다.
조선 해관은 청 해관과는 다른 별도의 독립국 해관임을 분명히 하고, 궁극적으로 조선인 해관원들을 훈련해 세관의 자주를 이뤄내는 것이 목표였다.
“이건 시작일 뿐입니다. 나는 조선 군대를 재조직하기 위해 독일에서 장교와 하사관들을 초빙할 것이고, 도로와 다리를 건설하고, 임업과 낙농업을 장려하고 조선인의 의식을 바꾸게 해 조선을 자주적인 국가로 만들고 싶습니다.”
묄렌도르프는 이선에게 상당한 포부를 드러냈다.
“구체적인 복안이 있습니까?”
이선은 묄렌도르프에게 조선의 개혁을 추진할 계획안을 만들라고 명한 바 있었다.
“물론 있습니다. 이게 제가 세워 놓은 근대화 계획입니다.”
1. 행정. 내각을 수립해서 측근 밀실 정치가 아니라 공적인 행정체계를 통해 공무를 집행한다. 관리들의 임명도 반드시 각의(閣議)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2. 계급. 양반이 무위도식하면서 하는 일이라곤 민중을 수탈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신분제와 신분 차별을 혁파한다.
3. 재정. 조세 제도를 개편해서 민중의 세금 부담을 줄이고 왕실 유지비를 축소한다. 근대적인 예산 제도를 실시하여 화폐 제도를 개혁하고 국립 은행을 설치한다.
4. 사법. 대명률에 근거한 기존의 전근대적인 법안을 폐기하고 근대법을 확립시키고, 법조문을 언문으로 작성하여 전 국민이 볼 수 있도록 한다.
5. 군사. 근대적인 군대를 양성하며 국민 개병을 실시한다.
6. 교육. 습득하기 어려운 한자를 대신해 언문을 국문으로 전용한다. 전국 8도에 800여 개의 초등학교와 24개의 중등학교, 전문학교를 설치하여 행정과 산업 인재를 양성한다.
7. 농업. 유럽의 농기계와 농법을 받아들여 농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상업적 작물을 재배하여 수출을 통해 농업 이익을 극대화하고 수산업과 낙농업, 임업을 육성한다.
8. 산업. 낙후된 수공업을 개혁하여 유리, 성냥, 도자기, 융단, 부채 등을 수출 품목으로 선정하여 공장을 만든다. 인삼을 국가 전매하고 광산을 개발한다.
9. 교통. 이 모든 계획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선 해로와 도로, 교량 및 철도를 정비하고 전신과 우체국을 통해 통신망을 확립한다.
이선은 개혁안을 읽어보고 매우 만족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드디어 구체적인 근대식 개혁을 추진할 안을 갖고있는 자가 조선에 나타났군. 이래서 초기에는 서양 고문관을 채용해야지. 서양 고문관이 방향성을 제시하고, 조선의 개혁가들이 실정에 맞춰 실무를 추진하는 방안으로 나가야 한다.’
“아주 좋습니다! 공이 생각하는 개혁 방안은 꼭 내 생각과 같습니다. 아홉 가지 모두 지금 조선에 시급한 일입니다. 근대 국민국가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조치지요.”
“역시 독판 각하께서는 알아주시리라 생각했습니다.”
묄렌도르프는 자신의 개혁안이 조선인이 받아들이기엔 너무 급진적이지 않나 걱정을 했지만, 이선이 동의와 격려의 뜻을 표하자 기뻐했다.
“내 생각에 이건 프로이센 개혁을 모델로 한 것 같군요.”
이선이 프로이센 개혁(Preussische Reformen)에 관해 언급하자, 묄렌도르프가 놀라워했다.
“맞습니다. 어찌 아셨습니까? 정말 각하의 식견은 대단하십니다.”
‘프로이센 개혁’은 1807년 이후 프로이센이 추진한 일련의 군제 개혁, 행정 개혁, 농업 개혁, 재정 개혁, 교육 개혁을 통칭하는 말이다.
1807년, 나폴레옹에게 대패를 당하고 프랑스와 굴욕적인 틸지트 조약을 체결한 프로이센은 국가 멸망의 위기에 놓였다.
커다란 굴욕감과 위기의식을 느낀 지배 계층은 위로부터의 개혁을 서둘러 추진했다.
국민 개병제 실시를 통한 국민군의 창설과 참모본부 설치.
중앙 정부 개혁과 능력에 따른 관료제.
농노제 폐지와 토지 분배를 통한 자작농 육성.
근대적 국민국가 형성을 위한 국민 교육의 성립.
상공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 구조의 개편.
‘국가가 보유한 군대가 아니라 군대가 보유한 국가’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한 군국주의 사회였던 프로이센은, 개혁을 통해 체질 개선에 성공했고 1814년 나폴레옹의 몰락에 기여한다.
프로이센은 점점 더 강력해졌고, 1860년대 이후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주도로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를 잇달아 무찌르며 독일 통일을 달성한다.
“나 역시 프로이센 개혁을 모델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왕실과 융커(Junker, 토지 귀족)라는 지배계층의 이익을 보존하면서, 개혁을 추진하고 완수한 사례는 역시 프로이센, 즉 독일이지요.”
‘왜냐면 내가 왕족이니까. 영국의 청교도 혁명이나 프랑스 혁명처럼 왕의 목을 자를 순 없잖아?’
이선이 구상하는 개혁은 결국 프로이센 개혁이나,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를 모델로 한 위로부터의 개혁이어야 했다.
“난 독일의 비스마르크 수상을 진심으로 높이 평가합니다. 그분이 이룬 정치적 업적과 외교적 수완은 천재적이죠. 비스마르크의 어록을 외울 정도입니다.”
“Eisen und Blut(철과 피)?”
“아, 물론 그것도 있지만.”
비스마르크의 대표적인 연설은 역시 ‘철혈재상’이라 불리는 계기가 된 철혈 연설이 있다.
“Politics is the art of the possible(정치란 가능성의 예술이다).”
“Ach so, Die Politik ist die Lehre vom Möglichen.”
이선의 영어를 묄렌도르프가 독일어로 옮겨 주었다. 비스마르크가 1867년에 한 말로, 유명한 격언이었다.
“좋은 말이지요. 독일 같은 강대국이 아니라 조선 같은 약소국에서도,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입니다.”
“옳으신 말씀.”
그 자신도 외교관이자 비스마르크 지지자인 묄렌도르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양에선 내가 러시아에서 작위를 받았다는 이유로 친러파인 줄 아는 모양인데, 결코 아닙니다. 비스마르크 수상이 말한 정치의 비밀 때문이죠.”
이선은 빙긋 웃었다.
“The secret of politics? Make a good treaty with Russia(정치의 비밀이란 무엇인가? 바로 러시아와 좋은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1887년에 러시아와 재보장조약을 체결하면서 한 말이므로 아직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말이지만, 이선은 개의치 않고 인용을 했다.
“독일과 러시아가 이웃 나라이듯 조선과 러시아도 이웃 나라이니, 강한 이웃 나라와 좋은 조약을 맺는 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러시아와 좋은 조약을 맺어야지요.”
“이건 저도 몰랐습니다. 각하께선 정말 비스마르크 수상을 존경하시는군요.”
묄렌도르프가 감탄하는데, 이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손가락을 흔들었다.
“비스마르크 수상의 명언 중 진짜 좋아하는 말은 따로 있습니다. 근대 국가의 통치원리를 딱 세 단어로 압축한 말이지요.”
“무엇인지요?”
“Steuern zahlen, Soldat sein, Maul halten!(세금을 내라, 군대를 가라, 닥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