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731
3부 146화 망국의 군주
광무 27년 3월 21일, 계해(癸亥)년 을묘(乙卯)월 계사(癸巳)일.
신위를 종묘에 모시는 부묘를 마지막으로, 고종 태황제의 삼년상 기간이 끝났다.
이선은 상주이자 왕통을 계승한 군주로서 고종의 신위를 모시고 종묘의 제실로 들어갔다.
종묘 정전 제18실, 철종의 신위를 모신 제17실 옆에 고종의 신위가 안치되었다.
사후에 받은 묘호는 고종(高宗), 생전에 받은 존호는 통천융운조극돈륜정성광의명공대덕요준순휘우모탕경응명입기지화신열수강(統天隆運肇極敦倫正聖光義明功大德堯峻舜徽禹謨湯敬應命立紀至化神烈壽康), 시호는 문헌무장인익정효태황제(文憲武章仁翼貞孝太皇帝).
역사의 변화로 자신이 직접 제위에 오르지는 못했으되, 황제의 예로 종묘에 모셔진 최초의 군주였다.
고종의 신위가 모셔지는 과정을 지켜보던 이선은, 복잡한 기분이 교차했다.
‘태황제 폐하, 아니 아버지. 망국의 군주가 아니라 부흥한 제국의 중시조(中始祖)로서 종묘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생전의 고종은, 이선과는 애증의 관계였다. 권력을 놓고 서로 질시하고 혐오한 정적이면서도, 결국에는 관계를 끊어 낼 수 없는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이선은 유교국가 조선을 계승한 군주로서 열심히 효성스러운 아들 흉내를 내고 있지만, 누구보다 그 자신이 효자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명분과 이유가 충분했을지라도, 부왕을 끌어내리고 군주가 된 아들이었다.
그럼에도, 이선은 자신이 부왕에게 아들로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이선이 바친 최고의 효성은, 고종이 외세에 나라를 빼앗긴 망국의 군주로 영원히 비난받을 일이 없게 한 것이었다.
‘하늘에서 선대왕들께 부끄러울 일이 없겠지요. 어쩌면 선대왕들도 아버지에게 훌륭한 후계자를 뒀다고 칭찬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선은 기존 종교 – 유교, 불교, 기독교, 천도교 모두 존중했지만, 그 자신은 무신론자였다.
신, 천명, 운명, 혼백, 사후세계, 환생, 그 어떤 것도 믿지 않았다.
그 자신이 21세기의 기억을 갖고 19세기를 살게 된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천명이라 할 수 있었지만, 이선은 그게 신의 섭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선은 문득 사후세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에서 할아버지와 다시 만나 지상에서 못다 했던 부자로서의 정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부디 편히 쉬십시오.’
대원군이 죽음을 앞에 두어서야 아들과 기나긴 애증을 끊고 화해하였듯, 고종도 그러하였다.
모든 번뇌를 내려놓은 사후세계에서는, 순수하게 아버지와 아들로서 만날 수 있으리라.
‘언젠가 저도 뒤따르겠지요. 혼백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이곳이 제 마지막 안식처가 될 터이니까요.’
이선이 세상을 떠나면, 그 신위가 제18실 옆의 제19실에 모셔질 터였다.
원칙적으로 태묘(정전)에는 태조와 군주의 5대 직계 조상, 7묘만을 모신다. 중국에서도 명나라 때 확장하여 9묘 제도가 확립되어 태실이 9개였다.
시간이 흐르면 6대조인 군주는 정전이 아니라 영녕전으로 옮겨야 옳으나, 예외적으로 공적과 덕이 특별하다고 군주만이 정전에 계속 모실 수 있었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불천지위(不遷之位)를 남발하여 태실이 18실에 이르렀다. 정작 영녕전에는 15실만이 있을 뿐이었다.
광무제 이선을 기준으로 하면, 태조·정조·순조·문조·헌종·철종·고종만이 7묘에 해당되고, 태종‧세종‧세조‧성종‧중종‧선조‧인조‧효종‧현종‧숙종‧영조 11실은 불천위인 셈이었다.
이선이 보기에는 자격 없는 군주도 있다고 생각되어 뭔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선대왕의 일을 후손이 건드릴 수는 없으니 내버려 두었다.
‘내 묘호는 뭐가 될까? 생전에 알 길이 없으니.’
군주의 상징과도 같은 묘호는, 사후에 결정되니 군주 생전에는 알 길이 없다.
‘묘호까지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 죽은 후의 일까지 어찌 알겠나? 살아생전 최선을 다하면, 후손들이 알아서 해 줄 터이니.’
이선은 실용을 추구하기 때문에, 호칭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고종만 해도 재위기에 4차례에 걸쳐 32자의 존호를 받았다. 능력이 부족했기에, 권위를 빛내기 위한 호칭에 더 집착한 경우였다.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을 세운 이선을 향해서 존호를 바치겠다는 신하들의 청이 빗발쳤지만, 이선은 딱 두 차례 16자만 받았을 뿐이었다.
헌법을 반포하고 북벌을 완수한 광무 5년,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직후인 광무 22년 두 차례였다.
그마저도 광무 22년에는 안 받겠다고 수차례 사양했으나, 정부에서 ‘일개 병사도 수훈을 받는데 통수권자인 황제가 수훈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고집을 부려서 받았다.
‘통치자의 권위란, 덕과 업적으로 만들어야지 권력을 남용해서 치장하는 게 아니다.’
이선은 허영과 허세를 싫어했다. 최고의 지위에 오르면 권력에 도취될 법도 하건만, 이선은 그러한 사고 자체를 경멸했다.
권력은 수단이었다. 이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 국가 그 자체였다. 대한제국의 국력과 국위가 성장할 때마다, 이선은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대한제국은 이선의 모든 것이었다. 이선은 대한제국을 사랑했다.
* * *
‘오직 나라만을 사랑하는’ 철혈 계몽군주를 표방하는 이선에게도, 아무런 조건 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베푸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이선의 자식들, 세 아들과 세 딸이었다.
다만 아들에게는 제위 계승권이 있기에, 때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어 분발을 촉구했다. 단순히 아들이 아닌, 통치자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했다.
‘태생적으로 남의 위에 설 권리가 있는 자는, 엄정한 기준을 통과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한 의무가 없는 딸에게는, 훨씬 관대한 접근법을 취하고 부모로서의 사랑을 베풀 수 있었다.
“예경공주께서 스물넷이라고 하지 않으셨나? 그런데 아직도 혼례를 올리지 않으시다니.”
“오라버니인 황태자 전하께서 결혼하신 후에야 혼례를 올린다고 하셨다는군.”
“어휴, 기특하긴 하다만 그 나이면 보통 노처녀가 아닌데.”
“상상하지 못할 일이긴 하지. 스물 넘어서 결혼하면 대체 애는 몇이나 낳으려고?”
“어허, 황실 일에 함부로 입 놀리지 말게.”
“아니,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지. 모름지기 일찍 결혼해야 다산하는 법인데.”
예경공주 이희가 만 23세가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건, 당대 한국인들 사이에서 놀라운 일이었다.
역대 공주들은 10대 초반에 결혼했고, 스물을 넘긴 적이 없었다.
갑신경장 이후 조혼을 법으로 금지했다고 해도 세간에서는 여전히 조혼풍습이 남아 있어, 민법에서 허용되는 연령인 열여섯만 되면 딸을 재빨리 결혼시켰다. 시골에서는 이조차도 안 지키는 일이 허다했다.
‘부모가 멋대로 어린애들을 결혼시키다니, 이런 악습은 근절해야지.’
이선은 법으로 지정하였는데도 계속되는 조혼 풍조가 매우 거슬려, 국가적으로 조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계몽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예외적으로 대학까지 다니는 ‘신여성’들조차도, 스물만 넘기면 노처녀 취급받는 게 현실이었다.
결국 황실이 직접 나서서 인식 변화에 나섰다.
이진이 만 25세에 결혼했고, 이희도 만 23세가 되도록 결혼하지 않았다.
이제 태자가 국혼을 올리고 삼년상도 끝났으니, 이선은 장녀의 혼례를 올릴 예정이었다.
사람들은 놀라워하면서도, 존경하는 황제 폐하의 뜻이니 어련하겠는가 하면서 따랐다.
그만큼 이선이 공주들을 아끼고 사랑한다고 소문이 널리 퍼진 덕분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그토록 공주님을 아낀다고 하시지 않는가.”
“혼인도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상대랑 허락하신다는데.”
“허허, 딸자식 둔 부모들은 깜짝 놀라겠는데.”
“크, 모던-보이, 모던-걸이 황실에 있다니.”
관료, 자본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최소 스물은 되어야 결혼은 해야 된다는 인식이 확장되어 도시에서는 조혼 문화는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필요하다면 정략결혼도 하겠지만, 본인이 원치 않는다면 선택지를 줘야지.’
물론 이선은 정치적 인간이기에, 국익을 위해 공주를 정략결혼에 활용할 준비도 되어 있었다.
아직 미혼인 청국 황제 부의 혹은 그 아우인 부걸을 ‘한만융화’를 위한 사윗감으로 여기고 있었다.
부의도 이제 만 16세, 조혼 풍습이 남아 있는 청국에서는 국혼을 고려하는 시기였다. 이선은 한청 간의 국혼을 염두에 두고 타진해 보았지만, 청국 황실은 한국 황실과 달리 여전히 보수적이었다.
「황후는 반드시 전례를 따라 만주 혹은 몽골 귀족 여인이 되어야 한다. 다만 황귀비라면 한국 공주를 모실 수 있다.」
‘황귀비? 내 딸더러 황제의 후궁 노릇하라고? 무슨 의순공주냐? 아직도 자기네가 상국인 줄 아나?’
청 황실의 답변을 들은 이선은 불쾌했다.
그런데 그 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청 황실 입장에선 가뜩이나 한국에 만주의 실질적인 통치권을 넘겨줬는데, 황후까지 한국인이 되면 한국에 완전히 병합되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이 있었다.
“사실 대청 황제 폐하께서는 예성공주께 특별한 호감을 품으신 것 같습니다만, 황부(皇父) 순친왕과 황실에서 결사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격이 안 맞겠다고 여길 테니까.”
예성공주(睿誠公主) 이라.
이선의 차녀 이라는 성년이 되어 예성공주의 작호를 받았다.
청 황실 입장에서는 이라가 옛 제후국 군주의 서녀(庶女)인 것보다도, 서양인 혼혈인 게 더 마음에 안 들 터였다.
만 17세가 된 이라는 어머니를 닮아 똑똑한 미모의 규수로 성장했다.
작년 가을에 예친왕 이은과 이라, 어린 이금이 성경(봉천)을 방문했을 때, 부의는 이라에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부의는 청 황제로서는 최초로 서양식 교육을 받았다. 영국 학자인 레지놀드 존스턴(Reginald F. Johnston)을 가정교사로 초빙하여 영어와 서양 학문을 익혔다.
자연히 부의는 서양에 호의적이었고, 서구화만이 국가 발전의 길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특히 옛 제후국이었던 한국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청국의 국력을 압도하게 된 것을 보고 부러움과 질시의 감정을 느꼈다.
그런 부의의 눈에, 이라는 한국의 서구화를 의인화한 여인이었다.
동서양의 미가 조화된 서구적인 용모,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아 형성된 교양, 사교성 좋고 상냥한 성격.
서구식 교육을 받은 부의와 이라는 유창한 영어로 대화를 했다.
“공주님은 정말 아름답고 현명하군요. 장차 공주님의 남편이 될 사람이 부럽습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폐하. 폐하께서는 대청국의 지존이시자 2천만 국민의 으뜸 아니십니까.”
부의는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위대한 선조들의 발밑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리석은 후손이지요. 우리 선조들은 동양 전체를 지배하고 군림하셨건만, 짐은 만주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허수아비 아닙니까.”
이라가 갈색 눈을 크게 뜨자, 부의는 괜한 말을 했다 싶었다. 청국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든 대한제국을 비난하는 소리로 들릴 여지가 충분했다. 그것도 하필 대한제국 공주 앞에서.
“물론 한국이 아니었더라면, 대청은 저 중화민국을 자처하는 폭도들에게 제위를 빼앗겼겠지요. 짐은 망국의 군주가 되어 자금성의 포로 신세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라는 부의의 심리를 이해하고,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제가 놀란 건, 러시아 황태자 전하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황태자 전하께서요?”
“네, 알렉세이 대공께서도 방금 폐하께서 하신 말씀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거든요.”
* * *
알렉세이는 속정은 깊어도 무뚝뚝한 얀(이안)보다는, 상냥한 성격인 이리나(이라)에 친밀감을 느꼈다.
“나는 5남매의 막내라, 위로 누나만 넷이지요. 이제 성년이 되었는데도, 다들 나를 어린애 취급해요. 그렇다 보니 언제나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럼 제가 한 살 어리니까, 여동생이 되어 드릴게요.”
“하하, 고맙지만 공주님은 정친왕의 여동생이 아닙니까.”
“동생을 버리고 멀리 영국으로 떠난 오라비보다는, 제 곁에 있는 대공 전하가 더 좋아요.”
그동안 함께 지내며 이안-이라 남매가 얼마나 의가 좋은지 아는 알렉세이로서는, 이라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누나들이 자신을 아끼는 것처럼, 이안을 이라를 아꼈다. 자신이 누나들을 따르는 것처럼, 이라도 이안을 따랐다.
그렇기에 더 동질감을 느끼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라도 혈우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알렉세이에 동정심을 느꼈고, 도움이 되어 주고 싶었다.
두 사람은 속내를 털어놓는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되었다.
“나는 위대한 표트르 대제와 러시아를 지배했던 황제들의 후손이지요. 그런데 지금 내 신세를 보세요. 부모를 잃고 떠도는, 아프고 불쌍한 망명자죠.”
알렉세이는 자주 비탄에 빠졌다. 불치병으로 허약한 신체는 정신의 불안을 가져왔고, 영락한 신세를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병자 특유의, 건강한 사람에 대한 질시도 있었다.
“전하······.”
“참으로 위대한 선조들께 부끄러운 후손이죠. 내 아버지는, 동으로는 태평양에서 서로는 폴란드까지 광대한 영역에 군림하는 지배자였어요. 하지만 나는 단 한 뼘의 땅도 다스리지 못하고 있지요.”
미소가 사라진 이라의 표정을 보면서, 알렉세이는 순간 아차 싶었다. 이라는 바로 그 폴란드 독립운동가의 딸이었다.
“미안해요. 내가 괜한 소리를 했네요. 러시아제국이 망하지 않았더라면, 폴란드는 독립하지 못했겠죠. 한국이 받아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생명조차 부지하지 못했을 거고요.”
“솔직히 저는 폴란드에 대해 잘 몰라요. 가 본 적도 없고요. 언젠가 가보고 싶긴 하지만. 폴란드는 어머니의 나라죠. 내 나라는 한국이고, 내가 아는 사람들이 소중해요.”
이라는 고개를 젓더니,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전하께서 자책하실 필요 없어요. 러시아제국의 붕괴는 전하의 잘못이 아닌걸요. 전하를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고,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자체로 행복 아닐까요? 돌아가신 전하의 부모님께서도, 제국의 재건이 아니라 전하께서 행복하길 바라실 거예요.”
이라의 격려에 알렉세이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어쩌다 자신은 불치병 환자에 망국의 황태자라는 저주받은 운명으로 태어난 것일까, 신을 수없이 원망했다.
하지만 영락한 신세가 된 후에도, 자신의 주변에는 여전히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올가도, 타티야나도, 마리야도, 아나스타샤도, 그리고 이안과 이라도.
“고마워요, 이리나 공주. 아니, 이라 공주님.”
“후후, 뭐라고 불러도 괜찮아요. 이리나란 이름도 마음에 드는걸요.”
알렉세이의 가슴 속에는, 아름답고 상냥한 이라에 대한 연모의 감정이 생겨나고 있었다.
아나스타샤가 이안에게, 알렉세이가 이라에게 호감을 느끼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연애경험은커녕 이성과의 접촉 자체가 드문 10대 소년소녀가, 3년 넘게 동고동락하며 감정을 공유하는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쓸데없는 감정이야.’
알렉세이는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만 18세가 되도록 살아 있긴 하지만, 불치병 환자인 자신이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 누구와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며,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자신과 결혼할 사람을 불행한 처지에 놓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한국 황태자와 결혼한 누이 타티야나를 생각하면, 황태자의 여동생 이라와 자신은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럼에도, 알렉세이는 계속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이들처럼, 다른 평범한 청년들처럼, 사랑하고 살고 싶었다.
혈우병 환자라는, 망국의 황태자라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작가의 말
이선의 묘호는 작중에서 죽지 않는 이상 알길이 없습니다!
고종, 니콜라이 2세, 선통제… 모두 비슷한 시기에 퇴위한 망국의 군주들이죠. 이렇게보니 고종이 가장 편안하게 천수를 누리고 갔군요. 니콜라이가 가장 비참한 최후…
만약 작중 세계관처럼 알렉세이(1904년생)가 살아남았으면, 푸이(1906년생)랑 비슷한 처지에 비교가 되겠네요. 둘 다 한국의 보호를 받지 않았으면 그 자리에 있지도 못할거고… (그 둘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라… 그녀는 도대체…)
??? : 양손의 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