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75
– 75화에 계속 –
75화 보빙사(報聘使)
바로 다음 날, 기무처 회의를 거쳐 왕명이 반포되었다.
“미국 공사가 국서를 가져와서 우호 관계가 이미 두터워졌으니 마땅히 답방이 있어야 할 것이다. 독판교섭통상사무 이선을 특명 전권 대신으로, 협판교섭통상사무 홍영식을 부대신으로 임명하여 떠나게 하라.”
“삼가 지엄하신 왕명을 받드나이다.”
이선은 단순히 답례 사절을 떠나, 대외적 목표와 대내적 목표를 정했다.
‘대외적으로, 미국과 서양 각국에 조선에 대한 외교적 승인을 받고, 경제적으로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보여준다.’
이선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국과 주요 열강 국가들을 방문해 외교적·경제적 협상을 할 생각이었다.
‘대내적으로, 개화파 관료들에게 미국과 서양을 시찰할 기회를 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충격요법으로 이만한 게 없지.’
실제로, 1883년에 파견된 보빙사나 1896년 니콜라이 2세 즉위식에 참석한 사절들은 미국과 유럽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들 대부분은 철저히 근대화를 통한 부국강병 신봉자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오니, 근대화를 아무리 말로 역설하는 것보다 직접 가서 보는 것보다 좋은 게 없었다.
러시아 제국 표트르 대제의 ‘대사절단’이나, 메이지 일본의 특명전권공사 구미회람 사절단, 즉 ‘이와쿠라 사절단’은 러시아와 일본의 개혁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
‘보빙사 역시 이처럼 조선에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길 바랄 뿐.’
이선은 즉각 인선 절차에 들어갔다. 미국 측에서 10인 내외의 사절단을 구성해 달라고 해서, 이선은 인선을 고심한 끝에 최종 결정을 했다.
정식 외교진에 특명 전권 대신 정사 이선, 부사 박정양(朴定陽), 종사관 홍영식, 참찬관 민영익, 참서관 서광범.
수행원에 유길준, 최경석, 변수, 고영철, 현흥택, 이상재, 이채연, 김학우, 안영흠, 장무영 등 총 15인이었다.
‘시무 개화파 관료들,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등도 데려가고 싶지만……. 실무 관료들을 무작정 차출할 수 없구나.’
문자 그대로 ‘시무’, 국가의 일이 시급한 관계로 유능한 관료들을 모두 데려갈 수는 없었다. 이들을 데려가면 심각한 국정 공백이 발생할 터였다.
‘미래를 이끌 30세 이하의 촉망받는 신진 관료들을 중심으로 사절단의 일원을 구성하자.’
부사를 맡은 중견 관료 박정양이 유일한 40대고, 다른 이는 모두 30대 이하였다.
박정양은 1881년 신사유람단을 이끌고 일본에 가서 근대 문물을 시찰한 바 있으며, 이번 보빙사 일원도 대부분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을 다녀온 이들이었다.
홍영식이나 서광범은 개화당의 일원이고, 민 씨 척족 중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아 고위직을 맡고 있는 민영익도 개화파였다.
애초에 민영익은 개화에 우호적인 데다 김옥균이나 홍영식과 절친한 관계였고, 세자의 처남이기도 해서 개화당이 적극 구명을 했다.
이선은 김옥균의 추천을 받아들여 민영익을 사면했다.
“군 대감의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민영익은 변화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선에게 충성을 맹세하여 개화파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실제 역사에서 민영익은 보빙사를 이끄는 정사였으니, 이선이 그에게 기회를 준 것이었다.
인선을 마친 이선은, 대원군을 찾아가 국내 정치를 부탁했다.
“소손은 오직 할아버님만을 믿고, 앞으로 1년간 미국과 구주 각국을 돌며 외교와 공채에 힘쓰고자 합니다. 국가의 개혁이 오직 할아버님께 달려있사옵니다.”
“너는 걱정하지 말고 먼 길 잘 다녀오너라. 외교의 일은 너한테 맡기도록 하겠다. 돌아올 때 돈이나 넉넉히 갖고 오너라. 네가 돌아올 때쯤이면 나라가 확 바뀌어있을 것이다, 하하하.”
대원군의 호언장담과 달리, 이선은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음 차례로 예조참판 겸 외아문 수협판 김홍집을 찾아갔다.
“영감, 조선에 있는 대신 중 내가 가장 충심과 능력을 믿는 건 단연코 영감입니다. 부디 성상과 대원군을 잘 보좌해 군국의 기무를 이끌어주길 바랍니다.”
“소생을 이토록 믿어 주시니, 군 대감의 은혜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촌음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나는 성상과 대원군께서 대립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부디 영감이 중도를 잘 지키며, 개혁의 후퇴가 없길 바랍니다.”
“명하신대로 하겠습니다.”
“각국과의 외교도 목 참판과 협의해 잘 이끌어주십시오.”
“예. 대감은 걱정하지 마시옵고, 외국에서 조선의 국익을 관철시켜주시옵소서. 소생은 국내에서 조선의 국익을 지켜나가겠나이다.”
“고맙소. 잘 부탁하리다.”
김홍집에게 뒷일을 부탁한 이선은, 한성판윤 겸 친군 영사 박영효를 찾아갔다. 개화당의 막후 지도자 유홍기도 와 있었다.
“군대의 양성과 개화당 조직의 관리는 모두 금릉위께 달렸소. 내가 없는 동안 잘 부탁하오.”
“예. 걱정하지 마시고 조선의 일은 저에게 모두 맡겨 주십시오, 군 대감.”
‘사고만 치지 마라.’
이선이 김옥균과 박영효를 제외한 개화당 핵심 인사를 거의 대부분 데려가는 이유가 있었다.
‘물론 미래가 촉망되는 신진 관료들에게 근대 세계를 보여주려는 이유도 있지만, 정권 탈취를 목표로 하는 자들을 오랫동안 내 통제밖에 놔뒀다가 뭔 짓을 할지 몰라.’
개화당이 이선에게 충성을 맹세했다지만,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다간 사고를 칠 두려움도 있었다.
“대치 선생, 내가 없는 동안 조선의 일을 잘 부탁하오.”
오만한 박영효도 ‘백의정승’ 유홍기는 스승처럼 여겼고, 박영효를 통제할 인물로 적절했다.
“금릉위 대감을 보좌해 만사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군 대감께서의 장도(長途)가 뜻대로 이뤄지시길 바랍니다.”
이선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측근이자 친군영으로 편입된 고려대대의 실질적 지휘관을 맡고 있는 참령관 정유진을 찾아갔다.
“군의 명목상 지휘권은 백부님(이재면)에게 있지만, 어차피 실질적으로 군대를 지휘하는 건 그대요. 절대, 누가 무슨 요청을 하더라도, 군대는 움직이면 안 되오.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정변이 발생할 경우에만 방어 목적으로 교전하시오.”
고려대대는 이선이 가진 중요한 무기였다. 임금이나 대원군, 혹은 박영효가 탈취해서 사용하게 할 수는 없었다.
“저와 고려대대는 오직 군 대감의 명령만 따릅니다.”
정유진이 머리를 조아렸다.
“좋소. 나는 그대를 믿고 떠나겠소.”
“내가 없는 동안 이 일은 이렇게, 저 일은 저렇게…….”
이선은 김홍집과 묄렌도르프에게 외아문의 업무를 모두 인수인계한 후, 7월 1일 출국을 확정지었다.
이홍장의 추천으로 해관에서 근무하던 오례당(吳禮堂)이 일행에 포함되면서, 보빙사 일원은 이선 이하 총 16인이 되었다.
여러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이선과 한어역관인 고영철이 천진에서 1년간 유학을 하면서 영어를 익혔음에도, 굳이 이홍장이 중국인 통역관 오례당을 보낸 한 이유가 있었다.
명목상의 이유는 프랑스 유학파인 오례당은 영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각종 외국어에 유창해서였고, 내밀히 청이 보빙사의 동향을 파악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군 대감을 보좌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반갑습니다. 오 공에 대해서 간략히 이야기는 들었지만, 소개를 해줄 수 있겠습니까?”
“예, 그럼 삼가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저는 강소 출신으로, 법국에서 공부했습니다.”
올해 꼭 40세가 된 오례당은 흥미로운 청년기를 보냈다. 오례당은 개항지인 상해에서 공부하다 프랑스 귀족 로-치룰 후작과 동문 관계가 되었고, 중국 내륙 여행을 하던 중 강도에게 잡혀 죽을 위기에 놓인 후작을 구해 가까스로 탈출했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은 의형제와 같은 관계가 되었고, 후작은 프랑스 귀국길에 오례당을 함께 데리고 가 후작가의 비용을 대가며 유학을 시켜줬다.
심지어 후작은 자신이 사망할 경우, 막대한 유산을 생명의 은인인 오례당에게 물려준다는 유언장까지 만들었다.
오례당은 프랑스에서 공부하면서 5개 국어를 습득했고, 정식으로 청국 외교관으로 선발되어 37세 때 스페인 주재 청국 공사관의 서기관이 되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파란만장한 인생인데, 더 놀라운 이야기가 있었다.
“그때 제 안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때껏 노총각이었던 오례당은 스페인에서 20살 연하의 아말리아(Amalia)라는 스페인 귀족 여인과 사랑에 빠졌고, 그녀와 혼인하기에 이르렀다.
오례당의 인생담을 듣던 이선은 이 대목에서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조선 못지않게 보수적인 중국 사회에서 서양 여성과 결혼한 오례당의 대담함이 놀라워서였다.
‘능력자네. 후원자로 프랑스 후작에다가, 20세 연하의 스페인 귀족 여인이 아내라니……. 스케일은 나보다 조금 작아도, 차르를 후원자로 삼은 나랑 비슷하군. 그래서 이홍장이 추천했나?’
이선은 오례당을 청의 감시꾼 정도로 생각해서 껄끄럽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와 대화를 나누게 되자 매우 열린 사람인 데다 자신과 경험조차 비슷한 걸 알게 되어 쉽게 의기투합하였다.
오례당은 청국 조정의 부름을 받아 부인과 함께 귀국했고, 얼마 안 있어 묄렌도르프의 초청을 받아 조선 해관 보좌관이 된 것이었다.
조선 땅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보빙사절단의 통역관으로 채용된 오례당은 조선 최초의 세계 일주에 동참하는 중국인이 되었다.
“전하! 신등은 성상의 왕명을 받자와, 국서를 들고 미국과 구주 각국에 보빙(報聘)을 다녀오니, 성수무강하심을 기원하겠습니다.”
“경들은 잘 다녀오라. 조선의 이름을 세계만방에 떨치고 오라.”
조선 최초의 서양 사절단, 이른바 보빙사(報聘使)가 임금에게 출발을 알리고 제물포항을 떠난 것은 1883년 7월 1일이었다.
미국 태평양 함대 소속 USS 모노카시를 타고, 일단 경유지인 일본 요코하마로 출발했다.
나가사키와 요코하마를 거쳐 일본에 도착한 사절단은, 요코하마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대양 항해선이 출발하는 날이 7월 18일이라 잠시 요코하마에 체류하기로 했다.
당시 도쿄에는 김옥균이 각종 문제를 논할 겸 주 일본 대리공사로 와 있었는데, 보빙사의 도착 소식을 듣고 요코하마로 찾아왔다.
보빙사 일행이 요코하마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노우에가 이선 일행을 도쿄로 초대했다. 하지만 이선은 일본에서의 공식 외교 일정이 없다며 정중히 사양하고, 대신 일본 정계에 인맥이 넓은 김옥균을 통해 막후에서 일본 정치가들과 협상하게 했다.
“장도를 축하드립니다, 군 대감.”
“고맙소. 고균이 함께 못 가서 아쉽구려.”
“구미로 가는 길이라, 다들 좋은 경험하게 되었구먼. 아주 부럽네 그려.”
김옥균은 개화당 동지들을 보며 웃었다.
“왕명을 수행하는 입장이니 중대한 것은 피차 매한가지지요. 그래, 고균은 맡은 바 임무가 잘 되어 갑니까?”
홍영식의 질문에 김옥균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작심하듯 목청을 높였다.
“일본에 대한 신뢰가 점점 깨집니다. 지난번에 이노우에 외무경이 대군주의 신임장만 가지고 오면 차관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호언장담하더니만, 정책이 또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제는 안면을 몰수하는군 그래. 오히려 내가 동남개척사로 임명된 것이 조약에서 보장된 일본 어민들의 이권을 빼앗으려는 게 아니냐고 힐난하더군요.”
김옥균은 얼굴을 붉혔다.
“아니, 우리 영토에 멋대로 들어와 벌목하고 어장을 남획하는 것이 그들이거늘, 이 무슨 적반하장이란 말입니까? 도대체 일본인들은 겉으로는 융숭하다가 안으로는 품는 생각이 다르니, 만날 때마다 조변석개라 알 수가 없습니다.”
“아니, 그럴 수가 있나!”
‘겉과 속이 다르다니, 그거 일본 종특이잖아.’
이선은 김옥균과 개화당이 일본에 대한 환상이 깨져가는 걸 보면서, 내심 흐뭇했다.
“풍설에는 성상께서 내게 주신 신임장이 조작된 것이라고 다케조에 공사가 이노우에에게 보고했다는데,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냔 말이오. 내가 군주의 신임장을 조작할 정도로 정신 나간 위인으로 보인단 말인지? 아무튼, 일본 정부에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은 틀린 듯싶습니다.”
“걱정 마시오. 차관 문제는 내가 미국에서 잘 해결할 터이니까. 고균은 일본인들이 다시는 울릉도를 넘보지 못하도록 임무를 다하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주일 미국 공사가 조선에 대해 우호적이더군요. 미국에 국채를 알선해주겠다는데, 한번 만나보시겠습니까?”
“안 그래도 온 김에 인사하려던 참인데, 잘 됐군. 안내해주시오.”
국채를 알선해 줄 미국 공사라면 만나볼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