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755
3부 170화 아인슈타인
이선은 유대인을 대신해 ‘국제 배후자본’의 자리에 올랐다. 유대인 배후자본 음모론을 신봉하는 극우파들, 황화론을 제기했었던 카이저 빌헬름 2세가 알면 기함(氣陷)을 할 일이었다.
이선의 목적은 패전과 인플레이션으로 위기를 맞이한 알짜기업들을 차지하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독일의 선진적 과학기술을 흡수하려는 데 있었다.
경제적 곤궁에 처한 독일의 과학자들도 지원했다. 이선의 대리인 주독대사 조한민은 카이저 빌헬름 협회(Kaiser Wilhelm Gesellschaft, 훗날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 거액을 기부했다.
이선의 재정적 후원을 받는 이들 명단을 보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막스 플랑크(Max Planck), 프리츠 하버(Fritz Haber), 오토 한(Otto Hahn), 리하르트 빌슈테터(Richard Willstätter), 실라르드 레오(Szilárd Leó) 등 역사에 길이 남을 과학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선이 진작부터 공을 들이고 있는 이는 아인슈타인이었다.
1900년대 아인슈타인이 박사 학위를 받고 아직 교수직을 얻지 못해 스위스 특허청에서 근무하던 시절, 1913년 베를린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교에 임용되기 전, 그리고 독일의 패전 이후에도 거액의 연봉과 황성대학 종신교수직을 제안한 바 있었다.
「귀 대학의 훌륭한 제안에는 진심으로 감사드리오나, 저는 유럽을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
파격적인 제안에도, 아인슈타인은 매번 정중한 거절의 답을 보냈다.
1920년대,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명성은 이미 세계에서 독보적이었다.
1922년 12월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후, 1923년 아인슈타인은 세계일주 여행을 떠났다.
아인슈타인은 한국의 영입 제안을 계속 거절하기만 미안했던지, 한국 방문 제안은 흔쾌히 수락했다.
먼저 미국을 방문하여 각종 강연을 하며 대륙을 횡단한 후, 태평양을 건너 일본에 체류했다. 일본에서 두 달간 강연을 하며 국빈이나 다름없는 대접을 받고, 중국을 방문한 후 한국에 도착했다.
「환영! 세계적인 과학자, 위대한 인류의 지성,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박사!」
아인슈타인은 한국에서 열렬한 환영 인파를 맞이했다. 처음 황성역에 당도했을 때, 아인슈타인은 ‘생명의 위기’를 느낄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파에 압도당했다. 황성역에서 지척인 대한호텔까지 가는 데 30분이나 걸릴 정도였다.
“일본에서도 이러더니, 노벨상 수상자라는 지위가 대단하긴 한가 보군요.”
아인슈타인은 동양권에서 자신을 열렬히 환영하는 이유가 바로 전해의 노벨상 수상자라서 그런 거라고 짐작했다. 그의 시각에서 볼 때, 아직 동양권의 과학 인식 수준은 서양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을 이렇게까지 환영해 주는 건 노벨상 덕분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황제 폐하께서 아인슈타인 박사와의 회동을 고대하고 계십니다. 황궁으로 모시겠습니다.”
방한 이틀 만에 아인슈타인은 황제를 알현했다.
아인슈타인을 맞이하는 대한제국 정부의 예우는 국빈 이상이었다. 전년도 웨일스 공의 방한에 비견될 만한 예우를 베풀었다. 아인슈타인은 왕족도 아닌 과학자인 자신을 이렇게까지 환영해 주는 데 놀랐다.
“반갑습니다, 아인슈타인 박사. 오래전부터 박사의 높은 명성을 흠모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만나게 되는군요.”
“저야말로 황제 폐하를 뵙게 되어 크나큰 영광입니다.”
이선은 아인슈타인에게 악수를 청하며 반갑게 맞이했다. 아인슈타인도 그 유명한 한국 황제가 자신을 환대해 주니 기쁠 따름이었다.
이선과 아인슈타인은 한참 동안 환담을 나눴다.
아인슈타인은 일본 방문 시에 다이쇼 천황과 히로히토 황태자를 만나긴 했지만, 존경심을 표하되 피상적인 대화만 나눴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선은 달랐다. 아인슈타인과의 만남을 진심으로 고대했다는 듯, 강의를 청하는 제자의 자세처럼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하하, 이거 내가 과학에 너무 문외한이라 박사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폐하의 학문에 대한 조예에 저도 감탄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황제의 겸손에 화답했다. 최대한 쉽게 설명해도, 일반인 중 자신의 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지 의문이었다.
“박사께서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 덕에,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군요.”
“제 지론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으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거라 할 수 있지요.”
“좋은 말씀이군요. 오늘 많이 배웁니다.”
이선은 겸허한 자세로 경청했다.
상대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과학자요, 자신은 정말로 과학에 대해선 문외한이니 자연히 겸손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오히려 아인슈타인에게는 한국 황제의 겸허한 자세가 깊은 감명을 주었다.
군주나 귀족들은 타고난 오만함으로 학자도 아래로 내려다보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물며 아인슈타인은 유대인이 아니던가. 겉으로는 존중하는 척해도, 속으로는 경멸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동양의 군주라면 전제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는 편견도 깨졌다. ‘학처럼 고고하게’ 들으며 통역을 통해서만 간단히 말했던 히로히토와 달리, 이선은 통역도 없이 직접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나눴다.
“폐하께서는 서양 고전음악의 애호가라고 들었습니다만…….”
“아, 진심으로 사랑하지요. 독일의 3B, 바흐, 베토벤, 브람스를 특별히 애호합니다.”
“오오, 저도 그렇습니다.”
이선이 독일의 자랑 ‘3B’에 찬사를 보내자, 아인슈타인도 반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인슈타인은 독일인답게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그 자신의 취미도 바이올린 연주였다.
클래식 이야기는 이선과 아인슈타인의 대화에 물꼬를 틔웠다. 이선은 고전음악뿐만 아니라 서양예술과 문화에 조예가 깊었고, 독일 지식인들이 중시하는 ‘교양(Bildung)’에 정통했다.
“폐하께서 이토록 서양문화에 정통하시리라고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지요. 틈틈이 다양하게 공부하려고 노력합니다.”
“통치에도 바쁘실 터인데, 왜 한국인들이 그토록 폐하께 존경을 표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아니, 과찬이군요. 난 그래 봐야 일개 딜레탕트(Dilettante, 애호가)에 지나지 않습니다. 박사와 같은 과학자야말로 인류의 경의를 받아 마땅하지요.”
이선의 거듭된 찬사에 아인슈타인은 고개를 숙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 이선이 화제를 전환했다.
“박사, 나는 오래전부터 박사를 한국에 모시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절대로 승낙하지 않더군요. 하하.”
아인슈타인은 그제야 비로소 자신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보낸 사람이 다름 아닌 황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아, 폐하께서…….”
“박사를 만나고 나니, 내 존경심은 더욱 커지는군요. 진심으로 박사를 한국에 모시고 싶습니다. 백지수표를 드리지요. 박사가 원하는 어떤 조건이든 좋습니다. 한국의 뭐든 다 드리지요. 아, 내 자리만 빼고요. 하하.”
“하하, 이런 과분한 제안을.”
아예 백지수표를 내미는 파격적인 제안에 아인슈타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저를 높이 평가해 주시는 폐하의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도 폐하와 같은 분을 후원자로 두게 되면 크나큰 영광입니다. 다만 저는 독일을, 유럽을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독일은 제 고향이요, 제 가족과 동료들이 모두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아인슈타인은 정중한 거절을 했다.
이선은 아인슈타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
하버-보슈법을 발견하여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화학적 업적으로 맬서스 트랩을 깼으나, 독가스 개발로 전범으로 기소될 뻔한 위기에 처했던 프리츠 하버. 난처한 처지에 놓였던 하버도 이선의 초빙을 받았다.
하지만 답은 역시나 정중한 거절이었다. 연구에 필요한 재정지원은 감사히 받아들였지만, 독일을 떠날 생각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하버 박사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독일의 애국자답더군요.”
“아, 하버 박사는 카이저 빌헬름 협회의 동료이긴 합니다만……. 저와는 국가를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다릅니다. 그는 진정 독일을 사랑하는 민족주의자지요. 하지만 저는 전쟁과 민족주의에 반대합니다. 저는 유대인 혹은 독일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버와 아인슈타인은 모두 유대계 독일인이었지만, 국가를 바라보는 관점이 정반대였다.
하버는 열렬한 독일 민족주의자로 독가스를 개발할 정도로 전쟁 승리를 위해 열성을 바쳤지만, 아인슈타인은 개전 초기부터 독일의 침략전쟁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평화주의자였다.
하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독일 학자들은 독일 애국주의를 열렬히 지지했다. 조국 독일에 대한 사랑이 곧 진리였다. 평화주의자이자 세계주의자인 아인슈타인이 예외적인 존재였다.
“대전쟁의 참상을 보면, 아인슈타인 박사가 옳았고 하버 박사가 틀렸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의외이다 싶었다. 군주와 정치가 중에서 전쟁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이는 없었다. 황제도 연합국의 전쟁 지도자가 아니었던가.
“그럼 박사의 거절은 애국심이 아니라, 순전히 학문적인 이유라고 봐도 될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기실 아인슈타인만이 아니었다. 세계 최고의 학문대국인 독일을 떠나, 아무리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도 변방인 한국까지 올 세계적인 학자는 없었다.
‘하긴, 테슬라도 어떤 조건으로도 오지 않았지.’
이선이 1880년대에 처음 에디슨에게 요청한 이래, 수차례 러브콜을 보냈던 니콜라 테슬라도 마찬가지였다. 이선은 테슬라에게 거듭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며 삼고초려를 했지만, 테슬라는 미국을 떠날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크로아티아계 이민자인 테슬라가 미국에 애국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미국이라는 세계 최고의 기술대국을 두고 굳이 변방으로 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독특한 성격에 금전감각도 전무했던 테슬라는 돈으로도 설득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쩔 수 없는 후발주자의 한계인가. 유럽이 100년 동안 누적해 온 걸 단기간에 따라잡는다고 해도, 그동안 누적되어 온 기반을 뛰어넘을 수는 없지.’
무엇보다 19세기에 태어난 서양인에게 있어, ‘백인 문명사회’를 떠나 ‘비(非)백인사회’에서 살라는 건 아무리 좋은 조건을 내밀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예외가 있다면, 서양인으로서 비 서양사회에서 뭔가 이룩해 보겠다는 야망이 있다던가, 아니면 본국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돌아갈 수 없다든가 하는 상황이었다.
이선이 후원했던 라이트 형제도 미국과 프랑스 등지에서 사업적 실패를 거듭한 후에야 한국에 왔다.
근래 한국의 학문적·예술적 성취를 이끌고 있는 백계 러시아 망명자들도, 러시아 혁명과 소비에트 정권의 수립이라는 상황이 없었다면 굳이 조국을 떠나지 않았을 터였다. 한국이 로마노프 황실을 보호하고 망명자들을 우대하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선, 한국까지 올 이유도 없었다.
그나마도 이미 성공한 최고급 인재들은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지에 정착하려고 하지, 굳이 머나먼 한국까지 오려고 하지 않았다.
‘하긴 뭐. 21세기에도 프리미어리그나 유럽 최상위리그에서 활동하는 유수의 명장들이, 아무리 비싼 연봉을 줘도 굳이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으로 오지 않겠지. 커리어에 뭔가 흠집이 나서 동기부여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모를까.’
그렇게 생각을 하니,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니었다. 그나마 축구는 단기간에 성과라도 낼 수 있지, 기나긴 연구축적을 필요로 하는 학문은 비교대상도 되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박사를 모시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뜻이 확고하다면 어쩔 수 없지요. 다만 이번처럼 종종 방문해서 학문 후속세대에게 좋은 강의를 해 주었으면 합니다. 언제든 환영하겠습니다.”
“예, 폐하. 초대를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럼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최상의 예우를 준비하겠습니다. 무엇이든 불편한 게 있으면 황궁으로 연락하십시오.”
“환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폐하.”
이선은 아인슈타인의 의사를 존중했지만, 완전히 생각을 접은 건 아니었다.
* * *
1923년 가을, 아인슈타인은 두 달간 대한제국에 체류했다.
애당초 한 달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이선의 적극적인 후원과 한국인들의 환영행렬에 체류기간을 늘려 가며 머물렀다.
아인슈타인은 한국의 주요 도시를 돌며 강연을 이어 나갔다. 주로 자신의 대표이론인 상대성 이론을 알아듣기 쉽게 정리하여 강연하는 자리였다.
대한제국의 최고 명문대학이자, 아인슈타인에게 몇 번이나 영입을 제안했던 황성대학교 이학부 물리학과에서는 보다 전문적인 강의가 있었다.
황성대학교 교수와 학생뿐만 아니라, 주요 대학의 선별된 과학도들이 강당을 가득 채웠다.
한국 이론물리학의 미래가 될 젊은 지성인들은 위대한 과학자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어느 때보다 집중된 자세로 경청했다.
아인슈타인도 이국의 과학도들이 보이는 학구열에 기뻐하며 모든 질문에 친절히 답했다.
황성뿐만 아니라, 어느 도시를 가도 아인슈타인은 놀라운 환대를 받았다.
황성대학교에 버금간다는 명문대학인 유경대학교 강의를 위해 평양을 방문했을 때에는, 의친왕 이강이 직접 영접하여 황족이나 최고위급 국빈만이 머물 수 있는 흥경궁 별저를 숙소로 제공할 정도였다.
아인슈타인은 과분한 환대에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남편의 세계일주에 동행한 부인 엘자가 속닥거렸다.
“이런 환대는 처음 받아요. 카이저가 이 나라에 와도 이런 대우는 받지 못할걸요.”
“카이저는 적국의 전범이나 다름없는데 당연히 못 받지.”
“그런 말이 아니라! 작년 웨일스 공 방한에 버금갈 만한 예우라고 하더군요. 아무리 노벨상을 수상했다지만, 학자를 이렇게까지 국빈 대접해 주는 나라가 또 어디 있겠어요?”
“흠, 한국 황제 폐하께 들으니 옛 조선부터 학문을 존중하는 학자의 나라였다고 하니……. 군주도 학자를 지향하는 나라였다더군. 그래서 호학적인 풍토가 있는 것 같아.”
“단순히 학자를 존중하는 걸 넘어서, 당신을 특별히 대우하는 거라고요. 이만하면 한국 황제의 제안을 받아도 되지 않겠어요? 지금 독일 사정이…….”
독일에서 들려오는 흉흉한 소식은, 지구 반대편에서도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인슈타인은 용케 피했지만,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독일 전역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동료 학자들은 대부분 큰 자산 없이 교수 연봉과 후원으로 연구 활동하는데, 인플레이션으로 곤란한 지경에 놓인 건 매한가지였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지구 반대편에서 호사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으니, 부인 입장에선 생각이 바뀔 법도 했다.
“무슨 소리야. 독일 사정이 나쁘다고 돌아가지 않을 수가 있나.”
“당신은 걱정도 안 돼요? 독일에 반유대주의 극우파들이 날뛴다고 하잖아요. 라테나우 장관이 독일을 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백주대낮에 비참하게 죽은 거 보라고요.”
라테나우는 자본가이자 정치가이기 이전에 물리학 박사였기에, 아인슈타인하고도 친분이 있었다.
“라테나우 박사가 불운했지. 그래도 돌아가야 해. 내 모든 기반이 독일에 있는데.”
“여기 외교관들에게 들으니까, 독일에 러시아처럼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다든가, 극우파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자자해요. 지구 반대편에서도 이런 소문이 도는데 본국은 어떻겠어요?”
“인플레이션으로 지금 잠시 힘들 뿐이야. 독일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이성적인 민족이니, 곧 이성을 되찾겠지.”
아인슈타인은 고개를 저었다.
어쩌니저쩌니해도, 독일은 그의 고향이자 기반이었다. 가족과 동료들 모두 독일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데, 자신만 홀로 떠나기에는 그의 책임감이 컸다.
말은 그렇게 해도, 아인슈타인의 생각 한편에는 불안한 마음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