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756
3부 171화 검은 제국군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방한 일정은 경상도 대구와 부산 방문이었다.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부산항에서 귀국행에 오를 예정이었다.
아인슈타인이 부산에 도착하자, 마지막까지 대한제국의 파격적인 환대는 계속되었다.
“황제 폐하의 궁전인 동래별궁 영빈관을 숙소로 이용하시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황공할 데가…….”
별궁 영빈관은 국빈급 방문객을 맞이하는 곳이었다. 그 이전에 머물렀던 이는 작년에 국빈방문했던 웨일스공 에드워드였다.
“황제 폐하께서 다음 주에 부산 방문 예정이십니다. 그때까지 편안하게 머무르시기 바랍니다.”
아인슈타인은 황제가 찾아온다는 말에 더욱 놀랐다. 서울에서의 알현이 끝이 아니었다. 황제가 방문한다는데 귀국을 서두를 수는 없는 일, 배편을 예정보다 한 주 미루기로 했다.
다음 주. 예고한 대로 이선이 황실 특급열차를 타고 부산에 당도했다. 날이 추워지면 황제가 따뜻한 남부 지방을 방문하는 건 연례행사였지만, 부산 주민들은 역에서부터 도열하여 열렬한 만세로 황제의 방문을 환영했다.
“대한국 만세!”
“황제 폐하 만세!”
이선은 주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동래별궁에 도착했다.
아인슈타인이 곧 귀국할 예정이었으므로, 이선은 별궁에서 환송연을 열었다.
“두 달이란 시간이 참 짧습니다. 박사가 벌써 돌아갈 시간이 되다니, 너무나 아쉽군요.”
“저도 정말 아쉽습니다. 폐하의 환대와 한국인들의 호의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불편한 점은 없었습니까?”
“폐하의 배려와 한국인들의 호의로 너무나도 편하게 머물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인슈타인이 동양식으로 머리를 깊게 숙이며 감사를 표하자, 이선이 웃으면서 화답했다.
“박사가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청년들에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더군요. 당연히 보답을 해야지요.”
“황공하옵니다. 혹여 공무로 바쁘신 와중에 제가 방해가 된 게 아닌지…….”
“아, 내가 부산에 온 거 말입니까? 하하, 원래 날 추워지면 여기 오는 게 연례행사입니다. 내 나이가 예순이 가까워지니까 이곳저곳 안 아픈 데가 없어요. 그럴 때 뜨뜻한 온천이 생각나지요. 박사도 더 나이 먹으면 자연히 알게 될 겁니다.”
이선과 아인슈타인의 나이 차이는 불과 11살이었지만, 마치 한참 노인인 것처럼 너스레를 떨었다.
“저런.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폐하.”
“수많은 국민이 늘 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데, 당연히 오래 살지 않겠습니까? 하하.”
이선은 문득 미소를 거두고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지난 40년간 이 나라의 운명을 바꿔 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혁명적인 정치가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나와 같은 정치가보다 박사와 같은 위대한 과학자야말로 세계의 운명을 바꿉니다.”
아인슈타인은 황제의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자신뿐만 아니라 과학계 전반을 향한 격조 높은 찬사에 자연히 머리를 숙이게 되었다.
“솔직히 인정합니다. 한국은 서양보다 100년 늦게 출발한 후발주자입니다. 단숨에 서양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는 없지요. 40년 전에, 이 나라에는 어떠한 근대문물도 없었습니다. 나는 미국과 유럽을 순방하며, 반드시 따라잡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 격차를 빠르게 메우기 위해 전 국민이 부단한 노력을 다한 결과, 오늘날 열강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진 빠르게 서양의 과학기술을 흡수하는 데 집중해 있었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최첨단에서 선도하는 게 목표입니다.”
이선의 말은 단순한 허언이나 호언장담이 아니었다. 출발점이 100년이나 차이가 났기에 여전히 신흥국 한국과 구미 선진국의 격차는 컸지만, 하늘과 땅 차이였던 40년 전과 비교하면 오늘날의 한국은 완전히 별천지였다.
“아인슈타인 박사를 한국에 모시려고 한 이유는, 물론 박사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서입니다마는, 한국을 독일처럼 과학적 풍토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짐은 장차 한국에서 박사와 같은 위대한 과학자가 나올 수 있도록 학문적 풍토를 조성하고 싶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더욱 깊게 고개를 숙이고픈 마음이 들었다. 근대국가의 지도자라면 과학을 중시하는 게 당연했지만, 자신이 서양보다 한참 뒤떨어졌다고 생각한 동양 국가의 지도자가 이토록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당대 유럽인으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차별의식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자신이 주류사회에서 차별받는 유대인이기도 하고, 세계주의와 사회민주주의적 신념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민주공화국을 확고하게 지지하는 자유주의 중도좌파 독일 민주당(DDP)의 당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도 19세기에 태어난 백인이라는 한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문명화되지 못한’ 민족에 경멸감을 느꼈고, 특히 중국인과 인도인에 대해서는 상당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
일본인과 한국인은 ‘유색인종 중에서 그나마 문명화된 민족’이었지만, 백인과 비교하면 지적 능력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서양이 이뤄 낸 위대한 성과에 비교하면, 일본과 한국은 눈치 빠르게 그 성과를 누리는 후발주자에 불과했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군.’
이선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눠 본 아인슈타인의 생각은 바뀌게 되었다.
‘한국 황제는 40년 만에 국가를 완전히 변혁했다. 앞으로 40년 뒤에는 어떻게 변화할지 모를 일이지.’
동양이 아직 뒤떨어진 건 출발점이 달랐기 때문이고, 대전쟁 이후 혼돈을 겪고 있는 유럽과 달리 앞으로 성장 잠재력이 충만했다.
문득 그 성장 가능성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폐하와 같은 현명한 지도자가 계시는 한, 이 나라의 미래는 밝다고 확신합니다. 장차 다시 방문할 때에는, 더욱 발전해 있기를 바랍니다.”
한 10년 뒤에 한국을 다시 방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독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박사가 귀국한다니 아쉽습니다만, 반드시 앞으로 다시 만날 기회가 있겠지요.”
아쉬움을 표명한 이선은, 은근히 걱정된다는 어조로 물었다.
“독일에서 보내온 보고를 들으니, 현재 독일의 정세가 매우 심각합니다. 공산주의 혁명, 극우 쿠데타, 분리주의 어느 쪽도 모두 가능성이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독일에 돌아갈 생각입니까?”
“배 타고 가는 시간도 있고, 이집트와 팔레스타인도 들를 예정입니다. 독일로 돌아갈 때쯤에는 진정이 되어 있겠지요.”
아인슈타인이 걱정하지 않다는 듯이 말하자, 이선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정치에서 2, 3개월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시기입니다. 하물며 지금처럼 급박한 시기에는 말이지요. 몇 년 전만 해도, 러시아에서 볼셰비키가 승리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독일에서도 공산당이나 극우 반동세력이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고는 확신 못 합니다.”
황제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관리가 급히 전문을 전달했다.
“폐하, 황공하오나 잠시…….”
“잠깐 실례합니다, 박사.”
보고를 받기 위해 자리를 뜬 이선은, 잠시 후에 돌아와 아인슈타인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독일에서 온 급보입니다. 베를린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는군요.”
“예?! 그럼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인슈타인은 진심으로 경악했다.
“아직 불확실합니다. 후속 보고가 올 때까지 기다려 봐야겠습니다. 새로운 소식이 오면 알려 드리지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폐하.”
아인슈타인과 같은 유대인 세계주의자 입장에서는, 반유대주의를 선동하는 극우파가 집권하는 상황이 가장 끔찍한 미래였다.
라테나우와 하버도 그렇지만, 아인슈타인 역시 독일을 위해 열성을 다 바쳐도 ‘유대인’이라는 딱지는 뗄 수가 없었다. 하물며 라테나우와 하버처럼 독일 민족주의자도 아닌 세계주의자 아인슈타인은 정나미가 떨어지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제발 이번에도 극우파의 헛짓거리가 실패로 끝나길 바라며, 아인슈타인은 초조하게 후속 정보를 기다렸다.
* * *
1923년 10월, 독일 베를린.
독일은 루르에서의 저항을 공식적으로 포기하고, 프랑스의 기세등등한 분노 앞에 몸을 납작 숙였다.
구스타프 슈트레제만 정부는 경제 파탄과 국가의 완전한 해체를 각오하면서까지 독일의 명예를 지키는 길보다는, 프랑스에 굴복하여 독일 국가를 보전하는 길을 택했다.
우익에서는 배신자, 민족반역자라고 격렬히 비난했으나 슈트레제만 총리는 현실을 택했다.
“헌법에 의거하여, 대통령은 비상대권을 발동하여 공공질서의 안녕과 국가의 수호를 위하여…….”
루르 저항을 포기한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극좌와 극우의 위협으로부터 공화국의 보호를 위해 나섰다.
에베르트 대통령과 슈트레제만 총리는 군 통수권을 발동하여 중앙과 지방에서의 반란에 대비했다.
또한, 초인플레이션과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했다.
“현재의 위기는 독일 반동세력과 유럽 자본주의가 외치는 최후의 비명이다. 자본주의는 종말의 단계에 도달했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중앙정치에서 대립하고 있는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은, 지역에 따라서 협력하는 곳도 있었다.
좌익세력이 강한 작센과 튀링겐에서는 주정부(州政府)에 사민당-공산당 연립정권이 수립되어 공공연히 급진개혁에 나섰다.
슈트레제만 정부와 협력하고 있는 베를린의 사회민주당 지도부가 작센과 튀링겐의 급진화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사이, 슈트레제만은 결단을 내렸다.
“작센과 튀링겐 주정부에 최후통첩을 보낸다. 공산당을 연립정부에서 추방하지 않으면 중앙정부가 해산 명령을 내릴 것이라고.”
총리의 조치에 육군총감(참모총장) 한스 폰 젝트 대장은 행동에 나섰다.
“작센과 튀링겐에서는 공공연히 공산당이 혁명을 부추기고 있으며, 노동자 부대를 조직하고 있다. 군은 국가를 위협하는 노동자 부대의 즉각적인 해산을 요구하며, 거부할 경우 군대를 작센과 튀링겐에 투입할 것이다.”
주정부의 권한을 박탈하고 군대를 진주시키겠다는 강경 대응에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이 반발하였지만, 젝트는 국가방위군을 작센에 투입할 준비를 했다.
“작센과 튀링겐의 공산당 빨갱이들을 토벌하기 위한 반공 십자군이 필요하다. 그다음 차례는 베를린의 사회민주당, 11월의 반역자들이다!”
바이에른은 베를린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우익이 지배하는 바이에른 주정부는, 주지사 구스타프 폰 카르(Gustav von Kahr)를 ‘국가위원(Staatskomissar)’으로 선포하고 사실상의 독재 권력을 부여했다.
바이에른은 좌익이 지배하는 작센-튀링겐보다 프로이센에 대해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갖고 있었다. 애초에 바이에른은 프로이센 중심으로 통일된 역사에 반감을 느끼고 있었을뿐더러, 프로이센 왕국을 대신한 프로이센주(州)가 여전히 독일 정치를 지배하는 현실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프로이센주는 사회민주당이 지배하고 있으니, 지역적 이유든 이념적 이유든 프로이센에 복종할 이유가 없었다.
“라인란트는 프로이센의 독재에 반대한다. 1천 5백만 라인란트 주민은 억압적인 프로이센의 지배를 받을 이유가 없다. 빈 회의에서 내린 잘못된 결정을 바로 잡을 때다.”
“라인 공화국 만세!”
독일 서부, 라인란트는 1815년 빈 회의의 결과 프로이센에 합병되었다. 가톨릭을 믿는 지역이자 나폴레옹 법전을 받아들였던 부르주아적 라인란트는 프로이센의 억압적인 통치에 반발했다.
대전쟁 이후에도 라인란트는 다른 주처럼 자치주도 아닌 프로이센주의 일부로 남았고, 라인란트 정치인들은 최소한 자치권이라도 달라고 요구했으나 베를린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프랑스의 부추김을 받은 일부 라인란트 자치론자들은 분리주의로 선회했다.
라인강 서안에서 소위 ‘라인 공화국’이 선포되었으나, 라인란트를 비무장화하는 베르사유 조약의 규정으로 인해 독일은 군사력도 투입할 방법도 없이 속수무책이었다.
패전과 경제위기 속에서 동서남북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분쟁에 독일은 산산 조각날 위기에 처했다.
1871년 독일 통일 이래, 독일이라는 국민국가의 지위가 이토록 위태로운 적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독일 국가주의자들 입장에서는 공화국을 끝장내야 할 절호의 기회이자 명분이었다.
“나약한 공화주의자들은 빨갱이들과 분리주의자들의 위협으로부터 독일을 방치하고 있습니다! 이 무능한 정권은 독일이 죽음의 위기에 놓여 있음에도, 국제 유대인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조아릴 뿐입니다! 월스트리트 자본주의를 조종하고 있는 국제 유대인은 모스크바 공산주의도 지배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국제 유대인의 세계지배를 위하여, 러시아에 이어 독일까지 파탄 내려고 하는 겁니다!”
“옳소!”
연사는 타오르는 듯한 감정을 폭발하듯이 외쳤다.
“독일은 결코 국제 유대인의 폭정에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유대인의 앞잡이들, 빨갱이들, 11월의 반역자들을 타도하고, 독일을 다시 위대하게 만듭시다! 지크 하일(Sieg Heil, 승리 만세)!”
“지크 하일!!”
열화와 같은 함성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선동가는 벅차오르는 표정으로 군중을 바라보았다. 전직 화가, 실패한 강철군단 하사, 변방 비어홀의 선동가였던 자신이 베를린에 진출하여 중심가인 운터 덴 린덴에서 연설을 하는 날이 올 줄이야.
“훌륭한 연설이었네, 히틀러 하사.”
“장군님께서 도와주신 덕이지요.”
아돌프 히틀러는 지도자인 에리히 루덴도르프 장군을 향해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지만, 굳이 ‘하사’라는 지위를 언급하는 것에 불만을 느꼈다.
역사의 변화로, 이 오스트리아 출신 전직 삼류화가는 독일군 하사이자 극우 의용군인 강철군단 선동가가 되었다. 강철군단의 해산 이후에는 뮌헨을 거점으로 삼아 비어홀의 선동가로 격정을 토했지만, 중앙정치에서 한참 거리가 떨어진 변방의 무명 선동가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히틀러의 선동 능력을 높이 평가한 공군 에이스 출신 헤르만 괴링의 소개를 받아 망명에서 돌아온 루덴도르프 대장을 알게 되었다.
루덴도르프는 히틀러를 베를린으로 불러들였고, 베를린에서 군중을 선동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귀관은 대중이 우리의 혁명을 지지하도록 역할을 다해 주게. 민족혁명이 성공하면, 귀관은 새 정부에서 중책을 맡게 될 거야.”
“알겠습니다, 각하.”
히틀러는 루덴도르프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저 친구가 소문의 선동가로군요. 말솜씨가 대단하던데요.”
“그래 봐야 일개 하사에 지나지 않소. 대중정치의 시대가 왔으니, 저런 친구도 필요한 법이지.”
루덴도르프는 자신의 정치자금 후원자인 재벌 슈티네스를 향해 냉소적으로 말했다.
베를린 중심 운터 덴 린덴, 브란덴부르크문 지척에 있는 최고급 호텔 아들론(Hotel Adlon)의 스위트룸은 루덴도르프의 숙소이자 극우세력의 거점이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의 흉내일 뿐이지. 하지만 저 파멸적인 로마 진군에서 드러났듯이, 군대가 지지하지 않으면 선동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소. 결국 군대가 나서야지.”
‘로마 진군’의 실패로 인해, 공화국을 타도하려는 루덴도르프와 독일 극우세력은 전통적 방식인 군사 쿠데타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젝트 장군이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
“젝트가 안 되더라도 대안은 있소. 충성스러운 프로이센 군인은 독일의 종말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거요.”
대전쟁기 독일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루덴도르프는, 여전히 군대가 자신을 지지한다고 확신했다.
“독일제국이 승리를 눈앞에 두고 배후에서 비수에 찔려 쓰러진 지 꼭 5년, 이제 반역자들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줄 거요.”
마침내 때가 왔다.
루덴도르프의 명령이 떨어지면, 군부 내에서 암약하고 있던 ‘검은 제국군(Schwarze Reichswehr)’은 공화국을 타도하고 제국을 되찾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