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770
3부 185화 유럽의 유혈
로자 룩셈부르크와 마르가리타 얀코프스카는, 오늘날에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30년 전에 러시아령 폴란드에서 혁명운동을 함께했었다.
마르가리타는 폴란드 동부 루블린 태생이고, 로자는 루블린 인근의 자모시치 태생이었다. 두 여인의 나이도 비슷한 데다 당대 여성으로는 드문 대학을 나온 인텔리라서 서로의 존재를 모를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고향이 인접한 또래 여성 엘리트 운동가로서 자연히 친분을 맺게 되었다.
물론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컸다. 마르가리타는 러시아에 항거하다 몰락한 폴란드 슐라흐타(귀족) 집안의 딸이었고, 로자는 부유한 유대인 상인의 딸이었다. 그 영향으로 마르가리타는 폴란드 민족해방주의자가 되었고, 로자는 세계시민주의를 넘어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자가 되었다.
자연히 마르가리타는 폴란드 독립을 세계혁명보다 더 높은 가치를 둔 폴란드 사회당(PPS)에 입당했고, 로자는 세계혁명을 우선시한 폴란드-리투아니아 사회민주당(SDKPiL)을 이끌며 갈라지게 되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베를린까지 왔답니까? 동양에 살고 있는 걸로 아는데.”
로자가 회견에 응한 건, 적대감보다 호기심이 앞서서였다.
일찌감치 혁명 대열에서 빠져 나가, 동양 전제군주의 정부(情夫)가 되었다는 여자가 무슨 일로 공산당 지도자인 자신을 만나길 원하는가?
“아들이 영국에 유학 중이에요. 만나려고 온 길에 겸사겸사 폴란드를 들렀다가 베를린에 왔지요.”
“아, 그 화제의 동양 왕자 말이군요. 영국 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몰락한 러시아나 독일의 귀족들도 사윗감으로 삼고 싶어 한다는. 혁명으로 몰락했으면서도, 어떻게든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반동들의 생존욕구가 대단합니다.”
로자는 한껏 빈정거렸다. 한때 혁명을 꿈꿨다는 여자가 동양 전제군주의 정부, 그것도 하필이면 ‘차르의 벗’이자 반동들의 보호자인 군주의 정부가 되다니. 그 자식까지 반동들의 정략결혼 대상이었다.
“그건 그 아이가 선택할 문제지, 외부에서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미인 나도 마찬가지고.”
마르가리타는 부드럽게 넘겼다. 옛 동지이자 논쟁 상대였던 로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과거의 여성 혁명가로서 민족과 계급의 문제를 놓고 날카롭게 논쟁했던 모습은 이미 없었다.
“좋아요. 그런데 왜 나를 만나길 바라는 겁니까? 부질없는 옛 기억이나 떠올리자는 건 아닐 테고.”
“나도 바쁜 사람 붙잡고 추억이나 회고할 정도로 한가하게 늙지는 않았답니다. 전할 말이 있어요.”
마르가리타는 미소를 거두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관여할 사항은 아니지만, 공산당과 스파르타쿠스단에 봉기 계획이 있다면 만류하고 싶어요.”
순간 로자의 표정이 매섭게 변했다. 이 여자가 어디서 정보를 얻고 떠든단 말인가?
“누가 당신에게 그런 말을 했지요? 피우수트스키? 아, 당신의 한국 황제?”
“유감스럽게도 황제께선 내게 정보를 알려주지 않아요. 공과 사가 확실한 사람이라.”
“그럼 피우수트스키가 보냈겠군요?”
마르가리타는 활동 당시 사회당에서도 피우수트스키의 혁명파(PPS-FR)에 속해 있었다. 오늘날 폴란드의 국가지도자이자 ‘민족영웅’이 된 바로 그 피우수트스키 원수의 측근이었다.
“애초에 무슨 근거로 봉기 계획을 운운하는지?”
“당장 베를린에서도 소문이 파다하더군요. 공산당이 언제 봉기를 일으킬지 모른다고.”
“겨우 소문 때문에 일부러 찾아오셨다?”
마르가리타는 고개를 저었다.
“소비에트 러시아 군대가 평화조약에도 불구하고 폴란드 동부 국경에서 군사 활동을 늘리고 있어요. 폴란드 정부에서는 평화조약을 파기하고 폴란드를 침공할 목적이 아니라, 북부를 관통해 동프로이센으로 진격하리라고 추정하더군요. 독일 혁명을 획책할 목적으로. 그 시작은 베를린에서의 봉기겠죠.”
폴란드 입장에서는 동쪽의 소련에 이어, 서쪽 독일에 친소 공산정권이 들어서는 것만큼 끔찍한 미래상도 없었다.
“역시 피우수트스키가 보냈군요. 그래서 봉기 일으키지 말라고 경고를 하러 왕림하셨습니까?”
“비공식적인 사절(使節)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만에 하나 독일에서 혁명이 발생해 소비에트 러시아가 개입하려 든다면, 폴란드는 합법적인 독일 정부를 지원하고 독일 내 폴란드인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파병할 생각입니다.”
폴란드군은 독일에서 체제변동이 발생하면, 총동원령을 내려 단치히 자유시(그단스크), 독일령 상부 슐레지엔(실롱스크), 포메른 회랑으로 진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폴란드를 ‘영토를 강탈한 주적’으로 여기는 건, 독일 우익뿐만 아니라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1921년에 상부 슐레지엔 귀속 문제를 놓고 양국 민병대간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고, 양국 간에는 적대감이 충만했다.
만약 독일에 체제 변동이 발생한다면, 폴란드는 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만 볼 생각이 없었다.
“하, 이건 경고가 아니라 협박이군요. 역시 군국주의로 변절한 사회주의 배신자답게, 군대로 협박하시는군.”
‘군국주의자’ 피우수트스키와 폴란드 사회당에 경멸감을 느끼면서도, 로자는 허투루 들을 수가 없었다. 만약 봉기를 일으키면 독일 국가방위군 외에도, 폴란드군도 적으로 상정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근래 폴란드는 ‘새로운 프로이센’으로 불릴 만큼 군비 확충에 여념이 없었고, 전통적 우방인 프랑스에 이어 새 우방인 한국이 폴란드군의 강화를 도왔다.
“협박이 아니라 충고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군요.”
“충고? 한때 함께 차르에 맞서 싸우던 옛 동지의 정이 남아 있을 리는 없고, 당신네는 오직 폴란드 국가의 이익만을 신경 쓰니까 그럴 필요가 있었겠지.”
한때 로자도 피우수트스키와 함께 폴란드에서 사회주의의 기치를 들고 차르 전제에 맞서 싸웠지만, 노선 차이를 놓고 결별한 후로 수십 년이 지났다.
하물며 지금은 ‘사회주의라는 붉은 기차를 타고 독립이라는 역에서 내린’ 피우수트스키와, 국민국가를 해체하고 프롤레타리아 세계혁명을 지향하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차이는 불구대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근데 난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만약 독일에 내전이 발생하면 폴란드에는 이득이 아닌가? 당신네들이 그토록 원하는 단치히와 슐레지엔을 빼앗을 기회인데.”
사실 폴란드 입장에선 러시아 내전의 기회를 틈타 동부 영토를 확장한 것처럼, 독일 내전에 개입하여 서부 영토를 늘릴 수도 있었다.
“폴란드는 대전쟁의 주전장이었고, 독립 이후에도 계속 전쟁을 치렀어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은 끝에 마침내 얻은 독립과 소중한 평화죠. 그 평화를 다시 깨트리길 원치 않습니다.”
“그러면서 군비 확장에는 여념이 없고. 참 설득력 있군요.”
“방어적 목적이죠. 동서 양쪽에 폴란드를 갈라서 멸망시켰던 나라가 건재하고 있으니까. 비록 과거와 체제는 다르지만.”
마르가리타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나도 자식을 둔 어머니 입장에서 말하지요. 폴란드, 독일, 러시아, 그 어느 쪽이든. 전쟁으로 다시 청년들이 피를 흘리고 그들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로자도 그 말에만큼은 절대적으로 공감했다. 군국주의를 혐오하는 반(反)군국주의자로서, 또 다시 전쟁으로 피를 흘리는 일은 막아야 했다.
“당신의 충고 잊지 않지요. 그럼 마지막으로 나도 당부의 말을 전하지요.”
“말씀하세요.”
“무력으로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연대를 깨트리려고 생각한다면, 명백한 오산입니다. 그리고 독일 노동자 계급과 정당은 당신들 생각처럼 코민테른의 조종을 받지 않습니다. 당신들의 우려가 이해는 되지만, 만약 독일과 러시아가 한 마음이 되어 폴란드를 파괴하려 한다면, 그건 노동자의 정부가 아니라 반동의 정부가 들어서야 가능할 겁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독일 공산당은 세계혁명을 지향하는 건 소련 공산당과 같았지만, ‘군대의 총검으로 혁명을 강요’하는 건 완전히 생각이 달랐다.
“그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여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은 동지가 아니었기에, 악수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참, 이건 개인적인 질문인데. 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됩니다.”
“질문 들어보고 판단하죠.”
“그 한국 황제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마르가리타는 새삼스레 듣는 질문에 빙긋 웃었다.
“동지적 관계라고 해 두죠.”
“그래요? 황제가 공산당 지도자를 만나는 걸 좋아하진 않을 텐데?”
“그분은 의외로 사고방식이 유연하답니다. 울리야노프와 트로츠키의 저작도 번역해서 읽는데. 아, 룩셈부르크 여사가 쓴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도 읽어봤답니다. 내 의견은 어떤지, 나와 당신이 폴란드에서 동지였는지도 묻더군요.”
로자는 처음으로 깜짝 놀랐다. 독일 공산당에 한국인 유학생 당원도 있으니 자신의 글이 한국에 번역되었으리라곤 짐작했지만, 다름 아닌 황제가 읽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동양 황제가 서양 급진 사회주의 저작을 번역해서 읽는다고요? 적을 알기 위해선 연구할 가치가 있다, 그런 의미인가요?”
“그렇게 말하지만, 본인 스스로도 20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이념은 사회주의라고 생각하더군요. 자본주의의 실수를 바로 잡고, 사회주의를 극복하는 게 20세기의 사명이 될 거라고.”
“대단하군요. 자본주의의 실수를 바로잡는 건 오직 노동 계급의 혁명뿐이지만, 그건 동의하지 않을 테니 굳이 황제에게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절대 동의 안 하겠죠. 하지만 이념을 떠나서 당신의 순수성은 높이 평가해요. 무소불위 독재로 전락한 러시아 공산당과 달리,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혁명가로 남아 있길 바란다더군요.”
“하! 황제의 격려라니 하나도 기쁘지 않지만, 재미있긴 하군요. 왜 당신이 그와 관계를 맺게 되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선이 했다는 말에 로자는 코웃음을 치면서도, 마르가리타가 조금은 이해가 될 수 있었다.
“길이 달라져 격려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맙군요. 여사도 평안하시길.”
두 여인은 가볍게 목례하고, 서로 등을 돌렸다.
가까운 곳에서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한때는 동지였지만, 너무나도 다른 길을 걸었다. 인생에서 마지막 교차점이 생겨 대화를 나눴지만, 아마도 두 번 다시 만날 일은 없을 터였다.
* * *
로자 룩셈부르크에게 있어 마르가리타와의 회견은 나쁘지 않았다.
이미 봉기에 반대했던 로자 룩셈부르크는, 더욱 확고한 논거를 확보한 셈이었다.
스파르타쿠스단과 공산당의 공동 지도자이자, 오랜 동지인 카를 리프크네히트를 설득했다.
리프크네히트도 봉기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코민테른과의 관계와 당내 강경파들의 압력에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봉기는 도박이에요, 카를. 베를린 장악에 성공해도 내전, 실패하면 당은 끝장이죠. 더욱이 폴란드군의 개입도 피할 수 없을 거예요. 우리는 아직 약하고 적은 강합니다. 독일 노동계급의 운명을 걸고 도박을 할 수는 없어요.”
때가 된다면, 로자는 누구보다 혁명의 선두에 서서 ‘부르주아 권력’을 파괴하려 들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혁명의 적기가 아니었다. 노동계급을 뻔히 보이는 위험으로 끌고 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모스크바의 우리 동지들은…….”
“블라디미르(울리야노프)와 레온(트로츠키)은 우리가 알던 옛날의 동지들이 아니에요. 이들이 독일 혁명에 명운을 거는 이유는 잘 알고 있지만, 이건 마르크스주의자의 태도가 아니라 보나파르티즘 같은 군사적 도박이에요. 권력 장악과 내전이 이들을 바꾼 것이겠죠.”
과거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가 독일에서 활동하던 당시, 로자와 카를은 가장 가까운 동지였다.
역사의 변화로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울리야노프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기울어졌지만, 러시아로 돌아가서 권좌에 오른 이후에는 관점이 확연히 바뀌었다.
이는 트로츠키도 마찬가지였다. 열정적인 반군국주의자로 로자의 동지였던 트로츠키는, 아이러니하게도 붉은 군대의 창설자가 되어 가혹한 채찍을 휘두르며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권력이 만든 변화, 엄혹한 내전이 만든 변화였다.
좋게 말하면 이런 현실주의적 적응력이 다른 이상주의적 혁명가들과 달리 내전 승리와 국가 건설을 이끌어낸 것이었다. 이상에 도취되어있던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 파리 코뮌은 부르주아 권력에게 철저하게 파괴되지 않았던가.
나쁘게 말하면 권력을 잡은 혁명가의 타락이었다. 혁명적 이상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결국 새로운 국가기관을 장악한 신흥 엘리트 계급의 일당독재로 귀결되었다.
“물론 볼셰비키는 그들의 정책에서 확실히 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아마도 여전히 지금도 실수를 저지르고 있겠지요. 그러나 실수가 없는 혁명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들의 실수는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독일 공산당이 코민테른의 도구가 아닌 동지이자 견제자로서 건재해야 합니다.”
“동지의 말이 옳아요. 봉기 계획은 취소합시다. 당원들은 내가 책임지고 설득하겠어요. 모스크바와의 관계는, 어떻게든 재정립해야겠지.”
독일 공산당 영수인 카를 리프크네히트는 결단을 내렸다. 독일 공산당은 코민테른의 무리한 요구를 거부하고, 봉기 계획은 전면 취소한다.
역사의 물줄기가 틀어졌다. 독일 내전 가능성이 사라지고, 공화국에 위협적이었던 공산당이 최소한 당분간은 체제 내에서 활동하며 권력을 쟁취할 가능성을 탐지할 계획이었다.
모스크바의 코민테른도 조급성을 버리고 나면, 점차 분명한 결론에 도달하게 될 터였다. 극우의 실패에서 드러나듯, 유혈 혁명을 통한 권력 장악은 현재 독일에서는 불가능했다. ‘체제’를 파괴하려면 체제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부터 파괴해야 했다.
역사의 변화로 인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건재는, 독일 공산당이 코민테른의 지부가 아닌 독자적 존재로 남을 터였다. 인터내셔널에서 차지하는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의 위상은 소련에서도 무시하기 어려웠다.
국제 사회주의 운동이 반드시 소비에트 연방의 이익과 일치할 수도 없고, 독자노선을 지향하는 다양한 사회주의가 전개될 가능성이 살아남았다.
한편, 비공식적으로 피우수트스키의 사절 역할을 한 마르가리타 얀코프스카는 아들 이안을 만나기 위해 함부르크에서 영국행 배에 올랐다.
‘결국 혁명은, 전쟁은 피할 수 없을까? 우리 아들의 세대에도 전쟁이 계속된다면…….’
지난 전쟁으로, 1천만이 넘는 유럽인이 죽었다.
무수히 많은 이들이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죽은 이의 어머니와 아내, 아이들은 아들, 남편, 아버지의 부재를 슬퍼했다.
마르가리타는 베를린을 떠나기 전, 화가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의 새 그림을 보았다.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쓰러져 서로를 부둥켜안는 부모의 참담한 그림이었다. 콜비츠 자신이 전쟁으로 아들을 잃었기에, 그 누구보다 생생한 표현이 담겼다.
콜비츠도 마르가리타 또래의 어머니였다. 자식을 가진 어머니로서, 그녀는 그 처절한 그림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녀의 자식들은 특권 계급 중에서도 최고인 왕족이기에, 전쟁터에서 피를 흘릴 일은 없을 터이다.
하지만 어찌 타인의 자식들에게는 전쟁터로 나가라 할 수 있겠는가?
이선은 전쟁이 터지면 뒤로 빠질 사람이 아니었다. 독립전쟁 때처럼 전면에 나설 것이고, ‘자식을 국가의 제단에 바치는’ 일을 두려워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 점이, 마르가리타는 문득 두려웠다.
마르가리타는 한국과 폴란드, 이선과 피우수트스키를 잇는 비공식적인 사절이었다. 그렇기에 한국과 폴란드의 관계에 대해서만큼은 정부 인사만큼 잘 알았다. 한국어와 폴란드어를 모두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이선의 최측근으로서 극비가 보장되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한제국은 폴란드에 무기를 수출하고, 군사교관을 파견하고, 공동으로 무기를 개발했다. 한국과 폴란드가 공동으로 개발한 전차와 전투기가 폴란드의 대평원과 하늘에서 은밀히 실험되었다.
폴란드 방위를 위한 일이라고 기쁘게 생각하던 마르가리타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혹여 폴란드인의 피로 새로운 무기와 전술을 시험해 보려는 게 아닐까? 독일에서 내전이 발생하고, 러시아가 서쪽을 향해 준동했다면, 오히려 그는 바라던 바라고 여겼을까? 폴란드인의 피, 아니 유럽인의 피는 그의 대전략에서 흘려도 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마르가리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과민반응이었다. 자신이 아는 이선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순수하게 기쁜 마음으로 아들을 만나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