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776
3부 191화 외교에는 영구한 적도 없다
앞서 보았듯, 파머스턴의 1848년 하원 연설은 현실주의 외교의 정수와도 같은 말이었다. 영국 외교를 책임진 자라면 모를 수 없는 말이었다.
그 말처럼, 영국은 국익과 세력균형을 위해 수차례 적과 동지를 바꿔 갔다.
나폴레옹의 대륙 정복을 막기 위해, 오스트리아·프로이센·러시아와 손을 잡아 몰락시켰다.
그레이트 게임의 라이벌이 된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숙적 프랑스와 손을 잡아 크림전쟁에서 승리했다.
독일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숙적 프랑스·라이벌 러시아와 삼국협상을 맺어 독일과 싸웠다.
오늘날에도, 동맹 프랑스가 독일을 지나치게 압박하여 대륙 유일의 최강국으로 떠오르는 걸 막기 위해 노력했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세계혁명을 막기 위해 견제하다가도, 독일과의 밀착을 막기 위해 협상의 손을 내밀었다.
여기에는 어디에도 이념적 요소가 없다. 그야말로 국익만을 고려한 현실주의 외교의 정수였고, 그런 점에서 노동당 정부도 파머스턴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었다.
“영국의 이런 유연한 태도는 배워야 하는데, 20년 동맹 맺으면서 배운 게 하나도 없나!”
파머스턴의 격언은 이선도 충실히 따랐다.
아니, 이선이야말로 동아시아 현실주의 외교의 정수였다.
21세기의 기억이 있는 한국인으로서 일본 제국주의를 혐오하면서도, 조선-대한제국의 국익을 위하여 일본과도 기꺼이 손을 잡았다.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민족사의 숙적과도 거리낌 없이 악수했다.
소비에트 연방도 마찬가지다. 공산주의를 혐오하더라도, 한국의 국익에 필요하다면 소련과도 기꺼이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일제와도 손을 잡았는데, 소련이라고 못 잡을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단지 지금은 소련을 적으로 두는 게 국제정세상 훨씬 도움이 되기에, 주적으로 삼고 있을 뿐이었다.
이건 이념상의 문제가 아니라, 지정학적이고 국제정치적인 측면에서였다.
만약 국제정치에서 큰 변화가 발생해 타협의 필요성이 생긴다면, 얼마든지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금도 주독대사관과 주청고등판무관부에서는, 소련과 은밀히 무역대표부 설립에 대해서 논의하는 중이었다.
정치적·외교적으로는 적대하더라도, 경제적으로는 거래를 할 수 있었다.
소련은 훨씬 이념을 중시하는 집단이지만, 신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의외로 실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독일과 수교하여 고립을 탈피하고, 전쟁 당사국이었던 폴란드도 상호인정하고, 자본주의 종주국인 영국과도 수교를 논의하고, 채무의 악연이 있는 프랑스에도 손을 내밀었다.
심지어 일본과도 오호츠크 국경분쟁을 종료하고 타협에 나서고 있었으니, 소련과 국경을 접한 만주와 연해주를 통제하고 있는 한국과도 무역협상 정도는 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소련 내부에서도 ‘극동 반동의 보루’ 한국에 대한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이들도 적잖았다.
한국에서도 소련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일체 협상을 배격을 부르짖는 이들이 많았는데, 결국 이 사달을 내고 만 것이었다.
꽉 막힌 이념적 사고는 외교에 해악을 준다는 명백한 실례(實例)였다.
그리고, 그 예시는 끝나지 않았다.
* * *
“도대체 이재각 이 작자는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하, 이래서 황족 나리들에게 대임을 맡기면 안 되는데. 총선만 아니었으면 내가 직접 가는 것을.”
외무대신 이승만은 진작부터 황족이 왕실 간 외교를 맡는 관행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고, 이재각의 실수도 비외교관 출신 황족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이승만은 이재각의 실언에 짜증을 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영국 정부의 초치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노동당 빨갱이 놈들, 실언 하나 가지고 문제 삼아서 초치를 해? 이번 기회에 길들이기 한다 이거지? 1년도 못 갈 정권이 가소롭기 짝이 없군.”
이승만은 누구보다 강경한 반공주의자였다. 공산당 사촌과도 같은 노동당이 영국을 통치하게 된 것까진 제3국의 일이니 그렇다 쳐도, 영국이 소련과 수교하려는 건 ‘자유세계’에 대한 배신이었다.
“소련 공격을 제안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소련하고 수교한다고? 우리가 동양에서 소련과 대립하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 배신자 놈들.”
이승만은 생각에 잠겼다.
총선을 불과 한 달도 안 남겨둔 중대한 시기였다.
일본에 배상금 받은 걸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운 만큼, 선거를 앞둔 이 시점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나서야 개화당에 유리할지 계산을 돌렸다.
‘가뜩이나 박용만, 신채호 같은 놈들이 나를 영미의 앞잡이니, 명예 영국인이니 이딴 말을 지껄여서 선동하지. 그 때문에 민족주의 우파 진영에서 나를 거부하는 게 아닌가. 박용만 일당이 민족주의 표심을 갈라 먹게 둘 수는 없어.’
이승만은 신민당 우익을 포섭해서, 신민당의 분당과 개화당으로의 통합을 이끌어 냈다. 중대한 정치적 성과였다.
눈엣가시와도 같은 건 새로운 민족주의 정당을 자임한 박용만의 신당이었다. 근본이 개화당에서 갈라져 나온 당이니만큼 표를 갈라 먹을 가능성이 컸고, 이승만은 경계를 멈추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못을 박아야겠다. 영국에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줘야지. 어차피 노동당 정권은 오래 못 간다. 잠시 척져 봤자 보수당 정부 들어서면 다시 좋아질 거야.’
정치적 계산을 마친 이승만은, 외무대신의 권한으로 주한영국대사를 초치했다.
재작년의 웨일스 공 스캔들, 작년의 데일리 메일 스캔들에 이은 세 번째 초치였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지난 대전쟁에서 영국이 파병을 요청하여, 대한은 동맹의 의무를 다하고자 유럽에 병력을 보내고 피를 흘렸습니다. 영국이 공산주의 소련 봉쇄를 제안했으므로, 대한은 동맹으로서 반공 성전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이는 모두 동맹이기에 한 일입니다! 소련은 대한의 적이고, 영국의 적이었습니다! 이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발언을 우호친선회라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맥락상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상황에서 한 말을 문제 삼다니요!”
이승만은 대사 초치 후 외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내 유수의 신문사와 외신 기자들까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승만은 영국 노동당 정부를 비판했다.
“우리 모두 기억합니다. 영국은 재작년과 작년 두 차례에 걸쳐 대한에 모욕을 가했습니다. 황제 폐하와 정부의 단호한 조치에, 영국 국왕 폐하와 정부는 사과를 표명하고 특사를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특사가 양국 우호에 대해 좀 과장된 표현을 사용했기로서니, 우리 대사를 초치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는 영국 정부가 이 사안을 꼬투리 삼아 자신들의 잘못을 희석하려는 의도라고 봅니다. 그래서 본 대신 역시 영국대사를 초치하여 항의하였습니다.”
“전 정부가 합의한 사항을, 현 노동당 정부가 멋대로 곡해한 겁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소련과의 수교가 국내정치의 반대에 부딪히자, 애먼 한국 탓을 하고 나선 겁니다! 소련과 적대했던 건 우리 뜻이 아니고 한국이 멋대로 한 일이다, 뭐 이렇게 해명했겠지요? 이건 옛 동맹에 대한 배신이고, 공산주의 야욕에 맞서 싸우는 자유세계 전체에 대한 배신입니다!
이승만이 사용하는 어휘에 외신 기자들은 깜짝 놀랐다. 외국 정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었다.
외교적 수사에 능한 외교관인 이승만이 화를 못 참아서 그럴 리는 없고, 명백한 정치적 목적을 갖고 하는 말이었다.
“본 대신은, 대한제국 외무부를 대표하여, 국내정치를 타개할 목적으로 옛 동맹에 부당한 압박을 가한 영국 정부의 조치에 깊은 유감을 표하는 바입니다.”
이승만이 기자회견을 마치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승만은 대답 없이 돌아섰다. 더 할 말이 없다는 단호한 의사의 표현이었다.
“호외요! 호외! 영국 정부, 한국 대사를 초치! 이에 이승만 외무대신은 강력한 유감을 표시!”
“영국, 소련이 공동의 적이라는 특사의 연설을 꼬투리 잡아 한국을 비난! 국내정치를 타개할 목적이라는 외무대신의 설명!”
그날 석간 호외는 영국과의 새로운 외교 분쟁으로 뒤덮였다.
호외를 받아든 사람들은 외무부 조치에 동조했다.
“무례한 영국 놈들! 재작년에는 친왕비 전하를 희롱하고, 작년에는 황제 폐하를 모욕하더니, 올해는 우리 정부까지 공격해?”
“제놈들 요구대로 머나먼 구주까지 병력 파병해서 피를 흘리고, 소련에도 맞서 싸운 게 아닌가? 그런데 이제 와서 대한을 배신하고 소련에 붙어?”
데일리 미러 스캔들로 인해 한국의 반영 감정이 크게 고조된 터였고, 이를 봉합하러 간 특사의 발언을 놓고 부당한 트집을 잡는다는 외무부 발표에 국민은 대부분 격분했다.
“아니, 애초에 영국은 소련의 적 아니었나? 왜 이제 와서 소련하고 붙는다는 건가?”
“영국 정부가 바뀌었다잖나! 사회주의 정당을 자처하는 노동당으로!”
“뭐야, 그럼 영국도 빨갱이들이 지배하는 건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나, 공산당이나 노동당이나 그게 그거지.”
“세상에! 러시아도 모자라 영국까지 빨갱이 세상이라니, 이거 무서워서 살겠나?”
“그러니까 대한에라도 강고한 반공 정부가 들어서야지! 빨갱이들이 발도 못 붙이도록!”
“외무대신이 아주 잘했어! 영국 빨갱이 놈들에게 한 방 먹여 줘야지!”
이승만의 뜻대로 여론은 반응했다.
‘빨갱이 공포’를 자극하면서도 ‘국가의 자존심’을 지켰다고 강조하는 이승만의 언론 플레이에 여론은 찬사를 보냈다.
“정말 특사가 이렇게 말했다면, 이건 특사가 실수한 게 맞네. 영국이 소련과 관계를 개선하고 있는 데 적을 운운하는 건 명백히 외교적 결례지.”
“애초에 왜 대한이 영국의 적을 운운하나? 오지랖도 적당히 넓어야지.”
“왜 이런 식으로 외교를 하는지 모르겠네. 설령 영국이 부당하더라도, 외교적으로 잘 봉합했어야지.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비판하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뭐긴 뭐야, 선거용이지. 외무대신이 개화당 총리 후보 아닌가.”
양식 있는 이들은 반대로 개탄을 금치 못했다.
이재각은 명백하게 실언을 했다. 그렇다면 사과로 적당히 마무리할 수 있는 일을, 오히려 국내정치 목적으로 국제정치를 악용하는 건 이승만이었다.
신민당, 진보당, 사회당에서는 합동으로 대책회의에 나섰다.
이선은 황성역에 돌아오고 나서야, 호외를 보고 상황을 파악했다.
“제기랄, 미쳤나!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점잖은 황제가 화를 내며 욕설을 내뱉자, 시립하던 궁내부 관리들이 깜짝 놀랐다.
이선은 기술의 한계가 새삼 절망스러웠다. 만약 기차 안에서 실시간 통신이나 전화를 받아 상황을 파악했더라면, 이승만이 독단적 행동을 나서는 걸 막았을 터였다.
“외무대신더러 당장 경운궁으로 입궁하라고 해. 아니, 내가 외무부로 가지. 당장 외무부로 차 돌리게.”
“예, 폐하!”
황제의 분노에, 운전수는 외무부를 향해 차 속도를 높였다.
“황제 폐하 납시오!”
“폐, 폐하!”
황제의 외무부 거동에 당직 관리들이 깜짝 놀라 기립했다.
“외무대신 어디 있나?”
“한 시간 전에 퇴청을…….”
“당장 찾아서 외무부로 복귀하라고 해! 늦으면 늦을수록 황제가 대신 집무실에 기다리는 불경이 늘어난다고 전하고, 알겠나?”
“예, 폐하! 삼가 명을 받듭니다!”
이선은 외무대신 집무실에 앉아 전문과 기자회견 초고 등을 읽었다.
“이놈 봐라, 이거. 내가 합당한 조치 취하라고 보낸 전문 읽었네. 읽고도 이랬단 말이야?”
이선이 분노를 삭이는 동안, 이승만이 급히 집무실로 달려왔다.
“폐, 폐하! 어찌 황공하옵게도 외무부까지 친히 왕림을…….”
“이따위 발표나 하고 있으니, 안 올 수가 있나!”
이선은 분노를 감추지 않고, 기자회견 초고가 적힌 종이를 집어 던졌다.
종이뭉치를 맞은 이승만은 굴욕감을 느꼈지만, 황제의 분노 앞에 부동자세로 섰다.
“짐이 합당한 조치를 취하라고 했는데, 이게 합당한 조치인가? 외교관계 파탄 내자는 건가, 뭔가?”
“폐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대한의 외교를 책임진 외무대신으로서 소신이 생각하는 합당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승만이 당당하게 나오자 이선은 냉소를 흘렸다.
“합당해? 그래, 대체 뭐가 합당한가?”
“먼저 무례를 저지른 건 명백하게 영국입니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올해도…….”
“상황파악을 명확히 해! 재작년과 작년에 영국이 잘못한 건 맞지만, 그건 영국 정부가 아니라 웨일스 공과 쓰레기 언론이 잘못했지! 올해는 우리 정부가 잘못한 거고!”
이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특사는 단순히 황족이나 궁내부대신이라서가 아니라, 짐의 대리인이자 정부를 대표해서 간 자야! 특사의 언동은 곧 짐의 언동이나 다름없다고! 그런데 무슨 자격으로 영국의 적을 운운하나?”
“폐하, 소련은…….”
이승만이 말을 하기도 전에 이선이 잘랐다.
“설령 소련이 적이더라도, 그건 영국 정부가 판단할 일이지! 제3국인 대한이 무슨 자격으로 적을 운운하나? 하다못해 시기가 작년만 돼도 형식은 부적절해도 시의적절할 수는 있었어. 그땐 보수당 정부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소련을 승인하고 수교에 나선 노동당 정부란 말일세! 특사가 소련은 말할 것도 없고 영국 정부에까지 재를 뿌린 게 아닌가!”
“황공하오나 폐하, 소련과의 수교는 명백한 영국의 배신입니다! 영국이 국제 반공 십자군의 선봉에 서겠다고 대한을 끌어들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태도를 바꾼단 말입니까? 제1야당인 보수당도 반대하고, 자유당도 탐탁지 않은 걸 노동당 정부가 무리하게…….”
이선은 혀를 찼다. 백번 양보해서 이재각의 말이 단순한 실언일지라도, 일을 크게 키운 건 이승만의 오만과 편견이었다.
“영국 노동당 정부가 뭔 짓을 하건 간에, 그걸 왜 우리가 평가하나! 대한이 영국 자치령이야? 대한이 뭐 호주, 캐나다라도 돼? 대한은 제3국이야, 제3국!”
“얼마 전까지 동맹이었던 나라입니다! 영국은 미국, 프랑스와 함께 연합국을 대표하고 국제연맹을 이끌며 자유세계의 수장으로서 명백한 책무가…….”
쾅!
이선이 책상을 쳤다.
“자유세계라는 추상적 개념부터 집어치우게! 연합국? 국제연맹? 이건 실체라도 있지, 자유세계가 무슨 실체가 있나? 그 연합국 최고위원회조차도 각국의 이해관계로 결렬되고, 국제연맹도 어떠한 구속력도 없이 굴러가고 있네. 배상금 문제도 조절 못 해서 루르 점령과 인플레이션 위기까지 발생하는데, 하물며 자유세계는 무슨!”
이승만이 ‘자유세계’를 진심으로 믿는지, 아니면 수사학적으로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윌슨주의적 외교를 표방하는 이승만을 보면서 이선은 혀를 찼다.
“그래서 그 자유세계를 위협하고 파괴하려는 적이 소련이다, 뭐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건가?”
“폐하, 이건 단순히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진실로 그렇습니다.”
“We have no eternal allies, and we have no perpetual enemies. Our interests are eternal and perpetual, and those interests it is our duty to follow.
(우리에겐 영원한 동맹도 없고, 영구한 적도 없다. 우리의 이익만이 영원하고 영구하며, 그 이익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의무이다.)”
이선은 파머스턴의 격언을 새삼 인용했다. 국제정치학 전공에다 외교관 생활을 오래 한 이승만이 모를 리가 없는 말이었다.
“파머스턴이 너무 옛날 사람이라면, 근래엔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안 그랬나? Speak softly and carry a big stick, and you will go far(말은 부드럽게 하되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다녀라. 실패하지 않을 터이니).”
“…….”
“설령 전쟁을 앞둔 철천지원수더라도, 앞에서는 부드러운 말로 웃으면서 뒤로는 칼을 꽂을 준비를 하는 게 외교, 즉 국제정치라고. 공개적으로 주적을 운운하면서 상대방에게 빌미를 주는 게 아니라. 짐이 일국의 외교책임자인 경에게 이런 말까지 해 줘야 하나?”
황제에게 외교관의 제1원칙 교육을 받는 셈이 된 이승만은 굴욕감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대적은 하지 못했다.
“경이 엎지른 물은, 남에게 치워 달라 하지 말고 경이 직접 쓸어 담도록. 해결 여부에 따라 경의 정치적 미래가 달려 있다고 생각하게. 알겠나?”
황제의 서늘한 경고에, 이승만은 고개를 숙였다.
“……삼가 황명을 받들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