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783
3부 198화 주군이자 동지
“폐, 폐하! 어찌하여 이런 누추한 곳까지…….”
김옥균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도 절을 하려 하자, 이선이 속히 말렸다.
“괜찮소. 고균과 이야기하고 싶어서 왔소. 누추하기는, 이렇게 좋은 별장에 살면서.”
이선은 일부러 ‘병문안 왔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김옥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이선은 알고 있었지만, 구태여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삼가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고맙소.”
김옥균은 지팡이에 의존해 힘겹게 움직이면서도 능숙히 지시해, 집사와 하인이 황제를 응접실로 모셨다.
“오, 전망 좋은 발코니가 있구려. 저기서 한잔합시다.”
“예, 그리하시지요.”
별장은 서양식 저택으로, 멀리 제물포항과 서해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발코니가 있었다.
안락의자 두 개가 놓이고, 이선과 김옥균은 마주 보고 앉았다.
“이렇게 멋진 곳에 별장을 짓다니, 참 좋구려.”
“신이 예전부터 공무상 제물포항을 드나들 일이 많다 보니, 아예 가까운 곳에 별장을 마련했습니다.”
김옥균이 민망한 듯 변명하자, 이선이 빙긋 웃었다.
“하하, 잘했소. 경은 짐을 대신하여 수없이 해외를 드나들었는데, 여기에 별장을 가질 만도 하지.”
이선은 기억을 더듬었다.
이곳은 응봉산 만국공원으로,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자유공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맥아더 원수의 동상이 있는 자리에는 병인양요를 대표하는 양헌수와 신미양요를 대표하는 어재연, 병인양요와 조청일전쟁의 영웅인 한성근의 동상이 서 있었다.
전망 좋은 언덕에는 조선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세창양행(마이어 무역회사) 사택이 있고, 외교관과 상인들의 사교공간인 제물포구락부(濟物浦俱樂部)가 있어 서양인들이 선호하는 곳이었다.
상해에서 큰 부를 일군 영국인 제임스 존스턴도 이곳의 전망에 반해 여름별장을 짓고 휴가를 보내곤 했다. 존스턴의 딸과 결혼한 세창양행 공동창업주 칼 볼터가 이어받아 거주했다.
김옥균 별장은 존스턴 별장의 지척에 있었고, 빨간색 지붕이 인상적인 존스턴 별장과 대조적으로 파란색 기와였다.
제물포항에 입항할 때 선박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게 존스턴 별장과 김옥균 별장이라, 두 저택은 인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제물포, 인천은 서쪽을 향한 대한의 창(窓)이니까. 서양 문물이 이곳을 통해 들어왔고, 우리도 이곳에서 출발해 서양으로 갔지.”
“실로 그러하옵니다. 보빙사부터 시작해서 무수히 많은 조선의 젊은이들이 제물포를 떠나 서양으로 갔지요.”
“보빙사라. 새삼 옛 생각이 나는구려.”
이선은 추억에 잠겼다. 41년 전, 미국 국빈방문 사절단이자 조선 최초의 세계일주 사절단인 보빙사를 이끈 장본인은 바로 이선이었다.
그 여정에 참여했던 이들은 이제 모두 죽거나 병들어 있었다.
부사 홍영식은 개화당 ‘5인’으로서 개화의 중책을 맡았고, 주청공사로 재임 중 광무 4년 의화단에게 피살당했다. 사후 총리대신에 추증되었다.
종사관 서광범은 학제와 사법의 근대화에 큰 공을 세웠고, 광무 11년 외무대신으로서 미국 방문길에 별세했다.
여흥 민문의 총아였던 한계로 인해 개화당과 멀어졌던 부사 민영익은 기업가로 변신해 한중일 간의 무역 활동을 하며 상해에서 살다가, 얼마 전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가장 젊은 축에 속했던 수행원 변수는 유길준에 이어 미국에 유학, 조선인 최초의 석사 학위를 받았다. 중인 출신으로서 황성대학 총장과 학무대신까지 올랐던 변수는, 광무 15년 불행히도 미국 출장 중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 외 현홍택, 최경석, 고영철 등 나이든 수행원들은 진작 세상을 떠난 터였다.
외국인 수행원들, 청국인 오례당은 이선과의 인연으로 인천해관에서 근무했고, 조청일전쟁 이후에도 한국에 남아 무역상으로 부를 축적했다. 스페인 출신 아내의 취향대로 유럽식 저택을 지었고, 이 또한 인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광무 16년에 별세했다.
서양인 최초로 조선 국왕(고종)의 초상사진을 찍었던 미국인 퍼시벌 로웰은, 천문학자가 되어 명왕성이라고 불리게 될 ‘행성 X(Planet X)’의 발견을 예측했다. 로웰은 광무 20년에 별세했고, 그의 제자들이 뜻을 이어받아 천문학을 발전시켰다.
조선인 최초의 미국 유학생으로, 국민교육에 지대한 공로를 세우고 4대 총리로 재임했던 유길준만이 역사의 변화로 장수하여 유일하게 살아 있었지만, 병세가 악화되어 오늘내일하는 처지였다.
‘이젠 정말 아무도 안 남았구나. 유일하게 나만 살아 있구나.’
이선은 새삼 시대의 변화를 체감했다.
개화 1세대는 대부분 세상을 떠났거나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나마 젊은 축에 속하는 이들도 은퇴했다.
눈앞의 김옥균마저 세상을 떠난다면, 개화 1세대는 물리적으로 소멸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박영효와 서재필은 아직 살아 있다지만 미국에 있었다. 1세대 중 유일하게 공직에 남아 있는 윤치호가 있기는 하지만, 60세가 되자 은퇴 의사를 전달했다.
“아, 그때의 개화당 동지 중에 정부에 남은 이가 이제 아무도 없구려.”
“아직 좌옹(윤치호)이 있지 않습니까.”
“좌옹도 얼마 전 주청고등판무관에서 물러나 은퇴를 청했소. 경도 그렇고, 그 자리에 앉으면 은퇴하고 싶어지나.”
“어려운 자리이긴 하지요, 하하.”
재작년 김옥균의 후임으로 윤치호가 제2대 주청고등판무관으로 임명되었다.
이선이 윤치호를 고등판무관으로 임명한 건, 철두철미한 문명개화파로 낙후한 인습을 멸시하기는 해도, 그만큼 ‘시정개선’에 적극적이기 때문이었다. 후처가 중국인이라 중국어에 능통하다는 점도 중요했다.
고등판무관으로 부임한 윤치호는 적극적인 시정개선에 나서 만주의 근대화를 촉진했다. 그 과정에서 윤치호가 보인 고압적 태도는 외교 조율에 능한 김규식이 부드럽게 처리했다. 윤치호 자신도 오랜 외교관 경험을 통해 중재자로서 능력이 있었기에, 청국 정부와 큰 마찰을 빚지는 않았다.
윤치호는 자신을 보좌하던 판무관 김규식이 본국으로 돌아가 외무대신으로 승진하자 사임과 은퇴를 청했다.
명목상으로는 나이 예순이 되어 늙고 병들었으니 만주에서 머물기 힘들어 은퇴하고 싶다는 사유였지만, 갈수록 악화되어 가는 만주와 몽골·티베트의 관계를 조율하기가 벅차서가 실질적인 이유였다.
“고균은 나이 일흔에 고등판무관으로 부임했는데, 좌옹은 예순 되었다고 물러나겠다니 좀 우습군.”
“좌옹은 유능하고 정세판단이 빠릅니다만, 그만큼 엄살도 좀 심하지요. 몽골 문제가 손을 쓰기가 어려워지는 판국이니 물러나고 싶은 것으로 보입니다.”
“싫다는 사람 억지로 계속하라고 할 수는 없지. 좌옹의 후임자를 임명해야 할 터인데, 초대 고등판무관을 지냈던 경의 의견을 듣고 싶소.”
그나마 몽골을 하나로 뭉치게 했던 정신적 지주인 복드 칸의 병세가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칸의 주치의인 이태준을 통해 전해졌다.
복드 칸이 훙서(薨逝)하면 몽골의 구심점은 사라질 것이고, 이미 몽골 북부를 잠식하고 있는 친소 좌익 인민혁명당의 기세는 더욱 강해질 터이다.
러시아인 군사독재자로서 몽골에서 인심을 잃은 운게른-슈테른베르크를 제거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고, 제국익문사가 은밀히 배후에서 조종한 복드 칸과 몽골 왕공들의 친위쿠데타 시도도 있었지만 실패했다.
운게른은 몽골 최강의 군벌로서 무력이 강하기도 했고, 대리집정으로서 사실상 칸의 궁전을 장악하고 있기에 제거가 쉽지 않았다.
친위쿠데타 실패 후 운게른은 더욱 폭압적인 군사독재로 나아갔다.
몽골 내부의 반발로 막상 실천은 못 하지만, 반공 성전을 부르짖는 운게른 때문에라도 소련은 몽골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친소 정권을 세우려 했다.
결국, 한국 입장에서도 운게른을 제거하고 몽골 정세를 안정적으로 연착륙시킬 필요가 있었다.
“신이 감히 생각건대, 우사가 외무대신이 되었다는 건, 소련과의 타협을 어느 정도 고려하고 있으신지요.”
“소련이 대한의 주적이긴 하지만, 영구히 대립하는 건 피차 불편한 일이지. 영국이 소련을 인정하고 수교 절차에 들어갔고, 프랑스도 그 뒤를 따르고 있소. 이 기회에 우리도 협상의 여지는 찾아봐야지.”
이선이 김규식을 외무대신으로 발탁한 이유 중의 하나는, 소련과의 협상이었다. 소련을 주적으로 내세워 군사력 증강은 멈추지 않았지만, 국익에 필요하다면 적과도 대화는 가능했다.
“물론 소련은 연해주 문제 때문에라도, 상호인정과 수교까지 가기는 어렵소. 혁명 이전에는 양국 간 무역이 상당하였으니, 무역대표부 정도는 설치하고 무역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군.”
대한제국은 반소를 국시로 내건 아무르 정부로 하여금 소련을 지나치게 자극할 만한 행위를 금지했다.
아무르강을 넘는 군사적 도발을 엄금하는 건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정통 러시아 정부’를 자처하지 못하도록 했다. 어디까지나 ‘아무르(지역)정부’일 뿐이었다.
백군의 후예인 아무르 정부 수반 콜차크 제독과 총사령관 브랑겔 장군은 불만을 느꼈지만, 대한제국의 보호 없이는 국가를 유지할 수 없는 처지라 불만을 삭여야 했다.
“솔직히 말해서, 소련과 국경선을 접하는 만주와 연해주만으로도 대한의 군사력은 한계가 있소. 방대할 정도로 넓지만 인구는 적고 교통이 극도로 불편한 몽골까지는 관리할 능력이 없지.”
과잉팽창은 언제나 제국이 무너지는 계기였다. 하물며 신흥제국은 더욱 과잉팽창을 조심해야 했다.
“신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몽골은 대한의 국익과 직접적인 관계도 없고, 관리하기가 극도로 어렵습니다.”
“필요하다면 몽골을 대한과 소련 사이의 완충국으로 만들 생각이 있소.”
반공 반소를 외치는 우익 인사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말이었지만, 이선은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했다.
몽골인이 활불(活佛)로 숭배하는 복드 칸이 살아 있어도 이 정도인데, 훙서하고 나면 어찌 될지 몰랐다. 지리멸렬한 왕공들을 대신해 무력을 통해 권좌에 오른 운게른은 명분과 민심을 모두 상실해 인민혁명당에게 패배할 터이고, 친소 국가가 설립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고 만주군이나 대한제국군을 동원하여 철도도 없는 몽골까지 장거리 원정을 가기에는 너무나도 부담이 컸다.
현재 몽골은 계륵(鷄肋)이나 다름없으니, 먼저 선수를 쳐서 완충국으로 두는 방안을 검토할 만했다.
“청 황실은 열성조의 명분 때문에라도 몽골의 한위(汗位)에 집착합니다. 정작 성년이 된 선통황제(부의)는 전혀 개의치 않아 합니다만. 선통황제는 만주만이라도 근대화하여 국가를 유지할 수 있다면 나머지 지역은 포기해도 상관없다는 입장입니다.”
“어릴 적부터 서구식 교육을 받아 그런지 합리적이군. 사위로 삼고 싶었는데 청 황실이 거부했으니.”
“신이 듣기로는 선통황제는 예성공주를 흠모한다고 합니다.”
선통제 부의가 또래인 예성공주 이라에게 반했다는 건, 아는 사람은 아는 ‘비밀’이었다. 하지만 서녀에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청 황실은 난색을 표했다.
“라는 인기가 많아서 피곤하겠군. 알렉세이 대공도 라에게 반한 모양이던데. 아무래도 오랫동안 가까이 있던 또래 여성이라곤 그 아이뿐이니…….”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그분은…….”
“오래 살지 못할 혈우병 환자지. 본인도 알고 있기에 감히 청하지도 않소. 아니, 아예 결혼할 생각도 없다더군. 참 딱하긴 하오. 복고파들이 괜히 황제로 옹립하겠다고 하는 일이 없어야 할 터인데.”
알렉세이는 올해로 만 20세가 되고, 제정복고파들은 알렉세이를 정통 러시아의 차르로 복위시켜야 한다고 성화였다.
타티야나는 아픈 동생에게 그런 부담을 주기 싫어 반대했지만, 연해주로 이주한 올가는 생각이 바뀌었는지 약혼자 드미트리 대공과 함께 제정복고 운동에 동조했다.
대한제국의 눈치를 보는 아무르 정부는, 콜차크와 브랑겔이 은근히 제정복고를 지지하는 입장임에도 공식적으로는 제정복고가 시대착오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선통황제는 대한에 우호적이니, 반드시 대한의 국서(國壻)가 되지 않아도 친한 기조를 유지하리라 생각합니다. 그 길만이 제위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니까요.”
“대청 황제가 굳건히 남아 있는 게 대한이 만주를 관리하기에 좋겠지. 대청 황제라는 명목상의 구심점이 사라지면, 더 관리하기 어려워질 테니까.”
“그렇기에 이완용부터 신과 윤치호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청공사와 판무관은 청 황실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렇기에 차기 고등판무관은 외교관으로서의 자질, 실질적 총독으로서의 정무능력, 유학적 예의범절을 모두 갖춘 인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 누가 좋겠소? 생각해 둔 바가 있소?”
김옥균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뜻밖의 인물을 추천했다.
“신은 우남을 차기 고등판무관으로 추천합니다.”
“이승만? 외교관으로서 손색이 없지만, 지금 정세에서 우남이 고등판무관으로 어울리는 인사인가?”
이선은 난색을 표했다.
“대소 온건파인 우사가 외무대신이 되었으니, 고등판무관은 강경파인 우남이 되어 강온 양면에서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남은 능력은 있지만, 세계관이 편협해서…….”
“이번 총선에서 야당의 연합으로 패배하였기에, 우남도 배운 바가 있을 겁니다. 편협하고 독선적인 태도로는 권좌에 올라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겠지요.”
개화당 창설자로서 김옥균은 40년 만의 실권(失權)이 안타깝긴 했지만, 그보다 황제의 충신이자 국가의 원로로서 개화당의 실권도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독은 독으로 제거해야지요. 운게른과 같은 미친개에게는 좌옹이나 우사와 같은 점잖은 방식으론 안 됩니다. 우남이라면 확실히 때려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건 그렇군.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지. 우남은 몽둥이는 확실하게 휘두르는 성격이고.”
이선은 이승만의 수완은 인정했다.
청국을 강온 양면에서 어르고 강탈했던 이완용과 스타일이 유사했다.
“안 그래도, 우남을 주미대사로 다시 보낼까 생각하고 있었소. 외교수완이야 확실하니. 우남은 성격상 야당 지도자로는 도저히 안 어울리거든. 어떻게든 새 정부를 흔들려고 들겠지.”
이승만은 국내에 두면 순순히 ‘야당 지도자’ 역할을 받아들이지 않을 터고, 개화당 내부에서도 분란이 심해질 터였다.
외교관으로서의 능력은 있으니 외직이 적당했다.
“이미 외무대신까지 지냈기 때문에, 예전 지위인 주미대사로 돌아가면 좌천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고등판무관은 다르지요. 지위야 대사와 동급이지만, 권한은 대사와 비교가 안 되니까요.”
“그러면서도 짐과 외무부의 통제를 받지. 우남이 우사의 지시를 받는 건 내키지 않겠지만, 짐의 명령까지 거역할 정도로 막 나가지는 않으니.”
이선은 빙긋 웃으면서 김옥균의 추천을 받아들였다. 천하의 이완용도 고삐를 물려 부렸던 이선으로선, 이승만도 다룰 자신이 있었다.
“좋소.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지. 역시 경과 의논하길 잘했군.”
“황공하옵니다. 그럼 이다음부터는 감히 신이 아뢰어도 되겠습니까?”
김옥균은 마침내 심중에 남은 말을 주군이자 동지, 이선에게 전하고자 했다.
“물론이오, 무엇이든 말하시오.”
이선도 오랜 동지의 마지막 정치적 유언이 되리라 생각하고, 기꺼이 그의 말을 경청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