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787
3부 202화 비상한 공을 세웠도다
계천기원절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김옥균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죽음이 아니라, 마치 기나긴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문득 지나간 삶의 궤적이 주마등(走馬燈)처럼 흘렀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총리대신으로서 국정을 이끌던 날.
27년 전 오늘, 영광스러운 황제 즉위식의 날.
청국을 무찌르고 자주독립을 이룩한 날.
미국, 프랑스, 일본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던 날.
아름다운 이국의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던 날.
갑신경장을 앞두고 국가의 변혁을 다짐하던 날.
개화당의 지도자로서 동지들과 함께 조선의 변혁을 꿈꾸던 날.
박규수의 가르침을 받고 개화에 눈을 뜨게 된 날.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흘러 지나갔다.
그리고…….
42년 전, 완화군 이선을 처음 만났던 날.
29년 전, 이선으로부터 국가의 구상을 듣고 변함 없는 충성을 다짐하던 날.
며칠 전, 이선으로부터 진실에 대해 들었던 날.
생애 마지막 순간, 김옥균의 뇌리에 떠오르는 건 주군이자 동지, 오랜 벗이었던 이선의 모습이었다.
김옥균은 이선의 말을 믿었다.
이선의 장대한 국가 구상을 믿었고, 이는 현실로 이루어졌다.
미래에서 왔다는, 혹은 미래를 보고 왔다는 말도 믿었다. 그랬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자신의 비참한 최후, 조국의 비참한 멸망, 민족의 비참한 운명을 모두 바꾸어 냈다는 말을 듣고, 어찌 의심할 수 있겠는가?
이선은 자신의, 조국의, 민족의 구원자였다.
「폐하, 폐하는 언제나 미래를 보고 계십니다. 그럼 장차 폐하께서 하시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요? 국가가 아닌 폐하를 위해서.」
「나? 솔직히 말하면, 이만 쉬고 싶소. 더 늙기 전에 세계를 일주하며 다양한 나라를 방문하고 싶고. 경치가 아름다운 조용한 곳에 정착하여, 행복한 은퇴 생활을 하고 싶군. 음악을 들으며, 국무가 아닌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읽고. 좋은 와인 한 잔 기울이면서, 하하.」
마지막 대화에서, 이선은 오랜 벗에게 소망을 솔직히 드러냈다.
「듣기만 해도 행복한 노후입니다. 하오나 폐하, 그리되면 폐하께서는 구원받으실 수 있겠으나……. 폐하의 구원을 받을 수만, 아니 수천만 창생(蒼生)의 운명은 어찌하오리까? 그건 폐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리라 사료되옵니다.」
이선은 한숨을 쉬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고균의 말이 옳소. 뭐, 나는 구원이란 대단한 생각은 안 하지만,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지. 내게 주어진 책무를 외면하고 떠날 수야 없겠지. 언젠가 진정한 평화의 시대가 온다면, 그때는……. 그런데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 것 같진 않군.」
「그날까지 성수무강하시옵소서, 폐하. 황공하오나 신은 하늘에서 폐하를 위한 이상향을 마련해 놓고 있겠습니다.」
이선은 사후세계를 믿지 않았지만, 웃음을 터뜨리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하하! 대한국 건설의 원훈도 모자라, 앞으로 천국 건설의 원훈이 되겠다는 말이오? 좋소. 고균이 만들어 놓은 이상향에 입주하도록 하지.」
「지금 당장은 안 됩니다. 폐하께서 만족하실 만한 이상향을 갖추려면, 최소 30년은 필요합니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찾아가겠소. 그곳에서 다시 만나 이상향을 건설합시다.」
‘폐하, 저는 이만 먼저 가옵니다. 하늘에서 폐하께서 완성하실 세상을 지켜보겠습니다. 하늘에서도 폐하의 신하이자, 동지, 그리고 벗이…….’
김옥균의 마지막 다짐은 언어로 치환되어 음절로 나오지 않았다. 오직 그의 뇌리에서, 생각으로서 침잠(沈潛)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뜻은, 그의 벗에게 전해지리라.
계천기원절 중계가 끝나고, 라디오에는 서양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중계가 끝났음에도 자신을 부르지 않자, 정경부인 유씨는 걱정이 되어 발코니로 나갔다.
남편이 안락의자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흘렸다.
“대감, 행사 중계 끝났습니다. 가뜩이나 몸도 안 좋으신 양반이 밖에서 잠들었다가 큰일 납니다.”
유씨가 남편의 상체를 살짝 건드리자, 김옥균의 머리와 팔이 힘없이 툭 떨어졌다.
죽음을 직감한 유씨가 비명처럼 외쳤다.
“대, 대감! 아이고, 아이고오!”
모친의 비명을 들은 김영진과 하인들이 발코니로 뛰쳐나갔다.
“어머님, 어인 일이십니까!”
“대, 대감께서…….”
김영진은 부친의 상태를 확인했다. 차갑게 식은 몸에서 더 이상 숨결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버님!”
“대감!”
광무 28년 4월 11일.
대한제국 3대 총리대신 김옥균은 향년 74세를 일기(一期)로 세상을 떠났다.
* * *
황성, 경운궁 석조전.
이선에게 비보가 전해진 건, 계천기원절 만찬연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폐하, 인천에서 급보가…….”
“무슨 일인가?”
“김옥균 대감의 별저에서 보낸 소식입니다.”
불길한 예감이 든 이선은 재빨리 전문을 낚아챘다. 전문의 내용은 짧았지만 내용은 분명했다.
이선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제가 일어나자 황족과 관료들이 모두 따라 일어났고, 음악이 뚝 끊겼다.
“금일 만찬은 여기서 파하겠소.”
갑작스러운 황제의 명에 좌중은 당황했으나,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황태자 이진이 부황의 뒤를 따라갔다. 이선은 서재에서 의자에 기대어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폐하, 어인 일이시옵니까?”
“나의 원훈이 떠났구나!”
순간 이진은 깜짝 놀랐다.
단순히 김옥균이 별세했다는 소식에 놀란 게 아니었다.
자신 앞에서 결코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부황이,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할아버지 고종 태황제가 붕어하였을 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아바마마…….”
“잠시 혼자 있고 싶구나.”
“예, 소자 이만 물러나가겠사옵니다. 보중하소서.”
이진이 눈치껏 물러나려고 하자, 이선이 손을 들어 불렀다.
“내일 오전에 전 총리대신 김옥균의 죽음을 전국에 알리도록 하라. 사흘간 조회(朝會)를 철회하고, 국가의 대소사는 내각에서 처결하도록 하라. 궁내부에서 장례 절차를 준비하도록 하라.”
“예, 폐하.”
비통한 순간에도, 해야 할 일을 지시하는 부황의 모습에 이진은 고개를 숙였다.
‘고균이 갔구나. 나의 원훈, 동지, 벗이…….’
이선은 슬픔에 잠겼다.
이미 예견한 죽음이었다. 죽음을 예견하고 마지막 만남도 가졌다.
향년 74세, 당대 기준으로서는 장수였다.
가장 영예로운 지위에 올라 은퇴하여 편안히 세상을 떠났으니, 실로 호상(好喪)이었다.
그럼에도, 이선은 슬픈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이미 무수히 많은 사람의 죽음을 보았다.
자신을 가장 아꼈던 할아버지 이하응, 생명을 준 부친이자 정적이었으나 최후의 순간에 화해한 아버지 이형, 함께 일했던 여러 신료와 동지들의 죽음.
비록 얼굴조차 알지 못하지만, ‘대한국 만세’를 외치며 전선에서 산화한 병사들의 죽음.
모두 안타깝고 슬펐지만, 가장 가까운 벗의 죽음만큼 비통한 일은 없었다.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밤이 늦었사옵니다. 이만 침수에 드셔야…….”
새벽 3시가 넘은 늦은 시간까지 서재에서 나오지 않자, 걱정이 된 황후 김아영이 이선을 찾았다.
이선은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 황후. 미안하오만 오늘은 여기서 잘 생각이니 먼저 주무시오.”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아영은 남편의 심리를 이해하고, 술잔에 와인을 적당히 따랐다.
“……고맙소.”
“아닙니다.”
아영은 남편에게 뭔가 위로의 말을 하려다,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먼저 죽어도, 아니 설령 마르가리타가 죽어도, 이선이 이렇게까지 비통해하지는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건 단순히 사랑이나 우정의 감정이 아니었다.
같은 뜻을 품고, 그 마음을 이해하고, 수십 년에 걸쳐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 국가의 원훈이자 대업의 동지이고 일생의 지음(知音)에게만 가질 수 있는 감정이었다.
아영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 태어나, 대업의 동지로서 함께 뜻을 이루었다면, 이선은 자신을 더욱 특별하게 생각해 주었을까.
‘나도 참, 남편이 벗을 잃고 슬퍼하는데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구나.’
아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순간, 마침 이선이 입을 열었다.
“고균은 내게 단순히 신하가 아니었소. 나의 원훈이자, 동지요, 지음이었지. 그러니 적어도 단 오늘만큼은 온전히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싶구려…….”
이선은 촉촉한 눈초리를 감추고자 눈을 감으면서 술을 들이켰다.
“나도 늙었나 보오. 죽음이란 게 이토록 가깝게 느껴질 줄이야.”
“어찌 그런 말씀을…….”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선이 자잘하게 아픈 곳이 많다는 사실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인 아영은 걱정을 담아 고개를 저었다.
“물론 나는 죽을 때가 되지 않았소. 고균을 생전에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럽디다. 하늘에서 나를 위한 이상향을 건설하고 있겠지만, 그 시일은 최소 30년은 필요하니까 천천히 오시라고.”
“어머나…….”
이선이 김옥균과 나눈 마지막 대화를 들려주자, 아영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 내게 주어진 시간은 길고, 해야 할 일도 많으리라 믿소. 내일이 되면, 날이 밝으면, 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겠지.”
아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마침내 결심하듯 말했다.
“제 말이 비통하신 폐하께 어떤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폐하께서 아프고 슬퍼하실 때, 언제나 제가 곁에 있겠습니다. 부디 마음속에만 담아 두지 마시고, 감정을 억누르지 마시고, 제게는 편안히 말씀해 주십시오.”
이선은 술잔을 내려놓고, 아내를 향해 미소 지었다.
“고맙소. 난 참 좋은 아내를 두었구려. 황후는 나와 평생을 함께할 인생의 동반자요. 언젠가 때가 되면 그대에게도 모든 걸 털어놓으리다. 지금은 그저, 그대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슬픔을 달랠 수가 있구려.”
“폐하…….”
아영은 이선이 ‘모든 걸 털어놓겠다’라는 말이 과연 무슨 말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지만, 남편의 말이 내심 기뻤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이렇게 애도하며 보냅시다.”
이선은 다시 술잔을 들어 천장을 향해 들었다.
마치 천장 너머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오랜 벗의 혼령을 향해 건배라도 하듯이.
* * *
「이 대신은 타고난 성품이 온후하고 의지와 기개가 바르며, 짐의 원훈으로서 곁에 가까이 있으면서 보좌하여 공적이 다대하였다. 그 충성스럽고 의로운 마음은 해와 별을 꿰뚫을 만했다.
짐이 일찍부터 곁에 두고 의지하며 도움받던 사람인데, 이렇게 홀연히 세상을 떠나니 짐의 마음의 비통함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졸(卒)한 내각총리대신 김옥균에게 대광보국숭록대부를 추증하고, 예장(禮葬)은 궁내부에서 맡아 국장으로 거행하라. 예식원(禮式院)에서 정문(旌門)을 세우고 시호를 의논하도록 하라.」
황제의 조문이 내려지자, 궁내부에서는 국장절차에 들어갔다.
김옥균의 시호는 문충공(文忠公)으로 정해졌다.
문관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시호였다.
역대 문충공에는 정몽주, 조준, 권근, 하륜, 신숙주, 유성룡, 이항복, 이원익, 최명길 등이 있어, 조선왕조 최고의 원훈들만 받는 시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생전에 고인으로부터 묘비명을 부탁받은 유길준은, 허례를 싫어한 김옥균이 스무 자 내외의 짧은 묘비명을 부탁했으므로, 짧지만 의미가 깊은 묘비명을 지어 바쳤다.
「嗚呼, 抱非常之才. 遇非常之時, 建非常之功, 有非常之死.」
「아아,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비상한 시대를 만나, 비상한 공을 세우고, 비상한 죽음을 맞이하였도다.」
원역사의 문장에서 단 한 글자가 바뀌었을 뿐이지만, 김옥균의 인생을 단 스무 자로 완벽하게 요약하는 묘비명이었다.
명문 벌열에서 태어나, 다재다능한 재주와 변혁을 마음을 가지고, 근대로 전환하는 격동의 시대를 만나, 자주독립과 문명개화를 이룩해 새로운 대한제국을 건설하는 공을 세우고, 계천기원절에 대한이 해외로 나아가는 관문인 인천항을 바라보며 죽음을 맞이했다.
실로 그 자체로 조선-한국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드라마틱한 인생이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전 총리대신 박영효는 고인의 뜻을 받아, 김옥균이 생전 황성대학에 시신 기증을 약속하였다는 발표를 하자 전국이 깜짝 놀랐다.
“세상에, 총리까지 지낸 분이 묘를 안 쓰고 시신을 해부용으로 쓴다고?”
“어찌 그런 일이! 시신에 대한 모욕이 아닌가?”
“모르는 소리 말게. 서양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네.”
“여긴 서양이 아니지 않나! 유학의 나라 아니던가!”
“문명개화를 이끈 총리로서 시신을 의학발전을 위해 쓰겠다는데, 왜 제삼자가 이래라저래라인가?”
“참으로 본받을 만하네. 좋은 무덤 쓴다고 그 난리치는 양반들 간담이 서늘하겠군.”
“하긴 죽은 사람 무덤 가지고 난리 치는 거 보면 우습기는 해. 효도 과시, 재력 과시 아닌가.”
“참 대단한 분이셔. 마지막 남은 시신까지 의학발전을 위해 기증한다니. 문명개화의 화신답군.”
김옥균의 마지막 유언을 듣고 놀라기는 이선도 마찬가지였다.
곧 이선은 김옥균의 뜻을 짐작했다.
「신이 원래 타지에서 총에 맞아 죽어, 그 시신조차 갈기갈기 찢겨 효수되어 분해되었다는 운명이었다면……. 유해를 묻어 무덤을 남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폐하께서 주신 새로운 운명을 살았으니, 새로운 이 나라의 후학을 위하여 마지막 남은 늙은 몸이라도 바치기를 바라옵니다.」
그렇게 유언을 남긴 건 아니었지만, 김옥균의 목소리가 생생히 들려오는 듯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 나라의 의학발전을 위해 몸을 바친 고인의 뜻을 어찌 거스르겠는가? 고인의 뜻대로 장례를 집행하라. 하지만 나라의 원훈을 허술히 보낼 수는 없으니, 국상은 추념식으로 대체하여 엄수하라.”
고인의 마지막 뜻을 받들어, 김옥균의 시신은 학무대신 이종일, 황성대학 총장과 의과대학 학장이 나와 정중히 모셨다.
해부용으로 쓰인 시신은 해부학 연구가 끝나면 화장하여 고인의 자택에 안치될 예정이었다.
광무 28년 4월 17일.
고 대광보국숭록대부 내각총리대신 문충공 김옥균의 추념식(追念式)이 장충단에서 엄수되었다.
정부 인사들, 의회 의원들, 원로들, 각계 대표들, 외국에서 파견된 특사들, 주한 외교관들, 고인과 가까웠던 동지와 지인들을 합쳐 무려 2천여 명이 추도식에 참석했다.
흥선대원군과 고종의 국상을 제외하면, 대한제국 최대 규모의 추념식이었다.
가까운 나라인 일본, 청국, 중화민국에서는 장관급 특사를 보낼 정도였다.
그만큼 대한제국에서 갖는 김옥균의 위상이 크다는 걸 의미했다.
이날, 장충단에는 황제 이선이 친림하였다.
황제가 신하의 추념식에 참석하는 건 드문 일이었으나, 그만큼 김옥균의 특별한 공로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김옥균은 일찌감치 만민평등을 내세워 중인, 서얼, 서북인, 상민, 천민, 백정의 신분차별을 엄격히 금지하고 국민적 평등을 이룩하는데 앞장섰으므로,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잘 가시게, 고균. 지상에서 모든 일을 이루고 난 후, 그대가 말했듯이 언젠가 하늘에서 다시 만나세. 하늘나라에서 만들 새로운 이상향을 기대하겠네.’
이선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더 없이 화창하고 푸르른 4월의 하늘이었다.
대한제국의 새로운 하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