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79
– 79화에 계속 –
79화 빛의 제국
때마침 뉴욕 인근 보스턴에서는 산업박람회가 한창이었으므로, 사절단의 다음 목적지는 자연히 그곳으로 향했다.
산업박람회는 근대의 산물이었다.
전 세계 국가가 모여들어 자국의 산업을 알리는 만국박람회보다는 작은 수준이었지만, 보스턴 박람회에는 미국의 산업 발전을 상징하는 제품들과 외국의 특산품과 공예품이 전시되었다.
이 보스턴 박람회는 조선으로선 최초로 참석하는 박람회이기도 하여, 푸트 공사를 통해 조선 도자기 와 수공예품 몇 점을 전시했다.
“호오, 이게 조선의 도자기입니까.”
“조선의 전통은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미국인들은 조선 특산품에 관심을 보였지만, 조선인들이 미국의 산업에 갖는 관심에 비할 수가 없었다.
다양한 산업 제품들을 둘러보면서 사절단은 처음으로 근대 산업의 위용을 느꼈다.
8월 25일, 보스턴 방문을 마치고 다시 뉴욕에 도착한 사절단에 대한 미 정부의 안내는 계속되었다.
이선에 대한 미국인들의 대접은 극진했다.
이선뿐만 아니라, 다른 사절단원 역시 귀히 대접받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태도가 시종일관 정중하고 진지하여 사절단은 깊은 호감을 느꼈다.
뉴욕에서 방문할 예정인 곳은 해군 조선소, 발전소, 제당공장, 병원, 전신국, 은행, 우체국, 백화점, 소방서, 신문사 등이었다. 첫 목적지는 미 해군 조선소인 브룩클린 네이비 야드였다.
사절단이 군함 USS 트렌턴이 승선하자 특별한 행사가 이루어졌다. 이들을 안내하던 브룩클린 시장이 무언가를 올리자 어두컴컴하던 선내가 갑자기 환하게 빛나는 것이 아닌가!
“대체 이건 무슨 조화입니까?”
“아아, 전기라는 것입니다.”
바로 현대 문명의 상징, 전구였다. 불과 4년 전, 에디슨이 최초로 대중적인 상업화에 성공한 백열등이 설치되어, USS 트렌턴은 전기가 들어오는 최초의 군함이 된 것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신기할 수가 있나 그래.”
“이렇게 밝을 수가 있다니, 대체 이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인위적으로 빛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니.”
이선은 하나도 놀라지 않았으므로 무덤덤했지만, 사절단은 그 어느 때보다 전구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들은 전기를 올리고 내릴 때마다 전깃불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걸 보면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인근에 위치한 발전소에서 발전기로부터 전등불이 켜지는 과정을 다시 살펴본 사절단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사람이라기보단 귀신의 조화와 같소이다.”
“조선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이 전등이라는 것부터 설치해야겠소.”
특히 수행원 중에서 이채원이 전기에 보이는 관심은 비상한 정도였다.
“반드시 전기를 조선에 도입해야 합니다. 만약 조선에도 전기 회사가 설립된다면 제가 처음으로 사장을 맡아 운영을 해 보고 싶습니다.”
“서양에서는 상공인이 높이 평가받지만, 조선에서는 천대를 받소. 그래도 괜찮소?”
“전기야말로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내뿜으니, 이게 바로 개화의 상징 아니겠습니까?”
과연 전기는 근대 문명의 상징이었다. 미국인들도 전기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근대 체험은 계속되어, 뉴욕 실업계의 거물들은 근대를 상징하는 곳곳에 조선인들은 인도하였다.
사절단의 시찰에는 뉴욕 실업계의 거물들이 동참하고 있었는데, 조선인이 미국 산업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데 흡족해하고 있었다. 대개 동아시아 무역과 관계된 이들은 사절단을 극진히 환대해, 조선 시장을 선점해보려고 했다.
전기 다음은 전신이 사절단을 반겼다. 이미 전신은 1830년대에 실용화되어 전 세계로 전신망이 연결되어 있었다.
전신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받는 것도 조선인에겐 놀라운 일이었다.
“앞으로 조선에 전신망이 연결되면 미국에서 조선까지 역시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달할 겁니다.”
“이렇게 먼 미국에서 조선까지 신속히?”
아직 조선은 전신망이 연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히 조선으로 들어오는 소식은 늦을 수밖에 없었다. 나가사키나 천진을 통해서 배로 들어오는 게 가장 빠른 정보였다.
‘전기도 전기지만, 빨리 전신부터 도입해야 해.’
정보의 파악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이선으로선, 조선이 세계 정보에서 뒤떨어지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특히 외아문 산하 우정사의 사무를 맡은 홍영식은 전신과 우정 업무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조선으로 돌아가면 우정사에서 가장 먼저 전신부터 도입할 생각입니다.”
“빠른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면, 철도도 중요합니다. 이 넓은 대륙을 단기간에 주파하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조선은 작은 나라이니, 전국에 철도를 부설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기, 전신, 철도의 필요성은 그 누구보다 이선이 절감하고 있었다.
“나도 동의합니다. 마침 미국인들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일 때, 전신과 전기, 철도 사업에 대해 논의해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하지만 이선은 서두르지 않았다. ‘서구 문명에 익숙하지 않은’ 조선인이 근대 문명 도입에 조급함을 보이면, 이익에 밝은 미국인이 어떤 계략을 부릴지 몰랐다.
“역시 미국의 산업은 놀라운 수준이군요. 조선으로 돌아가면, 미국의 발전된 기술을 도입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선은 비상한 관심만 보이면서, 미국인에게 사업의 선점 기회를 주겠다는 뉘앙스를 주었다.
오전 오후가 공식적인 시찰이라면, 저녁이라고 해서 이들의 행보가 멈추는 건 아니었다.
뉴욕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마천루가 많은 도시였고, 유흥 문화도 발달했다. 뉴욕은 밤이라고 해서 쉬지 않았다.
8월 25일 저녁에는 브로드웨이에서 상영되는 뮤지컬 감상이 있었다.
‘본고장의 뮤지컬, 그것도 19세기 뮤지컬이라. 이건 나도 기대되는군.’
“조선국의 왕자 이선 공과 사절단이 입장하십니다!”
최초의 뮤지컬 극장, 니블로스 가든의 VIP석에 조선 사절단이 들어서자 청중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내며 환영했다.
공연이 시작되자, 사절단은 오페라 글라스를 통해 관람을 시작했다.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경박하게 생각하는 조선인으로선 드물게 크게 웃으며 즐거워했다.
뮤지컬 ‘엑셀시오르(Excelsior)’는 그야말로 근대 문명의 승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문명의 힘으로 전 지구에 광명을 비춰 최상에 도달한다는 내용이었다.
여주인공 ‘광명(Light)’은 악마 ‘암흑(Darkness)’과 대립한다. ‘문명(Civilization)’의 여신은 광명을 궁전의 옥좌에 앉히고, 신세계의 신으로 등극한 광명은 암흑을 완전히 몰아낸다.
마침내 클라이막스, 500개의 전구가 빛나며 전기조명이 무대를 가득 채우는 순간 관객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
“브라보!”
화려한 무대장치와 아름다운 의상, 좋은 음악이 곁들어진 훌륭한 뮤지컬이었다. 이선도 19세기의 뮤지컬을 매우 즐겁게 관람했지만, 작품 속의 의미를 냉소적으로 파악했다.
‘완전 프로파간다 겸 PPL이잖아. 빛, 즉 전기가 근대 문명을 이끈다. 시각적으로 완벽히 구현되어 있지. 이 작품은 전기 회사랑 유착 관계가 있는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 자체로 상징적인 작품임은 틀림없었다. 난생처음으로 서양의 뮤지컬이란 걸 본 조선 사절단은 상당한 문화충격을 느꼈다. 중년의 박정양은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청년들은 진심으로 즐거운 표정이었다.
공연이 끝나자 기자들이 사절단을 둘러쌓았고, 그들은 간단한 감상평들을 내놓았다.
사절단 중에서 유교 문명의 우월함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민영익조차 이런 말을 할 정도였다.
“미국에 오고 나니, 내가 얼마나 어둠 속에 있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비로소 광명세계에 왔군요.”
뉴욕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도시였으니, 조선인들의 문화충격은 하루하루가 엄청난 수준이었다.
“조선의 의상은 굉장히 특이해 보이는데, 미국의 의상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국의 의상이 간편해서 편리하긴 합니다만 아름답기로는 한복에 미치지 못합니다. 특히 여성용 한복은 매우 아름답지요. 기회가 있으면 한복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고 싶군요.”
여전히 조선의 특별함을 주장하는 민영익과 달리, 서광범은 훨씬 솔직하게 자신의 감상을 드러냈다.
“우리는 조선 여인 말고는 중국과 일본의 여인들만 보았는데, 미국의 여인들은 우리가 본 그 누구보다도 훨씬 아름답습니다. 용모에서 의복까지, 모두 아름답군요.”
“하하, 그거 듣던 중 반가운 말씀이군요.”
될 수 있는 대로 공식적인 자리를 제외하면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사절단 일원과 달리, 참서관 서광범은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었고, 가장 서구친화적인 이선 역시 그러했다.
이선은 미지의 나라 조선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기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조선의 역사는 얼마나 오래되었습니까?”
“조선 왕조는 태조가 개창하신 이래 500년이 되었으며, 우리 민족의 역사는 수천 년에 이릅니다.”
“조선인은 서양에 대해, 미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금 우리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보다 더 우호적일 수 있나요?”
“하하하.”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선은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게 대화를 이어나갔고, 미국인들은 유창한 언어와 빼어난 화술을 지닌 조선 왕자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
사절단의 방문은 백화점, 소방서, 뉴욕시청 등으로 이어졌다.
모든 물산이 집결해있는 형태인 백화점은 근대 소비문화의 꽃이었고, 자본주의의 위력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또한 소방서는 화재진압을 통해 국가가 인민과 사회를 위해 안전을 보장하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백화점이 근대의 두 축,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곳이라면 시청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곳이었다.
“뉴욕 시민을 대표하여 조선 사절단을 환영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뉴욕에서 좋은 경험을 많이 하고 가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뉴욕시장이 뉴욕 시민을 대표하여 환영사를 했다.
“비록 두 나라의 거리는 멀고, 문화와 정치 체제가 상이합니다만, 그게 서로를 이해못하진 않을 것입니다. 양국의 우호 관계가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미국은 시민이 선출한 지방 자치 조직인 시의회와 국가 차원의 연방 의회, 시장과 대통령이 있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의 기억이 있는 이선은, 민주공화국이 훨씬 편하게 다가왔다.
조선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가 머물렀던 러시아는 강력한 국가였지만 전제군주국이자 소수의 귀족이 모든 특권을 누리는 국가였다.
그에 비하면 미국은 귀족이란 계급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시민이 주도하는 형태로 보였다.
1863년에 링컨이 선포한 게티스버그 선언, 즉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정부’가 미국의 모토였다.
‘역시 최고의 정치 체제는 국민이 주권을 갖는 민주정이야. 지금의 조선으로선 민주주의라는 개념조차 없으니 당분간 전제정을 유지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국민국가와 민주정을 목표로 해야지.’
사절단은 미국에 거듭 경탄했다.
비록 그 이상과 화려함 뒤에는 인종 차별, 빈부 차별, 종교 차별과 같은 수많은 어둠이 있었지만, 사절단은 미국 정부의 인도로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곳만 소개받는 상황에서 비판의식보다는 경의를 표하는 마음이 싹트는 것이 당연했다.
사절단의 방문 목적은 또한 자강(自强)을 찾는 길이었다.
8월 27일에는 콜럼버스 보루를 방문하여 육군 장교단의 환영을 받았다. 활강식 후장 대포의 위력에 감탄한 사절단은 직접 포병대장의 도움을 받아 대포 발사를 체험해 보기도 했다.
“발사!”
콰앙!
대포가 불을 뿜자 포탄은 먼 거리를 날아 표적에 명중했다.
“불과 12년 전에, 이런 나라와 전쟁을 했었다니…….”
사절단은 미국의 힘을 절감하고 있었다. 신미양요에서 조선이 얼마나 참담한 패배를 했는지, 그들 모두 인식하고 있었다.
신미양요의 충격은 개화파가 형성되는 계기였고, 보빙 사절단은 근대 국가의 수립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튿날에는 미 육군사관학교가 있는 웨스트포인트를 방문하여, 육사 생도들의 사열을 받았다.
육사 생도들의 교육 현장들을 참관한 사절단은 근대식 군사교육의 필요성을 느꼈다.
강력한 군대를 만들려면 당연히 이를 이끌 유능한 장교가 필요로 했고, 그러려면 근대식 군사교육을 해야 할 사관학교가 있어야 했던 것이다.
8월 30일부터 사절단은 미 연방정부부처들, 즉 국무부, 육군부, 해군부, 재무부, 금고국, 조폐국, 우정국, 교육부, 농무부 등을 방문하며 각종 자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각각 관심 분야에 따라 사절단원들은 독자적인 조사를 하였다.
예컨대 무관 최경석은 미국의 농업에 큰 흥미를 보였고, 농무부를 통해 미국의 씨종자를 받아 미국식 농법을 조선에 적용해 볼 생각이었다.
조선 최초의 미국 유학생으로 내정된 유길준은 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교육 기관을 주로 시찰했다.
이렇듯 각자의 관심사와 전문 분야에 따라 특별히 관심을 두고 시찰하는 곳이 늘어났다.
미국에서 근대 문명 체험과 학습이라는 1차 목표를 달성한 사절단은, 이제 외교적 목표를 향해 경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