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790
3부 205화 동양의 새판짜기
대청국 수도 성경 봉천부.
제3대 주청 고등판무관으로 부임한 전 외무대신 이승만은 즉시 업무에 돌입했다.
총선에서 간발의 차로 패배하여 야당으로 내몰린 후, 이승만은 개화당 내에서 거센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집권 40년, 헌정 실시 이래로만 따져도 25년 만에 야당이 되었습니다! 이게 누구의 책임이란 말입니까?”
“당연히 총재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게 어찌 총재 한 사람만의 책임이란 말이오? 당의 모두가 공동으로 책임이 있소!”
“1당이 되고도 정부를 구성하지 못한 건, 이박사의 독선과 오만 때문이오!”
“말조심하시오! 4당이 야합한 게 왜 총재 잘못이란 말이오!”
“이박사가 모든 정당과 척을 져서 이리 된 게 아니오? 단 한 정당만이라도 포섭했더라면, 아니 하다못해 개화당에서 갈라져 나간 신대한당만이라도 포섭했더라면 우리가 여당을 유지했을 거요!”
“애초에 박용만을 개화당에서 몰아낸 게 이박사 아니오? 이박사가 아닌 다른 이가 총재였다면 모든 당과 적대관계가 되지도 않았을 거요!”
“결과론적인 소리! 이박사가 아니었더라면 100석 이상 차지하지도 못했어!”
“허!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구만!”
애초에 이승만은 개화당원도 아니었고, 개화당 우파의 몰락 이후 당 혁신 과정에서 입당한 외부 영입인사였다.
삽시간에 당을 장악한 이승만에 대해서 개화당 주류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라고 여겼고, 총선 패배는 당연히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던 차에 윤치호가 고등판무관직에서 사임했고, 김옥균이 후임으로 이승만을 천거했다.
당내 반발에 맞서가며 제1야당 총재직을 고수하면서 정부와 대립하느냐, 외교관으로 복귀하느냐를 놓고 고민하던 이승만은 후자를 택했다.
“본인은 지난 총선거의 패배 책임을 지고, 개화당 총재직에서 사퇴합니다. 제현(諸賢)께서 유능하고 양심적인 인사를 후임 총재로 선출하여 당의 개혁과 승리를 이끌어 주길 바랍니다.”
이승만은 선거 패배에 승복하는 모양새를 보이며 개화당 총재직에서 사임했다.
이승만 추종자들로서는 당황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반대파들은 환호했다.
후임 총재로는 김홍집의 사위이자 개화당 주류인 이시영이 선출되었다. 온건한 성품의 이시영은 정부를 견제하면서도 협조하겠다고 천명했다.
“고등판무관으로 간다며? 만주로 내빼는구만.”
“이제 닥터-리가 아니라 만주-리네, 만주리. 하하하!”
“경쟁자로 여기는 우사가 외무대신이 됐는데, 우남이 고등판무관으로 만족할지 모르겠구만?”
“어쩌겠소? 자업자득이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총리직이 유력해 보였던 이로선 고등판무관이 좌천이나 다름없게 느껴졌지만, 실상을 따져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고등판무관은 직책상으로는 대사와 동급이었지만, 전 총리 김옥균이 초대 고등판무관을 역임했을 만큼 실권과 위상이 높았다.
고등판무관은 대한제국 외무부가 아닌 황제 직속이었고, 명목상의 역할은 청국의 ‘외교 고문관’이라지만, 실질적으로는 총독이나 다름없는 위치였다.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이다. 만주에서 권토중래하여 황성으로 돌아가겠다.”
이승만은 만주에서 혁혁한 성과를 내서 권력의 중심으로 복귀하겠다는 야망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총리직 눈앞에서 미끄러진 이승만은 새롭게 얻은 ‘교훈’을 잊지 않았다.
‘결국 황제는 자신의 뜻대로 정국을 운영하길 원한다. 이 시점에서 개화당을 끌어내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판을 짠 거지. 황제가 옥좌에 있는 이상, 그 뜻에 거슬리면 필패다. 고등판무관 자리도 마찬가지. 황제가 원하는 바를 파악해서, 그 이상의 성과를 내야 해.’
이승만은 자신의 실패 원인으로 ‘황제의 뜻’을 꼽았다. 그렇다면 성공 요인도 같을 수 있지 않은가?
‘모자란 팽창주의자들은 만주를 병합하고 몽골과 시베리아까지 진출하자고 설치지만, 황제는 국력의 한계를 인식하고 무제한적인 팽창을 원치 않을 터. 만주 병합은 현재의 국제질서에서 서양 열강, 특히 미국이 결코 용인하지 않을 터인데. 팽창주의자들은 도대체 뭘 믿고 저리 나대는지 모르겠군. 만주는 이미 대한이 정치경제적으로 실질적 지배를 하고 있지 않나. 지도에 선만 긋는다고 다인 줄 아나, 원.’
서양 열강과의 협조와 현실주의 외교노선을 중시하는 이승만은, 고등판무관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인지했다. ‘청국의 주권과 대청 황실의 존엄을 존중’하면서도, 만주에 대한 실질적 지배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근래 위기로 확산되고 있는 몽골 문제의 해결은 고등판무관 이승만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였다.
소련과의 협상을 반대했던 강경 반공우파로 알려진 이승만이 고등판무관으로 부임하자, 몽골의 운게른은 큰 기대를 걸고 축하서신을 보냈다.
운게른은 특유의 장광설과 함께 ‘반공 성전’의 정당성을 설파했지만, 이승만은 냉소를 흘렸다.
“이놈은 도대체 정체가 뭐야? 시대가 언제인데 아직도 칭기즈칸에 십자군 타령이야. 하여튼 듣던 대로 미친놈이구만.”
이승만은 서구적 합리주의를 사고의 근간으로 여겼기에, 운게른과 같은 전근대적 신비주의자를 경멸했다.
외교적 측면에서 봐도, 반공·반소 군벌로서의 유용성보다는 통제되지 않는 불확실성이 더 거슬렸다.
이선은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평했고, 이 평가에는 이승만도 동의했다.
통제되지 않는 불확실성은 제거되어야 했다.
* * *
원수부 합동국방회의.
“대한의 핵심 국방과제는 만주의 방어입니다. 주지하디시피 주된 위협은 소비에트 연방이오, 그 다음가는 위협은 중국 북양정권입니다. 현재로선 후자는 실질적인 위협이 아니기에, 결국에는 소련이 주적입니다.”
“흑룡강(아무르) 이남의 연해주를 장악하고 백군 정권을 수립한 건, 소련을 견제하고 만주의 측면을 방위하기 위한 필수적 조치였습니다. 하지만 몽골은 경우가 다릅니다.”
“몽골도 만주의 측면에 존재하지만, 만주와 연해주는 동청철도로 연결되는 것과 달리 오직 열악한 비포장도로에만 의존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연해주는 흑룡강이라는 자연적 방벽을 통해 방어할 수 있지만, 몽골은 너무나도 방대하고 소련과 접하는 국경이 깁니다.”
“국군 외에도 청군과 백군은 만주와 연해주 방위에 집중해도 부족합니다. 현실적으로 몽골은 포기해야 합니다.”
군무대신 이동휘와 참모총장 노백린 등 군부 수뇌는 유사시 몽골 방위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애초에 연해주 장악도 소련의 태평양 진출을 저지하고 만주의 측면 보호를 위한 조치였지, 과도한 팽창이 목표가 아니었다.
“내몽골의 차하르인들은 복드 칸 사후에 별도의 자치정부를 구성하려고 할 겁니다. 내몽골에는 대한의 지원을 받는 자치정부를 수립하되, 외몽골에는 완충국이 수립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소련이 몽골을 공산화한다면 어쩝니까?”
“몽골 반군을 이끄는 담딘 수흐바타르와 지도부는 민족주의자이지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주중 소련대사인 요페와 접촉하고 있습니다만, 소련이 원하는 건 극단적인 반공 백군 운게른을 제거하고 몽골에 친소 완충국을 세우는 겁니다. 대한이 만주와 연해주를 세력권으로 원하듯이 말이지요.”
“하긴 애초에 제정 러시아도 몽골은 세력권으로 두려 했지. 만주, 연해주, 내몽골과 달리 외몽골은 계륵이나 다름없소.”
외무대신 김규식은 비밀리에 주중 소련전권대표 아돌프 요페(Adolph Joffe)와 접촉했다.
요페는 현재 중국의 1인자이자 친일적 성향을 보이는 안휘군벌 단기서에 반대하는 호법정부 손문과 직례군벌 오패부의 동맹을 성사시키려 했다.
오패부는 단기서를 타도하자는 건 적극 동의했지만, 소련이나 공산당과는 손잡을 생각이 없었다.
모든 열강에 외면당했던 손문은, 소련과 합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손문은 흔쾌히 요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손-오 남북합작 대신 국공합작이 성사되었다.
1. 중국에 공산주의 또는 소비에트 체제를 실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 소련은 중국에서의 특권과 이익 포기를 재확인한다.
3. 소련은 호법정부의 군사력 양성을 지원한다.
4. 호법정부는 공산당원의 국민당 입당을 허용하며, 국공합작에 나선다.
요페-손문 합의 결과, 1924년 1월 국민당 전당대회에서 국공합작이 공식적으로 선언되었다.
신생 중국 공산당원은 당적을 유지한 채 국민당에 입당이 허용되었다. 국민당은 공산당의 하부조직을 모두 흡수했다.
군벌이 아닌 국민당 직속 무력의 근간이 될 광주(광저우) 황포군관학교(黄埔軍官學校)가 설립되어, 소련 군사고문관이 파견돼 현대식 군사교육을 지도했다.
“우리의 목표는 삼민주의다. 민국을 세우고, 나아가 대동(大同)을 이룩하자!”
손문은 군관학교 개교사에서 중국 전역에 삼민주의 원칙에 따른 민국 건설을 선포했다.
군관학교의 교장 장중정(개석)은 국민당 직속 장교단을 양성하며, 국민당 내에서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했다.
코민테른은 중국이 현재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단계라 판단했고, 진보적인 국민당을 이용해 일단 삼민주의 혁명을 촉진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국민당은 소련과의 동맹을 통해 그토록 원하던 자체 군사력 확보와 북벌 준비에 매진했다.
국민당과 소련은 그야말로 동상이몽 중이었지만, 상당한 잠재력이 있는 동맹이었다.
소련의 동방외교를 담당하고 있는 요페는, 카라한처럼 코민테른 내에서 합리적인 외교관이었다.
반공 성전을 부르짖는 시대착오적 군벌 운게른을 몽골에서 제거할 필요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몽골의 소비에트화를 원하는 건 아니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의 입장에서 볼 때 몽골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단계에도 도달하지 못한 전근대적 국가였기에, 공산주의 혁명은 언감생심이었다.
「몽골의 소비에트화는 일관되고 사려 깊고 조직적인 계획의 결과가 아닙니다. 운게른-슈테른베르크가 몽골에 없다면, 우리가 직접 개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우리가 동투르키스탄을 소비에트화하지 않은 것처럼, 몽골도 소비에트화해서는 안 됩니다.」
요페는 상관인 트로츠키와 코민테른 의장 지노비예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대(對)몽골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김규식은 천진 조계에서 요페와 비밀 회담을 했고, 소련의 의사를 확인했다.
“운게른은 머지않아 제거될 것입니다. 그 결과로 외몽골에 친소 인민정부가 수립되어도 무방합니다. 단, 내몽골에는 독자적인 자치정부가 수립될 겁니다.”
“좋습니다. 몽골뿐만 아니라, 아무르에서도 전쟁을 도발하는 행동은 엄금되어야 할 겁니다.”
“확실히 억제하도록 하지요. 귀국도 청국의 주권을 존중해야 하며, 외몽골과 동투르키스탄(신강)에서 어떠한 제국주의적 기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귀국이 극동공화국의 주권을 존중하고 더 이상 제국주의적 팽창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그러할 겁니다.”
대한제국 외무대신 김규식과 소비에트 연방 주중전권대표 요페 간에 비공식 합의가 성사됨에 따라, 운게른의 운명은 사실상 결정되었다.
* * *
대한제국, 황성.
이선은 천진에서 돌아온 외무대신 김규식, 제국익문사 독리 이회영과 회견했다.
“이로써 몽골 문제는 준비를 마쳤고. 보다 중요한 건 중국인데.”
“국민당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군사력을 양성하며, 안휘군벌 북양정권을 향해 북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직례군벌 수장인 오패부는 안직전쟁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힘을 키우고 있지만, 국민당과 손을 잡을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안휘군벌이 남북으로 포위된 상황이군.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들이 중국에서는 가장 강하지.”
안휘군벌 수장이자 북양정부 총리인 단기서는 현재 중국의 1인자였다.
광동을 중심으로 한 남방의 6성이 호법정부에 가담해 반기를 들고 있고, 산서(山西)와 섬서(陕西)를 비롯한 서북방은 남경에서 뭐라 하든 완전히 따로 놀고 있었지만, 강력한 경쟁자인 북경의 직례군벌을 굴복시키고 중국의 핵심인 동부 연해(沿海) 지방의 패권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현실은 여전히 지옥이었다. 각 성은 군벌들에 의해 통치되고, 교통이 열악한 지역일수록 소(小)군벌들이 난립하며 골목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단기서, 오패부, 손문, 아니 그 누구라도 모두 참혹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중국 통일을 부르짖었지만, 중국의 분열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었다.
“국민당과 직례군벌은 먼저 안휘군벌부터 타도하려고 할 거야. 어쩌면 생각보다 그 시기가 빨라질 수도 있겠네.”
“무슨 계기라도 있을는지요?”
“운게른이 살아남으려고 애를 쓰더군. 몽골에서 보낸 첩보에 따르면, 운게른이 반공이라는 명목으로 북양정권과 접촉하고 있네.”
칭기즈칸의 대몽골을 주창하며 중국을 적대하던 운게른이었지만,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논리는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불구대천의 원수인 소련이 안휘군벌의 적수인 국민당과 손을 잡았으니, 자신도 안휘군벌과 반공이라는 대의로 단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토록 고대하던 한국으로부터의 지원은 없으니, 딴에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운게른이 망각하고 있는 문제는, 청국은 물론이고 한국도 결코 중국이 몽골 문제에 개입하는 상황을 내버려 두지 않으리라는 점이었다.
“만약 북경에 주둔하는 안휘파 군대가 운게른의 요청을 받아들여 몽골로 출정한다면, 이건 명백한 중국-청국 조약 위반이지.”
“만주 신군을 출동시킬 명분이 되는군요.”
“제가 지켜본바, 청국 조정은 외몽골 상실은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열하와 북경의 고궁을 탈환하기를 더욱 열망합니다.”
“그렇겠지. 외몽골 정복은 강희제의 유업이긴 하지만, 지금의 청국 황실은 가 보지도 않은 몽골보단 황궁이 있는 열하와 북경에 대한 집착이 훨씬 크지.”
1916년 장훈의 북경 공략 실패 이후, 중국과 청국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되었다.
중국은 청국이 먼저 조약을 위반했다고 성토하며, 중청 조약에서 합의한 청국의 자금성과 황릉 관리권을 박탈해 점령했다. 청 황실 입장에서는 두고두고 천추의 한이었다.
청국이 한국의 지원을 받아 새로이 양성한 만주신군의 목표는 1차적으로 소련의 침입으로부터 만주를 방어하는 것이었지만, 청 황실이 바라는 건 북경으로 진격해 자금성과 황릉을 수복하는 일이었다.
“단기서와 안휘군벌은 좋든 싫든 일본과 한 편이야. 그리고 중국 통일을 외치며 청국의 주권을 부정하는 범중화주의자이기도 하지. 우리와 손잡을 여지가 없으니, 이제 그만 권좌에서 내려오는 게 좋겠지.”
“그럼 오패부와 선을 닿아볼까요? 오패부는 반일주의자에, 손문과 달리 소련과 손을 잡길 원치 않으니, 우리가 내미는 손을 받아들일 겁니다.”
“오패부는 화북 출신이라 그런지, 단기서보다 더 강경한 반청주의자야. 대한이 만주를 장악하고 있는 이상 그와 계속 손잡는 건 불가능하네.”
한국은 직례군벌 오패부를 새로운 파트너로 고려했지만, 문제는 오패부도 강경한 중화 민족주의자라는 점이었다. 산동 출신인 오패부는 단기서보다 더 청조를 혐오했고, 자금성 점령과 약탈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난 결국 국민당이 북벌에 성공하리라고 보네.”
“국민당은 무력이 취약합니다만…….”
“무력은 약하지만, 명분과 미래에 대한 전망이 가장 확고하고 뚜렷하지. 그건 어떤 군벌도 따라갈 수가 없네.”
“그렇기에 그동안 국민당에 공을 들였습니다만, 소련과 손을 잡았으니…….”
이회영이 죽 써 개 줬다는 듯이 한탄하자, 이선은 빙긋 웃었다.
“국공합작은 문자 그대로 오월동주(吳越同舟)야. 국민당은 소련의 힘을 빌리길 원하고, 소련은 국민당을 숙주로 삼길 원하지. 그 관계는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네. 국민당이 북벌에 성공하는 순간, 아니 군사력을 키워 북벌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소련부터 밀어내려고 할걸.”
이선은 확신을 갖고 김규식에게 명했다.
“우사, 손문을 국빈으로 초청하게. 손문은 그동안 우리에게 빚진 게 많으니, 거절하지 않을 거야.”
“예, 그리하겠습니다.”
“우당은 계획대로 인민혁명당에 요원을 파견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이선은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동양질서의 새판을 짜기 위해, 동아시아 전역을 향해 줄을 잡아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