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800
3부 215화 황태자 유럽 순방
광무 29년, 1925년 새해가 밝았다.
대한제국 황태자 이진과 황태자비 타티야나 로마노바는 유럽 순방에 올랐다.
“건강히 잘 다녀오라. 태자, 태자비.”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성수무강하시옵소서, 폐하.”
황태자의 유럽 순방은 진작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국혼을 허락한 답례로, 덴마크에 거주하는 다우마르 황태후를 예방(禮訪)하기로 약속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스캔들이 터지긴 했지만, 영국 웨일스 공의 방한에 대한 답례로 국빈 방문도 예정했다.
재작년에는 타티야나의 임신과 출산이 있었고, 작년에는 총선거와 내각 교체가 있어 대리청정 중인 이진이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올해는 그럭저럭 여유가 생겨 유럽행을 추진할 수 있었다. 대리청정은 일시 중단되고, 이선이 다시 내정까지 총괄했다.
“유럽에서 행복한 시간 보내고, 내년에는 손자 소식이 있으면 좋겠구나.”
“폐, 폐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젊은 부부는 얼굴을 붉혔다. 재작년 장녀 나가 태어난 이후, 둘째 소식은 아직 없었다.
“허허, 농담이니 마음 편히 갖도록 하여라. 때가 되면 어련히 잉태하지 않겠는가.”
이진 못지않게 타티야나가 후계자 생산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어머니 알렉산드라가 딸만 넷을 낳다가 결혼 10년차에 겨우 아들을 낳았는데, 그동안 니콜라이와 알렉산드라 부부는 엄청난 압박감을 받았다.
이선과 아영 부부는 장남과 맏며느리가 압박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했다. 유럽 순방도 아들보다는 며느리를 배려해서였다. 타티야나에게는 고향이나 다름없는 유럽을 방문해 할머니와 여동생들을 만나고 마음의 평안을 얻길 바라서였다.
이제 세 살에 불과한 이나는 장기간 순방에 동행하기 무리라, 황실에서 양육할 예정이었다.
“예성, 네가 태자와 태자비를 잘 보좌해 주어라.”
“예, 잘 모시겠습니다.”
결국 예성공주 이라는 오라비 이안처럼 영국에 유학가기로 결정하였다. 대학 예비과정을 거친 후, 의과대학 진학을 목표로 할 계획이었다.
이라는 때마침 순방을 떠나게 된 황태자 부부와 함께 유럽행에 올랐다. 이라는 로마노프 5남매와 오랫동안 같이 생활했기에, 타티야나가 한국에서 마음 깊이 신뢰하는 소수의 사람이라 동행을 기뻐했다.
* * *
6년 전 이선의 파리강화회의 참석과 마찬가지로, 황태자 일행은 대한제국 황실 전용 쾌속순양함 문무대왕함을 타고 장도에 올랐다.
인천을 출발하여 상해-홍콩-싱가포르-콜롬보-수에즈 운하를 통과, 알렉산드리아와 나폴리를 거쳐 프랑스 마르세유에 도착했다. 가는 데만 5주가 넘는 기나긴 여정이었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동안 이집트에 상륙하여 피라미드를 방문하는가 하면, 이탈리아에서는 로마와 폼페이를 방문하여 고대문명을 체험했다.
남프랑스 코트다쥐르의 해변을 함께 거닐던 이진과 타티야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전하와 유럽에 와서 정말 기뻐요.”
“나도 그래요. 당신과 이국에서 함께 보내는 이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군요.”
뒤늦은 신혼여행이나 다름없었기에, 이진과 타티야나는 모처럼 행복하게 이국의 풍광을 만끽했다.
「황태자 전하 구주 순방 개시!」
물론 여행이 목적은 아니었다. 공식적인 목적은 순방이니만큼, 대한제국 황실을 대표해 각국 정부와 왕실을 예방할 예정이었다.
황태자 부부가 방문할 예정인 국가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등 13개국에 달했다.
“대한제국 황태자 전하, 황태자비 전하이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방문을 환영합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각하.”
황태자 부부는 가는 곳마다 한국 대사와 외교관들이 영접하고 모셨으며, 각국 왕실과 정부에서 융숭한 예우를 받았다.
동양에서 온 황태자, 러시아 공주였던 황태자비의 결합은 그 자체로 화제를 몰고 다니기에 충분했다.
“동양 왕실에 서양인 왕비라. 말로만 듣다가 직접 보니까 더 놀랍군.”
“기가 막힐 일이야. 아무리 혁명으로 망했다지만, 대제국의 공주가 동양의 하렘에 들어가다니.”
“거 무식한 소리 하지 말게. 한국엔 하렘 같은 거 없어. 유럽 못지않게 근대화되었다고.”
인종적·사회문화적 편견이 넘치던 시절이니만큼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들도 있었지만, 전반적인 반응은 대개 호의적이었다.
대한제국은 연합국의 승리에 기여한 신흥강국이자, 세계적으로도 열강으로 꼽히는 나라였다.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소련, 여전히 패전국 취급을 받는 독일을 제외한다면,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일본과 함께 세계질서를 이끄는 6대 열강으로 대우받았다.
무엇보다 대한제국 황실은 유럽에 어마어마한 부자로 소문이 돌고 있기에, 질시와 혐오보다는 동경과 선망의 눈빛이 컸다.
대영제국 런던.
황태자의 방문에, 주영한국대사관은 대사부터 말단 직원까지 총동원 상태였다.
“대한국 만세! 황태자 전하 천세!”
황태자 부부를 태운 차가 대사관에 도착하자, 도열해 있던 이들은 일제히 만세를 외쳤다.
대사관 직원들뿐만 아니라, 재영 유학생과 교민들도 자발적으로 모여 황태자 부부를 환영했다.
정친왕 이안도 학기 중이었지만, 케임브리지에서 급거 런던으로 향했다. 특별한 일이라 대학 측에서도 이해해 주었다.
“환대에 감사드리오, 대사. 괜히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모르겠군요.”
“황공하옵니다. 대사관뿐만 아니라 교민들도 전하를 뵙기 위해 만사를 제치고 모여들었습니다.”
이선이나 이진은 대사관에 주는 부담을 덜어 주고 싶었지만, 미래의 황제께서 오신다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원로에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전하.”
“오, 정친왕. 오랜만이다. 학업은 잘되어 가지?”
“황실의 배려와 염려 덕에…….”
3년 만에 만난 형제는 안부를 물었다. 한때는 어색한 사이였지만, 지금은 타지에서 반가운 형제였다.
이진의 뒤에 서 있던 이라가 이안을 향해 눈인사를 보냈다. 이안은 끝내 영국에서 학업을 택한 누이를 보면서, 참 어머니를 닮았다 싶었다.
“마샤! 나스챠!”
“타냐! 보고 싶었어!”
타티야나는 영국에 거주하는 여동생 마리야와 아나스타샤를 만났다.
“예쁜 딸의 탄생을 축하해, 타냐.”
“너도, 마샤.”
“소개할게. 나와 루이의 딸 비키!”
“어머, 부모를 닮아 그런지 정말 예쁘구나.”
마리야도 작년에 루이 마운트배튼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다. 루이와 마리야의 외증조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 즉 비키였다.
“우리 딸은 너무 어려서 여행에 동행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꼭 데리고 올게.”
“우리가 한국으로 가도 되지. 타냐는 쉽게 움직이기 힘들잖아.”
“맞아, 올랴와 알료샤 만나러 극동으로 가야지.”
세 자매는 떨어져 있는 형제를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5남매였지만, 지금은 올가와 알렉세이는 블라디보스토크에, 타티야나는 서울에, 마리야와 아나스타샤는 런던에 거주했다.
황제의 자녀로 태어난 이상 서로 떨어져 지내는 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워낙 우애가 깊었던 5남매였던 만큼 진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더욱이 타티야나는 황태자비이자 미래의 황후였으니,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신분도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처지인 공주들이 한국을 찾는 게 최선이었다.
세 자매는 언제 다시 볼 수 있냐는 듯 오랫동안 수다를 떨며 회포를 풀었다.
“화, 황, 황태자 전하. 부, 불편은, 어, 없으신지요.”
“영국 왕실과 정부의 배려로 너무나 편하게 지냅니다. 감사합니다.”
영국을 답방한 대한제국 황태자의 접반사는 웨일스 공이 맡아야겠지만, 때마침 공교롭게도 에드워드는 미국을 순방 중이었다.
이미 예전에 미국을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오리엔탈 스캔들이 터지는 바람에 한동안 해외순방이 금지되었기 때문이었다. 에드워드의 탁월한 패션 감각은 어디 가지 않아서, 미국 젊은이들에게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에드워드의 추잡한 실체가 밝혀진 이상, 이진 입장에서도 차남인 요크 공작 앨버트가 접반사를 맡은 게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다, 다, 다행입니다. 기, 기쁘게 생각합니다.”
명민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앨버트는 말을 더듬었다. 앨버트는 처음 맡은 외교 업무를 힘들어했다. 이진은 답답함을 느꼈지만 결코 티를 내지 않았다.
“러시아제국의 공주이시자 대한제국의 황태자비이신 전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남편의 곤혹스러움을 이해한 요크 공작부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Elizabeth Bowes-Lyon)이 화제를 돌렸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제 어머니께서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라는데 늘 자부심을 갖고 계셨지요.”
자부심을 가진 그 혈통이, 하필이면 혈우병을 전달해 알렉세이를 고통스럽게 한 건 지독한 아이러니였지만, 타티야나도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두, 두 분의 자, 자녀는…….”
말을 더듬던 앨버트가 난감해하자, 엘리자베스가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비로소 심리적 안정을 얻은 앨버트는 말더듬 증세가 나아졌다. 아내와 단둘이 있을 때는 말을 더듬지 않는 앨버트였다.
“동양과 서양을 잇는 가교가 되길 바랍니다.”
“예,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보수적인 유럽 왕실과 귀족사회에서는 동양 왕실에 러시아제국의 공주가 시집가서 혼혈아를 낳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인종차별을 몰상식하다고 여기는 앨버트는 이진-타티야나 부부의 자녀를 축복했다.
“두 분의 자녀와, 장차 우리 사이에 태어날 아이가 좋은 친구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럼요, 우리는 친척이 아닌가요. 나중에 꼭 한국에 와 주세요. 환대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엘리자베스의 말에 타티야나가 화답했다. 빅토리아의 증손자 앨버트와 외증손녀 타티야나가 친척이듯, 그 자식들도 먼 친척이었다.
이진과 타티야나의 자녀들은, 그 자체만으로 대한제국 황실이 유럽 왕실 대가족의 일원이 되었음을 상징했다.
* * *
“프랑스 공화국은 대한제국 황태자 전하에게 레지옹 도뇌르 그랑크루아 훈장을 수여합니다.”
“대영제국은 대한제국 황태자 전하에게 가터 훈장을 수여합니다.”
“네덜란드 왕국은…….”
“덴마크 왕국은…….”
이진은 방문국마다 최고위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진이 특별히 관계증진을 위해 공훈을 세운 바는 없지만, 그만큼 대한제국의 위상이 높다는 증거였다.
영국의 조지 5세, 이탈리아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네덜란드의 빌헬미나 여왕, 벨기에의 알베르 1세,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10세, 크리스티안의 형제인 노르웨이의 호콘 7세, 스웨덴의 구스타프 5세, 오스트리아의 카를 1세를 알현하여 환담했다.
어딜 가나 환대를 받았다지만, 특히 스웨덴 왕태자 구스타프 아돌프(훗날의 구스타프 6세)는 고고학자로 동양에 관심이 많아, 이진과 특별히 친분을 맺었다.
“보통 유럽에서는 동양하면 인도와 중국을 떠올립니다. 조금 더 관심이 있으면 일본을 알고, 아주 관심이 많으면 한국을 알죠. 아직 한국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쉬운 일입니다.”
이진은 쓴웃음을 지었지만, 일본과 한국을 구분하지 못하는 유럽인의 무지를 딱히 탓하고 싶지 않았다. 동양에 관심이 많다는 귀족들도, 타티야나더러 왜 기모노를 입지 않냐고 물을 지경이었다. 타티야나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설명해 줘야 했다.
사실 한국에서도, 서양에 대해 잘 알아도 스웨덴과 덴마크의 차이를, 러시아와 폴란드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폴란드 출신인 마르가리타가 러시아 사람이 아니라는 걸 한국인에게 납득시키는 데만 해도 오랜 세월이 걸렸다.
“하지만 한국은 오랜 역사와 독자적인 문화를 유산으로 갖고, 신흥국으로 발돋움했습니다. 아름다운 문화를 가진 나라이지 않습니까? 유럽에서도 한국이 널리 알려질 날이 곧 오게 될 겁니다.”
“참으로 고마운 말씀입니다, 전하.”
구스타프 아돌프는 특히 고려청자에 관심이 많아서, 고려청자 컬렉션을 이진에게 소개할 정도였다.
단순히 동양 취향을 넘어서,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역사를 줄줄 꾀고 있을 정도였다.
“경주에서 발굴되었다는 신라 금관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고대의 유산이라니!”
“전하, 그렇다면 내년에 한국을 방문하시지요. 직접 보면 더 아름다울 겁니다. 환대에 보답해 드리고 싶습니다.”
“오, 그럴까요? 안 그래도 동양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는데. 부왕께 여쭙겠습니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이진의 초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때만 해도, 이진은 구스타프 아돌프 왕태자가 자신의 대관식 축하사절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이진은 공화국의 수반도 예방했다.
프랑스 대통령 가스통 두메르그(Gaston Doumergue), 폴란드 국가원수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토마시 마사리크, 그리고 독일 신임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
“독일 민족의 영웅인 대통령 각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황태자 전하를 뵙게 되니, 오래전 일이지만 본관이 한국에서 근무했던 시절이 떠오르는군요.”
힌덴부르크는 1880년대 후반, 군사고문단장으로 조선에서 근무한 바 있었다. 그런데 그 약소국이었던 조선이 훗날 근대화를 이룩해 프로이센의 발목을 잡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었다.
독일과 한국이 불과 7년 전에는 적으로 싸웠지만, 앞으로의 일은 모를 일이기에 우호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군주제 지지자인 힌덴부르크는 혁명으로 몰락했던 차르의 공주가 황태자비가 되었다는 걸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아무리 내각제로 총리가 국정을 담당한다지만,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에 골수 왕정 지지자인 프로이센 육군 원수가 당선됐다는 사실은 역설적이기 짝이 없었다.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의 대립으로 좌익의 표가 분열되었기에, 우익 단일후보로 선출된 힌덴부르크가 결선투표 끝에 승리할 수 있었다.
“독일 민족은 저력이 있지요. 우리 한국인들은 여전히 독일의 기술과 문화를 흠모합니다.”
1923년 하이퍼인플레이션 위기를 넘기고, 렌텐마르크 발행 이후 독일의 경제는 급속도로 안정되었다. 경제 회복은 정치의 안정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독일의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배상금 압박을 줄이고 차관을 제공하는 ‘도스 안(Dawes Plan)’을 성사시키고, 프랑스를 설득해 루르에서 철수하도록 했다.
정치경제적 안정을 얻은 독일은 온건파가 주도권을 잡았고, 외무장관 슈트레제만은 적극적으로 프랑스와 화해를 시도하여 조약 체결에 나섰다.
영국은 지나친 대독 강경책이 독일과 소련의 외교적 밀착을 불러올 것을 우려했기에,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를 적극적으로 중재했다.
공화국을 위협하던 극좌와 극우의 기세가 꺾이고, 독일은 ‘황금의 20년대’에 접어들었다.
힌덴부르크도 의외로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으로서 처신을 잘해, 내각에 정치의 전권을 맡겼다.
독일은 안정화되었고, 베르사유 체제는 공고한 평화 위에 놓인 것처럼 보였다.
“독일 민족은 시련에 굴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불사조처럼 부활하여, 세계에 우뚝 설 것입니다.”
하지만 독일 우익은 현 상황에 만족하지 않았다. 언젠가 패권을 되찾는 날을 고대하며, 지금은 불만을 억누른 채 경제적 안정을 누리고 있었다.
유럽의 진정한 평화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진과 타티야나 부부는 대전쟁 이후 오랜만에 안정과 번영을 되찾은 유럽을 여행하며, 20대의 마지막 시기를 행복하게 보냈다.
하지만 한국에서 전해진 뜻밖의 소식이, 이진의 평안을 깨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