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802
3부 217화 천의(天意)
‘여기서 쓰러진다면 뒷일은 어떡한단 말인가?’
고통을 느끼면서도, 이선은 자신의 죽음보다 그 이후가 더 신경 쓰였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사업이 많았다. 대공황, 극단의 시대, 2차 세계대전은 어찌한단 말인가.
만약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후회할 일이 없도록 후계자를 위한 정치적 유언을 상세하게 남겨 두어야 했다.
“폐하, 저는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황실의 주치의로 오래 근무한 리하르트 분쉬 박사는 차분하게 답했다.
이선은 즉시 자리를 옮겨 링거를 맞고 누웠다.
“진에게 속히 귀국하라 명하고, 정부 대신들을 제외하곤 투병을 비밀로 하라. 가뜩이나 수해로 나라가 혼란스러운데 투병이 알려져 좋을 게 없다.”
“예, 폐하.”
“당분간 총리에게 대권을 위임하니 국내외의 중대사를 처결하도록 하라.”
“삼가 명을 받듭니다.”
병으로 자리보전을 하는 상황에서도, 이선은 정무에 대한 훈령을 잊지 않았다.
황제가 와병으로 쓰러지고, 제1계승권자인 황태자가 멀리 유럽을 순방 중이라는 심각한 상황에, 황실과 정부는 망연자실했다.
만에 하나 황제의 유고에 대비하여, 태자에게 긴급히 귀국을 명령하고, 정부는 비상상황에 돌입했다.
“황후, 만약 내가 이대로 일어나지 못한다면…….”
“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아영이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선은 차분히 다독였다.
“물론 나도 훨훨 털어 내리라고 믿소이다만, 군주로서 어떠한 경우에도 대비는 해야 하오. 만약 위중한 병세라면, 황후에게 유촉을 내릴 터이니 진에게 전해 주시오.”
“폐하…….”
이선은 자신이 죽을 경우를 대비해, 미래에 대한 예측을 상세하게 남겨 두고 갈 생각이었다. 가능하면 이진이 돌아올 때까지 버텨 직접 전해 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아영에게라도 남겨야 했다.
황제의 갑작스러운 토혈로 공황상태에 빠진 황실 인사들과 달리, 분쉬는 냉철히 병세를 살폈다.
이선은 피만 쏟아 낸 게 아니라, 토사물에 피가 섞여 있었다. 셔츠를 물들였다고 생각한 피도 소량이었다.
“복통이 심하신지요?”
“속이 매우 쓰리긴 하지만, 엄청나게 아프진 않소.”
이선의 병세, 토혈의 형태와 평상시 식습관을 고려해 볼 때, 내과 전공인 분쉬는 잠정결론을 내렸다.
“폐하께서는 소화성궤양으로 추정됩니다.”
“위암이나 간경화는 아니오?”
“간경화로 인한 식도정맥류 파열이라면 토혈의 양과 형태가 다를 겁니다. 혈변이 있고 복통도 심해야 하는데…….”
“혈변은 없었소. 속이 메슥거리긴 해도 복통이 엄청나게 아픈 건 아니오.”
“만약 그 상황이라면 손을 쓸 도리가 없지만, 불행 중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다고 여겨집니다. 궤양일 가능성이 큽니다.”
위궤양이라면, 장천공이라도 발생하지 않는 이상 죽음까지는 이르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생겼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소?”
“증세가 심각하다면 위절제술을 고려해 봐야겠습니다만…….”
위절제술은 1881년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되어 서양에선 1920년대에도 흔히 이뤄지는 수술이었지만, 존엄한 황제의 복강을 개방하여 위를 절제한다는 말에 한국 황실 인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례 없는 일이자,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태의원의 한국인 어의들도 차마 수술을 언급하진 못했다.
“그 무슨 참담한 말입니까! 존엄한 옥체에 칼을 들이댄다니!”
“옥체를 칼로 갈라내어 위를 잘라 낸다니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짐이 이대로 죽는 것보단 위를 잘라 내서라도 사는 게 낫지 않겠나?”
황제의 일갈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황제가 진작부터 서양의학을 신뢰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시대에 위를 절제하고 제대로 살 수 있나……?’
물론 이선은 근대의학을 신뢰했다. 다만 1920년대 의학 수준에는 확신이 없었다. 21세기 기준으로 보면, 서양의학도 한참 갈 길이 먼 시대였다.
“제 생각에는 위절제술까지는 필요 없다고 판단됩니다. 링거 수액, 금식, 내복약 복용으로 치료를 하겠습니다.”
“황실 예법 같은 건 고려하지 마시오. 어떠한 경우에도 박사의 판단을 존중하겠소.”
이선은 혹여 황실예법을 신경 쓰다가 골든타임을 놓치는 건 아닌지 우려했다.
독일의 명망 높은 의사이자 병리학자, 자유주의 정치가였던 루돌프 피로흐(Rudolf Virchow)의 제자인 분쉬는 옛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1888년 독일제국 2대 황제 프리드리히 3세가 후두암으로 의심될 때, 피로흐는 단순 종양으로 오진했다. 당대 최고 권위자인 피로흐의 판단을 따랐던 프리드리히 3세는 재위 99일 만에 후두암으로 급사했다.
당대로는 진단할 수 없었던 형태의 악성 종양에다 제대로 진단을 내렸다 해도 살아남았을지 의문이라 피로흐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본의 아니게 독일 자유주의의 희망으로 여겨졌던 프리드리히 3세의 이른 죽음에 영향을 미친 셈이 되었다.
37년이 지나 스승과 유사한 처지에 놓인 분쉬는 고심을 거듭했다. 공교롭게도 이선보다 37년 먼저 태어난 프리드리히 3세와 같은 상황이었다. 만약 자신이 잘못된 판단을 내려 수술의 때를 놓친다면, 프리드리히 3세처럼 죽음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현재로선 위절제술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증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쉬는 고심 끝에 결론을 내렸다. 프리드리히 3세와 달리, 이선은 생명에 치명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저는 분쉬 박사의 진단과 치료법을 지지합니다.”
한국인 어의들도 분쉬와 같은 결론을 내렸고, 자문역으로 참석한 세브란스 의학교장 에비슨 박사도 판단을 지지했다.
“알겠소. 그럼 여러분의 판단을 신뢰하겠소.”
이선은 의료진의 판단을 따랐다. 현시점에서 의학계 권위자들의 판단이 옳을 터였다.
이선이 치료를 받는 동안, 투병 사실은 극비였다. 내각 대신들과 원수부 장성들, 황실을 전담하는 궁내부만 비밀을 공유했다.
황제가 쓰러진 직후, 남부 지방에 태풍이 상륙하여 4차 홍수가 발생했고, 정부의 모든 노력은 수해 극복에 집중되었다.
“총리, 비상상황을 맞아 노고가 많소.”
“황공하옵니다, 폐하. 속히 쾌차하시어 성수무강하시길 기원하옵니다.”
“고맙소. 하나 병문안을 오는 것보단 정무에 집중해 주시오. 나라의 일이 더 급하지 않겠소? 짐은 곧 자리에서 일어날 것이오.”
“예, 폐하. 옥체 보중하소서. 신은 이만 물러나겠사옵니다.”
이선은 대범하게 말했지만, 쇠약해진 황제의 모습을 보고 전봉준은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늙은 내가 죽고, 성상께서 건강하셔야 하건만! 어찌 하늘이 이리 무심하실 수 있단 말인가! 성상께서 쾌차하신다면 이 늙은이는 언제 죽어도 아쉽지 않네.”
전봉준의 한탄에, 안창호는 고개를 저었다.
“총리, 그 무슨 말씀입니까. 성상께선 반드시 회복하실 겁니다. 이 상황에서 총리까지 쓰러져서야 되겠습니까? 마음을 굳건히 가져야 합니다.”
“도산의 말씀이 옳소. 성상의 신하이자 국민의 대표로서 할 일을 해야지. 자, 어서 현장으로 복귀합시다.”
전봉준은 의지를 다독이며 업무로 복귀했다. 해야 할 일이 태산이었다.
* * *
9월이 되어서야 폭우와 홍수가 끝나고, 정부는 본격적인 복구 작업에 나섰다. 수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막대한 재산손실에 모두가 망연자실해 했지만, 관민은 힘을 합쳐 복구에 나섰다.
대한제국은 약소국에서 오늘날의 열강까지 오른 나라였다. 불가능이란 없었다.
「황제 폐하, 황공하옵게도 와병!」
「궁내부는 과로로 인한 감기 증세라고 발표. 폐하께서는 곧 쾌차하실 터이니, 국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국민은 정부를 믿고 수해복구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
수해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궁내부에서는 황제의 와병을 인정했다.
활동적이던 황제가 오랫동안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언론이 의아해하는 것도 당연했고, 불필요한 억측이 나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발표했다.
과로로 인한 감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 물론 거짓이었지만, 국민의 염려를 덜기 위함이었다.
“황제 폐하, 옥체 보중하시옵소서!”
“황제 폐하, 성수무강하시옵소서!”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사…….”
단순한 감기몸살이라고 밝혔을 뿐인데도, 경운궁 대안문 앞에는 국민이 몰려와 쾌유를 기원하며 절을 올렸다.
“과로로 쓰러지시다니, 얼마나 일이 많으셨으면.”
“자네도 듣지 않았나? 황제 폐하께서 수해 현장을 몸소 방문하시며 명을 내리셨다지.”
“보령(寶齡)이 높으신데 그리 비를 맞으며 고심하시니, 어찌 몸이 버틸 수 있겠나.”
“폐하께서는 본인이 부덕한 탓이라고, 하늘의 뜻을 살피지 못한 책임이라고 한탄하셨다는 거야.”
“그 무슨 말인가? 수해가 왜 황제 폐하의 책임인가? 자연적 현상, 천재지변이 아닌가?”
“어찌 됐건 폐하께서는 황제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지. 그리 노심초사하셨으니 병이 나지 않겠나.”
“허어, 폐하께서는 언제나 옥체보다 백성을 더 생각하시니……. 신하된 처지로 참으로 부끄럽고 충성심이 솟지 않을 수가 없네그려.”
정부 차원에서 은근히 소문을 퍼뜨림에 따라, 황제의 와병은 미담으로 바뀌어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퍼졌다.
황제가 수해에 책임감을 느끼고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다 쓰러져 투병하고 있다는 소문은, 전례 없는 수해로 물리적·정신적 타격을 입은 국민에게 오히려 큰 감동으로 다가온 것이다.
‘……금식하며 하루 종일 누워 있는 게 고통스럽긴 해도,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것 같은데?’
이선의 병세는, 쇠약해 보이는 얼굴과 달리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선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의료진들도 정확한 진단은 내리지 못한 것이었다.
이선의 토혈은 소화성궤양이 아니었다.
잦은 음주와 불규칙적인 식습관으로 인한 구토 증상 이후, 폭발적인 압력으로 인해 발생한 상처와 위산이 식도로 올라와서 위-식도의 연결 부위에 있는 점막이 파열되고 혈관이 손상되면서 출혈이 나타나는 질환이었다.
당대에는 아직 정확한 명칭이 없었지만, 1929년 미국에서 발견되어 말로리-바이스 증후군(Mallory-Weiss syndrome)이라고 명명될 증세였다.
만약 식도의 상처가 심각하다면 생명에도 지장이 있는 문제지만, 말로리-바이스 증후군은 대부분 자연적으로 치유가 가능했다.
물론 식이요법을 철저히 하고, 음주를 자제하고, 식습관을 개선한다는 전제 조건하에서 그러했다.
어찌 되었건, 위절제술 필요 없이 링거와 약물치료 등 내과적 치료만으로 가능하다는 분석이 옳았던 것이다.
“제가 진작부터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술을 줄이고, 식습관을 개선하시라고요.”
의사인 마르가리타가 진작부터 지적해 왔던 사항이었다. 이선은 민망하게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괜찮으려니 하고 내 건강을 너무 과신했구려.”
“폐하께선 일전에 술을 못 마시고 80까지 사느니, 원하는 대로 마시다가 60에 죽는 게 낫다고 하셨지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하아, 뭘 믿고 그딴 소리를 지껄였는지 모르겠소. 앓고 나니까 그건 완전히 헛소리요. 건강하게 80까지 사는 게 낫소, 당연히.”
이선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말은 죽음을 앞두고 삶을 갈구해 본 적이 없는 자의 허세에 불과한 말이었다.
“폐하의 건강을 염려하는 이들이 저뿐만 아니라 이 나라에 이리도 많다는 걸, 이제 깨달으셨나요? 그렇다면 절대로 몸을 혹사하지 마세요. 폐하께선 영원히 젊은이가 아닙니다. 폐하는 아이들의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아버지나 다름없는 분이시잖아요.”
황제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전국의 수많은 국민이 경운궁을 향해 전보와 선물을 보냈다.
황실에는 모든 게 넉넉하니 보낼 필요가 없다는 궁내부 발표에도 불구하고, 지방 촌로들도 상경하여 쾌차하시라고 한약이나 꿀 등을 바쳤다.
이선은 자신이 얼마나 이 나라에서 존경받고 사랑받는 존재인지를, 새삼 깨달을 수가 있었다.
“물론이오. 나는 절대로 쓰러질 수 없지.”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었다. 그 자신을 위해서도, 가족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이 나라 대한제국을 위해서도.
* * *
이진 부부가 황성의 급보를 듣고 유럽 순방 일정을 중단하고 급거 귀국했을 무렵에는, 이미 이선은 건강이 한결 나아져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폐하! 환후는 어떠하신지요. 옥체는 강녕하시옵니까?”
황제의 건강이 확연히 나아졌다는 전보를 받았음에도, 한국까지 오는 기나긴 시간 동안 번민하던 이진은 귀국하자마자 황급히 부황을 찾았다.
“진이 왔느냐. 보다시피 많이 좋아졌다.”
“정녕 괜찮으신지요?”
“아아, 그렇다는 데도. 네가 급거 귀국할 정도는 아니었다. 모처럼 간 유럽인데 미안하게 되었구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부황께서 편찮으신데 소자가 어찌 이역만리에 있을 수 있겠사옵니까?”
“하하, 그래. 이리 좋아진 걸 보면 네 지극한 효성에 하늘도 감동한 모양이다.”
농담을 하며 웃는 부황을 보면서 이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만약 이대로 부황이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더라면 장남으로서 임종조차 지켜보지 못한다는 불효를 저지를뿐더러, 위대한 군주를 잃은 빈자리를 어찌 메워야 할지 고뇌하며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다.
곁에 있던 타티야나가 남편의 심리를 다독이지 않았더라면, 이진은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다행히도 부황의 회복된 모습에, 이진은 정신적 안정을 되찾았다.
“많이 좋아지기는 했다마는, 건강이 예전만큼은 아니다. 네가 다시 청정을 맡아 주면 좋겠구나.”
“부황께서 명하시니, 삼가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선은 이진의 귀국과 함께 다시 대리청정을 명했다.
태자의 대리청정은 6년 전부터 이뤄졌던 일이라, 하물며 황제가 투병을 한 지금은 아무런 반대도 없이 다시 시행되었다.
그런데 이선의 생각은 아예 달랐다.
대리청정이 재개된 한 달 뒤, 광무 29년 11월.
이선은 최측근들을 경운궁으로 불렀다.
외무대신 김규식, 군무대신 이동휘, 제국익문사 독리 이회영, 궁내대신 의친왕 이강이었다.
“짐은 태자에게 대보(大寶)를 물려줄까 한다.”
선위하겠다는 말에, 대신들은 깜짝 놀라 외쳤다.
“그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아니 되옵니다, 폐하!”
이선은 웃으면서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짐의 뜻은 확고하니, 소란 떨지 말라. 짐이 경들을 깊이 신뢰하기에 당부하는 말이다. 경들은 알고 있되, 당분간 소란 떨지 말라.”
김규식과 이동휘는 난처한 듯 반대를 거듭했지만, 이선의 아우 이강은 고개를 조아렸다.
“성지(聖旨)가 확고하시니, 어찌 받들지 않겠습니까?”
“고맙다. 의친왕은 짐의 아우이자 태자의 숙부로서, 황실을 대표해 즉위가 차질이 없도록 하라.”
보통 황제의 아우라면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반대해야 할 터였다. 반대하지 않는 이강을 보면서, 김규식과 이동휘도 확신을 갖게 되었다.
6년 전처럼 개화당 우파를 쳐 내기 위한 정치적 목적의 선위가 아니라, 진심으로 태자에게 선위하겠다는 뜻이었다.
각계에서 반대가 쏟아질 터이니, 태자가 난처하지 않도록 측근들이 미리 대비를 해 두란 지시였다.
“삼가 성지를 받들겠습니다.”
11월 20일, 황태자의 탄일인 천추경절.
올해는 수해가 있음을 감안하여 축연은 없었지만, 경운궁에서 황실과 대신들이 참석하는 만찬이 있었다.
“태자의 나이 올해로 스물아홉, 내년이면 서른이 된다. 자질이 총명하고 인품은 훌륭하니, 실로 나라의 복이다. 군주로서 부족함이 없다.”
여기까지는 태자의 생일을 맞이한 부황의 평범한 덕담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어진 말에서 황제는 폭탄선언을 발표했다.
“짐이 재위한 지 이미 어언 28년이다. 비록 덕망은 없으나 불의한 일을 행하지는 않았는데, 능히 위로 천의(天意)에 보답하지 못하여 올해 큰 수재(水災)의 재앙에 이르렀다. 또 지병이 있어 근래 더욱 심하니, 어찌 나라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겠는가? 이에 태자에게 전위(傳位)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