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803
3부 218화 선위(禪位)
“아니 되옵니다, 폐하!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대신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선위는 안 된다고 외쳤다. 이선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아비가 아들에게 전위하는 것은 천하고금의 떳떳한 일이니, 경들이 간쟁(諫諍)할 필요가 없다. 이는 태종대왕께서 세종대왕께 선위할 때의 전례를 따른 것이다.”
총리 전봉준이 필두에 서서 반대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성상께서 보령이 채 환갑에 이르지 않고, 병환도 정사를 폐할 정도에는 이르지 않았습니다. 폐하께서 즉위한 이래로 국민이 평안하고 국가는 부성(富盛)하며, 간과(干戈, 전쟁)에서 승리하여 국위를 만방에 떨쳐 오늘과 같이 태평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온데 어찌하여 따르기 어려운 명을 내리시옵니까?”
유학을 익힌 세대인 전봉준과 달리, 근대적 교육을 받은 안창호는 더욱 직접적으로 말했다.
“수재(水災)가 있더라도 어찌 폐하의 성덕(聖德)이 천의에 부응하지 못하여 그러한 것이겠습니까? 이는 자연현상일 뿐입니다. 수재가 성상의 책임이라면, 신등이야말로 정부 당국자로서 책임을 지고 사임하는 게 옳을 것입니다.”
수재에 대한 책임론으로 이어지자, 전봉준이 총대를 멨다.
“그러하옵니다. 이는 내각의 책임입니다. 마땅히 신이 책임을 지고 총리에서 사임하겠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전위의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황제의 말을 듣는 순간 대신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건, 6년 전 광무 23년의 선위 파동이었다.
황제의 선위 선언에 정계가 들썩였고, 정계 최고 권력자였던 박영효와 개화당 우파는 몰락하고 말았다.
혹여 신진 연립정부에 못마땅한 점이 있어 총리와 내각을 총사퇴하게 하려는 게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경들이 오해하고 있다. 짐은 수재에 관한 내각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총리는 조각(組閣)한 지 채 2년도 되지 않았는데 어찌 사임을 운운하는가? 결코 사임은 윤허하지 않겠다.”
이선은 총리 사퇴에는 명확히 선을 그었다.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내무의 말처럼 폭우와 홍수는 자연현상이다. 하나 짐은 하늘과 소통할 의무가 있는 황제이니, 천의에 부응하지 못한 책임을 면할 길이 어렵다.”
천의를 운운하는 말은 참으로 알쏭달쏭하기 짝이 없었다. 언제나 근대적 합리성을 추구하던 황제가 왜 갑자기 저런단 말인가?
“돌이켜 보건대, 짐은 언제나 천의에 부응하여 국가를 이끌어왔다. 갑신경장 이래 대한이 이토록 승승장구한 건, 짐이 천의를 읽고 이에 부응했기 때문이다. 하나 근년 들어 한계를 느끼고 있는바, 이는 짐이 늙고 병들기도 하였거니와 천의를 읽는 눈이 흐려진 탓이다. 이에 전위하고자 하니, 짐은 후견으로 물러나 천의를 읽는 데 집중하고자 한다.”
‘조선-대한제국이 이토록 잘나갈 수 있었던 건, 내가 역사를 알아 미래를 읽고 대응할 수 있었던 덕이다. 근데 이미 역사가 크게 바뀌어 변수가 많아진 데다, 이 시대에 오래 살아 늙다 보니 기억력과 예측력이 예전만 못하다. 그러니 선위해서 태자가 국정을 담당하고, 나는 살아 있는 동안 미래 예측과 대응에 집중하고 싶다. 세계의 운명을 바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에 제대로 대응해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니 에둘러 돌려 말했다.
김옥균이 살아 있었으면 무슨 말인지 이해했겠지만, 이선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신하는 없었다.
“…….”
그런데 대신들이 가만히 보니, 누구보다 앞장서서 반대해야 할 태자 이진은 곤혹스러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전날 밤, 이선은 태자에게 일렀다.
“내일 천추경절 축연에서 선위를 선포하고자 한다.”
“폐하! 그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아니 되옵니다!”
“6년 전하고는 다르다. 이번엔 진실로 네게 제위를 물려주고자 한다. 내 뜻은 확고하니, 너는 사양하지 말라.”
부황의 뜻이 확고함을 알게 된 이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여 환후(患候)가…….”
“이래저래 안 좋기는 하다마는, 네가 걱정할 정도만큼은 아니다. 내가 선위하려는 이유는 첫째로 건강을 다스리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건강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는 말에 이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는 지난 45년간, 놀라울 정도로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있었다. 내가 어떤 사안을 예측하면 십중팔구는 맞아떨어졌고, 그 덕에 대한은 승승장구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예, 부황께서는 하늘이 내려주신 분이시지요.”
“그래, 천의를 읽은 덕이라고 하자. 그런데 늙어 가면서 천의를 읽는 눈이 점점 쇠퇴하는 느낌이다. 그러니 국가의 중대사는 너와 정부에 맡기고자 한다. 향후 10년에서 20년은 대한뿐만 아니라 세계의 중대사를 결정할 시기, 나는 천의를 읽고 대응하는 데 집중하고 싶다.”
이선은 자신의 아는 ‘역사’, 즉 미래 예측을 이진에게 알려 주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만약 자신의 수명이 다했더라면 유언으로서 남길 생각이었지만, 생명의 지장이 없다는 걸 확인한 이상 그럴 수는 없었다.
이 시대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과 능력을 필요로 한다. 21세기를 체험하지 않은 이진이 미리 ‘미래’를 알아 버린다면, 삶에 무슨 의욕이 생기겠는가? 혹은 어떤 오만함이 생길지 알겠는가?
고종이나 김옥균은 수명을 다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일러 주었으나, 아직 앞날이 창창한 아들에게는 그럴 수 없었다.
“선위하더라도 그냥 놀고먹겠다는 건 아니다. 네게 계속 조언을 아끼지 않을 터이니, 즉위를 받아들이도록 하여라.”
“……삼가 부황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진은 부황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뜻이 확고함을 알고 받아들였다.
“천의가 어찌 선위에 있겠습니까? 요(堯)가 순(舜)에게 선양한 것은 재위한 지 70년이나 되어서 늙은 나이에 정사에 부지런하기에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문왕(文王) 같은 성군은 나이가 90세를 넘겼고, 무왕(武王)이 궁에 있은 것도 또한 80년이었습니다. 성덕의 지극함은 춘추를 가릴 수 없는 일입니다. 폐하께서 보령은 중년이시고, 옥체가 강녕하고 부지런하기가 강건하시니 요순이나 문왕에 비교할 바도 아닙니다.”
천추경절 축연에 참석한 전 탁지대신, 개화당 총재 이시영이 고사(古史)를 들며 반대했다.
만약 황제가 선위하면서 내각이 총사퇴하도록 유도한다면 개화당에도 이익이 될 일이겠지만, 유학의 도리를 익힌 이시영으로선 선위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도대체 요순의 시대가 언제이며, 주나라 문왕과 무왕의 시대가 언제인가? 옛일을 상고하려면 케케묵은 중국의 고사를 따질 것도 없이, 태종대왕과 세종대왕의 훌륭한 선례가 있지 않은가?”
“그야말로 매우 특수한 사례로, 대개 선위는 변고(變故)가 절박하여 부득이한 것이었습니다.”
당장 멀리 갈 것도 없이, 이선이 고종으로부터 선위를 받은 것도 ‘변고’가 있었기 때문 아닌가?
“올여름의 일이 변고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짐이 피를 토하고 쓰러지면서, 건강이 예전만 못하다는 걸 분명히 느꼈다. 이때 선위를 결정했다. 그만큼 내 한 몸 건사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짐의 뜻은 이미 결정된 지 오래니, 고칠 수가 없다. 다시 이를 말하지 말라.”
군주가 아프다는데 계속 반대만 한다면 그도 예의가 아니었다.
“호랑이 등에 탄 세월이 28년이면 족하다. 이젠 내려올 때가 되었다.”
이선은 태종의 고사를 빌려, 재위에 오른 기간을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에 빗댔다.
황제가 지난 28년, 아니 완화군 시절부터 40년 넘게 국가를 위해 온 마음과 몸을 바쳐 헌신한 것을 아는 사람들은 무조건 반대할 수 없었다.
“태자는 중화전으로 따라오라.”
“예, 폐하.”
이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태자와 대신들도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황제와 태자가 중화전에 이르자, 대신들도 모두 뒤따랐다.
“궁내대신은 어보(御寶)를 바치라.”
“차마 이와 같은 명을 받들긴 어렵사옵니다.”
이강은 진작 형과 선위 절차를 논의했지만, 형식상 반대했다. 선위를 반대 없이 찬성만 한다면 꼬투리 잡히기 딱 좋은 행동이었다.
“이는 황제이자 대원수로서의 명이다! 경은 궁내대신으로서 마땅히 명을 받들어야 할 것이다.”
“삼가 지엄한 황명을 받듭니다.”
궁내대신 이강이 황제의 어보, 즉 옥새와 옥보를 들고 나왔다. 그러자 대신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외쳤다.
“아니 되옵니다, 폐하! 명을 거두어 주소서!”
“군주의 명이 있는데, 신하가 듣지 않는 것이 군신의 의리인가?”
이선은 마침내 목청을 높였다. 대신들이 일시적으로 입을 다물자, 이강으로부터 어보를 받아든 이선은 이진에게 전했다.
“태자는 어보를 받들라.”
“신은 나이가 어리고 어리석어, 이와 같은 대임을 맡기 어렵습니다.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이미 부자간에 논의된 사항이지만, 이진은 부복하며 역시 사양의 뜻을 밝혔다. 동양의 관례상 며칠에 걸쳐 최소 세 번은 사양해야 했다.
“내 뜻이 이미 확고하니, 너는 사양할 이유가 없다. 어보를 받들라.”
이선은 아들을 일으켜 세우고, 품에 어보를 안겨 주었다. 이진은 엉거주춤하며 어보를 받들었다.
“어찌 이와 같은 중대사를 급박하게 처리하시옵니까?”
“정부와 의회의 논의를 허락해 주소서!”
대신들이 거듭 반대의 의사를 밝히자, 이선도 절차상 논의에 동의했다.
“경들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정부와 의회에서는 선위 절차와 대관식에 대하여 논의하라. 새 연호를 정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니, 의정(議定)하여 망단자를 바치라.”
선위 여부가 아니라 절차를 논의하라고, 이선은 다시금 쐐기를 박았다.
* * *
바로 이튿날, 정부 긴급회의와 중추원·민의원 양원의 긴급회기가 소집되었다.
미리 황제로부터 귀띔을 받은 의친왕 이강은 종친들을, 김규식은 정부 대신들을, 이회영은 의회 의원들을, 이동휘는 군부 장성들을 설득했다.
“성상의 뜻은 확고하십니다. 환후를 달래고 건강을 회복하고자 휴양을 하고, 외교와 군사의 일에만 집중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럼 지금처럼 대리청정으로 계속하면 될 일이 아닙니까?”
“소조를 군주로서 미리 교육시키고 싶다는 뜻이시겠지요. 받아들이도록 합시다.”
“성상께서는 결코 내각의 책임을 물으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6년 전하고는 사례가 완전히 다르니, 결단코 사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도 군주께서 선위하신다면, 신하된 도리로 어찌 자리를 지킨단 말이오?”
“총리는 황제 폐하로부터 임명받지만, 동시에 국민의 민의를 대표하여 의회에서 선출됩니다. 선위하신다하여 총리가 물러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폐하께서 선위하시면서, 전제정과 입헌정의 과도기를 끝내고 입헌군주제를 더욱 확고하게 확립하기를 원하십니다. 소조께서 즉위하시면, 통치에 대한 사안은 최대한 정부에 일임하실 겁니다.”
“으음, 성상의 뜻이 그러시다면…….”
“군 통수권은 대원수(황제) 폐하께 있으니, 선위와 동시에 원수(태자)께 이양되겠지만, 폐하께서 군국(軍國)의 일은 계속 처결하실 것이네. 그러니 우리는 폐하의 명을 받들도록 하세나.”
“군은 대원수 폐하께서 어떠한 명을 내리시더라도, 절대적으로 따를 것입니다.”
며칠 동안 종친, 정부, 의회, 군부에 대한 설득이 이루어졌다.
“선위의 명을 거두어 주소서!”
“폐하의 적자(赤子,백성)를 저버리지 말아 주소서!”
선위에 반대한다는 이들이 경운궁 대안문 앞에 거적을 깔고 앉아 반대상소를 올렸지만, 이선은 읽지도 않았다.
그러는 동안 선위는 점차 기정사실이 되었다.
이선은 이진에게 황제의 어가(御駕)와 의장(儀仗)을 전달했다.
이진은 거듭 사양했으나, 어가와 의장은 전달되었다. 사실상 황제의 위상을 갖추게 된 것이었다.
“짐이 선위한다고 하여, 소일하며 노후를 보내겠다는 말이 아니다. 소조를 후견(後見)하여 조언을 아끼지 않겠다. 특히 군국(軍國, 군무와 국정)의 중대사는 짐이 친히 청단(聽斷)할 것이다. 국가의 중대사는 의회와 내각으로 하여금 의논하게 하여 결정하고, 짐 또한 필요할 때마다 의견을 내도록 하겠다.”
지난 40년간 국가를 이끌어 온 위대한 지도자의 부재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아서, 이선은 완전한 은퇴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황제의 선위 이후 계획을 들은 정부와 의회는 비로소 선위에 동조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모두 황제 폐하의 신하로서 감히 선위의 명을 받기 황공한 일이나, 지엄한 황명을 무작정 거역만 할 수는 없는 일이오.”
“소조는 우리 대조의 적장자로서, 황실전범 계승서열 1위입니다. 굳건히 사양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고, 대조의 뜻이 확고하시니 신등이 굳이 다시 청할 이유가 없습니다.”
정부와 의회에서는 차례대로 선위를 받아들이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과정에서 전봉준과 내각 대신들은 다시금 총사퇴를 선언했지만, 이선과 이진이 모두 반려하여 직무를 이어 나갔다.
정부를 반대하는 야당의 입장에서도, 이를 명분 삼아 내각 총사퇴와 의회 해산 및 총선거를 주장하지 않았다. 개화당 총재 이시영은 형 이회영의 설득을 받아, 어떠한 경우에도 황제의 명을 받들고 정부에 협조하겠다고 다짐했다.
“올해까지 광무 연호를 사용하고, 내년 1월 1일을 기해 신 연호를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게 좋겠습니다. 연말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대조께서 계속 재위하시되, 소조께서는 신년을 기해 즉위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공식적인 즉위식은 광무 원년의 사례를 참고하여, 내년 봄이나 여름에 외빈을 초청해 진행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국가적 경사가 될 터이니, 외빈을 초청하여 크게 축하하는 게 타당합니다.”
정부는 광무 29년(1925)까지 황제가 재위하고, 이듬해 1월 1일부터 새 황제의 재위가 시작되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즉위식은 광무 원년 즉위식을 참고하여, 외빈을 초청하여 봄이나 여름에 성대하게 진행하기로 했다.
“동의한다. 그리하도록 하라.”
광무 30년을 대신할 새로운 연호가 논의되었다.
‘광무(光武)’는 중흥 군주를 상징하는 후한 광무제의 상징성을 따서 결정되었으니, 실로 이선은 조선의 중흥을 이끌어 대한제국의 번영을 만들어 냈다.
“연호 망단자는 건흥(建興)과 태시(太始)를 의정하였습니다.”
원역사에서는 광무 다음의 연호가 융희(隆熙)로 결정되었지만, 역사의 변화로 인해 융희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건흥은 10년 전 충주에서 발견된 고구려 유물인 『건흥5년명 금동광배』에서 따온 것으로, 한국 학계에서는 건흥 5년 새겨진 병진년(丙辰年)을 476년 혹은 596년으로 비정하여 장수왕이나 영양왕의 연호로 판단했다.
해동성국 발해의 전성기를 이끈 선왕의 연호에다, 그 뜻도 좋으니 수망(首望)되었다.
그런데 정작 이선과 이진의 생각은 달랐다.
“건흥은 촉한 후주(後主)의 연호가 아닌가. 전례가 불길하기 짝이 없군.”
“앗, 그 점은 신등이 미처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건흥은 촉한 유선이 최초로 사용한 연호였다.
조선을 계승한 대한제국에서는 중국 삼국시대에서 촉한정통론을 따랐다. 하지만 촉한정통론자라도 소열황제 유비는 높이 받들어도, 망국의 원흉인 유선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
연호를 쓸 이진 입장에서도, 건흥은 발해 선왕보다는 촉한 유선이 먼저 떠올랐다. 하필 유선과 같은 연호를 쓴다는 게 썩 달갑지가 않았다.
“태시로 하지. 뜻이 아주 마음에 드네.”
태시는 전한 무제와 발해 간왕의 연호이자, 뜻이 좋았다.
하늘과 땅이 생겨난 맨 처음, 만물의 밑뿌리.
“소자도 태시가 좋사옵니다.”
“좋다. 내년부터 사용할 연호는 태시로 한다.”
“예, 삼가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렇게 1926년은 태시 원년으로 결정되었다.
새로운 시대의 시초, 만물의 밑뿌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결정된 연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