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808
외전. 대체역사의 대체역사 (1)
1893년 10월, 러시아제국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직 양력으로 10월에 불과하지만, 북구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짧은 가을을 지나 겨울에 접어들고 있었다. 벌써 낙엽이 지고, 첫눈이 내렸고, 대지는 눈에 뒤덮였으며, 칼바람이 밀려왔다.
“하, 진짜 더럽게 춥네. 왜 하필 음악회는 밤에 열리는 거야? 그냥 마차 타고 갈 걸, 왜 걸어간다고 해서 이 고생인지. 대체 자동차는 언제 대중화되나? 한 10년은 남았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주한 지 어언 1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북구의 가혹한 날씨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동양인이 불평을 토해 냈다.
그가 더욱 견디기 힘든 건, 추분이 지난 이후 급격히 줄어든 햇빛이었다. 북위 60도에 자리 잡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여름에 백야 현상이 오고, 반대로 겨울에는 극야 현상이 온다. 10월부터 해는 급격히 짧아지고, 흐리고 비가 잦은 날씨로 인해 한 달에 햇빛을 볼 날이 며칠 되지 않았다.
“북유럽에선 날씨 때문에 우울증 걸리겠다는 말이 틀리지 않구만.”
사실 이 젊은 동양인이 가장 견딜 수 없는 건, 추위나 흐린 날씨 따위가 아니었다. 자신이 살았던 환경과 너무나 다른 이국의 풍토였다.
그가 어렸을 때 떠나온 고향,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조선을 떠올려서가 아니었다.
그가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건, 이제는 아련히 꿈처럼 여겨지는 그의 진짜 고향,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나라였다.
그는 바로 조선 국왕의 서장자 완화군 이선, 아무도 모르는 그 내면의 정체는 21세기의 역사학자 이선우이다.
“끄냐지(князь, 공작) 이선 각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공작. 어머, 외투에 눈이 한가득이네. 설마 걸어온 거예요?”
이선의 도착을 알린 집사는 능숙한 손길로 이선의 외투를 벗겨 받아들였다. 때마침 응접실에 와 있던 여주인은 외투에 달려 있는 눈송이들을 보며 놀랍다는 듯이 물었다.
“멀지도 않은데 운동도 할 겸 걸어왔죠. 가뜩이나 요새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데, 이러다 살찔까 걱정입니다.”
“후후, 꼭 결혼 앞둔 아가씨처럼 몸매 관리하시네. 하여튼 공작은 특이한 사람이에요. 자, 안으로 들어오시죠. 공작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호오, 그게 누구입니까?”
“보면 알겠지요.”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이카 강변에 있는 대저택, 유수포프 궁전의 주인인 지나이다 유수포바(Zinaida Yusupova)가 이선을 무도회장으로 직접 안내했다.
지나이다는 러시아 최고 귀족이자 대부호인 유수포프 공작가의 후계자로, 재작년 아버지 니콜라이 보리소비치가 별세한 이후 가문을 계승했다.
러시아에서 명성이 자자한 빼어난 미모, 엄청난 부를 자랑하는 공작가의 후계자라는 최고의 신붓감과 결혼한 행운의 사내는 근위대 장교 펠릭스 수마르코프-엘스톤(Felix Sumarokov-Elston) 백작으로, 그는 이 결혼으로 공작 작위를 얻었다.
유수포프 궁전은 크고 웅장했으므로, 응접실에서 음악회장으로 가는 길에도 긴 회랑이 있었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유럽 유수 화가들의 그림으로 장식된 회랑 한편에, 아름다운 젊은 여성을 마치 천사처럼 표현한 조각상이 있었다.
이선은 자연스럽게 조각상에 눈이 갔다. 그는 그녀의 생전 모습을 모를 수가 없었다.
“타냐의 조각이 완성됐어요. 제일 먼저 공작에게 보여 주고 싶었어요. 공작이 요새 우리 가문에 발길이 뜸하니까, 음악회 핑계로 불렀지요.”
“그렇군요…….”
날개 달린 천사로 표현된 조각상의 주인공은, 지나이다의 여동생이자 이선의 약혼녀였던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 유수포바 공작영애였다.
왕족 사위를 얻고 싶었던 니콜라이 유수포프 공작은 장녀를 불가리아 대공 알렉산더에게 시집보내려 했지만, 펠릭스와의 연애결혼을 원하던 지나이다의 완강한 거부로 뜻을 접어야 했다.
대신 공작의 눈에 들어온 건, 1881년 차르 알렉산드르 2세의 암살을 막은 공로로 로마노프 왕조의 총아로 떠오른 동양의 어린 왕자, 이선이었다.
러시아 귀족의 관점에서는 동양인에 이교도라는 건 문제가 있지만, 유수포프 가문도 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칭기즈칸의 후예이자 킵자크 칸국의 지배자 노가이칸의 후손인 타타르인이었다.
조선 군주의 장남이자 떠오르는 총아인 이선이 러시아 귀족 사회에 편입된다면 훌륭한 사윗감이었다.
러시아 정부의 불허로 열망하던 연해주행이 무산된 이선은, 결국 상트페테르부르크 귀족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바로 역사의 분기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로 인해 이선이 조선에 조기 귀국할 가능성이 사라졌다.
이선은 단숨에 러시아제국 공작 작위와 함께 고등문관 지위를 받았고, 무려 차르 알렉산드르 2세가 그의 대부(代父)가 되어 주었다. 미래의 차르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과는 절친한 동갑내기 친구였다.
이선은 차르에게 하사받은 은사금을 토대로, 초창기에 있던 브라노벨(노벨 형제)의 석유산업에 투자하여 부를 획득했다.
그는 ‘북구의 록펠러’로 떠오른 세계 석유산업의 선두주자 브라노벨의 대주주로 만족하지 않고, 브라노벨 회장 루트비히의 형제이자 다이너마이트 개발자인 알프레트 노벨과 손을 잡고 유럽과 미국으로 자본을 진출했다.
이 젊은 동양인은 마치 신들린 것처럼 투자의 적기(適期)를 파악했고, 20대의 나이에 막대한 부를 지닌 대부호가 되었다.
최고위 귀족인 공작이란 작위, 로마노프 황실과의 긴밀한 관계, 막대한 부, 무엇보다 맨몸으로 러시아에 건너와 이를 얻어 낸 뛰어난 능력. 이선은 그야말로 러시아 상류사회의 총아가 되었다.
유수포프 공작은 이선을 둘째 사위로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고, 바쿠 유전에 공동투자하는 등 사업상의 이유로 유수포프 가문과 친밀해져 있던 이선도 고심 끝에 타티야나와의 약혼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1888년, 타티야나는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에 걸려 22세의 젊은 나이로 갑작스레 요절했다. 유수포프 공작은 막내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크게 상심했고, 3년 뒤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공작, 왜 결혼을 하지 않죠? 공작의 나이도 이제 스물다섯이 되었잖아요. 혼담도 계속 들어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건…….”
“만약 타냐를 잊지 못해서라면, 이제 그녀를 마음에서 내려놔요. 타냐도 공작이 행복하기를 바랄 거예요.”
지나이다는 이선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어림짐작으로 말했다.
물론, 이선은 그런 낭만적인 이유로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젊은 약혼녀의 안타까운 요절에 비애의 감정을 느꼈고, 그녀와의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결국 그가 원하는 건 다른 곳에 있었다.
이선을 향해 무수한 혼담 제의가 들어왔지만, 젊은 나이에 죽은 약혼녀를 애도하고 싶다는 명분으로 계속 거절해 왔다.
사실은, 아직 조선으로의 귀국에 미련이 남아 있던 이선은 러시아 귀족 가문과의 혼담을 계속 거절했다. 지금도 러시아 귀족 대우를 받고 있는데, 만약 외국 여자와 결혼까지 한다면 조선에서는 절대 용납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조선으로의 귀국 가능성은 해가 지나갈수록 떨어졌다. 이선이 러시아와 유럽에서 성공을 거듭할수록, 조선에서는 그를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인식이 더욱 강해졌다.
이선이 조선-러시아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전권위원으로 조선에 파견되어 양국의 조약을 능숙하게 조율하자, 조선 왕실과 조정은 경악과 환영이라는 이중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왕비 민씨는 외국에서 힘을 얻은, 원래부터 경계하던 서장자의 귀국을 결단코 원치 않았다.
러시아 정부도 이선을 조선으로 영구히 보낼 생각이 없었고, 그를 총애하던 알렉산드르 2세도 1887년에 암살당하고 알렉산드르 3세가 즉위하자 귀국 가능성은 더욱 떨어졌다.
새 차르는 이선의 귀국이 동아시아에서의 현상유지를 원하는 러시아 정부의 정책에 위반된다고 보았고, 결코 귀국을 허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그러던 1891년, 상황이 변화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부설하여 동아시아로의 진출을 분명히 했다. 그 상징이 바로 황태자 니콜라이의 아시아 순방과 블라디보스토크 철도 기공식 참석이었다.
바로 이 순방에서, 이선은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 니콜라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시가현 오쓰에서 러시아 황태자를 암살하려던 일본 순사 쓰다 산조의 시도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제국의 황태자를 암살 시도에서 막아 낸 이선은, 다시 한번 로마노프 왕조의 구원자가 되었다.
내심 이선을 꺼리던 알렉산드르 3세도, 장남이자 황태자를 암살에서 구한 이선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치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물며, 당사자인 니콜라이 본인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오! 이선, 나의 친애하는 벗이여.”
이선이 차르스코예 셀로의 궁전을 찾아 황태자 알현을 청하자, 니콜라이는 친히 나와서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늘 저를 이렇게 반겨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황태자 전하.”
“뭘 그리 딱딱하게 부르나? 자네는 내게 형제나 다름없어. 어머니께서도 말씀하지 않았나. 자네를 아들처럼 생각하겠다고.”
이선을 반기는 니콜라이의 말은 허투루 하는 게 아니었다. 이선은 황태자와 ‘너’ ‘자네’라고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샤샤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게 늘 마음이 아팠는데, 하느님께서 대신 그대를 아들로 보내 준 것 같군요.”
황태후 마리야 표도로브나(덴마크의 다우마르)는 장남의 생명을 구해 준 이선을 향해, 아기일 때 요절한 차남 알렉산드르(샤샤)가 무사히 장성한 것이라 생각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깊은 신뢰를 보였다.
오쓰 사건 이후 이선은 로마노프 황실의 깊은 내부에까지 들어갈 수 있었고, 니콜라이뿐만 아니라 그 동생들도 이선을 형제처럼 여길 정도였다.
조선에서 법적인 모친 왕후 민씨의 질투와 경계를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로마노프 황실이 더 가족에 가까울 정도였다.
‘대체 내가 조선에 귀속감을 느낄 이유가 뭐지? 나에게 이만한 성공의 기회를 준 이곳이야말로 내 새로운 조국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이유는 충분했지만, 이선은 마음속에서 쉽게 조선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는 이 시대에 완화군 이선으로서 사는 것이었다. 정말로 완화군 이선의 영혼이 존재한다면, 조선이야 어찌 되건 타국에서 승승장구하는 자신의 모습을 기쁘게 지켜볼 수 있을까?
「이러려고 아라사에 간 거야? 조선의 운명이 위기에 처하거나 말거나 타국에서 부와 권력을 누려 보려고? 내가 그러라고 너를 이 시대로 부른 줄 알아?」
「누가 언제 불러 달라고 했나? 네가 일방적으로 나를 부른 거잖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거라고. 죽을 운명 피하게 한 거부터가 어디야?」
「나는 너를 계속 지켜보고 있을 거야. 네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삶을 사는지를. 조선 국왕의 장남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줬더니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셈이구만. 도대체 조선이 네게 해 준 게 뭐 있냐? 왕의 장남이랍시고 눈칫밥만 먹이다가, 끝내는 천연두로 죽이려고까지 하지 않았나?」
「왕의 아들로 태어나 계승 가능성이 따라오는 이상, 그런 위험은 당연한 거야! 왕의 장자로서 조선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지 마라!」
「시끄러워! 내가 살던 시대로 돌려보내 주던가, 아니면 입 다물고 있어!」
어느 날 밤, 꿈에 완화군의 혼령이 나타났다. 그게 진짜인지, 아니면 이선이 갖고 있는 무의식의 반영일지는 그 자신도 몰랐다.
그만큼, 이선에게 있어 조선은 늘 부채의식으로 남아 있었다. 역설적으로 그가 러시아에서 성공가도를 달릴수록 더욱 그러했다.
‘이대로 간다면, 조선은 멸망의 운명을 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오쓰 사건 이후 니콜라이의 신임을 더욱 강고하게 얻은 이선은, 그를 통해 동아시아 정세에 개입할 모종의 전략을 세웠다.
“지난 아시아 순방에서, 나는 깨달음을 얻었어. 러시아의 미래는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에 있다는 것을.”
“실로 그렇습니다, 전하. 한때는 강대했지만 쇠락해 가는 청국, 대륙 진출의 야욕을 품고 있는 일본을 누르고 동양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나라는 오직 러시아뿐입니다.”
“표트르 대제께서 발트해를 획득하고, 예카테리나 여제께서 흑해를 획득하였듯이, 태평양을 향해 진출하는 것이야말로 내 시대의 사명이 될 거야.”
“하오나 러시아가 직접 진출하면, 러시아의 남하라는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영국을 자극할 터입니다.”
“맞아. 그러니 지금은 관망 정책을 쓰는 거지.”
“청국도 일본도 아닌, 동양에서 유일하게 러시아의 국익과 일치할 수 있는 나라는 오직 자주독립을 이룩한 조선입니다.”
“흠, 그렇지. 명심해 두겠네.”
이선은 황태자의 비공식적 참모로 활동하면서, 조선의 자주독립을 이룩할 방도를 골몰했다.
‘만약 역사대로라면, 내년에 큰 변화가 온다.’
이선의 등장으로 역사가 틀어지기는 했지만, 원역사에서는 1894년에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이 발발한다. 반드시 역사대로 진행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일본의 거듭된 군비 확장을 볼 때 머지않아 전쟁은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알렉산드르 3세가 급사하고 니콜라이가 새 차르가 된다.
조선에 개혁과 자주독립을 쟁취할 마지막 기회이자, 이선 개인에게도 다시 없을 기회가 될 시기였다.
“복잡한 이야기는 이쯤 해 두자고.”
니콜라이는 아직 40대인 부황이 건재한 이상, 자신이 즉위할 날은 한참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 통치는 머나먼 미래의 일로 느껴졌다.
“그보다 선, 자네는 왜 아직 결혼하지 않나? 혼담이 그렇게 많이 들어온다면서?”
“그렇게 따지면, 니키 자네도 아직 결혼하지 않았지 않나. 황태자의 결혼이야말로 국가의 중대사 아닌가.”
이선과 니콜라이는 편안한 친구의 대화로 돌아왔다.
“나야 뭐, 급할 거 없지. 내년에 독일을 방문할 때 혼사를 결정할 거야.”
역사대로라면, 니콜라이는 1894년 헤센의 알릭스(알렉산드라)와 약혼한다. 이선은 니콜라이가 사랑하게 되는 알릭스가 러시아 역사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알고 있었지만, 남의 혼사에 이래라저래라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 나도 마찬가질세. 급할 거 없지.”
“아직도 유수포바 공녀를 잊지 못했나? 5년이나 됐으면 이제 잊을 때가 됐잖아. 산 사람은 살아야지. 동양인의 순정은 대단하군.”
니콜라이도 오해하고 있었다. 이선이 죽은 약혼녀를 명분으로 각종 혼담을 거절하고 있으니,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음……. 일단 기다려 보게. 언젠가 좋은 소식이 있을지도 모르니.”
“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마침내 좋아하는 여자라도 생겼나? 어느 가문 여식인가?”
“그런 거 아냐. 난 지금 공무와 사업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결혼할 여유가 있을 리가.”
황태자의 근엄한 제복을 입고 20대 청년다운 호기심을 드러내는 니콜라이를 보면서, 이선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선의 심리는, 근래 들어 더욱 복잡해졌다.
그 복잡한 감정은, 그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몇 안 되는 사람으로 인해 더욱 강해졌다.
운명의 장난처럼 우연히 알게 된 폴란드 여인, 마르가리타 얀코프스카.
바로 그녀의 존재가 이선의 심리를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