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809
외전. 대체역사의 대체역사 (2)
10년 전, 이선이 조선-러시아 조약을 체결하고 극동을 방문했던 시기의 일이다. 이선은 폴란드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시베리아에 유배되었다가, 석방되어 연해주에서 목축업으로 성공한 미하일 얀코프스키를 만났다. 얀코프스키는 연해주에 이주한 조선인(고려인)들을 마적으로부터 보호한 공로가 있어, 이선은 그와 친밀해졌다.
“공작님, 제가 유배된 이후에 태어나는 바람에 한 번도 보지 못한 사촌누이가 있습니다. 이번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유학을 가게 됐다는데, 어린애가 타지에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걱정입니다. 괜찮으시면 공작님께서 안부라도 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얀코프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나이 어린 사촌 동생이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혹시 도움을 줄 수 있겠냐고 요청했다.
“물론이지요. 선생께서는 제 동포들을 위해 애써 주신 분 아닙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 하지요.”
이선은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간 후 마르가리타를 만났다.
“마르가리타 얀코프스카 양이시죠?”
“네, 그렇습니다만……. 어쩐 일이시죠?”
“아, 미하일 얀코프스키 씨의 편지를 전하러 왔습니다.”
“네? 정말요?”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마르가리타는 귀족 영애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스몰니 여학원에 갓 입학한 상태였다.
마르가리타는 소문이 자자한 화제의 ‘동양인 공작’이 자신을 만나기를 청하자 처음에는 의아해하다가, 멀리 유배 갔던 사촌의 편지를 전해 주자 크게 기뻐했다.
이후 10년간, 이선과 마르가리타는 친구로서 우정을 쌓았다. 두 사람 모두 외지인이었고, 내심 귀족사회를 경멸해 마음 둘 곳이 그리 없었으며, 총명하고 지적 호기심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선이 공무와 사업상의 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자주 비우고, 마르가리타 역시 당대 여성으로는 드물게 의대에 진학해 학업에 매진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이선은 마르가리타의 총명함과 진취성을 좋아했다. 틈틈이, 마르가리타가 시간이 되는 날에는 불러내 함께 대화를 나누곤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모처럼 좋은 가을 날씨였다. 해는 쨍쨍하게 빛났고, 날씨는 포근했다.
이 좋은 날에, 이선은 마르가리타와 함께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도시에는 극히 드문 동양인, 더욱이 황실과 가까운 유일한 동양인 이선을 알아보는 이들이 많았으므로,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여인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이들도 적잖았다.
마르가리타는 그러한 시선에 피곤함을 느꼈고, 종종 이선을 만나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이를 눈치챈 이선은 일부러 황실 사유지인 페테르호프나 차르스코예 셀로의 정원으로 마르가리타를 데려가 함께 산책하곤 했다. 당연히 일반인에게는 비공개지만, 이선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
니콜라이는 흔쾌히 허가를 내주면서도, 마르가리타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황실 정원을 출입하려면 신분 조사가 필요했고, 니콜라이는 흥미로워했다.
“설마 이 폴란드 아가씨, 자네가 좋아하는 여인인가?”
“오랜 친구라고 해 두지.”
“아, 뭐 부끄러워하지 말게. 폴란드 여자들이 매력적이지. 알다시피 내 애인도 폴란드 여자잖나. 그런데 폴란드 여자들 고집이 좀 세야지.”
여성 관계가 문란하기로 악명 높은 로마노프 황실에서, 니콜라이는 굉장히 점잖은 편에 속했다. 결혼 전에 정부(情夫)를 두는 건 황실의 관례였으므로, 니콜라이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제국극장의 무용수 마틸다 크셰신스카(Mathilda Kschessinska)와 연인 관계가 되었다.
“당연히 자네가 알아서 하겠지만, 결혼은 안 돼. 격이 안 맞잖아. 자넨 공작인데 저쪽은 허울뿐인 귀족이더군. 더군다나 부친은 사면받았다지만 1863년 반란에 가담한 정치범 경력도 있고. 애인은 어디까지나 애인으로 끝내고, 결혼은 격이 맞는 명문가 여인과 해야지.”
마틸다는 매력 못지않게 야망도 대단해서, 황태자인 니콜라이조차도 버거워했다. 니콜라이가 곧 있을 결혼과 결별을 예고하자, 마틸다는 다른 황족을 애인으로 삼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거참, 조선 속담에 이런 말이 있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 마시지 말라고.”
“무슨 뜻인가?”
“설레발치지 말란 소리야. 무슨 결혼 같은 소리하고 있어. 친구라고, 친구.”
“아, 그래. 친구. 알겠네.”
이선은 선을 그었지만, 그의 심리에 미묘한 변화가 없는 건 아니었다.
“이런 데 내가 와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황궁 정원을 거닐던 마르가리타가 문득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이선이 빙긋 웃었다.
“나는 황실의 손님이고, 당신은 내 손님이니까, 안 될 거는 없지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거, 아시잖아요?”
물론 이선은 마르가리타의 숨은 뜻을 짐작했다. 로마노프 왕조의 통치에 반대하는 그녀가 황궁 정원을 거닌다는 게 아이러니하다는 의미였다.
“뭐 어때요? 이곳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 되죠. 모처럼 좋은 날씨에, 아름다운 장소 아닌가요.”
“그래요, 너무나도 아름답죠. 건축의 화려함에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이에요. 그런데 이 엄청난 부(富)의 근원은 뭐죠? 황실과 귀족들에게 부를 제공하는, 절대다수의 러시아 인민은 어떻게 살고 있죠?”
마르가리타의 깊고 파란 눈에는, 황궁에 대한 찬탄과 경멸의 감정이 교차되어 있었다. 이선은 그 감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가 처음 왔을 때도, 똑같은 감정을 느꼈으니까.
“흠, 긍정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뭘요? 차르의 통치를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라고요?”
“아니, 그게 아니라. 언젠가 이 황궁과 정원이 황실과 귀족만이 아니라, 인민 대다수가 향유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 생각해 보라는 거지요.”
이선은 이선우로서 21세기에 방문한 바 있었으므로, 황실 사유지가 아니라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열려 있는 미래를 알고 있었다.
“…… 귀족 중에 그런 엄청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공작님밖에 없을걸요.”
“뭐, 난 결국 외부인이니까. 물론 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건 비밀입니다.”
물론 이 대화는, 오직 두 사람만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신이 내가 유일하게 알고 지내는 귀족이에요.”
“나도 당신이 유일하게 알고 지내는 혁명가지.”
“혁명가는 무슨, 그저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하는 얼치기 의사죠.”
마르가리타는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에 있었다.
“여긴 비현실적으로 아름답지만, 현실은 정말 끔찍하고 비참해요. 지난 2년간 기근과 전염병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아시죠?”
“내가 구호위원회의 일원인데 모를 수가 없죠. 사망자가 족히 50만 명은 될 겁니다. 끔찍한 일이죠.”
몇 년 전부터 나타난 이상기온으로 인해, 러시아는 파멸적인 영향을 받았다.
1890년에서 91년으로 접어드는 겨울은 가혹했고, 91년 봄부터는 100일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에서 우랄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역에 대기근이 찾아왔다.
자연재해 못지않게 심각한 건, 러시아 정부의 무능한 대처였다. 초기 산업화 단계에 있는 농업국 러시아의 가장 큰 수출품은 농산물이었다. 산업화에 필요한 자본 획득이 필요한 러시아 정부는 기근이 심각해진 8월까지 곡물 수출을 막지 않았고, 그 결과 농민 구호에 쓰일 수 있는 상당한 곡물이 해외로 수출되었다.
결과는 파멸적이었다. 대기근에 이어 취약해진 농민의 건강상태를 전염병이 공격했다. 1891년-92년에 걸쳐, 약 4-50만의 농민이 기근과 전염병으로 사망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기근’이라는 표현을 언론에서 보도하지 못하도록 틀어막던 러시아 정부도,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부는 국민에게 단결과 지원을 호소했고, 그럼으로써 역사의 분기점이 탄생했다.
젬스트보(지방의회)를 중심으로 각종 구호위원회가 설립되어, 전제군주제인 러시아에서 공공여론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 성향의 지식인들은 농민을 구호함과 동시에 정부 조치를 비판했고, 전제정에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수많은 유명 지식인, 대표적으로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 같은 유명작가들도 구호 활동에 나섰다. 이미 러시아 최고의 유명인사였던 톨스토이, 그 자신이 의사였던 체호프는 직접 현장을 누비며 농민들을 구호했다.
러시아 정부도 황태자 니콜라이를 위원장으로 하는 특별구호위원회를 구성해 공적자금으로 농민구호에 나섰다.
이선 역시 구호위원회의 위원을 맡아, 기근 현장을 둘러보고 구호 행정을 조직하는 일을 맡았다. 동시에 상당한 구호금을 기부했다. 평상시 지나친 부의 과시를 꺼린 이선이지만, 1891년도 소득의 대부분을 기부금으로 흔쾌히 쾌척(快擲)했다.
막대한 기부금에 이선은 러시아 조야(朝野)의 칭송과 존경을 받았지만, 그 자신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이 나라는 답이 없다. 국가는 강대하지만 국민의 삶은 취약하기 짝이 없어. 역시 유사열강이야. 덩치 큰 조선일 뿐인가. 아니, 조선을 개혁하는 게 러시아를 개혁하는 것보다 훨씬 쉽겠다.’
농촌의 상황은 처참했다. 천재지변도 문제지만, 러시아의 거대한 덩치를 조종할 수 없는 미약한 행정력이야말로 재앙의 근원이었다.
미래의 황제 니콜라이의 최측근이 되어 대제국을 개혁할 야망도 품어 봤지만, 제국의 부가 집중되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의 상류사회가 러시아 절대다수와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 현실을 목도한 이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애초에 내가 러시아에 그만한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 앞가림이나 잘하고 살아야겠군. 아니, 그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이선은 러시아제국 체제의 수혜를 누리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 한계를 직시했다.
근래 이선이 특히 가깝게 지내는 인물은 체호프였다. 체호프는 작가인 동시에 의사였고, 구호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이선과는 공적, 사적으로 친분을 맺게 되었다.
이미 65세인 톨스토이는 이선보다 나이도 한참 많은 데다 구름 위에 떠 있는 사람 같았으므로, 33세의 떠오르는 청년 작가인 체호프와 친밀감을 느끼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선생의 사할린 탐방기, 정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 역시 극동에서 온 사람으로서 시사한 바가 많더군요.”
“공작께서는 극동위원회의 일원이시니, 극동지역의 처참한 현실이 개선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890년 체호프는 당시 러시아에선 오지의 끝인 사할린을 방문해 3개월간 체류하며, 사할린 인구의 대부분인 원주민과 유형수들의 삶을 조사했다. 체호프는 사할린에서 많은 하층민 유형수를 만난 뒤 사회적 약자의 처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선은 제국 극동위원회의 위원으로서 극동 문제에 관여했는데, 특히 연해주 지역과 고려인 문제에 대해서는 최고 전문가로 통했으므로 나름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공작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건 단순히 질병의 문제가 아닙니다. 언론에서 떠드는 것처럼 단순히 농민이 불결하게 살아서 전염병의 온상이 되는 게 아닙니다. 이들의 처참한 영양 상태, 비좁은 집에 모여 사는 거주형태, 열악한 위생 환경, 온갖 총체적인 문제가 만들어 낸 참사입니다. 무엇보다 당국의 무능과 무관심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체호프는 작품 활동도 중단하고 현장을 돌아다니며 무료로 진료를 했고, 이선은 사재(私財)를 털어 가며 체호프에게 아낌없는 후원을 베풀었다.
기근과 전염병이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마침내 잠잠해진 후, 비참한 현실에 열변을 토하던 체호프는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러시아 자체가 병들었습니다. 어쩌면 이 나라, 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의사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선이 황태자와 절친한 관계임을 생각해 보면, 위험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이선은 체호프의 ‘진단’에 동의했다.
“맞습니다, 국가를 치료할 의사가 필요하지요. 하지만 체제의 근본적인 변혁 없이는 치료가 쉽지 않을 겁니다. 뭐, 나도 그 체제에서 온갖 혜택을 누리는 사람이라서 말하기 민망합니다만.”
“공작님은 다른 귀족들과 다르지요. 외부인 출신으로서 바라보는 시각이라서 그런지, 시선이 굉장히 예리합니다. 그러니까 저도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다른 귀족 나리들이라면 어림도 없겠지요.”
“그렇긴 합니다. 아무튼, 이제 한숨 돌리게 되었으니, 선생께선 문학 활동에 계속 집중해 주십시오. 역사는 안톤 체호프를 의사나 정치가보다는 작가로 기억하길 바랄 겁니다.”
“하하, 저는 그릇이 작아서 불평 이상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쓰고 싶은 글이나 쓰면서 살아야지요. 희곡을 준비하고 있는데, 다음 연극 상연에 공작님을 가장 먼저 초청하겠습니다.”
“그거 영광입니다, 하하.”
체호프의 사할린 체험, 대기근과 전염병의 경험이 문학의 방향을 바꾸었듯이, 마르가리타도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의사로서 구호현장에 투입되기 전까지, 마르가리타는 내심 폴란드의 독립을 꿈꾸는 애국주의자였다. 그녀는 조국이 러시아제국의 압제에서 벗어나길 원했고, 러시아 그 자체에 반감이 있었다.
“하지만 깨닫게 되었죠. 러시아 농민과 노동자들도, 차르 전제정권의 비참한 희생자임이 마찬가지라는 걸.”
“그래서,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하게 되었다?”
“그래요. 이 나라는 영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의회주의적 개혁조차 불가능하잖아요? 근본적인 사회혁명 말고는 대안이 없어요.”
황궁 정원을 떠나 카페의 조용한 별실로 자리를 옮기자, 마르가리타의 어조가 더 높아졌다.
당대 지식인들을 풍미하는 사상은 사회주의, 특히 자유주의적 정치가 좌절된 러시아에선 급진적 마르크스주의가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이제 나도 당신과 꽤 가까워졌나 보군요. 이런 이야기를 버젓이 하는 걸 보면, 동지라고 생각하는 건가?”
“착각하지 마요. 압제자의 벗인 당신은 나와 친구는 될 수 있어도 동지는 될 수 없어요.”
말은 그렇게 해도, 마르가리타는 미소 짓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친밀하고 신뢰할 수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이선은 그녀의 미소가 아름답다고 느껴지면서도, 욕망을 절제했다.
“니콜라이는 당신 생각보다 좋은 사람인데.”
“압제자의 인격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가 어떤 통치를 할지가 중요하지. 지금 차르를 생각해 보면, 별 기대가 되지 않는군요.”
알렉산드르 3세는 선제 알렉산드르 2세의 개혁조치 대부분을 철폐한 반동적 군주고, 니콜라이도 할아버지가 아닌 아버지를 통치 모델로 삼고 있으니 적절한 지적이었다.
“그래도 위험한 일은 하지 마요. 의사로서의 활동에만 집중해요. 당신이 배운 의술은, 이 시대 여성으로서 흔치 않은 성과니까. 의사로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선은 우려를 담아서 말했다. 러시아제국은 정치범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그는 마르가리타가 정치범으로 체포되는 미래를 원치 않았다.
“물론 지금까지 어렵게 공부했는데, 의학에 집중해야죠. 내년에 수련을 마치면 바르샤바로 돌아가 소아과를 개업할 생각이에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어요.”
“좋은 생각이군요,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이선은 작별을 예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요? 계속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겠지요?”
“아니, 내년에는 나도 새로운 길을 찾아가 볼 생각입니다.”
“새로운 길이요? 어떤?”
마르가리타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이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내 고향, 조선으로 가는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