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84
– 84화에 계속 –
84화 대서양 횡단
“가장 중요한 건, 왕자의 능력과 가능성, 인품입니다. 나는 왕자께서 앞으로 조선과 동양을 넘어 세계적인 인물이 되리라는 데 걸어보겠습니다. 앞으로 투자를 아끼지 않도록 하지요.”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선의 감사 표시에 모건이 손을 내저었다.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 역시 이익을 바라고 투자하는 거니까요. 먼저 100만 달러를 투자하지요.”
조선이 미국 정부에 빌려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한 차관 액수가 300만 달러라는 점을 생각하면, 과연 모건이 엄청난 갑부임을 새삼 느끼게 했다.
“100만 달러라. 그렇다면 조건은 무엇입니까?”
“앞으로 왕자께서 하시는 일에 내가 동참하는 거지요. 자, 그럼 앞으로의 복안을 듣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간략히 말씀드리지요…….”
이선과 모건은 한참 밀담을 나눈 다음, 서로 만족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만남은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대 이상의 회동이었습니다. 앞으로의 일이 기대되는군요.”
이선과 모건은, 한배를 타게 된 동업자로서 악수를 하였다.
모건이 이선에게 100만 달러를 투자했다는 소문은 곧 퍼져나갔다. 전 대통령 그랜트의 보증에 이어 금융 황제 모건의 투자 소식까지 전해지자, 뉴욕의 투자가들이 일제히 조선 공채에 몰려들었다.
“그랜트의 보증에 모건의 투자까지?”
“그 모건이 투자했다면 이유가 있겠지!”
그랜트와 모건의 이름값은 엄청났다. 짧은 기간 동안, 조선 공채에 100만 달러가 모여들었다.
단기간에 200만 달러를 끌어모으는 데 성공한 이선은, 조선의 개혁에 필요한 시급한 자금을 확보하게 되었다.
70여 일에 걸친 보빙사의 미국 일정은 10월 12일 백악관에서 아서 대통령을 예방하고 고별인사를 전하면서 끝났다.
미국을 방문한 목적 중 차관 교섭은 실패로 끝났으나, 모건을 비롯한 자본가들로부터 투자를 받았으니 상관없었다.
대신 미국은 행정을 도울 고문관 파견에 동의했고,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장본인인 슈펠트 제독이 물망에 올랐다.
세간에는 이선이 그랜트 전 대통령을 조선으로 초빙했고, 곧 조선을 방문하려 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근대적 학교를 세울 교사 파견은 더욱 흔쾌히 응해, 교육부에서 엄선한 인재들을 보내주기로 하였다.
“미합중국 정부와 미국민의 호의로, 우리 조선 사절단은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사절단원들의 미국 경험과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들은 가장 번영하는 근대 문명의 질주 앞에서 굉장한 인상을 받았고, 확고부동한 근대화 지지자가 되었다.
“우리는 조선에서 전기등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미국에서 여러분은 전기등이 가스나 등유보다 더 싸고 더 나은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험을 거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도달한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할 것입니다.”
기자회견의 고별사에서 유길준이 대표로 사절단의 향후 목표에 대해 언급했다.
이는 이선이 에디슨에게 했던 말을, 유길준이 인용한 것이었다.
조선 최초의 미국 유학생으로 내정된 유길준은 열성적으로 영어 공부를 했고, 몇 달이 지나자 웅변이 가능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에 이선은 기자회견을 유길준에게 맡긴 것이었다.
그의 말처럼, 조선이 향후 나아가야 할 길은 ‘서양 문명이 도달한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는 것이었다.
사절단은 미국을 둘러보면서 세상이 얼마나 급변하고 있는지, 또 조선이 살아남으려면 그들의 문명을 빠르게 흡수해서 적응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인지했다.
사절단 중에서 보수적이었던 부사 박정양조차도 귀국하면 급진적인 개혁 정책을 시도할 필요성을 절감할 정도였다.
“미합중국 정부와 미국민 역시, 조선 사절단의 방문에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아무쪼록 사절단의 미국 방문이 양국의 우호 친선의 상징이 되길 바라고, 조선의 개혁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이때 대통령은 전권 대신 이선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전권공사께서는 사절단을 이끌고 유럽으로 가려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조선과 수교한 국가들과 수교 예정인 국가들을 방문하려고 합니다. 이 또한 사절단의 중요한 목적이지요.”
“기선을 여행지마다 매번 갈아타는 건 번거로운 일일 터이니, 미합중국 해군이 전용선을 내어 드리겠습니다. 대서양을 건너 유럽 일대를 순방하고, 수에즈 운하와 아시아를 거쳐 조선으로 귀국하는 편까지 모두 미국 해군이 책임지고자 합니다. 물론 이에 따른 비용도 미국 정부가 부담할 것입니다.”
새로운 제안에 대해 이선은 잠시 고민했다.
‘저쪽에서 군함도 내주고 비용 부담까지 해준다는데 고마운 일이지. 하지만 미국 군함을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편리함이나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 상징성의 문제였다.
‘미국 군함을 타고 돌아다니면, 미국이 조선에 베푸는 호의와 영향력을 세계에 광고하는 셈이지. 미국 정부의 뜻도 거기에 있을 거고.’
조선 사절단이 미국에서 엄청난 환대를 받으면서, 열강 중에는 미국이 이제 막 수교를 맺은 조선에서 너무 독주하려 한다고 불평을 쏟아내는 나라도 있었다.
‘다행인 건 미국이 적대 중인 열강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영국이나 러시아, 프랑스나 독일 군함을 타고 다닌다는 건 다른 한쪽의 국가를 적으로 돌린다는 의미. 하지만 미국이라면 그럴 염려가 없지. 오히려 차르와의 특별한 관계로 인해 유럽에서 친러파로 인식되는 내 이미지를 일신할 수 있다.’
이선은 결정을 내렸다.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미합중국 정부와 대통령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하하, 좋습니다. 여러분이 탔던 USS 트렌턴을 사절단의 전용선으로 내어드리겠습니다.”
조선 사절단이 브루클린에서 시승했던 군함 USS 트렌턴은, 세계최초로 전기 시설을 탑재한 군함이었다. 미국은 최신 군함을 조선 사절단의 전용선으로 빌려준 셈이었다.
이렇게 됨에 따라 이선과 더불어 조선 최초의 세계 일주 항해를 할 사람들로는 홍영식, 민영익, 서광범, 변수, 김학우, 안영흠, 장무영 총 8명이었다.
다른 이는 미국 유학을 위해 잔류할 유길준을 제외하고 부사 박정양과 함께 귀국길에 오르기로 했다.
“참으로 뜻깊은 여정이었습니다. 성상께 우리가 보고 느낀 모든 것을 복명하고, 조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할 것입니다.”
박정양은 미국에서 경험한 바를 임금과 대원군에게 알리고, 개혁의 방향을 조선 정계에 공유하게 할 예정이었다.
“그렇습니다. 박 공께서 성상과 국태공께 말씀을 잘 전해 주십시오.”
그래서 이선이 관록 있는 사대부이자 중견 관료인 박정양을 부사로 데려오고, 먼저 귀국시키는 것이었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군 대감께서도 아무쪼록 무사히 여정을 마치길 바랍니다.”
박정양을 따라 귀국하는 최경석, 고영철, 현흥택, 이상재, 이채연 등도 각자 시찰 한 바에 따라 목표를 정하고, 조선에서 할 일을 꿈꿨다.
사절단원 뿐만 아니라 사행 과정에서 여러 도움을 준 로웰과 미야오카, 오례당도 함께 조선까지 가기로 정했다.
10월 16일 박정양 이하 사절단 2진은 왔던 길을 되짚어 조선행 귀국길에 올랐다.
유길준은 매사추세츠의 예비 대학 과정에 입학하였다. 28세로 대학 입학에는 적지 않은 나이에다 미국식 교육을 받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미국 교육부가 특별한 혜택을 주어 예비 과정 진학을 허가했다. 예비 과정에서 2년간 공부한 후 대학 진학을 할 예정이었다.
“제게 특별한 기회가 주어진 만큼, 과거 공부할 때보다 몇 배는 더 열심히 공부할 생각입니다.”
유길준은 엄청난 열의를 보이며,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하버드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했다.
“좋소. 아무쪼록 열심히 공부하시오. 반드시 그 지식이 조선을 위해 쓰일 날이 올 겁니다.”
미국 군함의 준비를 기다리며 시찰을 이어나가던 사절단은, 마침내 미국 측의 준비도 끝났다는 통보를 받았다.
뉴욕항에서 이뤄진 조선 사절단의 환송식에 나선 이는, 바로 그랜트였다.
“각하께서 베푸신 호의를 잊지 않겠습니다.”
“별말씀을. 나도 곧 조선으로 가게 될 날을 기대합니다. 그때 조선의 좋은 술을 대접해 주는 걸로 보답해주시구려, 하하하.”
“물론입니다. 최고의 칙사 대접을 해드려야지요.”
이선은 그랜트를 조선에 정식으로 초청했고, 그랜트는 예전에 중국이나 일본을 여행했던 것처럼 개인 자격으로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물론, 그랜트는 평범한 개인일 수가 없지.’
그랜트가 조선에 오면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고, 그 자체로 엄청난 효과가 있었다.
11월 1일, 이선은 조선 사절단 7명과, 이들의 수행을 맡은 포크 소위, 미 해군 요원들과 USS 트렌턴을 타고 뉴욕항을 떠났다.
목적지는 구대륙, 즉 유럽이었다.
뉴욕을 출발한 USS 트렌턴이 대서양을 횡단해 나가기 시작했다.
별 탈이 없었던 태평양 항해와 달리 대서양 항해는 폭풍우에 휘말려 적잖은 고생을 했다. 폭풍우는 꼬박 3~4일간 이어졌고, 대서양의 험난한 파도 앞에서 배는 꼭 침몰할 것처럼 이리저리 기울어졌다.
사절단 일행들은 의연히 넘겼으나, 이런 경험이 모두 처음인지라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폭풍우가 무섭긴 무섭구나. 이래서 빨리 비행기가 개발되어야…….’
이선은 어서 비행기의 시대가 오기를 열망했다. 그 자신이 기술혁신을 촉진 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민영익은 갑자기 좌불안석이 되어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민영익은 극도의 공포에 빠져 포크를 붙잡고 애원했다.
“유럽에 도착하는 즉시 조선으로 가는 다른 배편을 알아봐 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 항해는 미국 정부의 우의로 제공된 것인데 민 공께서 이를 저버리는 것은 친구로부터 받은 선물을 던져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미국 정부와 대통령의 호의를 저버리지 마십시오.”
포크의 강경한 태도에 이선도 동의를 표했다.
“맞습니다. 예정대로 여정을 진행하도록 하지요.”
태풍이 잠잠해진 이후 민영익은 여정을 계속하겠다고 동의했으나, 이후에는 선실에 틀어박혀 조선에서 가져온 유학 경전만 읽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꼼꼼히 적어가며 공부해나가는 홍영식, 서광범 및 변수와는 대조적인 태도라, 포크는 혀를 끌끌 차면서 이선에게 말했다.
“배를 타기 전만 해도 내가 대서양의 폭풍우는 매우 매섭다고 충고한 바 있었지요. 그런데 민 공은 이미 황해에서 폭풍은 경험해 봤다며 전혀 두렵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내 평생 배를 타면서 이렇게 폭풍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본래 일본어에 능통했던 포크는 사절단을 수행하면서 어느새 조선어에 상당히 익숙해져, 별다른 통역을 거치지 않고 조선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런 경험 자체가 처음이니 두려워할 수도 있겠지요.”
“심약한 것은 이해가 될지라도, 정부가 정한 일을 쉽게 뒤엎으려는 태도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미국 정부가 이 여행을 제안한 것은 조선 조정을 이끌어나갈 젊은 관리들이 세계를 여행하며 많은 것을 보고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각하께서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들도 그 기대에 충분히 충족하고 있습니다만, 민 공은 집에 가고 싶은 마음만 강한가 봅니다.”
포크의 우려처럼 이선도 민영익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민영익은 늘 예민했고, 사소한 일로 불안함을 느꼈다.
이선은 그 이유는 이해할 수 있었다. 중전의 총애를 받아 너무 이른 나이에 출세를 거듭했다가, 가문의 갑작스러운 몰락을 경험했다.
김옥균과의 친분 덕에 민씨 중에서 오직 그만 관직에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이선도 특별히 민영익을 보빙사에 합류시켰다.
하지만 이선은 점점 민영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신분의식이 투철한 민영익은 왕자인 이선은 깍듯이 모셨다. 하지만 다른 양반들과는 동등하게 대해도 중인 출신인 변수나 김학우는 완전히 아랫사람 취급하고 있었다. 완화궁의 가신 출신인 안영흠이나 장무영과는 거의 말도 섞지 않았다.
지금은 돌아간 무관 현흥택은 원래 민영익의 추천을 받고 군문에 들어간 사람이라 그런지 거의 하인 취급을 한 바 있었다.
사람이 호인(好人) 그 자체인 홍영식이나, 만사에 열려있는 유쾌한 성격의 서광범과 비교하면 민영익이 가진 성격의 흠은 더 커 보였다.
‘여행을 함께 다니면 본성을 알 수 있다더니. 아무래도 민씨와 나는 태생적으로 친해질 수 없는 사이인가 보다.’
이선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번 여정을 통해서 앞으로 누굴 중용하고 누굴 쓰지 않을지 윤곽이 잡혔다.
USS 트렌턴은 거센 폭풍우를 헤치고 포르투갈령 아조레스 제도에 이르렀다. 사절단 일행은 대서양의 절해고도인 아조레스를 방문한 최초의 조선인이었기에 현지의 엄청난 주목을 받았고, 미국 영사관의 환대도 받았다.
아조레스에서 잠시 머물며 보급을 마친 USS 트렌턴은, 다시 항해를 시작해 11월 26일 영국령 지브롤터에 도착했다.
대서양 횡단을 마치고, 마침내 유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