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86
– 86화에 계속 –
86화 나비효과
‘고든을 신생 조선군의 고문관으로 데려올 수 있다면,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첫째, 친러파라고 의심되는 나에 대한 영국의 의심을 불식시킬 수 있다.’
이선이 여러 후보군 중에 고든을 선택한 건, 여러 가지 이유에서였다.
‘둘째, 청나라 역시 차이니즈 고든을 신뢰한다. 특히 이홍장의 신뢰가 두텁지. 서양인 고문관을 데려와 독자적으로 강력한 조선군을 만들면 의심을 받겠지만, 적당히 무마시킬 수 있다.’
외교적 요인 말고도, 고든 자신의 매력도 있었다.
‘셋째, 상승군 사령관과 이집트군 고문관 경력을 보면, 능력과 인품이 모두 보장된 인물이다. 유능하고, 물욕도 없고, 대신 신앙심과 명예심은 강하지. 수단도 갈 계획이 없었는데 결국 받아들인걸 보면, 말하기에 따라서 조선도 갈 수 있다는 말.’
“다시 동양으로…….”
고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저는 조선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습니다.”
“장군이 청나라, 인도, 이집트, 수단에 갔었던 건 그 나라에 대해 잘 알아서가 아닐 것입니다. 신의 인도가 있기 때문이었겠지요. 조선은 이제 막 세계에 문호를 개방했으며, 기독교에 대한 금령도 해제할 것입니다. 이제 막 서양식 군대를 창설하려는 나라, 서양의 기술과 사상을 열성적으로 흡수하려는 나라. 신의 인도라고 여기지 않으십니까?”
이선의 말에, 고든의 마음이 움직였다. 확실히 가시밭길이 예상되는 수단보다 조선이 더 매력적인 곳이었다.
“흥미로운 제안임은 틀림없군요. 하지만 저는 결국 군인이라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정부가 허용할지 의문입니다.”
“장군은 언제나 장군의 뜻대로, 아니 신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까? 신념을 갖고 행동하면 신께서 인도하실 겁니다.”
고든은 장고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에 청원을 해 보겠습니다.”
‘고든이 수단으로 가서 죽지 않는다면, 고든 자신뿐만 아니라 글래드스턴도 내게 고마워할 일이지.’
1885년 1월, 하르툼에서 마흐디 군대에 포위되어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고든의 죽음은, 영국의 대중적 여론을 격분하게 했다.
글래드스턴이 수단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꺼려 고든을 죽게 내버려 두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이전까지 ‘G.O.M(Grand Old Man, 위대한 노인)’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으로 불리던 글래드스턴은 ‘M.O.G(Murderer of Gordon), 고든 살해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었다.
1885년 총선을 앞두고 외교 정책이 유약해서 고든을 죽게 만들었다는 보수당의 정치적 공세에 시달리던 글래드스턴은,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와 영국의 보호국인 아프가니스탄 간에 국경분쟁이 발생하자 뜻밖의 강경책을 내민다.
러시아에 대한 전쟁을 각오하고, 대 러시아 봉쇄를 감행한 것이다.
그 첫 번째 타겟은, 뜻밖에도 포트 해밀턴, 즉 조선의 거문도였다. 거문도를 점령해 블라디보스토크를 공격하는 전진기지로 삼으려 했다.
세간에 알려진 조선-러시아 밀약설 때문에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궁지에 몰려있던 글래드스턴 정부의 외교 정책 전환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든의 죽음이 거문도 점령까지 나비효과를 일으키다니, 역사의 전개란 참 알 수가 없어.’
임박해 보였던 영국과 러시아 간의 전쟁은, 양국 간의 극적인 타협으로 국경분쟁이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영국은 거문도에서 철수하지 않고 2년간 더 눌러앉아 있었다.
이때, 영국이 당사자인 조선에는 통보하지 않고 청나라와 일본에만 일방적으로 점령을 통보해, 조선은 나중에 청나라를 통해 점령을 알게 되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2년 뒤에 영국이 철수한 것도, 결국 청나라와 러시아의 합의를 이룬 후의 일이었다. 얼마나 영국이 조선을 무시했는지 알 수 있는 맥락이었다.
이선은 고든을 데려옴으로써, 이런 나비효과를 미연에 방지해 보려고 했다.
고든은 이선의 초빙을 수락하고, 정부에 청원을 넣었다. 수단에서 분쟁을 피할 생각인 글래드스턴은 고든의 수단행을 썩 탐탁지 않게 여겼으므로, 그가 조선에 간다고 하니 반색하고 환영했다.
친러파라고 의심이 되던 조선의 왕자가 직접 고든을 새 조선군의 고문관으로 데려간다면, 적어도 외교를 균형 있게 하려고 노력한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영국 정부는 이선과 조선에 대한 시각을 바꿨지만, 회견은 쉽사리 이뤄지지 않았다. 이들의 신경은 오로지 수단과 이집트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1884년 새해가 밝았다.
이선은 신문을 보고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프랑스와 청, 베트남에서 충돌! 전쟁 임박!
– 1860년 전쟁의 재현인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군. 일단 파리로 갑시다.”
고든의 조선행은 수락되었고, 올해 안으로 부임하기로 합의했다. 대략적인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영국 정부의 당국자를 만나지 못한 건 아쉬운 일이지만, 이선은 영국에만 목을 맬 생각이 없었다.
도버해협을 건너 파리에 도착하니, 프랑스 사회에는 전쟁 소문이 파다했다. 베트남을 두고 청과 갈등을 빚고 있는 프랑스가 곧 선전포고할 것이라는 풍문이었다.
1883년 12월, 프랑스 인도차이나 식민군이 북부 베트남 썬떠이(Sơn Tay)에서 저항하는 베트남 군대와 청국인 유영복(劉永福)이 이끄는 사병, 흑기군(黑旗軍)을 크게 격파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베트남은 프랑스에 맞서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했고, 청은 강경론과 온건론이 대립한 끝에 결국 파병을 결정했다.
1884년 새해가 되자 본격적으로 전쟁에 개입하여 5만 명을 투입시키기로 한 것이다.
프랑스 또한 의회에서 추가 군비 550만 프랑 증액을 통과시키고, 인도차이나를 향해 병력 1만 명의 증파를 결정했다.
이는 동양 정세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도 있는 소식이라, 사절단은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사절단은 프랑스 주재 청국 공사인 증기택을 예방했다. 이선과 안면이 있는 증기택은 반갑게 맞이했지만, 안색은 어두웠다.
“아무래도 법국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소.”
“북양 대신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중당은……. 뭐, 완화군도 잘 알겠지만, 전쟁을 꺼리고 가급적 외교적 해법을 찾고 싶어 하지요. 나는 이해할 수 있소. 지금 대청이 법국과 싸워서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니까. 하지만 조정에 서양에 반대하는 청류파가 득세하고 있으니, 중당의 처지도 심히 난처하외다.”
증기택도 외교적 해결책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지만, 타협이 불가능하리라는 걸 짐작했다.
“지금 법국 정부는 외교적 협상을 할 생각이 없소. 대청이 어떤 타협책을 내놓아도, 법국은 월남을 집어삼킬 생각이오. 그렇다면 맞서 싸울 수밖에.”
쥘 페리(Jules Ferry) 총리가 이끄는 프랑스 정부 역시 모험적인 제국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어, 전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이었다.
이선은 이대로 청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발발한다면 자연히 조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직감했다.
조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던 청은 자연히 관심을 베트남과 남방에 집중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조선은 청의 관심을 덜 받는 상황에서 자유롭게 개혁과 근대화 정책을 추진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섰다.
생각이 거기에 미친 이선은 하루를 일행과 떨어져 독자적으로 비밀리에 프랑스 외무부를 방문했다.
프랑스와 조선은 아직 수교가 없었으나, 공식적으로 이미 두 차례나 수교 협의가 있었고, 여러 프랑스 신부가 조선에 들어와 있었다. 단지 종교 문제만이 양국의 수교를 막는 걸림돌이었다.
동양 소년의 갑작스러운 방문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프랑스 외무부 관리는, 이선이 자신을 조선의 특명 전권 공사라고 소개하고 신임장을 내밀자 깜짝 놀라 대우가 달라졌다.
30분 뒤, 아시아 국장을 겸임하는 차관이 직접 이선을 맞이했다. 당시 외무장관은 내각 수상인 쥘 페리가 겸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무부의 실질적인 우두머리는 차관이었다.
“프랑스 공화국은 각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각하에 대해선 여러 가지 경로로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양국 간에는 공식적인 외교 관계가 없습니다만, 공적인 자격으로 오신 겁니까?”
“이번 방문은 사적인 방문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모든 말은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반드시 비밀을 지켜지시길 바랍니다.”
“그리하겠습니다.”
“귀국과의 수교 문제는 우리 국왕 폐하께옵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신 문제라 이를 알려드리고자 방문한 것입니다.”
“그렇군요. 프랑스 공화국 정부 역시 조선과의 수교를 원합니다. 하나 알다시피 종교 문제가 있지요. 더욱이 현재 집정자인 대원군은…….”
대원군과 가톨릭, 그리고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프랑스 사이에 어떤 악연이 있는지는 말하나 마나였다.
“제 부친이신 국왕께서는 종교 문제와 관계없이 신속한 수교를 원하십니다. 또한, 제 할아버님이신 대원군 역시 예전과 입장이 다릅니다. 가톨릭 탄압은 불행한 역사이지만, 이는 대원군께서 진심으로 원했다기보단 정치적 역학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제 친족들 중에는 오래된 로마 가톨릭 신자가 있습니다. 또한, 이미 조선 정부에는 기독교 신자가 있지만, 아무 문제 없이 공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선의 명백한 과장이었다. 과거 대원군의 일족 중에 천주교 신자가 있다는 것을 조선에서 아는 사람은 몇 명밖에 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기독교를 사교로 금지하는 조정의 원칙상 알려지면 곤란할까 봐 감추고 있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임금이나 대원군이 전교(傳敎) 문제를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단지 보수적인 사대부들의 반발을 우려하여 표면적으로 금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청과 일본을 견제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세력도 끌어들일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잘된 일이군요. 총리께 보고하고, 수교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조선은 이제 막 국제 사회에 개방하여,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조선이 공식적으로는 청나라의 조공국이라고는 하나 내정과 외교에는 자주권을 갖습니다. 이미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와 수교를 마쳤으니 프랑스도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선의 권유에 차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공화국 정부 역시 조선과 베트남이 속국이라는 청의 일방적인 주장에 전혀 공감하지 않습니다.”
“아, 귀국이 베트남에서 거둔 전승을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나 역시 동양인의 일원으로 정세에 대해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프랑스는 이제 본격적으로 청국과 전쟁에 돌입하는지요?”
의례적인 이야기를 하던 이선은 베트남 문제로 핵심을 찔렀으나 차관은 외교관 특유의 돌려 말하는 말투로 답했다.
“프랑스는 확전을 자제하고 가급적 중국과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논의하고 싶습니다. 프랑스 공화국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하하, 그런 것 치고는 베트남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의 규모가 작지 않던데요? 청국과 본격적으로 전쟁에 돌입한다면, 귀국과 일본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세간에는 프랑스와 일본이 연합하여 중국을 공격하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소문은 소문이지요. 모든 것은 사세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는 본관뿐만 아니라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차관으로부터 이 이상 유용한 정보를 얻어낼 것은 없을 것 같아, 이선은 화제를 전환했다.
“프랑스 은행들은 해외 투자가 굉장히 활발하더군요. 조선에는 개발되지 않은 수많은 미개척 자원들이 있습니다. 이를 개발할 자금이 부족한 조선으로서는 자본 투자가 꼭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본격적으로 자본 투자를 시행하기로 했지요. 이 점도 귀국 정부에서 고려했으면 합니다.”
이선이 진작부터 염두에 두는 것은 프랑스였다. 프랑스는 금융업이 발달하여, 프랑스 자본가들은 해외 투자에 상당히 진취적이었다.
약소국이나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공격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문제는 조선이 담보로 제공할 것이 있냐는 것인데, 다름 아닌 J.P 모건의 투자는 프랑스 입장에서도 확실한 보증이 될 터였다.
이선은 미국에 이어 프랑스 자본도 끌어들일 생각이 있었다.
‘특정 국가에 경제적으로 종속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지.’
“유념하겠습니다. 이른 시일 내로 논의해 보지요.”
이후에도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오고 갔으나, 양측 모두 공식적인 입장을 갖고 논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서 대화는 상당 부분 겉돌고 있었다.
“그럼 양국 간에 빠른 수교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조속히 외교관을 조선으로 다시 파견해 주십시오.”
작년에도 프랑스 외교관이 조선에 방문했으나, 결국 종교 문제로 지연되었다. 하지만 이선이 이제 개의치 않는다고 하였으니, 걸림돌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총리께 보고드리겠습니다. 양국 간의 중요한 문제가 합의되었으니, 조속히 수교가 이뤄지리라 전망합니다.”
이선은 차관의 환송을 받으며 외무부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