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0)
>10 화>
“몰라요. 그게 큰 문제가 되나요?”
“…….”
밀라이언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낸 카리나를 한 번 흘기곤 입을 열었다.
“그대는 거의 아슬아슬하게 문을 닫고 들어온 거야. 겨울의 공작령에는 웬만해선 아무도 오지 않는다. 상단과의 일도 뚝 끊기는 시기지. 그래서 공작령은 지금 겨울 동안의 비축을 쌓아 둬야 해.”
한심하다는 눈을 하면서도 밀라이언은 꽤 상세히 설명했다.
카리나의 경청하는 태도가 그리 나쁘지 않았기에 그는 기분이 조금 괜찮아졌다.
“그리고 한겨울이 되면 본격적인 마수 토벌에 나서지. 내 영지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사냥꾼의 기질을 타고났다. 어중이떠중이 맹수 정도는 영지민 서넛이 힘을 합치면 충분히 사냥도 가능하지.”
“와아…….”
카리나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녀가 있는 남부의 영지는 평화가 가장 장점인 곳이었다.
전쟁과는 가장 동떨어졌다.
아름다운 자연 광경이 주변에 널려 있고 가을이 되면 곳곳에 과실이 탐스럽게 열렸다.
카리나의 감탄사에 밀라이언의 어깨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척박하고 아무것도 없던 영지를 이 정도로 일궈 놓은 것은 모두 그와 전대 공작의 능력이었다.
그 때문에 밀라이언은 물론이고 북부령의 영지민은 영지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오죽하면 매년 시행되는 마수 사냥에 지원하는 영지민의 수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전체 영지민 수의 3분의 1에 달할 정도였다.
“어쨌든 그대는 거의 마지막 문을 닫았어. 조금만 더 늦었어도 들어오지 못했을 거다. 마수와의 싸움은 힘겹다. 그러니 영지령 밖으론 절대, 결코 나가지 말도록 해.”
“나갈 일도 없어요.”
카리나가 순순히 대답했다.
밀라이언이 못 미더운 눈으로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어지럽네.’
그녀가 이마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으슬으슬 추운 것 같기도 했다. 피로 때문인지, 아니면 벌써 노의원이 말한 문제가 생긴 것인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만 들어가서 쉬고 싶은데, 별택으로 바로 가도 될까요?”
“그게 편하다면 그러도록 해.”
“갑작스럽게 찾아왔는데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흔쾌히 허락한 적 없다. 쫓아 내려야 쫓아낼 수 없는 게 문제지.”
밀라이언이 굳이 꼬투리를 잡아냈다.
지금 돌아간다면 겨울과 맞닥뜨릴 거다. 마수의 기세가 사나워지는 시기였다.
어차피 밀라이언은 그녀가 여기에 온 시점부터 적어도 눈이 다 녹아내리고 추위가 가시는 늦봄이 될 때까지는 카리나를 쫓아낼 수가 없었다.
“어쨌든요.”
카리나가 가볍게 대답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은 찻잔을 보며 그가 옅게 웃었다.
“팽, 안내해 줘라.”
“알겠습니다.”
카리나가 밀라이언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했다.
“그래도 미안해요, 멋대로 굴어서.”
나가기 전 카리나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제 그가 별택을 찾아오지 않는 이상 두 사람이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다.
별택과 본 저택의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생활 반경이 겹칠 정도로 좁진 않았으니까.
갑작스러운 사과에 놀란 눈을 한 밀라이언을 뒤로하고 그녀가 순순히 팽의 뒤를 쫓아 나갔다.
“별택은 급히 준비하더라도 한 시간 정도 필요합니다. 따로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시녀도 필요 없고 시종도 필요 없고 식사도 혼자 할 수 있으니 식재료만 창고에 채워 주세요.”
“하지만…….”
“각하께서 직접 공작령 내는 안전하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공작저는 한층 더 안전하겠죠, 뭣보다…….”
팽의 뒤를 쫓아가던 카리나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여기에 들어오면서부터 입가에 띠고 있던 미소가 천천히 사라졌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온 거라서요.”
“……그래도 없는 것은 불편할겁니다.”
“정 안 될 것 같으면 각하께 말씀드릴게요.”
카리나가 강경하게 나오니 팽으로선 더 할 말이 없었다. 그가 결국 수긍했다.
그녀를 안내해 준 팽이 별택이 준비되면 다시 오겠다며 사라졌다.
카리나는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
“열이 좀 나나?”
제 스스로 능숙하게 이마를 짚은 그녀가 창밖을 돌아봤다.
백작저에서 추격자는 없었다.
무언가 바랐던 것은 아니지만…….
“레오폴드 백작령은 아무 일도 없대요? 뭐, 군사를 움직였다거나.”
“글쎄요. 거긴 늘 평화로운 곳이니까, 군사를 움직일 일이 뭐가 있겠어요.”
“아! 풍년이라는 얘긴 들었는데. 올겨울도 거긴 식량 걱정이 전혀 없을 거래요. 근데 백작령은 왜요?”
“……그냥, 궁금했어요.”
그녀의 말에 실없다며 웃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카리나가 침대에 가로로 드러누웠다.
그럼에도 즐거운 여행이었다. 평생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은 기억해 내지 못할 정도로.
“이제 추억 하나가 쌓인 건가.”
그녀가 중얼거렸다.
‘죽기 전까지 몇 개나 더 쌓을 수 있을까.’
앞으로 1년밖에 살 수 없다면, 모든 시간이 의미가 있길 카리나는 바랐다.
“편지를 보고 뭐라고 생각했을까?”
문득 떠오른 생각에 카리나가 고개를 돌렸다. 어쩌면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픽, 바람 빠진 웃음을 흘린 그녀가 눈을 감았다. 조금 더운 것이, 역시 열이 오른 듯했다.
* * *
두 달 전.
“세상에, 주인님! 아가씨가…… 카리나 아가씨가 없습니다!”
아침 식사가 막 끝나려는 때에 들린 목소리에 상석에 앉아 있던 백작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헐레벌떡 뛰어온 시녀는 손에 무언가를 꼭 쥔 채 숨을 몰아쉬었다.
“아, 노, 노크도 없이 들어와 죄송합니다.”
뛰어 들어온 시녀가 미간을 좁힌 백작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황급히 사죄했다. 고개 숙인 시녀를 바라보며 백작이 식기를 내려 놨다.
“그 아이는 종종 말없이 바깥에 일을 보러 가지 않느냐. 새삼스럽게 뭐가 그렇게 급해서 뛰어온 거지?”
뭘 그런 것으로 소란을 피우냐는, 타박 어린 목소리에 시녀가 조금 민망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더듬더듬 입을 연다.
“그게…… 아무래도 그냥 외출을 가신 것 같지 않아 보였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오늘 아가씨의 방을 청소하러 갔는데 책상 위에서 이런 쪽지를 발견했습니다.”
시녀가 허리를 숙이며 손에 쥐고 있던 작은 쪽지를 쭉 내밀었다.
백작이 편지를 받아 들며 반으로 접힌 쪽지를 펼쳤다.
그의 시선이 쪽지에 잠시 닿았다가 떨어졌다. 오래 볼 것도 없었던 것은 내용이 딱 한 줄이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납니다.]짧은 한 줄의 메모에는 떠난 이유에 대한 짐작조차 어렵게 했다.
레오폴드 백작이 아무런 말도 없자 백작 부인이 손을 뻗어 그의 쪽지를 가져왔다.
그녀도 한 줄짜리 메모를 읽곤 표정을 굳혔다.
“이게 무슨 말이지? 갑자기 말도 없이 어디로 여행을 간단 말이냐?”
“자,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오늘 아침 발견한 것이어서…….”
“카리나를 언제 마지막으로 봤지?”
목을 잔뜩 움츠린 시녀를 바라보던 레오폴드 백작이 덧붙여 물었다.
시녀가 굳은 몸으로 머리를 굴렸다. 마지막으로 언제 봤더라……?
“아! 이, 이틀 전에…… 외출하시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봤던 것 같습니다.”
“어제는?”
“어제는…….”
눈동자를 도르르 굴린 시녀가 주먹을 쥐었다 펴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어제 그녀는 카리나를 본 기억이 없었다.
시녀가 침묵 끝에 고개를 저었다.
“본 기억이 없습니다.”
“다른 이들은?”
“……잘 모르겠습니다.”
대답하는 시녀의 표정이 낭패감에 젖었다. 카리나는 워낙 존재감이 없는 주인이었다.
“너희도 어제 카리나를 보지 못했느냐?”
백작의 시선이 아벨리아와 페르던에게 향했다.
어제 인프릭은 일 때문에 집에 늦은 새벽에 들어왔으니 카리나의 행방을 알 턱이 없었다.
아벨리아와 페르던이 서로 시선을 마주하더니 이윽고 똑같이 고개를 저었다.
“어제는 누님을 보지 못했어요.”
“저도요. 방에도 안 계시기에 또 시장에 놀러 가신 줄 알았는데…….”
레오폴드 백작이 시선을 내려 다시 쪽지를 읽었다.
어디로 간다는 말도 언제 돌아온다는 말도 뭘 하고 온다는 말도 적혀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