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07)
>107 화>
들어오던 팽이 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곤 쓰게 웃었다.
“좋은 시간을 방해했나 보군요.”
“알면 빨리하고 나가 보지 그러나.”
“밀라이언!”
카리나가 벌겋게 물든 얼굴로 밀라이언을 불렀다.
사실, 팽이 눈치챈 것은 카리나의 사과보다 더 붉은 얼굴 때문이었지만 말이다. 물론 밀라이언의 사나운 눈빛도 한몫했다.
“네, 식사만 차리고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팽이 느릿느릿 데려온 시녀들을 불러들였다.
정말 누구 놀리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천천히 테이블에 식사를 놓는 그를 보며 밀라이언의 얼굴이 부들부들 떨렸다.
곧 폭발을 앞둔 화산처럼 이글 거리는 붉은 눈동자를 보며 팽이 웃음을 삼켰다.
‘……더 놀리면 정말 검이라도 뽑으실 기세군.’
그는 딱 밀라이언이 터지기 일보 직전에 허리를 굽혔다.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망할…….”
물러가나 마나, 이미 카리나는 김이 다 빠졌다는 표정이다.
전혀 내켜 보이지 않는 그녀를 보며 밀라이언의 얼굴이 한층 더 험악해졌다.
‘저놈 일부러 저랬지?’
자신을 놀리려고 일부러 그런 것이 빤히 보였다. 카리나를 품에 안고 있으니 성격대로 성질을 부릴 수도 없고.
밀라이언이 짜증스럽게 팽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푹 내 쉬었다.
“배가 제법 고플 텐데, 식사나 하지.”
“네…….”
카리나가 일어나려는 밀라이언의 눈치를 살폈다. 오늘따라 팽이 조금 늦게 나가는 건가 싶었는데…….
‘그 사이에 식었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입맞춤을 하다가 멈추는 법이 어디에 있는가. 카리나의 표정이 한층 어두 워졌다. 자신을 안은 채 일어나는 밀라이언을 보던 카리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밀라이언.”
“응?”
“팽이 또 들어오나요?”
“아니, 내가 부르지 않으면 들어오진 않을 테지. 왜?”
카리나의 눈동자가 도르르 굴러 갔다.
왼쪽으로 도르르, 오른쪽으로 도르르 굴러가던 그녀의 눈동자가 이윽고 다시 밀라이언에게 조용히 닿았다.
“근데 왜 안 해요?”
” 뭘?”
“……하던 거요.”
카리나의 말에 밀라이언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가 놀란 눈으로 카리나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벌렸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아니면 꿈을 꾸나?”
“아니, 그 괜찮아졌으면 안 해도 되고요. 밥 먹어요!”
카리나의 말에 밀라이언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도망가려는 그녀에게 그가 다급하게 입을 맞췄다.
반쯤 일어난 자신에게 카리나가 안긴 자세 그대로였다. 밀라이언의 혀가 카리나의 입술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래, 대답하지 않아도 돼.”
2주 전, 침대 위에서 했던 그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으응…….”
카리나가 낮은 신음을 흘리며 밀라이언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그를 따라 해 보겠다고 열심히 혀를 바르작거려 봐도 결국은 그에게 휘감겨 끌려 다니는 신세였다.
조금 불공평했다.
“그럼 그냥 내 연인이 되어 줘. 그대의 마지막까지 곁에 있을 권한을 줘.”
그러나 싫어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을 재촉하지 않았다. 살겠다고 답해 달라고 명령하지도 애걸 복걸하지도 않았다.
그저 순순히 물러나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모든 것을 인정하고 제게 연인이 되어 달라고 했다. 차마 그 말만큼은 거절할 수가 없어서……
카리나는 그날 처음,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심이라는 것을 부려 봤다.
죄책감도 미안함도 전부 털어 버리고 그저 이기적으로 그의 품에 안겼다. 그저 그것만으로도 그가 괜찮다고 해 줬으니까.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고 하겠다고 약속해 줘.”
“……약속할게요.”
그것이 그녀의 최선이었다. 오로지 그를 위한 최선.
카리나는 그를 품에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온 힘을 다 해, 힘껏.
“카리나.”
“네.”
“좋아해.”
귓가에 속삭여지는 목소리에 그녀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꿈과 같은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다. 버킷리스트에 적었던 수많은 일을, 그녀는 하나 둘 행하고 있었다.
“다친 곳은 없어요?”
“없어. 다치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정말요?”
“그래, 정말 없어.”
밀라이언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카리나의 눈이 가늘어지자 그가 냉큼 그녀를 의자에 앉혔다.
카리나의 눈초리가 한층 날카로워졌다. 밀라이언이 냉큼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주둔지를 옮길 거야. 조금 더 안쪽으로.”
“정말요?”
“응, 괜찮은 곳을 찾았거든. 거기선 조금 멀긴 하지만 겨울 산맥을 볼 수 있어.”
“와아…….”
카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멀어도 볼 수 있다는 것이 어디인가!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또 퐁퐁 샘솟았다.
요즘 그림은 페리얼의 감시하에서 그리고 있었다.
혹시나 참지 못하고 그림을 완성해서 기적을 일으킬까 봐 걱정 하는 것이 분명했다.
페리얼이 바쁜 날은 윈스턴이, 두 사람 모두가 바쁜 날은 종종 팽이 그녀의 곁에 머무르곤 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일으킬 수 있으니까.’
숲이라는 곳은 무척이나 특이했다. 신기한 냄새가 끝도 없이 퍼지는 곳이었다.
한 걸음 내디디면 냄새가 휙 달라지고 또 다른 곳으로 발을 내디디면 또 다른 향이 파고든다.
“발작은 없었나?”
“네, 없었어요.”
“카리나, 거짓말하지 않기로 했잖아.”
“……사실 조금 왔긴 했는데 괜찮았어요.”
“얼마나? 몇 번이나?”
“음…….”
카리나가 말없이 애꿎은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그는 매일 매일 이걸 물어보려고 한다.
매번 그는 전리품으로 하론을 가져오는 모양인데, 그 덕에 페리얼은 저녁만 되면 천막에 틀어 박혀서 식사도 거른다고 들었다.
카리나는 그냥 두 사람이 너무 걱정됐다.
‘밀라이언도 한 번씩 페리얼 막사에 가는 것 같고.’
윈스턴도 페리얼을 보조하면서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죄책감만이 스며든다. 괜한 희망으로 세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닐까?
“카리나, 내게 솔직해지기로 했잖아. 거짓말하지 말자고 했어.”
“……세 번이요. 그래도 그렇게 심한 통증은 아니었어요. 이상하게 이 숲에 들어온 뒤론 조금 통증의 세기가 약해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누군가 심장을 주무르고 쥐어뜯고 난도질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것이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웠는데, 지금은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참아 낼 수는 있었다.
머릿속을 파고드는 충동도 그럭 저럭 버텨 내고 있다.
끔찍한 통증이지만, 그나마 하론으로 된 팔찌를 차고 있어서 그런지 통증이 상당히 완화되었다.
“내일은 아예 하론이 든 마수의 시체를 가져다 달라더군.”
“페리얼이요?”
“그래, 확인해 볼 게 있댔어. 문제는 그걸 어떻게 찾느냐지.”
한숨을 내쉰 밀라이언의 목소리는 조금 피곤하게 들렸다.
마수의 시체를 가지고 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마수의 배를 가르지 않고는 하론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거다.
“헤르타는 말을 잘 들어요?”
“그대의 헤르타 덕분에 다른 헤르타에 대한 견제를 할 수고가 줄어들었다.”
카리나가 밀라이언과 함께 토벌을 가 달라고 부탁하자 헤르타는 생각보다 순순하게 그들을 따라 나섰다.
그리고 미친 듯이 날뛰는 모양이다. 덕분인지 여러모로 병사들과도 친분을 쌓은 듯했다.
“그놈이 하론을 먹더군.”
“……하론을요?”
“그래, 아깝긴 하지만 먹이 대신 그걸 먹는 것 같으니 주고 있어.”
밀라이언의 말에 카리나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러다가 이윽고 눈이 크게 뜨였다.
그녀가 낭패감 짙은 표정으로 황급히 밀라이언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그 얘길 안 했었구나.’
일전에 헤르타에게 들은 말을 물어본다고 하다가 잊어버렸다.
“그, 혹시 하론이라는 게 마수의 핵이라든가 그런가요?”
“마수의 핵?”
“네, 헤르타가 언젠가 제 생명 대신 마수의 핵을 먹었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물어본다고 하는 걸 깜빡했어요.”
밀라이언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수의 핵?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밀라이언이 고민했다.
마수의 핵이라니, 뭐였지? 한참 을 생각하던 그의 눈이 이윽고 크게 뜨였다.
“아…….”
그건 아주 오래전 북부가 제국의 땅이 아니었을 때나 불리던 이름이었다.
기억하는 이들도 현저히 적고 밀라이언조차 오래전 노인에게 들었을 뿐이었다.
“그래, 확실히 그렇게 불리기도 했었지.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다. 여기가 제국의 영토가 되기도 전의 일이야.”
밀라이언이 식기를 잡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이 한층 가라앉았다.
카리나가 고개를 끄덕이곤 이내 기울였다.
“그걸 제 생명 대신 먹었다는 건…….”
“기적을 일으키는 예술은 그대의 생명을 대가로 삼지. 누군 는 사지나 오감의 일부를 먹히는 것이겠고.”
“네.”
“그걸 대신할 수 있게 먹었다는 건, 하론이 기적의 대가에 지불하는 대체제가 된다는 건가?”
밀라이언의 말에 카리나의 눈이 크게 뜨였다.
헤르타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고서 하론을 찾아 먹었다. 그리고 그녀의 생명력을 가져가는 것을 스스로 멈췄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카리나가 놀란 눈으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