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08)
>108 화>
그녀가 기적으로 만들어 내는 이들은 이지가 있으면서 동시에 이지가 없는 존재였다.
그들은 그녀의 명령이나 부탁은 따르지만 그 외엔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는다.
“헤르타는…… 뭐가 다른 걸까요?”
최선을 다해 그리긴 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그렸다.
첫 번째 헤르타는 모르겠지만 두 번째 헤르타는 조금 미친 상태로 그리기도 했다. 광기에 휩싸인 채로.
“글쎄, 어쨌든 페리얼 칼로스에게 알려야겠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밀라이언이 성큼성큼 천막을 열어젖혔다.
바로 앞을 지키던 병사에게 페리얼 칼로스를 데리고 오라는 말을 전한 그가 다시 그녀의 맞은 편에 앉았다.
“이게 좋은 힌트가 됐으면 좋겠어.”
밀라이언이 퍽 기뻐 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카리나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기뻐 보이는 것이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모른다.
‘대체제라……’
여태 대체제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헤르타에게 물어 보면 뭔가 알려 줄까?
“자네는 나 바쁜 거 알면서 왜 자꾸 부르고 난……. 뭐야, 식사 초대였어? 그럼 말을 하지 그랬나.”
“아니, 이건 카리나와 내 식사다.”
“……나는?”
“없어.”
단호하게 대답한 밀라이언이 당당하게 페리얼을 비웃었다. 페리얼의 눈이 매섭게 번뜩였다.
그가 천막을 열어젖히고 무언가 명령하더니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침대에 털썩 앉았다.
“안 일어나? 거기가 어딘 줄 알고 드러눕고 난리야?”
“글쎄, 허름한 네놈 방이지.”
“카리나 자는 침대니까 꺼지지?”
“이런…… 카리나. 도대체 이런 인간이 뭐가 좋다고 동침을 합니까, 동침을? 야만인 같은데.”
어깨를 으쓱인 페리얼이 카리나에게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이죽거리는 페리얼의 목소리에 카리나가 입을 가린 채 어깨를 바들바들 떨었다.
“……카리나.”
“두 분은 정말 언제 봐도 유쾌해요.”
“그렇게 보는 건 카리나, 당신 뿐입니다. 몸은 어떻습니까?”
“아, 괜찮아요.”
“오늘만 세 번 발작했다더군.”
자연스럽게 나오는 카리나의 ‘괜찮다’는 말을, 밀라이언이 곧장 끊어 버렸다.
카리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곤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페리얼이 시선을 가늘게 한 채 카리나를 책망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카리나, 난 윈스턴이랑 같이 카리나의 주치의입니다. 자꾸 이렇게 거짓말하면 안 됩니다.”
“네…….”
그녀가 힘없이 대답했다.
사실 반사적으로 괜찮다고 하는 것도 분명히 있었다. 설마 저도 모르는 사이 당연하게 내뱉은 말을 밀라이언이 냉큼 잘라 버릴 줄은 몰랐다.
“칼로스 공작 각하, 의자와 식기를 가져왔습니다.”
“의자랑 식기?”
“아, 들어와.”
밀라이언의 반문에도 페리얼이 당당하게 허락의 말을 내뱉었다.
의자가 한쪽에 놓이고 페리얼의 앞에도 잔과 식기가 놓였다. 그가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너 뭐하냐?”
밀라이언의 입에서 오랜만에 가벼운 말투가 툭 튀어나왔다.
페리얼이 자연스럽게 음식을 접시에 덜어 와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온종일 연구하느라 나도 식사를 못 했으니, 오랜만에 자네와 먹어 볼까 해서.”
“허락한 적 없다, 꺼져.”
“이미 차린 거 어쩔 수 없지. 안 그렇습니까, 카리나?”
능글맞은 페리얼의 목소리에 카리나가 결국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로서도 밀라이언과 둘이서 하는 식사가 좋았지만, 그렇다고 페리얼을 내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러게요. 오늘은 같이 식사해요.”
“카리나!”
“대화는 식사하면서 하면 되잖아요, 네? 밀라이언.”
그녀의 목소리에 밀라이언의 입술이 풀 바른 듯 조용해졌다.
그가 짜증스럽게 페리얼을 노려 봤다. 너무도 유유자적하게 식사를 시작한 페리얼을 보며 카리나와 밀라이언도 식기를 들었다.
한동안 식기가 움직이는 소리만 천막 안에 가득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뭐 하러 불렀는데?”
식사를 다 끝낸 페리얼이 물었다.
달콤한 과일이 후식으로 나왔다. 그가 권태로운 표정으로 과일을 포크로 푹 찍었다.
“식사 때문에 부른 것 같다며.”
“정말 그거면 간다?”
“망할 개…….”
욕설을 담으려던 밀라이언의 입이 페리얼의 눈짓에 다시 다물렸다. 그가 눈치 빠르게 카리나를 바라본 탓이다.
웬만해서는 그녀 앞에선 험한 말을 쓰지 않기로 했다. 밀라이언이 이를 으득 갈았다.
“하론의 신기한 능력을 하나 알아냈어.”
“하론? 뭔데?”
“기적에는 대가가 있지?”
밀라이언의 질문에 페리얼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술에 몸담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내용 중의 하나였다.
밀라이언은 최근에 카리나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 여러모로 공부한 모양이지만.
“그 대가의 대체제로 사용이 가능한 것 같아.”
타앙-.
페리얼이 포크를 놓쳤다.
그가 당황한 듯 식탁에 떨어진 포크를 다시 붙잡으며 밀라이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일전에 헤르타의 기묘한 행보가 있었잖아요. 기적은 끝났는데 헤르타는 아직도 살아 있어요. 그게 신기해서 한 번 물어봤었거든요.”
“헤르타랑 말로서 대화를 하십니까? 의지가 아니라?”
페리얼의 물음에 카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가 이상한 부분인가?
고개를 기울인 카리나의 얼굴을 보던 페리얼이 이윽고 머리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근데 제 생명 대신 마수의 핵을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마수의 핵?”
페리얼이 반문했다. 그러자 밀라이언이 팔짱을 몸을 기대며 다시 낀 채 의자에 입을 연다.
“그래. 북부에선 아주 오래전에 쓰던, 하론의 다른 말이지. 실제로 그 녀석은 하론을 먹이로 삼고 있어. 오늘도 줬던 참이지.”
“……그게 말이 돼?”
“그걸 알아보라고 널 부른 거다, 페리얼 칼로스.”
밀라이언의 말에 페리얼이 헛웃음을 삼켰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기적의 대가에 대체제가 있다고?
그가 먹던 과일도 내버려 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아볼 테니 하론을 품은 마수의 시체나 가져와. 최대한 많이.”
“……알겠다.”
한 마리씩 잡아다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열어보질 못하니 잡는 마수란 마수는 전부 데리고 와야 할 것이고.
그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눈앞이 암담했다.
“난 좀 알아보러 갈 테니까. 그럼 나중에 봐요, 카리나.”
“아, 네.”
카리나가 가볍게 대꾸하자 페리얼이 곧장 두 사람의 막사를 빠져나갔다. 밀라이언이 과일을 포크로 푹 찍어 입에 넣었다.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가고 있었다.
* * *
쿵!
거대한 몸체가 옆으로 무너져 내렸다. 밀라이언이 볼에 튄 피를 검을 든 손등으로 닦아 냈다.
제법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탓인지 주변이 어둡고 을씨년스러웠다.
“다음.”
그가 낮게 명령하며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듯 발을 내디 뎠다.
밀라이언의 뒤를 쫓던 기사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무리 그들이 선발된 정예 기사라 할지라도 한 번 쉬지를 않고 3일째 토벌을 속행하고 있었다.
호전적이고 싸움을 좋아하는 그들일지라도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무척이나 피로했다는 말이다.
기사들이 울상을 지으며 묵묵히 그의 뒤를 따르는 고레든을 바라 봤다.
‘단장님……!’
‘살려 주십시오!’
고레든이 드물게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밀라이언은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숲 안쪽으로 성큼성큼 향했다. 밀라이언을 따르던 그가 걸음을 멈췄다.
“각하.”
“뭐지?”
“이만 주둔지로 한 번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고레든의 말에 미간을 좁힌 밀라이언이 몸을 돌렸다.
그는 온몸이 피에 절어 꼴이 말이 아니었다. 기사들도 지쳐서 간신히 따라와 이 악물고 버티는 수준이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머지않아 사상자가 나올 것이다.
“왜?”
고개를 설핏 기울이며 묻는 그의 눈동자가 반쯤 풀려 있었다. 어느 정도 진정제 작용을 해 주는 궐련도 피우지 않고 계속 피 냄새만 맡았기 때문이리라.
“기사들이 지쳤습니다. 이러다간 사망자가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럼 잠시 쉬든가.”
고레든이 대답 없이 슬쩍 뒤를 돌아보자 기사들이 질색하며 목이 떨어질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댔다. 거의 무릎 꿇고 손바닥을 비빌 기세다. 물론 밀라이언에게는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고레든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영애께서 각하가 돌아오시길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
묵묵한 고레든의 말에 밀라이언의 눈썹이 한 차례 들썩였다.
관심도 없다는 표정이던 그에게서 반응이 나왔다. 고레든이 다시 적당한 말을 찾아 입을 열었다.
“벌써 3일이나 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고민하던 밀라이언이 그제야 간신히 서 있는 몰골들을 바라보곤 관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사들도 많이 지친 것 같으니 일단 챙길 수 있는 시체만 챙겨서 돌아가지.”
“…….”
“…….”
주변이 조용해졌다.
차마 ‘거짓말!’이라고 내뱉을 수가 없어서 그들은 서로서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가 어째서 돌아가기로 했는지 모르는 이는 적어도 토벌대 안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