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09)
>109 화>
“아직도 거기서 뭐 하는 거지? 빨리 안 오나?”
이미 거대한 마수 시체의 다리 하나를 붙잡고 저 멀리 가 버린 밀라이언이 짜증스럽게 재촉했다.
고레든 역시 근처에 있던 커다란 마수의 다리를 붙잡아 밀라이언의 뒤를 따랐다.
“미친 것 같았어…….”
“나 이렇게 토벌하기 싫었던 적은 처음이야.”
“그냥 검문소에나 자원할 걸…….”
마수의 사체를 하나둘씩 챙기며 기사들이 작게 속삭였다.
그나마도 그들로선 거대한 사체는 챙길 수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이들은 작은 마수나 그것도 아니면 마수의 몸통만 챙기고 두 사람의 뒤를 쫓았다.
밀라이언의 속도는 빨랐다. 성큼성큼 걷는 속도는 마수를 잡을 때보다 한결 더 빠르다.
고레든은 그나마 그를 쫓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지칠 대로 지친 기사들은 달랐다.
“대장님, 우리…… 죽이실 생각 인가……?”
“난 더 못 가…….”
“끄흡, 차라리 죽이시라고 해.”
제법 벌어진 거리에서 기사들이 하나하나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집채만 한 마수를 한 손으로 질질 끌고 가는 밀라이언과 고레든이 새삼 대단하게 보일 정도다.
성큼성큼 걸어가던 밀라이언이 갑작스럽게 걸음을 뚝 멈췄다. 고레든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의 곁에 섰다. 밀라이언을 따라 시선을 돌린 고레든이 다시 밀라이언을 바라본다.
“호수에 무언가 문제가 있습니까?”
“이대로 가면 싫어하겠지?”
“네?”
“다른 놈들 먼저 데리고 가라.”
고레든에게 던지듯 명령한 밀라이언이 그대로 마수의 시체를 두고 호숫가로 향했다. 밀라이언이 호수 쪽으로 사라지자 고레든이 뒤로 돌았다.
“단장니이이임!”
“흐어어엉.”
“고레든 단장니임.”
밀라이언이 사라짐과 동시에 땀과 피에 전 기사들이 달려왔다. 징그러운 남자들이 달려오자 무표정한 고레든의 얼굴에 기어코 균열이 생겼다.
“어흐흑, 저희 죽겠습니다. 살려 주십쇼.”
그의 몸에 엉겨 붙은 기사 중에는 바닥에서 다리를 부여잡고 쓰러진 이들도 있었다. 고레든의 무표정한 얼굴에 짜증이 깃들었다.
“당장 안 꺼지나?”
고레든의 낮은 음성에 기사들의 머리털이 쭈뼛 섰다.
순식간에 그들은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숨을 삼키는 이들을 한 차례 노려본 고레든이 그대로 마수를 손에 쥔 채 몸을 돌렸다.
“빠르게 복귀한다.”
고개 숙인 기사들이 질질 끌려 가는 거대한 마수 뒤를 터덜터덜 따라 걸었다.
그 상사에 그 부하였다.
* * *
“……역시, 하론을 품은 마수는 이런 과정으로 태어나는 건가?”
페리얼이 낮게 읊조렸다. 그렇다면 이것은 분명히 카리나를 살릴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페리얼 칼로스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페리얼이 성마른 손길로 얼굴을 문질렀다.
거울을 보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며칠이나 여기에 처박혀 있었더라? 밀라이언이 토벌을 나간 뒤로는 거의 계속이었다.
“일단 씻고 좀 자야겠군.”
입술이고 얼굴이고 푸석거리지 않은 곳이 없다. 슬쩍 거울을 보니 몰골도 이런 몰골이 없었다. 자기 관리만큼은 빠지지 않고 했던 페리얼 칼로스로선 놀라운 일이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로브를 입었다.
머리까지 뒤집어쓴 페리얼이 비틀비틀 천막을 나섰다. 마침 토벌대가 돌아왔는지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쪽에는 마수의 시체가 가득 쌓여 있었다.
‘……근데 저 마수는 또 뭐야?’
거대한 마수를 한 손으로 질질 끌어 한쪽에 옮겨 두는 고레든을 눈에 담으며 페리얼이 헛웃음을 삼켰다.
‘무식……’
페리얼이 머릿속에 든 생각을 황급히 떨쳐 냈다.
그러나 아무리 야만인 같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 가 없다. 저들이 야만인이 아니면 대체 누가 야만인이란 말인가.
“칼로스 공작 각하.”
“고레든 경.”
피투성이가 된 고레든이 로브를 쓴 칼로스를 알아보곤 인사를 건넸다. 토벌대 속에 밀라이언이 보이지 않는다.
“밀라이언은?”
“잠시 호숫가 근처에서 헤어졌습니다. 곧 오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군, 알겠네. 자네,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피곤하겠지만 시체들은 한곳에 줄지어 놓아주면 고맙겠어. 한숨 자고 해부해 봐야 할 것 같네.”
“알겠습니다.”
페리얼의 명령에 고레든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페리얼이 찝찝해진 몸을 씻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의 눈빛이 느릿하게 가라앉았다.
“…….”
어느 정도 희망이 보이기 시작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정말 희망인지 아니면 희망인 척하는 절망인지 알 수가 없다는 거다.
며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더니 머리가 멍했다.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혼자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거다.
“뭐냐, 그 몰골은?”
“돌아오자마자 시비…….”
익숙한 목소리에 대답하며 고개를 들던 페리얼이 눈앞을 가린 거대한 그림자에 몸을 굳혔다.
그가 퍽 진지하고 심각한 눈으로 머리에서 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밀라이언을 바라봤다.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는다만 자네는 대체 뭘 먹고 사는 건가?”
“마수 고기. 왜, 나눠줘?”
“……자네나 많이 먹게나.”
밀라이언이 어깨를 으쓱였다.
청량하기 짝이 없는 그의 모습을 보며 페리얼이 헛웃음을 삼켰다.
“차림이 꽤 멀쩡한데.”
다른 이들은 먼지와 피투성이였는데 눈앞의 인간은 생채기 하나 오물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오면서 혼자만 쏙 빠져서 씻은 게 분명했다. 물론 이유는 생각할 것도 없었고.
“그래, 자네가 사람이 되어는 가는 모양이야. 그녀가 놀랄 것도 생각하고.”
“…….”
밀라이언이 미간을 좁혔다. 페리얼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 그가 주둔지 근처의 계곡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고 했다. 몸을 돌렸던 페리얼이 미간을 좁히며 다시 그를 바라봤다.
“하론의 쓰임새를 조금 알아냈어.”
“정말인가?”
“어쩌면 카리나를 살릴 수 있을 거 같아.”
밀라이언이 눈을 크게 떴다. 그가 퍽 밝아진 표정으로 페리얼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정말인가?”
독기에 찬 모습만 보다가 오랜만에 보는 친우의 표정에 페리얼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하지만 확률은 무척 낮아. 그리고 그걸 카리나가 원할지도 모르겠고 뭣보다 내 이론이 맞는다면 전제 조건이 까다로워.”
“전제 조건?”
“그리고…….”
페리얼이 입술을 달싹였다. 벙긋거리는 입술 사이에선 아무런 말도 새어 나오지 않는다. 그가 답답한 듯 다시 마른세수를 했다.
“아니야. 이건 확실해지면 말해 줄게.”
“……이번엔 어떤 것도 속이지 마라.”
“자네를 두 번 속였다간 얼굴이 남아나지 않을 거야.”
그가 손을 흔들며 그대로 몸을 돌렸다.
피곤한 표정으로 멀어져가는 페리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밀라이언도 몸을 돌렸다.
어쩐지 뒤가 찝찝했다.
‘좋은 소식일 텐데.’
그런 것치곤 페리얼의 얼굴이 그다지 밝지 않다. 치료 확률이 낮다면 확률을 높일 수단도 있을 거다. 밀라이언이 마수를 끌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모르겠군.”
고개를 흔든 밀라이언의 발걸음이 이윽고 빨라졌다.
* * *
마수 토벌은 두 달간의 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동안 수집한 하론의 수는 이미 천막 한 개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고 숲의 어디를 돌아다녀도 마수를 보기가 힘겨워졌다.
단 하나, 헤르타 무리만이 여전히 그들을 골머리 썩게 했다. 주둔지까지 나타나 몇 차례 기습 공격을 감행한 놈들은 겨울이 끝나 갈수록 점점 더 흉포해졌다.
특히 그 대장 헤르타는 더했다. 다른 녀석보다 거대한 그놈은 끈질기게 밀라이언의 뒤를 쫓았다.
쉼 없이 그의 뒤를 노렸고 그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카리나의 상태도 점점 좋지 못한 지경에 이르렀다. 끔찍한 통증과 예술을 갈망하는 광기는 그녀를 조금씩 좀먹기 시작 했다.
하론을 곁에 둬도 그것은 갈수록 심해졌다.
예술을 억지로 막기라도 하면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고 그것은 스스로 자해를 하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마치, 그녀는 제 몸마저 예술에 불살라 버릴 기세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