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1)
>11화>
백작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카리나의 생일인데 피크닉이 겹쳐서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날짜를 다른 날 잡을 걸 그랬나 봅니다.”
인프릭이 미간을 좁힌 채 곤란한 목소리를 냈다.
이틀 전에 그가 이해해 달라고 말했지만 카리나는 아무래도 시원스럽게 이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대화를 나눠 볼 것을.
‘상태가 조금 이상하긴 했어.’
화를 잘 내지도 않는 아이가 화를 냈으면 응당 뭔가 이유가 있었을 터인데.
인프릭이 제 이마를 손등으로 문지르며 카리나와 이틀 전 밤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괜찮다곤 해도 분명 마음이 좋지 않았을 겁니다.”
“애도 아니고 도대체…….”
레오폴드 백작이 혀를 찼다.
그가 철없는 아이의 행동을 보듯 쪽지를 한 번 훑곤 식탁 위에 종이를 올려 뒀다.
“아무리 그래도 걱정할 걸 뻔히 알면서 쪽지 한 장만 놔두고 가는 법이 어딨니…….”
백작 부인이 한숨을 삼켰다.
여행을 다녀오겠다면 어련히 보내 줬을까. 누가 봐도 괜한 화풀이처럼 보였다.
“뒤늦게 사춘기가 온 것도 아니고. 다 큰 귀족 영애가 대체 이게 무슨 창피한 짓이야?”
“누님께서 혼자 여행에 가셨어요?”
페르던이 눈을 반짝였다.
페르던은 언젠가 혼자서 검을 들고 여행과 모험을 해 보는 것이 꿈이었다.
‘역시 누님은 대단해.’
혼자서 여행을 가다니.
페르던이 떼를 쓰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여행은 성년이 되어서 가야 한다고 형님께 들은 참 이었으니까.
페르던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마음 같아선 당장 뛰쳐나가서 누님과 둘이 여행을 하고 싶었다.
“일단 사람을 몇 명 풀어서 조용히 어디로 갔는지 알아보도록 해라. 어차피 멀리 가지도 못했을 거다. 남부령은 도적도 적은 편이니 위험하진 않겠지.”
“그렇게 싫었으면 말을 했으면 될 텐데…….”
레오폴드 백작의 말에 백작 부 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카리나가 봤으면 분명 얼굴을 일그러뜨렸을 테지만 이 상황을 맞닥뜨린 백작 부인으로선 진심이었다.
물론 실제로 그 상황에서 그녀가 그런 말을 했다면 같은 반응을 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돈은 얼마나 없어졌더냐?”
“그, 비는 돈을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녀가 고개를 푹 숙이곤 황급히 식당을 빠져 나갔다. 레오폴드 백작이 다시금 혀를 찼다.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인지.
“언니는 언제 온대요, 어머니 아버지?”
“모른다.”
아벨리아의 물음에 쪽지로 눈을 흘긴 레오폴드 백작이 한숨처럼 말했다.
일부러 속이나 썩어 보라는 것이 분명해서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자식이 되어 부모의 애정을 이런 식으로 이용할 수가 있는지.
레오폴드 백작이 들끓는 속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래도 걱정이네요. 남부의 겨울은 춥지 않다고 하지만 여행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는 아이잖아요.”
“지금이라면 멀리 가지 못했을 테니 제가 뒤쫓아 보겠습니다, 아버지.”
백작 부인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인프릭이 당장에라도 일어날 기세로 말했다.
기사 훈련을 받아 작위까지 있는 그가 쉬지 않고 말을 탄다면 무엇을 타고 움직였든 카리나를 따라잡기엔 어렵지 않을 일이었다.
레오폴드 백작이 손을 저었다.
“사람을 몇 명 풀 거니 충분할 것이다. 남부령은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너도 알지 않으냐. 이제 막 작위를 받아 입단 했으면서 눈 밖에 날 일은 삼가거라.”
“하지만…….”
“애초에 생일 파티 때문에 집을 나간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일이냐? 누가 해 주지 않는다고 한 것도 아니고. 세상에 이렇게 철이 없을 줄이야.”
카리나가 들었다면 제자리에서 팔짝 뛰면서 답답하고 억울함에 제 가슴을 퍽퍽 두드렸을 일이다.
그러나 열 번 선행을 베풀어도 한 번 악행을 하면 그 악행이 더 두드러져 지금까지 쌓아 온 것들이 와르르 무너진다고 누가 그랬던가.
그녀가 딱 그 꼴이었다.
그녀가 참아 온 인내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것은 철이 없다는 한마디뿐이다.
식당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 온 것은 시녀에게서 사정을 들은 총괄 집사였다.
그도 다급하게 뛰어온 듯 옷차림이 약간 흐트러져 있었다.
“집사, 알아보라고 한 건 알아봤느냐?”
“네, 카리나 아가씨의 개인 돈에서 어제오늘 합산해 사라진 돈은 2골드가 조금 못 됩니다.”
“봐라, 멀리 가지도 않았을 거다.”
레오폴드 백작이 그것 보라며 턱을 치켜 올렸다.
그가 그제야 힘을 줬던 눈에 힘을 풀었다. 예상한 것과 크게 틀어지지 않는 말을 들은 백작은 조금 안도한 표정으로 한숨을 폭 내쉬었다.
“기껏해야 1, 2주 정도 버티고 돌아오지 않겠느냐. 돌아오면 크게 혼을 내야지, 쯧. 어디 어미, 아비의 가슴에 못을 박을 짓을 하는지.”
“그래도 사람은 풀어요, 여보.”
백작 부인의 말에 레오폴드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렇게까지 매정한 아비가 되고 싶진 않았다.
괘씹하긴 해도 어쨌든 모른 척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믿을 만 한 자를 고용해서 카리나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보라고 해라. 제 발로 돌아올 때까지 일절 도움을 주지 말라고 전해.”
“찾았으면 데리고 와야지, 무슨 소리예요.”
“이참에 집을 나가면 얼마나 고생 하는지, 자기가 얼마나 혜택을 받고 있었는지 겪어 봐야지.”
“…….”
“어차피 멀리 가지도 않았을 테고 개인 마차를 빌리거나 했을 테니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야.”
레오폴드 백작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참에 제대로 겪어 보면 조금 더 철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그의 생각에 카리나는 1, 2주 정도면 스스로 굽히고 들어 올 거라고 생각했다.
길어야 한 달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카리나의 소식이 남부 지역 밖으로 나가며 중간에 뚝 끊기리라는 것도, 두 달이 되어도 그녀가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도 그들의 예상엔 전혀 없는 일 이었다.
* * *
카리나가 사라진 첫 일주일은 조용히 지나갔다.
레오폴드 백작은 아무렇지 않음을 과시 하기라도 하려는 듯 예정 했던 피크닉도 갔다 왔다.
애초부터 말수가 적던 아이였으니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진 않았다.
이따금 백작 부인이 걱정스럽게 자리를 쳐다보고 아벨리아와 페르던이 문득문득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제외하곤 별다른 일이 없었다.
카리나에 대한 첫 소식이 백작가에 들려온 것은 2주가 막 차려고 할 때였다.
“드디어 카리나의 위치를 파악 했다고?”
“네……, 일단 그렇긴 합니다만.”
“그럴 줄 알았지. 어차피 멀리 가지도 못할 아이였다. 뭣도 모르는 귀족 영애가 혼자 집을 나가서 뭘 할 수 있겠느냐. 아무리 총명한 아이더라도.”
레오폴드 백작이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그렇게 말하는 백작의 눈에 열은 안도감이 서렸다. 아무리 그래도 2주나 소식이 없으니 조금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레오폴드 백작의 태도와 다르게 집사는 안절부절못한 기색으로 그의 말이 멎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그런 표정이지? 카리나에게 문제라도 생겼나?”
“아뇨, 그것이…….”
집사가 한숨과도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망설인 끝에 그가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들었다.
“추적을 하라고 붙인 사람들이 더는 추적이 어렵다는 말을 전해 왔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그것이, 카리나 아가씨께서 남부령을 벗어나신 듯합니다.”
레오폴드 백작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집사가 허리를 굽혀 편지로 된 보고서를 두 손으로 내밀었다. 백작이 그것을 빼앗듯 손에 쥐었다. 레오폴드 백작이 편지를 열어 눈으로 훑었다.
[대상이 수도행 마차에 올라 남부령을 벗어났습니다. 남부령 밖으로 나가는 것은 계약 외의 이행이기 때문에 추적을 멈춥니다. 이후 행적의 추적을 원하면 최소 첫 계약금의 3배 이상으로 진행이 되는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금화 수십 개를 쏟아 부은 것치고는 무척이나 간단한 보고서였다.
“……카리나 레오폴드!”
레오폴드 백작의 노성에 집사가 숨소리조차 죽였다.
“다 큰 녀석이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생각이 없을 수 있어!”
레오폴드 백작이 편지를 구기며 소리쳤다.
남부령 바깥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니까 나간 것이 분명했다.
남부령은 그의 관할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추적할 수 있었지만 일 단 그곳에서 벗어났다면 찾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아무리 속이 상했다고 해도 어찌 이래! 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레오폴드 백작이 소리쳤다.
시끄러운 소리를 들었는지 백작 부인이 그의 집무실에 조심스럽게 발을 들였다.
“여보, 무슨 일이 있어요?”
“카리나가 남부령을 나갔다는군.”
레오폴드 백작이 표정을 구긴 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