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12)
>112 화>
“아버지, 오라버니! 언니 찾으러 가세요?”
“나도 가면 안 돼요? 형님!”
어느새 2층에서 뛰듯이 내려오는 쌍둥이를 보며 백작 부인과 백작이 곤란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었다.
두 사람이 달려와 안기는 쌍둥이를 품에 끌어안았다.
“이런, 위험하게 뛰어 내려오면 어떡하니.”
“누나 데리러 가는 거면 저도 갈래요, 아버지!”
“저도요! 몸도 많이 좋아졌어요.”
아벨리아와 페르던이 백작 부인과 백작에게 매달려 열심히 재잘 거렸다. 애교 많은 두 아이의 모습에 두 부부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멀고 험한 길이라 데려갈 수는 없단다. 누나는 데리고 올 테니 여기에 있으렴.”
“언니 돌아오겠죠?”
“그래, 그럴 거란다. 우리는 가족이잖니.”
손을 뻗은 레오폴드 백작이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인프릭이 그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눈앞에 있는 것은 이상적인 가족이다. 이것은, 어그러짐도 없는 완벽한 가족이었다.
‘…아니야.’
인프릭이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가 빠져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가족이라니, 이럴 순 없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언제나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던 카리나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얼른 언니 보고 싶어요. 언니가 없으니까 너무 심심해요.”
“그래, 카리나가 오면 또 놀아 달라고 하렴.”
인프릭은 입을 다물었다.
등줄기를 스치는 불안한 느낌은 자신만 드는 것일까? 정말 그들은 카리나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 하는 것인가?
자신은 그저 불안하기만 했다.
“……얼른 가시죠. 오늘 출발하기로 하셨잖아요, 아버지.”
“그래, 가야지.”
한숨을 내쉰 레오폴드 백작이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마지막으로 백작 부인에게 몇 가지 당부를 전한 그가 몸을 돌렸다.
밖으로 나가니 녹턴이 서 있었다.
“나오셨습니까?”
“그래, 먼저 와 있었군. 말을 타고 빠르게 갈 생각이네만…… 따라올 수 있겠는가?”
“말 타는 법이라면 배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녹턴이 사람 좋게 웃으며 대답 했다.
인프릭이 굳은 표정으로 먼저 말에 올라탔다. 레오폴드 백작이 그 뒤를 따라 말에 올라타고 그 뒤를 녹턴이 따랐다.
세 사람이 탄 말이 땅을 박차며 출발했다. 토벌대가 토벌을 시작 한 지 약 한 달 만의 일이었다.
* * *
“여기가 겨울의 끝이에요?”
“그래, 멀리서 볼 때는 제법 웅장하지만 이 앞에 서면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아.”
“엄청…… 높네요.”
카리나가 한껏 고개를 젖히며 말했다.
절벽이 하늘 끝에 닿은 것은 아닌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모른다. 그의 말대로 절벽을 어떻게든 올라가 보려고 해도 바람 때문에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팔을 뻗어 절벽에 가져다 댔다.
절벽의 차가운 냉기가 손끝을 타고 느껴졌다. 몸속으로 시원한 기운이 퍼졌다. 카리나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신기하네요. 마치 거대한 용이 고목처럼 굳어진 것 같아요.”
“……용?”
“네,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드네요.”
눈을 한 번 깜빡거렸다.
아주 조금이지만 친숙한 느낌이다. 이 친숙함이 어디서부터 기원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카리나가 빙긋 웃었다.
“아, 언젠가 밀라이언이랑 이 절벽을 올라 보고 싶어요.”
“무리야. 괜히 올라갔다가 죽은 놈들이 한둘이 아니다.”
“전 할 수 있어요. 어떻게 하면 저길 올라갈 수 있을지 고민해 볼게요.”
“그대의 능력을 쓸 거라면 사양이야.”
밀라이언이 단칼에 거절했다. 카리나가 뚱하게 볼을 부풀렸다.
정말 단호박을 먹었는지 이렇게 단호할 수가 없다. 그녀가 밀라이언과 맞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꽈악. 그러자 밀라이언이 기다렸다는 듯 한층 더 세게 손을 잡아 온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윽고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저 너머엔 뭐가 있을지 궁금하네요.”
“글쎄, 이 너머는 오랜 시간 동안 완전히 막혀 있었으니까.”
밀라이언이 담담하게 말했다.
종종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해 단신으로 숲에 들어올 때가 있었다. 가끔 이곳에 발을 디디면 밀라이언은 자신이 무척 작은 존재로 느껴졌다.
괴물이 아닌 그저 한 사람의 인간.
마수를 토벌하는 영웅도 아니고 이름뿐인 공작도 아니고 그냥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느껴져서 그는 언제나 그 감각을 즐기곤 했다.
“저택으로 돌아가면 이제 같이 자는 것도 끝이네요.”
“응?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눈을 동그랗게 뜬 밀라이언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되물었다.
카리나가 오히려 당신이야말로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천막은 여유분이 부족하다고 해서 같이 썼지만 저택엔 각자 방이 있잖아요. 당연히 따로…….”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여기 오기 전에도 같은 방을 썼잖아.”
“아니 그건…….”
그가 자꾸 제 침대로 파고든 것이 아니던가.
솔직히 같이 지내는 내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다른 게 불편한 것이 아니라, 자꾸 자신의 좋지 못한 모습만 보여 주는 것 같아서. 밤마다 끙끙 앓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즐거울 리가 없지 않은가.
카리나가 입을 닫자 밀라이언이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카리나, 우리 연인이잖아.”
“……그건 그렇죠.”
카리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밀라이언이 한숨을 푹 내쉰다. 안타까움이 물씬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물론 다른 누군가가 들었다면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목소리라며 비난을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못할 게 뭐가 있어? 심지어 아직 약혼 관계도 끝나지 않았어.”
“파혼 서류 드렸…….”
“그거 실수로 커피 흘려서 팽이 가져다 버린 모양이야.”
당연하지만 거짓말이다.
사실은 그가 소각장에 직접 가져다 던져 버렸다. 물론 그녀가 가지고 왔던 낡은 천 가방도 함께. 버리기 전에 그녀의 소중한 물건이 아니라는 건 확인 받았으니까.
“네에? 어디에다가요? 아니, 어떻게 될 줄 알고 파혼 서류를 버려요! 혹시 만에 하나 일이 있으면……!”
“만에 하나는 없어.”
밀라이언이 그녀를 번쩍 들어 품에 끌어안았다.
그가 냉큼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자 신호라도 받은 것처럼 카리나가 살짝 입을 벌렸다. 입술 사이로 단단한 그의 혀가 미끄러지듯 파고들었다.
“으응…….”
쪽쪽 소리가 날 정도로 입술을 빨아 대며, 밀라이언이 그녀의 입 안을 느릿하게 동시에 집요하게 탐색했다.
어찌나 집요한지 바르작거리는 그녀의 혀가 움직이는 방향을 눈치채고 냉큼 붙잡았을 정도였다.
“흐……!”
밀라이언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 졌다. 살짝 눈을 떴던 카리나가 화들짝 놀라 냉큼 눈을 다시 꾹 감았다.
밀라이언이 웃음을 꾹 참으며 휘감았던 그녀의 혀를 살살 풀어 줬다. 얼얼했던 혀뿌리가 찌르르 하게 울렸다.
그가 그녀의 콧잔등과 입술 위에 한 차례씩 입을 맞추고 느릿하게 멀어졌다.
멀어지는 밀라이언을 바라보던 카리나가 팔을 뻗어 밀라이언의 목을 홱 휘감았다. 그리곤 그대로 멀어진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곤 후다닥 멀어졌다.
밀라이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새빨갛게 물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가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보다 더 재빠르게 그녀의 목덜미를 깨물고 자국을 남겼다.
가쁜 호흡을 몰아쉬는 카리나에게 차마 더 입을 맞추진 못한 그가 아쉽다는 듯 그녀의 눈두덩이에 가볍게 입을 맞추곤 떨어졌다.
“그대는 날 참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어.”
“……하고 싶은 건 다 해 보랬잖아요.”
“더 해도 되는데. 뭘 해 보고 싶은데?”
“음…….”
카리나가 귓불까지 새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밀라이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어 버린 그녀가 그 속에서 입술을 벙긋거리다가 결국 입을 꾹 다물었다.
“카리나?”
“……어요.”
“잘 들리지 않아.”
“밀라이언을…… 덮쳐…….”
덮쳐 보고 싶어요…….
기어들어 갈 듯한 작은 말에 목덜미는 물론이거니와 귓불까지 새빨개졌다.
밀라이언이 멍청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였다. 뒤통수라도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다.
“……그건…….”
“미안해요. 곤란하죠. 그냥, 예전에 도서관에서 빌렸던 책에…….”
이렇게 말하면 상대가 좋아할 거라는 얘기가 있어서 한번 시험 해 보고 싶었다.
곧 터져 버릴 화산처럼 붉게 물든 카리나의 얼굴을 바라보는 밀라이언의 표정이 무척이나 심각 했다.
“무척 간단한 일인데 지금은 곤란해.”
“……네?”
“지금은 밖이라 곤란하고…… 일단 천막으로 돌아가지.”
“네……?”
카리나가 눈동자를 이리 도르르 저리 도르르 굴렸다.
‘지금 이게 무슨 소리야?’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이는 순간 밀라이언이 재빠르게 몸을 돌렸다. 근처에 세워 둔 말에 그녀를 올리곤 곧장 그 위에 올라탄다.
“아니면 아예 이대로 저택까지 돌아갈까?”
“……미, 밀라이언?”
“누군가에게 덮쳐진 적은 없지만 처음이라면 뭐든 그대가 좋아.”
카리나의 눈꺼풀이 멍청하게 깜빡였다. 대체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머릿속으로 밀라이언이 한 말의 내용을 더듬는데 타고 있던 말이 출발했다.
“난 언제든 준비되어 있어.”
‘그러니까 뭐가요!’
밀라이언의 경건한 표정을 올려 다본 카리나가 불어닥치는 바람에 눈을 질끈 감았다. 목소리도 바람 소리에 묻히는 바람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최대 속도를 내는 말 위에서 밀라이언의 품에 속절없이 안겨 있는 것이 할 수 있었던 것의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