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18)
>118 화>
“그동안 제대로 씻질 못했어. 씻고 올게.”
“아…….”
“미안, 얼른 씻고 올 테니까 방에 가 있어.”
카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의 모습은 제법 꾀죄죄했다. 먼지투성이에 이곳저곳에 피가 묻어 있었고 굉장히 지쳐 보였다. 뒤따라 내린 고레든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럼 올라가 있을게요. 무사히 돌아와서 기뻐요.”
카리나의 말에 밀라이언의 눈이 커졌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싶었다. 차오르는 욕망을 억누른 그가 이윽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응, 다녀왔어.”
밀라이언이 대답했다.
그가 쏜살같이 사라지고 카리나가 멀뚱히 서 있다가 고레든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몸을 돌렸다. 2층으로 돌아가는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안기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그렇게 난감한 표정을 하는 밀라이언에게 억지로 안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축 늘어진 어깨로 그녀가 계단을 하나하나 천천히 올라갔다.
“욕심 안 부리려고 했는데 욕심쟁이가 되어 버렸어.”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자괴감이 뒤섞였다. 정말 이러다 밀라이언만 세상에 남게 되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는 감도 잡히지 않는다.
페리얼의 방법대로 하더라도 실패할 확률은 높았다.
혹 성공하더라도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저 이제는 혼자 남을 밀라이언이 걱정이었다.
그들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남겨질 사람들의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마음을 줘 버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남을 이들의 아픔을 생각하면 심장이 지끈거렸다.
‘차라리 정말 다 잊으면 좋을 텐데.’
언제 어떻게 죽을지는 몰라도 가능하다면 자신이 죽는 것과 동시에 ‘카리나’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모든 증거가 사라졌으면 했다.
언젠가 반드시 아파할 그들의 기억을 죽음과 함께 가지고 떠나고 싶었다.
“밀라이언도 페리얼도 말하면 화내겠지만.”
방으로 돌아온 카리나가 숄을 의자에 걸쳐 두곤 침대에 털썩 앉았다. 밀라이언이 없는 동안 혼자 지냈던 침대였다.
‘하긴, 나도 잘 모르겠네. 그를 두고 죽을 수 있을지.’
그의 기억을 가져가도 정말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지.
이제 와서는 전부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이러니 욕심쟁이라는 거다. 무엇 하나 놓기를 싫어하니까.
* * *
잠시 멍하니 앉아 있으니 방문이 열렸다.
밀라이언과 현관에서 헤어지고 30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밀라이언을 보며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꼴이 왜 그래요?”
“아…….”
그제야 밀라이언이 손에 들고 있던 수건으로 머리를 대충 털었다. 누가 보면 쫓기는 사람인 줄 알겠다.
뭐가 그렇게 급해서 제대로 닦지도 않고 나온 거야?
“이제 다가가도 되나?”
뚝뚝 떨어지던 물을 어느 정도 정리한 밀라이언이 카리나에게 물었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그녀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카리나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밀라이언이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침대가 한차례 출렁거리며 밀라이언이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어리광을 피우듯 한참이나 그러고 있는 밀라이언의 모습에 카리나가 옅게 웃었다.
그녀가 손을 뻗어 밀라이언의 뒷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밀라이언이 마치 짐승처럼 낮게 목울음을 흘렸다.
“잘 다녀왔어요?”
“응, 미안해. 못 잡았어.”
밀라이언의 침울한 목소리에 카리나가 놀란 표정을 했다.
밀라이언이라면 뭐든지 가능할 것 같았는데 실패했다니 조금 놀랍다. 카리나가 낮게 웃으며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미안할 건 없어요. 전 괜찮은데 침울해진 건 아니죠?”
“그건 아니고 놈이 다른 헤르타를 방어막 삼아서 도망갔어. 찾으려면 찾을 수 있었는데, 영지를 너무 비워 둘 순 없으니까.”
“잘했어요. 더 늦게 왔으면 분명히 제가 기다리지 못했을 거예요.”
카리나의 투정 어린 목소리에 밀라이언이 낮게 웃었다.
그가 그녀를 품에 안은 채 그대로 침대에 몸을 뉘었다. 밀라이언이 카리나와 마주 보고 누웠다.
짙은 푸른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밀라이언이 미소 짓는다.
“놈은 다시 잡으러 갈 거야. 원래는 며칠 영지를 돌보고 바로 가려고 했는데…….”
밀라이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럴 수 없게 됐다. 일이 생겼다. 있는 마수가 어디로 도망가진 않을 것이다. 특히나 우두머리 헤르타는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았다.
‘일단 버러지부터 처리해야겠지.’
쓸모없는 것은 그녀의 곁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주인님께서 계시지 않는 동안 레오폴드 백작가에서 북부 검문소를 통과해서 들어왔습니다.”
“미쳤나? 누가 멋대로 허락했지?”
그는 팽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팽은 눈 깜짝할 사이 씻고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곧장 방으로 가려는 밀라이언의 앞을 막아섰다.
물기에 젖어 엉망인 옷을 갈아 입히고 물기를 어느 정도 털어 주며 중요한 이야기를 속사포처럼 보고했다.
“주인님께서 계시지 않아서 카리나 아가씨께 의향을 여쭤봤더니 해결할 일이 있으시다며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카리나가?”
“네, 앞으로 사흘 정도 후면 도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쪽으로 바로 올 것 같은데 어떻게 처리하면 될까요?”
팽의 물음에 밀라이언은 비뚜름한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처리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그녀가 직접 나서겠다고 한 일이었으니 밀라이언이 뭔가 할 수 있는 기회는 적었다.
“북부의 방식대로.”
“네, 알겠습니다.”
그것을 끝으로 밀라이언은 곧장 카리나가 있는 곳으로 왔다.
아쉬움에 숲에 머물렀다가 조금만 더 늦었다면 그녀가 힘들 때 또 곁에 있어 주지 못할 뻔했다.
“카리나.”
“네?”
“레오폴드 백작이 온다고 하던데.”
“아, 들었어요? 언제 말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카리나의 표정에 곤란함이 맺혔다가 사라졌다.
웬만해선 제가 설명하고 싶었다. 밀라이언은 아무래도 여러모로 그 사람이 이곳에 오는 걸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뭘 하려고?”
“그냥 줄 돈이 있어서요. 대화는 그 사람이 하는 말 봐서 할지 말지 정하려고요. 정리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제가 이대로 아무 말 없이 등 돌리면 해결될 일이니까요.”
“근데 왜 굳이?”
숨결이 섞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속삭이듯 들리는 목소리에 카리나가 싱긋 미소 지었다.
한 번쯤은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걸 누군가가 미련이라고 말한다면 아마도 미련이겠지.
“음, 그러면 그 사람은 평생 절 불효자식이라고만 생각할 게 분명해요. 여전히 뒤는 돌아보지 않을 테고 저는 나쁜 애가 되겠죠.”
밀라이언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표정으로 카리나를 바라봤으나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서로 다른 사고방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애초부터 카리나와 밀라이언은 성향 자체가 상당히 달랐으니까.
“그렇군.”
“해 둘 말도 몇 가지 있고요. 그 사람이라면 괜한 욕심을 부릴 게 분명하니까요.”
밀라이언이 달싹거리는 카리나의 입술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얼 굴을 바싹 가져다 댔다.
콧잔등이 닿을락 말락 할 정도로 다가온 밀라이언을 보며 카리나가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의 입술이 맞물렸다.
순순하게 벌어지는 카리나의 입 안으로 파고든 혀가 질척거리는 소리를 내며 얽혀 들었다.
몇 번의 입맞춤에 나름대로 익숙해진 카리나가 밀라이언의 몸을 팔로 끌어안은 채 그의 움직임에 맞춰 혀를 움직였다.
그래 봐야 어설프고 서투르기 짝이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탐욕스러웠다.
눈을 질끈 감은 채 당장이라도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듯 카리나의 혀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작은 것이 제 입 안에서 바르작 거리는 것이 아랫배를 묵직하게 했다. 그 가상한 움직임이 사랑스러워 밀라이언이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자 카리나가 기다렸다는 듯 그의 혀를 붙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겨 욕심껏 제 입 안에 머금 었다.
움찔, 밀라이언의 이성의 끈이 제대로 끊겼다. 순식간에 다리 사이로 열기가 몰렸다.
그것은 마수를 죽이고 피를 보며 흥분했을 때와는 확연히 차원이 다른 감각이었다. 그리고 밀라이언의 인내심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제 혀를 집어삼키느라 벌어질 대로 벌어진 카리나의 입 안을 밀라이언이 다정한 듯 흉포하게 헤집었다.
거친 것은 아니라 아프진 않지만 숨이 부족했다.
카리나의 얼굴이 벌겋게 물드는 것을 지켜보며 밀라이언이 잠시 입술을 떼어 냈다.
숨통이 트인 그녀가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자신을 꿰뚫을 듯 바라보고 있는 붉은 시선과 마주쳤다.
그의 새빨간 눈동자에 욕망이 용암처럼 뚝뚝 흘러넘치는 것이 보였다. 카리나가 오싹한 감각에 몸을 떨었다.
‘조금 더……’
카리나의 푸른 눈동자에 욕망이 깃들었다.
짧은 시간 스쳐 지나간 감정을 빠르게 눈치챈 밀라이언의 입술이 만족스럽게 호선을 그렸다.
그녀가 팔을 올려 밀라이언의 목에 휘감았다. 동시에 밀라이언이 몸을 돌려 그녀를 아래로 깔고 그 위에 올라탔다.
“하아, 하아…… 읏!”
그러고는 그녀가 숨을 고르자마 자 다시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타액이 뚝 떨어졌다.
밀라이언이 그것을 조심스럽게 핥아 다시 그녀의 입술을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진득하고 질척이는 입맞춤이었다.
지금까지 했던 입맞춤과는 차원이 달랐다. 카리나가 등줄기를 오싹하게 하는 감각에 그를 끌어 안은 팔에 힘을 줬다.
“그대를 이대로 잡아먹고 싶어.”
젖은 숨결이 귓가에 닿았다. 밀라이언이 미소 지었다.
그녀도 자신과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당장 집어삼키고 싶다는 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