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48)
>외전 4화>
* * *
“……밀라이언, 제발 좀 내려 줘요. 무거울 거라고요.”
“난 그대의 생각보다 강해.”
“그래도…….”
카리나가 한숨을 내쉬며 순순히 밀라이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마린 에리얼의 대접은 정말 융숭했다. 대부분의 융숭한 대접은 카리나를 향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공작저의 손님들을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다.
식사는 항상 최고급 식재로 화려하게 나왔고 무엇 하나 맛이 없는 것이 없었다. 풍족한 해산물이 가득 자리한 식탁엔 이제 앉기만 해도 절로 침이 고일 정도였다.
해산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곳에 와서 카리나는 모든 제 편견을 깨부쉈다.
“벌써 내일 떠나잖아. 그대가 아쉬워해서 걱정이야.”
밀라이언이 카리나를 품에 안은 채 말했다.
모래사장을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비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개껍질을 잘못 밟을 뻔한 뒤로 카리나는 그의 품에 안긴 채 걷게 되었다.
“그러게요, 아쉬워요.”
“다음에 또 오면 되지. 그때는 둘이 아니라 셋일지도 모르겠네.”
“음. 밀라이언, 있잖아요. 마린이…… 자기가 대모가 되고 싶다고 하던데. 만약…… 내가 마린 을 대모로 하자고 하면…….”
움찔, 밀라이언의 어깨가 떨리고 눈썹이 크게 경련했다.
웬만해선 카리나의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밀라이언답지 않았다.
“……싫겠죠?”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에 침울함이 담겼다.
싫다. 죽어도 싫다.
하고 많은 이들 중에 대체 왜 하필이면 마린 에리얼이란 말인가.
그러나 밀라이언은 머릿속에 떠오른 수많은 부정의 말을 감히 그녀의 앞에서 내뱉을 수가 없었다.
밀라이언이 간신히 숨을 들이켜며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꾹꾹 눌러 삼켰다.
“……아니, 그대가 원하면 해. 그 결정이 그대를 위험하게 하는 일이 아니라면 난 참견하지 않을 거야.”
“……정말요?”
“그래, 대모를 정할 권리는 그대에게 있는 거지.”
“고마워요!”
카리나가 냉큼 밀라이언을 두 팔로 꽉 끌어안곤 그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서툰 입맞춤처럼 조심스럽게 다가와 깃털처럼 닿았다 떨어진 입술에 목덜미가 후끈 달아올랐다.
“……젠장. 너무 자극하지 마, 카리나. 한동안은 자제하라는 얘기를 들었단 말이야.”
밀라이언이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카리나의 목덜미에 이를 세워 조심스럽게 빨아들였다.
달큼한 살 내음이 코끝을 자극 했다. 그의 숨결이 목덜미에 오래도록 남았다.
“자제라면 얼마나요?”
“적어도 이달이 넘어갈 때까진 안정을 위해서 하지 말라더군.”
“그 뒤엔 해도 된대요?”
“……적당히 주기를 둔다면.”
고개를 끄덕인 밀라이언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카리나가 옅게 웃었다.
말하는 내내 퍽 괴로워 보이는 표정을 보니 아마 그도 제법 참고 있는 듯했다.
“일주일 동안 바다는 지겹게 본 것 같아요.”
“그래서 질렸어?”
“아뇨. 언젠가…… 아이가 태어나면 셋이서 오고 싶어졌어요.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이 무척 기묘하게 보여요. 경계선이 애매해서…….”
바다가 하늘이 되고 하늘이 바다가 될 것만 같았다.
결코 뒤섞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휘저으면 크림처럼 이리저리 뒤섞일 것 같았다.
“그대의 눈동자 같아.”
“……제 눈동자요?”
“응, 언제나 황금과 바다가 함께 하고 있거든. 밤에 보면 훨씬 기이해. 어둠 속에 존재하는 내 유일한 길잡이지.”
밀라이언이 귓가에 속삭였다.
밤이 어두워지면 그녀의 눈동자는 한층 더 빛을 발했다. 달빛을 받아 빛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의 눈동자는 언제나 밤만 되면 기이하게, 다채롭게 반짝였다.
“이상하지 않아요?”
“전혀. 평생 나만 바라봤으면 좋겠군.”
다른 곳으로 시선이 가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원히 자신을 향해 생기를 담아 반짝여 주기만 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텐데.
밀라이언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욕심이지.’
욕심이 끝도 없이 커진다. 곁에 있을수록, 사랑을 나눌수록, 그녀의 온기를 알아 갈수록.
“카리나.”
“네?”
“언제든 좋아. 겨울 산맥에 가자. 드래곤이 떠난 그 자리에 뭐가 남았는지…… 그대는 보지 못 했지?”
“……아, 그러게요. 뭐가 있었어요?”
밀라이언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이 떠난 자리엔 제법 놀라운 것이 숨겨져 있었다. 그가 느릿하게 모래사장 위에 앉았다.
혹여 그녀에게 모래가 닿을까 제 허벅지에 카리나를 마주보도록 앉힌 밀라이언이 그녀의 볼을 붙잡았다.
살짝 고개를 기울이자 카리나가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두 개의 입술이 달빛 아래에서 소리 없이 겹쳤다. 허락을 구하듯 아랫입술을 살짝 핥으며 아프지 않게 깨물자 카리나의 입술이 슬쩍 벌어졌다.
밀라이언이 그 안으로 제 혀를 밀어 넣었다. 입천장을 톡톡 두드린 그가 천천히 혀를 얽었다.
다정하게 그러나 소유욕이 가득 담긴 듯 한 번에 혀를 옭아맨 밀라이언이 그것을 느릿하게 잡아 당겼다.
아릿하게 당겨 오는 아픔에 카리나가 반사적으로 밀라이언의 목을 끌어안으며 바싹 몸을 붙여 앉았다.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고 틈없이 바싹 몸을 마주 붙인 두 사람이 정신없이 서로를 탐했다.
사방이 뻥 뚫린 밤의 모래사장 위에서 조금은 민망할 수도 있는 질척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언제나 수동적이었던 그녀는 이제 밀라이언의 목을 끌어안고 제 혀를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단단하게 얽매인 밀라이언의 것에서 벗어나 그녀가 그의 입 안을 탐색하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물론, 밀라이언의 웃음보가 터져서 결국 그다지 좋은 모습으로 끝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 당신을 만난 게 내 인생의 유일한 행복이었어, 카리나.”
“……눈꼬리에 눈물까지 달고 웃다가 말해 봐야 그다지 감명 깊지 않아요.”
“진심이야. 당신만이 날 울고 웃게 할 수 있어. 카리나, 너만이 내 목줄을 쥐고 흔들 수 있어.”
처음과 전혀 다르지 않은 진지한 목소리가 전해 오는 담담한 고백은 조금 짜증이 나 있던 카리나의 기분을 부드럽게 풀어 주기에 충분했다.
“오늘도 변함없이 사랑해.”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으로 밀라이언은 카리나의 목덜미와 얼굴 이곳저곳에 입을 맞췄다.
꽉 끌어안느라 힘이 들어간 팔 은 무척 단단해서, 그녀가 안정감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저도요.”
카리나가 숨을 멈춘 채 밀라이언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어린아이처럼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밀라이언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조금 더 또래에 걸맞아 보였다.
* * *
카리나는 처음에 배 속에서 무언가가 자라고 있다는 것이 확 와 닿지 않았다.
배를 갈라 씨앗을 심은 것도 아닌데 배에서 아이가 자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배가 평평했을 때는 더욱 그랬다.
잠이 많아지고 식성이 달라지고 식사량이 늘었지만 주변은 평화로웠고 사람들이 달라진 것도 아니니 훨씬 감각이 없었다.
그러나 임신 7개월째가 되어 가는 지금 그녀는 생명의 무게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무겁게 실감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말이다.
“……안녕, 윈터.”
카리나가 여전히 어색하게 배를 쓰다듬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이제는 더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불룩 튀어나온 배에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숨을 쉬는 것도 종종 벅찰 때가 있었다. 앞으로 누워도 옆으로 누워도 불편하고 배가 당길 때도 많다.
뭣보다 몸이 무거워지니 움직이지 않게 되는 것이 문제였다.
카리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한 번씩 말을 걸면 배를 치는 듯한 느낌이 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 아이에게 말을 거는 것은 조금 부끄럽고 민망했다.
“오늘은 음……산책을 할까 하는데 아무래도 팽이랑 밀라이언이 가만히 있질 않을 것 같아.”
실수로 넘어질 뻔한 뒤로 두 사람의 과보호는 도를 넘어섰다.
오죽하면 종종 그때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최근엔 조심하고 있어. 네가 곧 태어날 거니까.”
카리나가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아이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은 몇 달쯤 된 일이었다.
어디까지나 윈스턴의 권유였다.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 이렇게 말을 걸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이었고.
‘설마 태몽이라는 걸 윈스턴이 꿀 줄도 몰랐지만.’
부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꾸는 경우도 있다곤 들었다.
그래서 만약 다른 사람이 태몽을 꾸게 된다면 팽 혹은 페리얼 일거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윈스턴은 생각지도 못했다. 사방이 온통 눈이 쌓여 있는 곳에 윈스턴은 우뚝 서 있었다고 했다.
윈스턴은 커다란 씨앗을 가지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가 걷는 길마다 금빛으로 빛났다.
시리디 시린 눈이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그 위에 새파란 초원이 생겨났다. 그리고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씨앗을 어딘가에 심자 거대한 나무 두 그루가 순식간에 자라나 주변의 눈을 전부 녹였다.
나뭇잎이 온통 금빛으로 빛나는 나무와 나뭇잎이 온통 푸른빛으로 빛나는 나무.
그 두 그루의 아름다움에 절로 시선을 빼앗겼다고 했다.
꿈속에서도 느껴지는 따스함에 윈스턴은 행복감에 젖어서 눈을 떴다. 그 이야기를 해 주는 윈스턴의 손은 무척이나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