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49)
>외전 5화>
* * *
“카리나, 일어났…….”
오늘도 언제나처럼 아침 훈련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온 밀라이언의 표정이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그가 짜증스럽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가, 검을 뽑는 시늉을 해 보였다가 이내 어리둥절한 표정의 카리나를 보며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검 손잡이에서 떼어냈다.
“여기가 네 집인가?”
“하하하, 자네는 참 감이 좋군. 이제 막 내 주인을 납치할 생각이었네만.”
풍채가 큰, 구릿빛 피부의 사내. 적갈색 머리카락은 도저히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아지다하카였다.
그가 카리나를 덥석 안아 들어 의자에 앉히곤 자신도 맞은편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주인에게서 느껴지는 심장 소리가 조금 이상해서 돌아와 봤지. 그런데…… 참 재밌게 됐어.”
아지다하카가 의미심장하게 말하며 아랫입술을 혀로 핥았다.
붉은 혀가 잠시 움직였다가 이윽고 자취를 감췄다. 여전히 우락부락한 근육은 다시 봐도 조금 기가 질릴 정도였다.
“꺼져라.”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대부가 되기로 했네. 인간계에도 이런 풍습이 있긴 했었지. 오래되어 잊고 있었지만.”
“……카리나?”
“아, 대부가 되면 아이에게 축복을 내려 줄 수 있다고 해서요. 드래곤들도 가지고 있는 풍습이래요.”
카리나의 말에 밀라이언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자신이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그녀에게 수작질을 부리고 있다. 하필이면 저런 파충류 따위가 대부라니!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수도의 신전으로 가는 게 좋을 거야.”
“무슨 소리지?”
“신의 축복을 과하게 받고 태어난 데다 드래곤의 마력을 품은 심장까지 가지고 있는 인간. 그리고 자네 역시 일반적인 인간보다는 훨씬 더 축복을 받고 태어 났지.”
아지다하카의 굵은 손가락이 밀라이언을 가리켰다.
제 얼굴을 향한 손가락에 밀라이언이 미간을 찌푸리며 팔짱을 꼈다.
카리나와 밀라이언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를 가만히 바라보자 아지다하카가 턱을 매만졌다.
“과한 것들끼리는 웬만해선 만나지 않는 게 좋아. 원래라면 탄생할 수 없는, 과하기 짝이 없는 게 태어나거든.”
“카리나에게 뭔가 문제가 생기는 건가?”
“아니, 우리 주인에겐 그다지 문제가 생기진 않지. 다행히 아이는 효심이 그득한 것 같으니.”
아지다하카가 느릿하게 손을 뻗어 카리나의 배를 살짝 눌렀다.
마법진이 작게 손가락 끝에 떠올랐다가 곧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카리나가 놀란 표정으로 제 배를 감싸 안았다.
“카리나?”
“……아이가 움직였어요.”
“내 마력에 반응한 거야. 아주 옅디옅은 마력이었는데도 반응하는 걸 보니 생각대로 마력에 무척 예민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군.”
카리나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배를 쓰다듬었다.
그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지다하카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리나는 정말 특수한 경우다.
예술의 신이 내린 과한 축복을 받았었고 생명 연장을 위한 드래곤의 마력을 가졌다.
그리고 밀라이언 또한 어떠한 신의 축복을 받고 있었다.
자라는 내내 다친 적도 없을 테고 아픈 적도 없을 테지. 남들보다 예민한 오감과 통찰력 그리고 무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물론 본인의 노력도 있겠지만 신의 축복을 받은 영향도 있을 것이다.
북부의 인간, 전투를 사랑하고 옅게 풍기는 피 냄새나 전투 때 그의 성향을 보면 그에게 축복을 내린 신은 아마 전쟁의 신일 확률이 높았다.
신이 사랑하는 자들은 기본적으로 서로 얽히지 않는다.
신과 신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아서 보통은 그 축복을 받은 이들도 본능적으로 서로를 꺼려하기 마련이었다.
하물며 예술과 전쟁?
우습지만 성향이 반대여도 너무 반대였다. 눈앞에서 그 결실을 보고 있는 자신조차 여전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럼에도 둘은 운명처럼 만났고 사랑했고 심지어 아이까지 품었다.
원래라면 생기지 않았을 아이였으나 자신의 마력이 두 사람 사이의 충돌을 막아 준 것이 분명 했다.
드래곤의 마력이 방파제 역할을 해 준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단순히 우연으로 겹쳤다고 한다면 둘 중 하나는 무척이나 운이 좋은 것이겠지.
아지다하카는 잠시 고민했다.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어떻게 태어날지 솔직히 그로선 도저히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영겁에 가까운 긴 시간을 살면서 그는 단 한 번도 이런 상황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이 아이는 아마 세상에 적응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릴 거야.”
“……그게 무슨 소리예요?”
“마력에 예민하다는 것은 오감이 특출하다는 거야. 어릴 때부터 적응을 하면 익숙해지겠지만 갓 태어난 인간의 아이가 감당하기엔 괴롭겠지.”
아지다하카의 설명에 카리나의 미간이 좁아졌다.
조금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아이가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이해가 갔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긴다는 건가요?”
조금 멀찍이 떨어져 있던 밀라이언이 성큼성큼 다가와 카리나의 어깨를 살살 쓰다듬었다.
진정하라는 듯한 그의 손길에 카리나가 작게 심호흡을 했다.
“천천히 설명해 주지. 도대체 무슨 이야긴지 알 수가 없으니.”
밀라이언이 근처의 의자를 끌어 와 카리나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아지다하카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곤란한 표정으로 답답한 듯 머리를 벅벅 문지르던 그가 손가락을 퉁겼다.
그의 손에 황금으로 된 잔이 생기더니 이윽고 그 안에 포도주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포도주가 잔을 반보다 조금 더 채웠을 때쯤, 아지다하카가 그것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 잔이 보통의 인간의 몸이야. 물론, 잔의 크기는 인간마다 달라. 이걸 가지고…… 그래, 그릇의 크기라고 하지.”
“그릇의 크기…….”
“그리고 이 잔의 크기는 선천적으로 큰 경우도 있지만 후천적인 환경에 의해 더 커질 수도 있어.”
카리나가 숨을 들이켠 채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은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정확히 뭔지는 아직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그리고 이 안에 들어가 있는…… 이 포도주가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들이지.”
그가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찌푸려진 미간으로 여전히 약간의 답답함이 엿보였지만 그건 상대를 향한 답답함이 아니었다. 설명에는 익숙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답답함이었지.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
“아, 청각, 후각, 촉각. 뭐 미각 이나 통찰력, 두뇌 회전이나 운동신경 같은 거 있지 않나. 그거 외에도 뭐 나눠 보자면 많겠지.”
“그래서 그게?”
“그걸 좀 과하게 받아 태어나는 놈들이 있지.”
아지다하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다시 잔에 포도주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무서운 기세로 차오르기 시작하던 포도주는 잔을 꽉 채우고서야 차오르기를 멈췄다.
“개중에서도 뭐, 천재라고 불리는 부류들이 있잖아?”
아지다하카가 머리를 긁적였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을 한계 가득 가지고 태어나는 거지. 예술이든 무력이든 두뇌든. 어느 쪽이든 말이야.”
“예술로 기적을 일으키는 부류들 같은 건가요?”
“그래 뭐…… 비슷하다고 해 두지. 주인의 경우엔 작은 잔에 너무 많이 담긴 능력 때문에 이게 넘쳐흐른 거야.”
포도주 잔에 또다시 포도주가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더 담길 곳이 없던 포도주는 바닥에 깔린 카펫 위로 속절없이 울컥울컥 쏟아졌다. 카펫을 제법 적시고 나서야 포도주는 흐르길 멈췄다.
“뭐…… 주인의 반려 쪽은 주인보다야 적지만 보통의 인간과 비교했을 때 포도주의 양이 제법 많지. 다행히 잔의 크기가 컸어. 넘쳐흐르지 않은 좋은 케이스지.”
아지다하카가 이윽고 잔에 담긴 포도주를 전부 입에 털어 넣더니 이내 잔을 내려놨다.
아지다하카의 샛노란 시선이 정확히 카리나를 향했다.
“주인의 아이는 둘 다야. 잔의 크기는 무척 크겠지만, 그 그릇 조차도 아이가 가지고 태어날 것을 받아 내지 못하고 넘쳐흐를 거야.”
“…….”
“과한 능력을 감당하지 못하는 거지. 자랄수록 힘은 더 강해질 테고 아이의 그릇 역시 커져야 할 거야.”
아지다하카가 굳이 이 먼 길을 돌아온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가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있 는데도 곧 태어날 아이의 힘이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아직 어미의 배속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가 뿜어내는 생명력은 남달랐다.
아마 이 세상에 마력에 민감한 위대한 존재들이 남아 있다면, 아마도 아이가 탄생하는 순간 알아챌 것이다.
“왜 그런 거예요?”
카리나가 한참 만에 더듬더듬 물었다.
벌겋게 힘을 준 눈에서 서글픔이 물씬 느껴졌다. 아지다하카는 그저 말없이 웃었다.
“주인과 너는 과한 쪽의 인간이었고…… 그 아이는 원래라면 품을 수도, 또한 태어날 수 없었던 아이거든.”
“그게 무슨 소리지?”
“말하지 않았나. 과한 것들끼리는 만나면 안 된다고.”
아지다하카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두 사람이 숨을 삼켰다.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신들이 어째서 ‘과한 것’이라는 수식어에 포함되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주인은 금기를 범하고도 살아 남을 정도로 강력한 기적의 소유자였지. 자네도 자라는 내내 크게 아파 본 기억도 없을 거고. 다친 상처가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낫는 편이었지?”
“…….”
“그리고 이 몸의 마력까지 품었고…….”
아지다하카가 말끝을 흐렸다.
다행인 것은 그나마 신의 축복을 받고 태어날 것이라는 사실 하나였다.
“오감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할 거야. 작은 소리도 천둥소리만큼 크게 들리겠지. 멀리서 하는 대화를 듣게 될 거고 후각도 예민해질 거야.”
“어떻게 할 방법 없나?”
“시간이 답이지. 머지않아 익숙 해질 거야. 스스로 그것을 정리하는 법을 깨우치게 될 거고.”
드래곤이라면 모두 겪는 일 중의 하나였다.
특히나 드래곤들의 목소리나 움직임은 무척이나 커서 갓 태어난 드래곤이 신경 쇠약증에 걸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모두 익숙해진다. 그런 것처럼 아이 역시 익숙해지겠지.
인간들과 생활하는 환경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는 그것을 곁에서 도울 의향이 있었다.
“아이가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니죠……?”
“전혀. 잘만 자란다면 아마 누구보다 건강하게 자라겠지.”
흔한 병도 걸리지 않을 거고 누구보다 명석하게 자라날 것이다.
아이의 삶은 부모가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눈앞의 두 인간이 아이를 나쁘게 키울 것 같지도 않고.
“그래도 신전의 도움은 좀 필요 할 거야. 신전에는 아이와 가까운 신력이 넘쳐나는 인간들로 가득하니 다른 소음보다는 조금 더 나을 거야.”
“……신전은 수도에만 있는데요.”
“그거지. 한동안은 수도에 있는 편이 좋을 거야. 언제든지 신전에 갈 수 있도록.”
아지다하카의 말에 카리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밀라이언은 이마를 짚은 채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