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51)
>외전 7화>
* * *
“세레에에엔.”
빼꼼, 고개를 내민 페리얼이 도둑처럼 슬금슬금 아이를 찾아 눈동자를 굴렸다.
밀라이언이 어찌나 철통 수비를 하던지, 아이가 태어나고 반년이 넘도록 그는 제대로 아이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아예 보지 못한 건 아니다.
50m에서 100m쯤 거리를 유지 하면 밀라이언이 무슨 적선하듯이 슬쩍 얼굴을 보여 주긴 했으니까.
그리고 오늘, 페리얼은 결국 참 다못해 아이의 얼굴을 보기 위해 페스텔리오 가문 소유의 수도 저택에 잠입했다.
‘왜 나만 안 돼!’
페리얼이 억울한 건 그 부분이 었다.
드래곤인 아지다하카도 윈스턴도 심지어 팽도 아이를 볼 수 있는데 왜 자신만 굳이 거리를 두고 아이를 봐야 한단 말인가!
가까이서 볼도 좀 만져 보고 싶은데!
“네놈이 만지면 우리 애 더러워져.”
이유를 따지고 들었을 때 들려 온 말은 딱 그거 하나였다. 다시 생각해도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달았다.
페리얼이 슬쩍 아이가 있을 법 한 방문을 열었다.
“세렌.”
문득 다른 방문 안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페리얼의 걸음이 뚝 멈췄다.
카리나와 세렌이 함께 있는 듯 했다. 페리얼이 조금 미묘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이곤 가볍게 문을 노크했다.
“들어와요.”
안쪽에서 허락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페리얼이 슬쩍 문고리를 돌렸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카리나가 들어온 낯익은 인영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페리얼?”
“오랜만이에요, 카리나.”
“여긴 어떻게…….”
카리나가 제법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아이를 품에 안아 침대 위에 앉혔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 없는 페리얼을 보며 말없이 웃었다.
“차 한 잔 할래요?”
“……영광이죠.”
페리얼이 미소 지었다.
별로 어색할 건 없지만 둘이 있게 된 적은 제법 오래전의 일이라서 뻘쭘한 느낌이 있었다.
페리얼이 카리나를 따라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카리나가 찻잔에 차를 따르고 제 잔에는 차가운 차를 따르더니 아이를 품에 안고 페리얼의 맞은편에 앉았다.
“밀라이언이 하도 세렌을 보여 주지 않아서 몰래 보러 왔어요.”
“이런, 용케 안 들켰네요.”
“아무래도…… 편법이 있으니까요.”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한 페리얼의 말에 카리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제법 자란 세렌은 기어 다니기도 제법 기어 다녔고 혼자서 앉아 있을 수도 있게 됐다.
“아우!”
“귀엽네요. 제가 애한테 무슨 짓을 한다고 도대체 안 보여 주려고 하는 건지.”
페리얼이 툴툴거렸다.
아이는 손에 딸랑이를 쥔 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보통의 딸랑이라고 하기엔 그 안에서 나는 소리가 무척이나 작았다.
페리얼에게는 기껏해야 모래가 몇 알 굴러다니는 느낌이었으나 아이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혼자서 까르르 까르르 웃기에 바빴다.
“그래도 많이 안정된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일주일에 한 번은 꼬박꼬박 신전에 가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우는 일도 많이 줄어 들었어요. 힘든가 봐요.”
“마아! 마아!”
세렌이 카리나의 다리를 툭툭 쳤다.
카리나가 능숙하게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자 또 이리저리 기어 다니며 뭔가를 하느라 바빴다.
페리얼이 말없이 아이의 움직임을 시선에 담았다.
“그래도 대화 소리엔 익숙해졌나 봐요.”
“……아지다하카가 너무 소리를 배척하면 나중에 더 괴로워진다고 해서. 인간 세계에서 살게 할 거면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라고 했어요.”
그래서 최근엔 사용인들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면 세렌은 모든 일을 멈추고 귀를 쫑긋거리며 좌우를 두리번거렸지만 예전처럼 울음을 터뜨리진 않았다.
“세렌이 3개월쯤 됐을 땐 벌레 때문에 잠을 못 잤다니까요.”
“아, 들었습니다. 밀라이언이 모기와의 전쟁을 벌였다고 하던데…….”
“네, 사용인들이 전부 저택 문을 닫고 벌레만 잡았다니까요.”
그 광경은 다시 생각해도 웃음이 터졌다.
아이를 품었던 시간이 1년 그리고 거기서 반년이 더 지났다.
문득 차곡차곡 줄어드는 시간을 생각하면, 카리나는 그저 이젠 가슴이 아팠다.
아이의 삶에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주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까. 그러니까 그녀는 최대한 세렌과 오랜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웬만해선 세렌에게서 떨어지지 않았고 세렌의 외출 준비도 늘 그녀가 직접 했다.
신전에 갈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카리나의 곁에는 늘 세렌이 있었다.
“그나저나 밀라이언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은 황성에 갔어요. 세렌이 주변 환경에 익숙해질 때까진 수도에 있으려고 하거든요. 이런저런 절차를 밟을 게 있나 봐요.”
“그럼 안심이군요.”
페리얼이 찻잔을 다 비우곤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쪼르르 아이에게 다가가 그 앞에 쪼그려 앉은 페리얼이 조심스럽게 아이의 볼을 살살 쓰다듬었다.
“꺄아아! 꺄!”
양팔을 버둥거리며 세렌이 고개를 내저었다.
어찌나 필사적으로 저어 대는지 페리얼이 손을 뻗은 모습 그대로 완전히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세렌, 삼촌인데…….”
“마아아!”
세렌이 냉큼 몸을 돌려 후다닥 카리나에게로 달려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달릴 것처럼 필사적으로 기어갔다고 하는 것이 조금 더 알맞았다.
페리얼이 입술을 뻐끔거리다가 이윽고 절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툭 떨궜다. 무릎을 꿇은 채 체통 없이 손까지 바닥에 댄 그 모습은 처연하기 짝이 없었다.
카리나가 세렌을 안아 들자 세렌이 카리나의 가슴 사이로 얼굴을 푹 묻었다.
그리곤 얼굴을 부비며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물끄러미 아이를 내려다보던 카리나가 고개를 들었다.
“……혹시 페리얼, 여기 오기 전에 어디 다녀왔어요?”
“저택에서 바로 온 거라서 따로 들른 곳은 없습니다.”
페리얼이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그가 상당히 충격적인 표정으로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세렌의 근처로 다가오는 것도 내키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으음, 혹시 연구실?”
“네, 제가 있는 곳이야 대개 그 렇죠.”
“아, 그럼 그거 때문일 거예요.”
카리나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안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도리어 페리얼이 고개를 갸웃하자 카리나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기억 못 해요? 세렌은 후각도 굉장히 예민해요.”
“아……. 하지만 오는 내내 거의 씻겨 나가서 냄새가 나지 않을 텐데요.”
페리얼이 제 옷에 얼굴을 푹 묻으며 코를 킁킁거렸다.
옷에 바짝 코를 박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확실히 옅게 약품 냄새가 나기는 했다.
세렌이 퍽 괴로운 듯 카리나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떨어질 생각을 하지를 않는다.
“예민해서 그래요. 아마 씻고 옷을 갈아입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끙, 공주님께선 까다로우시군.”
그러면서도 페리얼은 익숙하게 옷장을 열었다.
당연하다는 듯 밀라이언의 옷장에서 갈아입을 옷을 챙긴 그가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빈방에서 씻고 오겠습니다.”
“네, 전 잠깐 세렌을 달래고 있을게요.”
“네, 절대 다른 데 가시면 안 됩니다! 오늘이야말로 안아 보고 싶습니다…….”
“알겠어요.”
페리얼이 냉큼 방을 빠져나갔다.
페리얼이 나가고 카리나가 여전히 괴로워 보이는 아이를 위해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제야 세렌이 한숨과도 같은 숨을 푸하, 하면서 내쉬었다.
‘가끔 애어른 같을 때가 있단 말이지.’
세렌이 창문에 바싹 얼굴을 가져다 대고 숨을 열심히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카리나가 결국 웃음을 터뜨리며 아이의 볼에 입을 맞췄다. 사랑스러움이라는 것이 이런 거라고 그녀는 최근 배워 가고 있다.
“세렌.”
카리나의 부름에 세렌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색이 다른 두 눈동자는 미묘하고 신기했다.
“사랑해.”
카리나의 목소리에 세렌이 화악 꽃이 피는 것처럼 웃어 보였다.
그리곤 꼬물꼬물 손을 뻗어 카리나에게 제가 쥐고 있던 딸랑이를 넘겨주더니 그녀의 옷자락에 매달렸다.
“마아! 마!”
“너랑 조금 더 오래 같이 있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나직하게 읊조리는 그녀의 말에 세렌이 고개를 기울였다.
갸웃, 기울어지는 고개를 손바닥으로 조심스럽게 받쳐 주며 카리나가 세렌을 품에 안아 들고 오동통한 볼에 입을 맞췄다.
“엄마는 세렌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언제까지나.
세상의 어두운 부분보단 밝은 부분을 봤으면 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누구보다 강해졌으면 했다.
자신의 삶과는 달리 친구도 많이 사귀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도 많기를.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던 세렌은 말없이 카리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일 때마다 햇빛에 비친 푸른색 눈동자가 바다처럼 반짝였다.
아이는 때때로 무표정하게 자신을 올려다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그녀는 조금 더 세렌을 끌어안아 주곤 했다.
쫑긋.
아이의 귀가 위쪽에서 움찔움찔 움직였다.
누군가가 다가왔을 때나 보이던 세렌의 반응이었다. 카리나가 이제는 익숙하게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벌써 페리얼이 돌아왔나?’
그렇다기엔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진 않은데.
문고리가 돌아가고 이윽고 문이 조용히 열렸다. 세렌을 품에 끌어안은 카리나가 세렌과 함께 문에 시선을 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