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54)
>외전 10화>
* * *
“세렌.”
“마아!”
카리나의 작은 부름에도 세렌이 쫑긋 귀를 움직이더니 장난감을 던지고 냉큼 뒤뚱거리며 기어오기 시작했다.
세렌이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부턴 바닥에는 한층 더 푹신한 러그가 깔리고 뾰족한 것들은 모두 자취를 감췄다. 하룻밤 만에 벌인 밀라이언과 팽의 합작품이었다.
“엄마랑 신전 갈까?”
“까!”
세렌이 카리나의 뒷말을 냉큼 따라 했다.
번쩍 팔을 들어 올리는 아이를 보며 카리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아이는 의외로 호기심쟁이라 사고도 제법 많이 쳤다.
물건을 밀어 넘어뜨리기도 하고 스스로 딸랑이를 던져놓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가장 힘든 것은 시도 때도 없이 칭얼거리는 것이었다. 부모가 된 다는 것이 이런 것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아주 조금 난감했던 기억이 있었다.
사실 다른 것은 다 쉽게 적응했지만, 새벽이나 밤마다 밥을 달라고 울거나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하는 것만큼은 적응하는 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여전히 잠을 자다가 깨는 일은 무척 힘들었다.
그럼에도 아이의 얼굴을 보면 절로 사랑스러워서 결국 아무런 화를 낼 수도 없게 되어버리지만.
그래도 아이를 키우는 것이 무척 힘든 일이라는 것은 알게 됐다.
아이는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손이 무척이나 많이 갔다. 애정이 있어야만 키울 수 있고 사랑해야만 자라게 할 수 있다.
“그럼 얼른 옷 입어야겠다, 우리 세렌.”
카리나의 말에 고개를 기울이던 세렌이 이윽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사랑스러운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춘 카리나가 설렁줄을 흔들어 사람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마님.”
“응. 세렌이랑 외출을 하려고 하는데, 옷 좀 가져다 줄래?”
“아, 네! 알겠습니다.”
시녀가 허리를 굽히곤 다시 방 을 조심스럽게 나갔다.
카리나가 세렌을 품에 안아 침대에 앉히자 아이가 푹신한 것이 기분이 좋다는 듯 또다시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예전엔 맨날 울기만 했는데.’
처음에는 정말 울기만 했다. 시끄러운 세계가 적응되지 않는 것처럼, 그저 울고 울고 울어서 발을 동동 굴렀던 때도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웃을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지만.
“신관님 만나러 가는 게 좋아?”
“아우?”
세렌이 손을 파닥파닥거렸다.
얼른 나가자는 제스처에 카리나가 결국 또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참 궁금해진다.
‘부모가 되는 건 어렵네.’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 지, 어떤 행동을 보여줘야 하는 지 뭐가 되고 뭐가 안된다고 말 해야 하는지 모든 것이 다 고민이다.
좋은 것만 보여줘야 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좋지 않은 것도 보여주고 그것에 관해 설명해줘야 하는지도.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는 모든 것이 선택투성이였다.
아이에게 가르칠 거, 아이에게 먹일 것,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하는지, 아이에게 뭘 알려줘야 하는지, 아이의 잠자는 시간이나 아이의 말을 이해하는 것도.
그 모든 것들이 선택과 선택의 길에 서 있었다.
함께 할 시간이 길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알려주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아직 너무 어리지만.”
카리나가 세렌의 볼에 입을 맞췄다.
“사랑해, 세렌.”
“따아! 라!”
입을 우물거리던 세렌이 카리나의 말을 따라 하듯 입술을 달싹였다. 그리곤 뿌듯하게 콧김을 훅 내뿜는다.
“아…… 진짜, 내 딸이지만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카리나가 무너지듯 세렌을 품에 안은 채 웅얼거렸다.
웬만하면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우리 세렌은 귀여운 것 같다.
“약간 밀라이언처럼 되어가는 것 같아…….”
카리나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밀라이언의 팔불출은 이미 인간의 영역을 넘어섰다. 어딜 가든 세렌의 자랑을 하고 다니고 한 번은 세렌이 머리를 이리저리 헤집어놨는데, 그게 좋다고 온종일 그러고 다녔다.
그뿐이랴, 세렌을 어화둥둥 안고 다니는 것은 물론 세렌이 해 달라는 건 너무 다 해줄 기세였다.
그러니까 어떤 식이냐면, 사과가 먹고 싶다고 하면 사과 농장을 하나 구매할 수준이라고 해야 한다.
돈 많은 인간이 팔불출이 되어 버리니, 말 그대로 돈이 물처럼 줄줄 새어나가는 수준이 되었다.
“옷 가져왔습니다. 세렌님 준비 하시면서, 마님도 같이 준비 도와드릴게요.”
“응. 세렌, 옷 입자. 엄마도 옆에서 입을게.”
카리나가 조곤조곤 말하자 세렌이 고개를 기울였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했으나 어쨌든 방긋 웃어 주는 것으로 그녀는 만족했다.
준비를 다 끝내고 세렌을 품에 안은 채 계단을 내려오자, 어느새 얘기를 들었는지 팽이 마차를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공작가의 기사단 둘이 허리를 숙여 보였다.
아무래도 오늘 호위는 저 두 사람인 듯했다.
‘……괜찮다니까.’
수도 한복판에서 무슨 큰일이 일어날 것 같지도 않은데.
만약, 카리나 혼자였다면 사실 거절했을 거다. 다만, 세렌이 있어서 카리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어떻게든 되겠지만, 세렌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견딜 수 없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마님.”
“응. 저녁까진 돌아올게.”
“주인님께도 그렇게 전해 두겠습니다.”
빙긋 웃은 팽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팽의 표정이 퍽 밝다. 윈스턴과 자주 만나게 되면서부터 특히 얼굴이 밝아진 것 같다. 아무래도 친구가 생기니 좋은 듯했다.
저택에선 그렇게 피곤에 찌들어 보이더니. 요즘은 피부가 한결 좋아졌다.
“그럼 다녀올게.”
카리나가 기사단의 도움을 받아 세렌을 먼저 마차에 올리고 자신도 올라갔다. 이윽고 마차가 아주 부드럽게 출발했다. 흔들림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 * *
수도 중심지에 존재하는 신전은 황성보다는 덜하지만, 무척 규모가 크고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새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건물은 여러모로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전의 앞은 늘 성기사가 지키고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면 신도들과 새하얀 신관복을 입은 사람들이 제각기 맡은 일을 이곳저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꺄아!”
안으로 들어오자 세렌의 얼굴이 한층 더 밝아졌다. 세렌은 유독 이 신전을 편안해했다. 신전 본관으로 들어가면 한층 더 편안해 했고.
“아! 카리나 님, 세레누스 님. 오셨습니까?”
“칼란 신관님.”
“네, 일주일 만에 뵙는군요.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저야 늘 그렇죠. 저보단 세렌이 더 잘 지내길 바라고 있어요.”
칼란 신관이 빙긋 웃었다.
밀라이언보다는 옅은 남색 머리 카락을 날개뼈 부근까지 기른 남자는 머리끈으로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고 있었다.
새하얀 신관복에 황금으로 된 신전 문양이 그려져 있다. 서글 서글한 눈매나 입가에 떠 있는 미소는 사람을 무척이나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카리나가 마주 미소지었다.
세렌이 드물게도 꺄꺄 소리를 내며 칼란 신관을 향해 두 팔을 쭉 뻗었다. 안아달라는 제스처에 카리나가 당황하며 세렌을 제품에 조금 더 끌어안았다.
“세렌, 안 돼.”
“괜찮습니다. 물론, 카리나 님께서 제가 안는 걸 허락해주신다면요.”
“그래도.”
세렌이 칼란 신관의 품에 쏙 안겼다.
기어코 그 품에 들어간 세렌을 보며 카리나가 한숨을 쉬었다.
신력을 좋아하는지, 그것에 편안함을 느끼는지 세렌은 유독 신관들을 좋아했다.
칼란이 세렌의 등을 토닥이며 신력으로 아이를 감싸줬다.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윽고 또다시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세레누스 님은 정말 신력에 민감하신 것 같네요. 참 특이하십니다.”
“……그러게요.”
신관에는 딱히 사정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 예민하게 태어나서 신전 근처에 오면 편안함을 느끼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칼란 신관은 이곳에 처음 두 사람이 왔을 때 안내를 해 줬던 사람이 었다.
물론, 그 친절의 이면에는 페스텔리오 공작가의 막대한 기부금 탓도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덕분에 세렌이 주기적으로 신전에 와서 편하게 있다 갈 수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오늘은 사람이 적네요.”
“네, 오늘은 조금 적은 것 같군요. 본관으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본관 건물 안에서 저와 차를 한 잔 마시는 편이 좋으시겠습니까?”
칼란 신관의 말에 카리나가 작게 미소지었다.
카리나가 본관에 가도 매번 멍하니 앉아 있기밖에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아쉽게도 기도를 드리러 온 건 아니니 차를 한잔하는 쪽으로 할게요.”
“카리나 님께선 신을 믿지 않으시는 모양입니다.”
칼란 신관이 편하게 제 어깨에 기댄 세렌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제법 높은 신관이라고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 행보가 퍽 신기한 모양이다.
지나가는 길마다 다른 신관들이 놀란 눈으로 힐끗거리고 있는 것을 보면.
“믿어요. 누구보다도 신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죠.”
그 신이 얼마나 잔혹한지도, 그리고 그 신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것을 제 품에 안겨줬는지도 알고 있다.
손에서 자아내는 예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그 아름다움의 이면에 존재하는 잔인함마저도.
“그렇군요. 그런데도 기도는 하지 않으시는 것 같기에. 바라시는 것이 없나요?”
“바라는 건 많아요. 인간이다 보니 욕심이 차고 넘쳐서요.”
카리나가 어깨를 설핏 웃으며 말했다.
바라는 게 어떻게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밀라이언이 행복하기를, 세렌이 건강하고 아픈 곳 없이 자라기를, 언제나 행복하기를. 영지가 조금 더 잘됐으면 좋겠고 마물로 그가 다치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그리고 아주 조금이라도, 하루라도 더 좋으니 아이와…… 그리고 밀라이언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기를.
“하지만 신은 제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
바라도 바라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럴 바엔 그 기도하는 시간을, 그녀는 아이에게 온전히 쏟고 싶었다. 밀라이언의 온기에 몸을 기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