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55)
>외전 11화>
“이런,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화는 안 내시고 그게 궁금하신가요? 불경하다며 저를 혼내실 줄 알았는데요.”
카리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하자 칼란 신관이 여전히 보기 좋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저었다.
다정한 미소였지만 눈빛만은 단호했다. 마치 절대 그럴 일은 없다는 듯이.
“신을 믿으라고 강요하고 기도를 드리라 강요하는 것은 신관이 할 일이 아니지요. 그건 이도교와 다름이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러네요.”
본관 건물로 들어오자 세렌은 아예 색색거리며 잠에 빠져들었다.
낮동안은 낮잠도 제대로 자질 못하더니, 신전에만 오면 편안한 곳에 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꼭 잠에 빠지곤 했다.
제법 시끄러운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칼란 신관이 응접실로 들어와 한쪽에 있는 침대에 아이를 눕히고 차를 준비했다.
신전에서 쓸 법한 게 단아하면서도 깔끔한 찻잔은 화려하진 않았으나 역시나 값이 제법 나갈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제 질문에 대한 대답은 들을 수 있을까요?”
카리나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의 휴식이다. 아이가 잠시 낮잠을 잘 동안의 대화 주제로는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기도야 질리도록 해봤거든요. 들어주지 않더라고요. 그냥 경험에서 우러난 말이에요.”
“신전에서 한 제대로 된 기도는 아니지 않으셨습니까.”
“네, 하지만 신전에서 한다고 달라지진 않을 거예요. 가장 바라는 것을 빼앗고 그의 욕심으로 절 채웠으니…….”
그 바라는 것을 위해 밑도 끝도 없이 발버둥을 치고 제 생명을 갈아 넣게 만들었다.
그것을 카리나는 신이라고 생각 했다. 가장 바라는 건 결코 주지 않는다. 신이 추구하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신을 원망하시는군요.”
“아뇨, 그로 인해 얻은 것도 있으니 원망만 하는 건 또 아니에요.”
카리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카리나의 표정을 미묘하게 바라 보던 칼란 신관이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찻잔을 두 손으로 잡아 기울이곤 정갈하게 다시 내려놨다.
“원하시는 게 있습니까?”
“있어요. 하지만 말하지 않을 테니까 거기까진 묻지 마세요.”
카리나가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칼란 신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더 물어볼 기색은 그에게도 없었다. 카리나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보단 세렌에 관한 일이에요.”
“네, 무언가 문제가 있나요?”
“음, 그런 건 아니고……. 정확히 말하자면 남편에 관한 일이겠네요.”
칼란 신관이 고개를 기울였다.
“팔불출이 너무 심한 것 같아요.”
카리나의 진지한 표정에 칼란 신관의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그가 조금 당황한 듯 어색한 웃음을 입가에 그렸다.
“팔불……, 네?”
그는 답지 않게 말을 조금 더듬 거렸다. 그의 미묘한 시선을 보다가 카리나가 그제야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너무 심각한 문제였다.
“음, 좋습니다. 사람은 모두 다른 고민을 안고 있는 법이니까요. 괜찮으시다면 세레누스 님께서 일어나실 때까지 제가 들어 드리겠습니다.”
“음, 원래부터 조금 아이를 특별하게 챙기긴 했어요. 사실 첫 아이이니 조심스러운 건 사실이고요.”
“그렇죠.”
칼란 신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녀의 말에 수긍 했다.
아이에 대한 고민을 하는 신도 들은 제법 많았다. 실제 아이를 위한 세례를 원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으니까.
“근데, 최근 도가 너무 지나치다고 해야 하나…….”
“지나치다면?”
“음, 세렌이 청력에 상당히 예민하니까요. 그걸 위해서 조금 특별한 딸랑이가 필요했는데…….”
카리나가 말을 끄는 것을 들으며 칼란 신관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그는 다행히 높은 계급의 신관으로서 인내심이 무척이나 뛰어난 사람이었고 기다림의 미학을 아는 사람이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 한숨을 푹 내쉰 카리나가 입을 열었다.
“수도에 장난감 공장을 하나 세웠어요.”
“……아, 설마 최근에 시끄러웠던?”
“네, 조금 유명했죠. 신원 미상의 인물이 갑작스럽게 장난감 공장을 세워서 시위도 하고 항의도 많이 들어왔었잖아요.”
칼란 신관이 웃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실제로 그때 신전에 그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돌았다.
갑작스럽게 파고든 신원 미상의 인물에 대한 답답한 속을 하소연 하거나 길 가다가 고꾸라지라는 소원을 비는 사람도 있었다.
“그…… 아무래도 원래부터 그 업계에 종사하던 분들이 계셨으니 말입니다. 반발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네, 근데 그냥 특수 제작을 하나 요청하면 될 일을 공장까지 짓고 그렇게 일을 크게 벌일 필요가 있었나 싶더라고요.”
카리나도 함께 사는 내내 밀라이언의 씀씀이에 대한 호탕한 면을 많이 봐 왔다.
그는 돈을 쉽게 쓰진 않지만 한 번 쓰면 정말 아낌없이 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아니고 말이다.
“이유도 물어보셨나요?”
“네, 그이의 말을 그대로 빌려 쓰자면…… ‘다른 놈들이 만든 장난감을 뭘 믿고 내 새끼 손에 쥐여 줄 수가 있어?’었어요.”
“…….”
무슨 말을 하든 여태 대답을 잊지 않았던 칼란 신관이 결국 말을 잃었다.
카리나가 살짝 고개를 돌리곤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그뿐이면 사실 말도 안 한다.
“음…… 그랬군요.”
칼란 신관이 한참 만에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누가 들어도 영혼이라곤 없는 말이었다. 그의 대답은 단순히 의무로 반응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뿐인 줄 아세요? 사실 세렌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사과거든요. 사과를 유독 잘 먹어요.”
카리나는 어디 털어놓지 못했던 말을 칼란 신관에게 술술 털어놓기 시작했다.
솔직히 집주인의 욕을 집안 사용인들에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렇다고 페리얼에게 하기엔…….
‘페리얼도 밀라이언과 같은 과니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부자들이 조금 싫어질 것 같다.
신분 높은 귀족에, 권력도 있고 돈도 많은 부자는 자신의 행위가 무척이나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으니까.
팽에게 하기엔 팽은 밀라이언의 행위를 방관하는 쪽이었고 그렇다고 윈스턴에게 하기엔 그의 시간이 없었다.
팽이 윈스턴과의 수다에 맛을 들였는지 윈스턴이 이곳에 방문하면 정기 검진을 제외하곤 남은 그의 시간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으니.
그 덕에 그날만큼은 팽은 말 그대로 칼퇴근했다.
‘윈스턴이 워낙 말을 잘 들어 주는 편이니.’
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 면이 있었다. 무슨 대화든 귀 기울여 주고 함부로 조언하지 않는다.
그가 입을 연다는 것은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때였다.
솔직히 나이만 조금 더 비슷했어도 카리나 역시 그와 조금 더 친한 친구가 되고 싶어 했을 것이다.
윈스턴은 싫어할 수 없는 사람 이었으니까.
“네, 사실 세레누스 님을 위해 사과를 준비해 놓긴 했습니다.”
칼란 신관이 웃으며 한쪽을 가리켰다. 퍽 질이 좋아 보이는 사과가 바구니 가득 담겨 있었다.
카리나가 어색하게 웃었다.
사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유식도 사과를 으깬 것으로 시작했을 정도다.
그렇다고 그것만 먹일 수는 없어서 일반 이유식과 사과 으깬 걸 번갈아 가면서 먹이고 있다.
세렌은 아예 맛없는 걸 한 번 먹으면 맛있는 걸 한 번 준다고 생각했는지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면서도 꼬박꼬박 입을 벌렸다.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 다.”
“천만에요. 세레누스 님은 무척 밝으신 분입니다. 또한 기운이 선량하고 맑은 것이 신에게 사랑 받고 계신 게 분명합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행복했으면 좋겠거든요.”
“행복하실 겁니다.”
단언하듯 말하는 칼란 신관의 말에 카리나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칼란 신관이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가 기이한 눈빛으로 세렌을 한 번 보더니 옅은 미소를 띤 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사과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멈추셨는데 그다음 이야기도 있으신가요?”
“네, 남부에 사과 농장을 샀어요.”
“……네?”
“남부에, 사과 농장을, 샀습니다.”
카리나가 악센트를 줘 가며 또박또박 말하곤 고개를 푹 숙였다.
사과 농장은 너무하지 않은가.
그것도 밭 하나를 산 게 아니라 아예 그 마을을 독점하듯 사 버렸다.
그중에서 가장 질 좋은 한 상자를 북부로 가장 먼저 받겠다고!
그러니 팽의 스트레스와 일거리는 나날이 쌓여 가고 그가 윈스턴을 찾는 횟수는 점점 늘어나는 거겠지.
“음…… 사과 농장을요.”
“네, 그것도 사과로 제일 유명한 마을에 있는 모든 농장을 사 버렸어요.”
“……음.”
천하의 칼란 신관도 결국 말을 잃었다.
뭔가 말을 하기 위해 입을 벌렸다가도 다시 닫기를 반복하더니 결국 어색한 웃음을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음, 사과로 사업을 해 보시려는 게 분명합니다.”
“그렇게 될 수도 있죠. 주된 목적은 가장 질 좋은 사과 한 상자를 제일 먼저 받기 위해서지만요.”
사업이라는 사유가 뭐 100분의 1정도라도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사과 오래 보관하는 법을 연구하는 연구원을 고용할까 고민하고 있을 정도였다.
한참을 말없이 있던 칼란 신관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돌린 채 푹 숙였으나 어깨가 덜덜 떨리는 것을 숨길 순 없었다.
“…….”
“죄, 크흠. 죄송합니다.”
칼란 신관이 애써 입 안을 깨물며 고개를 들었다.
“아니에요, 저도 황당했는걸요.”
듣는 처지에선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카리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앞으로 벌일 일이 더 두렵다.
아이에게 위험하다고 저택 인테리어를 전부 뒤집어엎은 것이나 방음벽을 설치하겠다고 저택을 다 때려 부쉈다가 조립한 것은 이제 장난으로 느껴질 수준이었다.
카리나가 조금 멍한 눈으로 고개를 젖혔다. 약간 아득하기까지 했다.
“다음엔 무슨 일을 벌이실지 조 금 기대가 되는군요.”
“글쎄요, 확실한 건 세렌의 외모를 전부 죽이기만 하는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세렌 전용 디자이너를 고용할 것 같다는 거네요.”
“이런…….”
“그리고 이 모든 게 이번 한 주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신다면 더 충격받으실 거예요.”
칼란 신관은 더 이상 당황함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말 없이 미소 지을 뿐이다.
카리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다음번에 올 때는 또 무슨 일을 벌여 뒀을지 솔직히 조금 무섭다.
“다음 주가 기대된다고 솔직하 게 말씀드리면 화를 내실 건가요?”
“아뇨, 들어 주시겠다고만 한다면 화를 내진 않을 것 같아요.”
“얼마든지 들어 드리겠습니다. 신도에게 신관의 귀는 언제나 활짝 열려 있으니까요.”
“그런 것치곤 즐거워 보이시지만요.”
카리나가 몇 번째일지 모를 한숨을 또 한 번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