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57)
>외전 13화>
* * *
“어, 황성 파티요? 제가요?”
“그래, 뭔진 모르겠지만 수도에 있는 제국의 전 귀족이 참석하라는 황명이야.”
“흔하지 않네요, 황명까지 내려 오다니.”
깊은 한숨을 내쉰 밀라이언이 어리광을 부리듯 카리나의 품에 안겨 들었다.
카리나의 작은 몸에 안긴 커다란 덩치가 퍽 어린아이처럼 느껴 졌다.
“빠아!”
“그나저나 오늘은 세렌의 기분이 좋아 보이는군.”
밀라이언이 세렌의 볼을 검지로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아이가 냉큼 밀라이언의 손을 붙잡았다.
배시시 웃는 아이의 표정에 밀 라이언의 입가엔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서…… 저도 가야 할까요?”
“일단, 그대도 공작 부인으로서 귀족이니까. 하지만 내키지 않는다면 가지 않아도 돼. 어떻게든 해 볼 테니.”
“예전부터 말했지만, 밀라이언을 곤란하게 만드는 일은 싫어요.”
카리나의 말에 밀라이언의 입술이 딱 달라붙었다.
괜찮다는 말을 한 번 더 하지 않는 걸 보니 아마 그로서도 여러모로 껄끄러운 황명이리라.
“가면무도회도 아닌데 가면 쓰고 가면 이상하겠죠……?”
“……가면은 좀.”
밀라이언이 웃음기를 머금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손을 뻗어 카리나의 볼을 쓰다듬곤 이마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베일이라면 괜찮겠지만.”
“…….”
베일이랑 가면이랑 뭐가 다르지?
베일보단 차라리 가면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카리나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그녀가 결국 묘한 표정으로 밀라이언을 바라봤다.
“그건 괜찮은 거예요?”
“솔직히 다른 귀족들에게 그대를 보여 주고 싶지 않거든.”
“어째서요?”
“그대가 내켜 하지 않는 인간도 분명히 섞여 있을 테니까.”
밀라이언이 카리나의 목덜미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간지럽다는 듯 카리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카리나가 밀라이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래서 사과 농장을 산 건 어때요?”
“아직도 그거 가지고 뭐라고 할 건 아니지……?”
밀라이언이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세렌이 사과를 좋아한다는 팽의 말에 생각도 없이 사과 농장을 구매한다고 결정해 버렸다.
그이후 경악하는 카리나에게 잔뜩 혼이 났다.
‘물론 화난 모습도 사랑스럽지만.’
말했다간 분명히 한층 더 화를 낼 것이다.
밀라이언이 최대한 울적하고 우울한 표정을 하며 그녀의 어깨에 이마를 묻었다.
밀라이언이 약한 척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카리나가 입을 딱 다물었다.
“벌써 1년 반이 지난 거 알아, 카리나?”
“네.”
“난 말이야, 지금이 무척 꿈만 같아. 긴 꿈을 꾸고 있는 듯해. 이 시간이 영원할 것만 같거든.”
밀라이언이 그녀를 제 허벅지에 앉히며 말했다. 꽉 끌어안자 부드러운 살결과 함께 온기가 물씬 느껴졌다.
언제까지나 그녀는 곁에 있을 것 같고 언제까지나 이 시간이 계속될 것만 같다.
“가끔은 당신이 아프다는 게 믿기지 않아. 그날 이후로 당신은 더는 발작에도 시달리지 않고 아프지도 않으니까.”
“……응, 그러게요.”
카리나가 나직하게 대답하며 팔을 뻗어 밀라이언을 마주 안았다.
밀라이언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제법 중심을 잘 잡게 된 세렌은 침대에 앉은 채 물끄러미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즘은 어때, 카리나?”
카리나가 고개를 들어 밀라이언의 시선을 마주했다.
미소를 짓고 있는 입술은 여전했지만 눈만큼은 안타까움에 흐릿하게 번져 있었다.
“여전히 죽음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아?”
“밀라이언, 밀…….”
카리나가 밀라이언의 얼굴을 양손으로 부드럽게 붙잡았다.
밀라이언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곧이라도 울 것처럼 일그러진 그 표정에 카리나는 그저 미소 지었다.
“난 죽음을 보고 있지 않아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건 세렌이랑 당신이야.”
“…….”
“미래의 일을 걱정하며 두려워하고 눈물짓고 살기에, 내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아요.”
카리나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밀라이언은 언제고 불안한 얼굴을 한다. 조금이라도 멀리 나가려고 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 할 사람을 보는 것처럼 과하게 걱정했다.
“당신과 함께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세렌을 품에 안을 수 있는 지금이 내 현재이자 미래예요.”
“그렇지…….”
“죽음은 언젠가 필연적으로 내 앞에 다가오겠지만 우리 이미 각오했잖아요. 우린 이미…… 죽을 것 같은 아픔을 한 번 더 밟기로 약속했잖아요.”
함께 생각해서 결정한 미래다.
떠나야 할 사람을 품에 안고 있는 것이 얼마나 그에게 괴로운 일일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떠나고 싶지 않다고 울부짖는 것으로 떠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럴 것이다.
“우리 그 일은 그만 생각해요. 자꾸 떠올려서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말아요. 나는…… 이제 괜찮아요.”
어차피 끝을 봤었다. 죽음을 맞이했었고 다시 돌아왔다. 그때 마음의 준비는 모두 끝냈으니 이제 남은 건 이 삶을 즐기는 일뿐이다.
세렌이 자라 갈 모습을 보는 것이 그녀에게 주어진 마지막 삶이었다.
“내가 남은 시간 동안 세렌에게 모든 걸 전해 줄 수 있을진 모르 겠지만…… 당신이 부족한 건 분명 채워 줄 테니 괜찮아요.”
카리나가 밀라이언의 허벅지에 앉은 채 그대로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맞물리는 입술에 밀라이언이 천천히 눈을 깜빡이곤 조심스럽게 혀를 얽었다.
밀고 들어오는 혀를 순순히 받아들이며 카리나가 그를 힘껏 끌어안는다.
망설이듯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밀라이언이 이윽고 다정하게 입 안을 어루만지듯 혀로 핥고 흘러 내리는 타액을 핥았다.
버거워지는 숨에 카리나의 혀가 후다닥 뒤로 물러나자, 밀라이언이 그것을 쫓아 단단하게 옭아맸다.
조금 혀뿌리가 아릴 정도로 힘주어 빨아 당기자 카리나의 팔이 절로 밀라이언의 목을 휘감았다.
제 영역까지 끌어당긴 카리나의 혀를 그가 깊게 빨아들였다.
카리나가 결국 밀라이언의 어깨를 꽉 쥐자 그제야 그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그를 보며 카리나가 밭은 숨을 내쉬었다.
“하아…….”
벌어진 입술 사이로 뜨겁게 달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랜만의 진한 입맞춤에 밀라이언의 목울대가 크게 일렁거렸다.
빨갛게 짙어져 도톰하게 부풀어 오른 그녀의 입술은 먹음직스럽기 그지없었다.
뚝뚝 떨어지는 욕망과 탐욕이 넘치는 눈으로 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던 밀라이언이 아쉬운 듯 그녀의 입술을 혀로 두어 번 핥곤 천천히 물러났다.
“카리나, 오늘 괜찮으면 밤에…….”
“마아!”
어느새 세렌이 카리나의 무릎에 손을 얹고 뺙뺙 목소리를 높였다.
붉게 상기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던 카리나와 밀라이언의 표정이 동시에 낭패감으로 물들었다.
“…….”
“…….”
“빠아!”
두 사람이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입을 다물었다.
카리나가 손부채질로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더니 이윽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이를 품에 안았다.
“……다음 기회군.”
“미안해요.”
“아니, 세렌이 우리만 붙어 있으니 외로웠던 모양이야.”
밀라이언이 조심스럽게 아이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그녀의 부푼 입술을 바라봤지만 더는 입을 맞추려고 들지 않았다.
“근데 그 황성 연회 세렌도 가야 해요?”
“……일단은 성별과 나이 불문 수도에 거주하는 귀족 전원 집합이었어.”
“……그것참 묘하네요.”
카리나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자 품에 안겨 있던 세렌도 카리나의 모양새를 빤히 바라보더니 그녀를 따라 고개를 툭 옆으로 기울인다.
그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풍경에 밀라이언의 입술이 절로 호선을 그렸다.
“이유는 알아요?”
“음. 최근 이교도들이 여기저기에서 포교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모양이야. 새로운 신을 칭송하는 모임이라고 하는데…… 그 세력이 제법 커졌나 봐.”
밀라이언의 말에 카리나가 미간을 좁혔다.
그가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제법 심각한 일인 듯했다.
제국은 유일신을 믿는 나라이며, 신 바로 아래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황제였다.
신의 계시를 받아 세상에 전하는 것은 신전이지만, 그것을 직접 집행하는 것은 황제의 권한이었다.
그러니 제국에 또 다른 신이 있어선 안 됐다.
“스스로를 세상에 강림한 신의 그릇이라고 칭하는 존재가 있는 모양이야.”
“……그래요?”
카리나가 퍽 떨떠름한 눈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웃어 넘기고 싶을 정도로 유치한 이야기다.
세상에 강림한 신의 그릇이라니……. 차마 웃기도 힘든 내용이다.
“응, 거절하기가 좀 그런게…….”
밀라이언이 한숨을 내쉬었다.
웬만한 일이라면 사실 황명이고 뭐고 가볍게 쳐 내고 무시했을 것이다.
카리나와 세렌을 위해서라면 다소 압박을 받더라도 그럴 마음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군요?”
눈치 빠른 카리나의 말에 밀라 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교도들이 제국을 지켜 주던 신이 노했으니 이제는 세상을 지켜 줄 새로운 신이 필요하다며…… 북부를 걸고넘어졌어.”
“북부는 왜요?”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산맥이 사라진 것과 거대한 괴물이 북부 상공에 떠오른 일 그리고 북부가 안고 있는 수많은 마수는 신이 분노하고 있다는 징조라더군.”
인상을 쓴 밀라이언이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도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