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58)
>외전 14화>
그의 말에 카리나가 입을 다물었다. 완전히 할 말을 잃어버렸다.
물론 드래곤과 같은 이야기는 완전히 비밀로 해 둔 상황이니 이런저런 소문이 퍼져도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했지만…….
“머지않아 그 신의 분노는 점점 북부에서부터 번져갈 것이며 북부의 수문장인 페스텔리오 공작조차 그 분노의 철퇴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고.”
“……네에?”
말하는 밀라이언의 목소리에도 헛웃음이 섞여 있었다. 물론 전해 듣는 카리나도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처음 그런 소문을 들었을 때 밀라이언도 가벼운 사안이라고 생각했다. 헛웃음도 치지 못하고 치우라고 했을 정도로.
그런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들려온 허무맹랑한 소문은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스며 들어 그 부피를 키우고 있었다.
아마도 같은 맥락으로 황성도 그것을 가벼이 넘겼었겠지.
“그리고 그 신으로부터 세상을 지키기 위해 ‘살루타리스’께서 강림하셨대. 세상을 병들게 하는 온갖 질병과 악을 몰아내기 위해 왔다더군.”
“아니, 그 허무맹랑한 걸 믿는 사람이 있어요?”
그냥 듣기만 해도 코웃음이 쳐지는 내용이 아닌가. 애초에 믿기에는 허술하기 짝이 없기도 했다.
심지어 신의 이름은 오만하기 짝이 없다. ‘구원자’라는 고대어를 고스란히 옮겨 두었다.
“제법 추종자가 생겼어. 황제의 비호 아래에 있는 수도에도 불온한 움직임이 감지될 정도로.”
“이유가 있겠죠?”
“놀랍게도 아주 때마침 난생처음 보는 전염병이 생겼고 ‘살루타리스’의 추종자들이 각지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그 병을 순식간에 치료했지.”
밀라이언의 짜증이 그득 담긴 목소리에 카리나가 쓰게 웃었다.
그녀가 제 무릎에 세렌을 앉힌 채 그의 등을 쓰다듬었다. 밀라이언이 긴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어깨에 이마를 묻었다.
수도로 와서 갑작스럽게 일이 늘어 여러모로 머리 아파하고 있던 찰나였다.
황실에서는 오랜만에 올라온 공작을 부려먹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밀라이언은 이 자리에 앉아 북부의 안건까지 처리해야 했다.
덕분에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그것이 밀라이언을 무척 짜증나게 했다.
그런데 때마침 한층 더 머리 아픈 놈들이 그의 신경을 살살 긁어 댔다.
‘전부 죽여 버리고 싶군.’
황제도 이교도들도 제 신경을 거스르는 귀족들도 전부 베어 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조용해진 세계에서 그가 사랑하는 이들과 그녀의 시간이 다할 때까지…….
“밀라이언, 괜찮아요?”
귓가를 두드리는 다정한 목소리에 밀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어깨에 얼굴을 묻고 숨을 깊게 들이쉬자 흥분하려던 감정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최근 좀 멀어지긴 했지.’
토벌도 하지 않고 마수 사냥도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녀와 밤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여러모로 쌓인 게 많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응, 괜찮아.”
적당한 놈이 하나 걸리면 딱 좋을 텐데.
밀라이언의 붉은 눈동자가 위험스럽게 빛났다. 그가 눈을 한 차례 깜빡이자 순식간에 넘실거리던 살기가 자취를 감췄다.
그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며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그런 일이 있었어요? 많이 힘들었겠네요. 미안해요, 제대로 얘기를 들어 줬으면 좋았을 텐데.”
“전혀. 그대는 웬만해선 저택에서 잘 나가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대에게 걱정을 끼치는 건 사양이야.”
애초에 그런 쓸모없는 정보가 그녀의 귀로 들어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그녀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것이 바로 밀라이언 본인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다면 그거야말로 다행인 일이다.
이번 황제의 강압적인 명령만 아니었다면 그녀에게 이런 정보를 털어놓을 일도 없었으리라.
그렇기에 그는 더욱 이 상황이 내키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걸로 그 허무맹랑한 추종자가 늘었다는 건 조금……. 제가 몰랐다는 건 수도에는 그 병이 퍼지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그자가 손을 대면 어떤 병이라도 다 낫는다더군. 그걸 직접 목격한 사람도 있어.”
“아…….”
“인간은 언제나 삶을 원하니까. 생명과 직결된 일에 사람은 너무나도 무르고 약해지지.”
그의 말에 카리나의 입가에 미소가 잠시 맺혔다가 사라졌다. 처연하기 짝이 없는 웃음을 물끄러미 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만약 정말 그가 불치병이라도 치료한다면…….”
밀라이언이 느릿하게 숨을 들이켰다.
‘내가 먼저 그의 추종자가 되겠군.’
생각을 삼키며 그가 말없이 그녀의 입술에 다시금 입을 맞췄다. 꺼낼 수 없는 말이고 꺼내서도 안 되는 말이다.
둘 다 이다음에 나올 얘기를 알고 있었으나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도대체 왜 귀족을 소집하는 거예요?”
“경고인 듯해. 귀족 내에도 추종자가 생긴 모양이라서.”
“귀족 내라니……. 그건 좀 심각한데요.”
“사람을 살리는 힘이란 참 놀랍지. 페리얼이 그 힘을 가지고도 욕심을 부리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야.”
거기까지 말한 밀라이언이 피곤한 듯 미간을 엄지로 슥슥 문질렀다.
그러고는 냉큼 그녀의 품에서 세렌을 안아 입을 맞추곤 전용 침대에 아이를 눕혔다.
“잘 자, 세렌.”
“빠아!”
피곤했는지 칭얼거림 없이 아이는 손을 허공에 몇 번 휘젓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밀라이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했다는 듯이.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밀라이언이 카리나를 품에 안으며 냉큼 몸을 눕혔다. 절로 기울어진 몸에 결국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연회에 가도 길게 있지 마. 대충 가서 눈에 띄지 않게 있다가 한 시간 만에 돌아와도 돼. 호위로 고레든을 붙여 주지.”
“고레든까지요?”
밀라이언이 말없이 카리나를 바라봤다. 말은 없지만 타박이 느껴지는 시선에 카리나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근데, 혹시 밀라이언이 곤란한 상황인 건 아니죠? 그 쪽이 밀라이언을 걸고넘어져서…….”
“문제가 있으면 페리얼 칼로스도 도와줄 테니 괜찮아.”
북부의 드문 실책에 귀족들이 이때다 싶어 하이에나처럼 몰려들어 물어뜯으려는 것만 제외한다면.
하지만 그는 굳이 이 사실을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
굳이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어차피 제가 떨어뜨리려고 한다면 손쉽게 떨어질 이들이었으니까.
“어쩐지 기분이 영 좋지 않네요.”
“걱정하지 마. 그대는 내가 지켜. 세렌도 마찬가지고. 두 사람이 다치는 일은 없을 거야.”
밀라이언의 목소리에 카리나가 그의 품에 안긴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마음을 준 뒤로 그의 말을 의심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도 기묘한 불안감이 자꾸만 발목을 붙잡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심해요.”
“물론.”
“잘 자요, 밀라이언.”
“그대도 잘 자.”
밀라이언의 나직한 목소리에 카리나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제는 익숙해진 옆을 데우는 온기에 둘러싸인 채 그녀는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 * *
“……카리나 님과 세레누스 님이요?”
“네, 이번에 황성 연회에 참가 하는 모양입니다.”
“갑자기 왜…….”
보고 사이에 끼어 있는 익숙한 이름에 반문하며 미간을 좁힌 칼란 디움이 상급 신관을 바라봤다.
상급 신관의 입이 다시 열렸다.
“황실에서 현재 수도에 있는 모든 귀족에게 소집령을 걸었습니다. 아무래도 이교도 건은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카리나랑 세레누스 님도.”
그가 낮게 한숨을 뱉었다.
그 ‘새로운 신’을 자처하는 이가 정말 신력이 없는 사기꾼이라면 다행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조금 곤란했다.
카리나와 세레누스 모두 강력한 신력을 타고났으니까. 나쁜 의미로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여러모로 이교도들의 표적이 되기에 딱 좋은 이들이었다.
그래서 페스텔리오 공작은 보이지 않는 호위까지 그녀의 곁에 두었다.
칼란 디움이 끼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의자에 몸을 깊게 묻었다.
“황실에서 들어온 협조 요청, 받아들이겠다고 회신하십시오.”
“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교도 건에 대해서 정리한 서류를 가져오십시오.”
“알겠습니다!”
상급 신관이 나가자 칼란 디움이 짜증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평소엔 눈엣가시로 보면서 이렇 게 필요할 때만 찾아 대는 것이 영 신경을 거슬렀다.
“황실이고 뭐고 정말 짜증이 나는군요.”
카리나와 세레누스가 아니었다면 칼란 디움 역시 적당한 시일을 두고 황성에 거절 답신을 보냈을 것이다.
그들의 이중성은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으니까.
“교황을 어떻게 끌어내느냐가 문제겠군요.”
죽어도 이런 일을 하기 싫어하는, 그 귀차니즘으로 온몸이 가득 찬 인간을 연회장까지 끌고 가는 것이 칼란 디움, 추기경인 그의 주요 업무였다.
다시 생각해도 추기경이라는 자리는 정말 귀찮기 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