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64)
>외전 20화>
“또한, 이번 일에 북부가 엮여서 소문이 나 있던데 어찌 된 일인가, 페스텔리오 공작?”
밀라이언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이게 바로 그가 오늘 여기에 굳이 끌려온 이유였다.
물론 언제까지 자식과 아내를 숨길 거냐는 황제의 고집도 있긴 했지만.
“일전에 문서로 보고 드렸던 건과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사라진 거대한 산맥은 갑자기 사라진 게 아니라 원래 드래곤의 무덤이었던 곳이었습니다.”
밀라이언이 차분한 목소리로 황제의 질문에 답했다. 목소리를 크게 해서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했다.
“드래곤?”
“드래곤이라니……. 전설 속에만 있는 일이 아니었나?”
“드래…… 괴물이 있어?”
여기저기서 웅성거림과 동요의 목소리가 들렸다.
밀라이언의 미간에 깊은 골이 생겼다. 그는 조용해질 때까지 입을 열지 않겠다는 듯 두 입술을 딱 달라 붙인 후였다.
“다들 조용히 하게!”
황제가 주먹으로 팔걸이를 내려 치며 소리쳤다. 그제야 귀족들의 목소리가 쏙 들어갔다.
“계속 설명하게, 페스텔리오 공작.”
“네, 거대한 괴물이 북부의 상공에 떠오른 것은 드래곤의 비행이 와전된 모양입니다.”
“페스텔리오 공작, 그 말은…… 드래곤이 되살아났다는 말입니까?”
연회장 인파 사이에서 누군가가 커다란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밀라이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펴졌다.
이래서 그냥 문서로만 남기고 싶었다는 거였다. 황제의 고집에 결국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득이 될 수는 아닌 것 같군.’
실과 득을 비교해 보자면 실이 더 클 것이다. 그러나 황제는 황제. 명령이니 따를 수밖에 없다. 굳이 그와 실랑이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말 그대로다. 그곳에 있던 드래곤이 모종의 이유로 되살아났다.”
또다시 웅성거림이 커졌다.
살린 것은 카리나의 일이다. 황제에겐 그 건에 관해서 보고를 올렸지만 정식으로 수면 위로 올리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황제도 이곳에 나서는 대신 그 건에 대해선 허락을 했다.
알려져서 좋을 것 없는 능력이 었으니까. 애초에 이미 그 능력을 상실하기도 했고 말이다.
“또한, 북부의 수많은 마수…….”
밀라이언이 곤란하다는 듯 말을 끌었다.
이건 어떻게 포장해도 사실 답이 없다. 턱을 매만진 밀라이언이 결정한 듯 입을 열었다.
“이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을 것 같습니다. 와전되면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북부에서 마수 개체 수를 세고 다니는 건 아니니까요.”
그의 솔직한 말에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토벌할 마수의 수를 세고 다니겠는가.
특히나 마수의 습성은 어딘가에 잘 숨어 있는 것이라고 했으니 수를 세는 것은 더욱 힘들 것이다.
“또한, 제가 분노의 철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건, 마수와 싸우다 방심한 틈에 크게 다쳐 중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다지 꺼내고 싶지 않은 주제였다.
그녀의 물약 덕분에 흉터 하나 없이 낫게 되긴 했지만 그 때문에 그녀는 드래곤을 그려 스스로의 생명을 전부 깎아 먹었다.
그것은 자신이 나약했던 탓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를 지킬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은 밀라이언에게 오랜 시간 꽂혀 있을 것이다. 녹지 않은 얼음으로 된 창처럼.
그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어떤 마수와 싸웠기에 그렇게 된 겁니까?”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미간을 좁힌 밀라이언이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카리나의 표정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게 작용할 사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말하게, 공작.”
“처음 보는 새로운 종류의 마수 였습니다.”
황제의 허락에 밀라이언은 순순히 입을 열었다.
여기저기서 동요가 일었다. 황제의 표정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확실히, 분위기를 조장하는 놈들은 있는 것 같군.’
방금 질문을 한 것도 전혀 다른 사람 둘이었다.
사실 헤르타나 새로운 몬스터가 어디에서 태어나는 건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대충 마수가 탄생한 비화에 대해서는 들었다.
텅 비어 버린 산맥엔 아지다하카가 다시 환술을 걸어 주고 갔다.
누구나 그곳엔 다시 산맥이 생긴 것처럼 생각하게 될 것이라면서.
‘기분 나쁘군.’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서 연극을 하는 기분이다.
제 의지로 말을 하고 대화를 하지만 미묘하게 북부의 속사정을 건드리는 질문들이었다.
밀라이언이 한 걸음 다시 물러 났다.
“떠도는 소문에 대한 것은 대개 거짓임이 밝혀졌네. 말하지 못한 속사정도 있지만, 거짓이라는 것은 황제의 이름을 걸고 보증하지.”
황제가 느릿하게 연회장을 훑었다.
10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모인 연회장 안 한쪽에는 대기를 하는 시종 시녀들이 보였다.
황제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건 연장자로서의 조언이네. 작은 욕심에 눈이 멀지 않게 조심하게. 그저 달콤하기만 한 형편 좋은 이야기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네.”
말을 끝낸 황제가 손짓하자 멈춰 있던 악단이 다시 연주를 시 작했다.
그가 좌중을 한 번 둘러보더니 순순히 입을 열었다.
“자, 다들 편하게 연회를 즐기게. 그리고 페스텔리오 공작은 잠시 이쪽으로.”
“…….”
밀라이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어찌할 순 없다. 그가 한 숨을 푹 내쉬곤 앞머리를 매만졌다.
“다녀와요. 나 잠시 뒤뜰 정원에 다녀올게요.”
“……미안. 고레든을 붙여 줄게.”
“고레든이라면…… 아까 호위가 다 소집되어서 어딜 가는 것 같던데요?”
카리나의 말에 밀라이언의 표정이 묘해졌다. 무슨 일인데 귀족의 호위를 굳이 다 소집할 필요가 있지?
눈을 한 차례 깜빡인 밀라이언이 그러느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 가지 말고 이 연회장 뒤 뜰의 정원으로 가. 내가 금방 갈게.”
“알겠어요. 황성엔 사람도 많은데요.”
“그렇지.”
밀라이언이 카리나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녀가 연회장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니 가슴골 사이에 얼굴을 푹 묻고 있던 세렌이 쫑긋거리며 얼굴을 들었다.
“마아아…… 마아…….”
칭얼거리며 아이가 그녀의 쇄골에 얼굴을 비벼 댔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아무래도 아이 나름대로 열심히 꾹꾹 괴로움을 참았던 모양이다.
‘분위기가 심각했으니까.’
게다가 생각해 보니 질문을 하겠다고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황제는 조용히 하라며 팔걸이를 치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미안해, 세렌. 엄마가 신경을 못 써 줬네.”
“후으응…….”
다정한 목소리에 더욱 서러운 듯 아이가 히끅거리기 시작했다.
카리나가 얼른 연회장 뒤뜰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그녀가 무릎을 모아 아이를 내려 두고 귀를 막아 줬다.
“흐이이…….”
그럼에도 아이는 영 편해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조금 더 힘을 줘 귀를 막아 주고서야 아이는 훌쩍거리면서도 한결 편해진 표정을 했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마아?”
“엄마도 돌아가고 싶다.”
시끄러운 건 질색이다.
그녀가 느릿하게 세렌의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가볍게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나니 세렌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사랑해, 아가.”
“따아!”
카리나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뒤에서부터 누군가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밀라이언, 벌써 왔…….”
당연히 밀라이언인 줄 알았던 카리나의 등허리가 뻣뻣하게 굳었다.
그보다 덜 단단하고 체취도 체형도 다르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려는 순간, 차가운 칼날이 목 밑에 닿았다.
뒤에 있는 남자가 그녀의 오른쪽 손목을 붙잡은 채 칼날을 바싹 가져다 댔다.
“쉿. 아이에게 나쁜 꼴을 보여 주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해야지, 카리나 레오폴드 영애.”
“…….”
뚝, 움직임이 멈춘 카리나의 앞으로 그림자가 졌다.
앞뒤로 진 그림자에 시야가 좁았다.
뒤에서 제 목에 단검을 들이대고 있는 자는 움직이지 않았으니 적어도 공범이 있다는 얘기다.
자연스럽게 뻗어 온 손이 세렌을 안아서 데려갔다. 카리나의 표정이 굳었다.
말을 하려고 하면 목에서 차가운 검날이 느껴졌다.
세렌이 울음을 터뜨리지 않는다.
카리나가 차마 검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주먹을 꽉 쥐었다. 손에 땀이 찼다.
‘목에 검이 베여도 얼마나 살 수 있지?’
그 와중에 아이를 뺏어 필사적으로 도망갈 수 있는 가능성은?
그녀의 머릿속이 빠르게 굴러갔다.
“이제 괜찮아요. 놓으셔도 됩니다. 아이가 손에 있는 한 어차피 아무것도 하지 못할 테니까요.”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카리나의 입이 경악을 담은 채 벌어졌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너.”
그녀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스터의 단정한 얼굴이 해사한 미소를 지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세렌은 멀뚱멀뚱한 것을 보아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저런 성향이 독이 될 줄이야.’
신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호의를 표하는 세렌의 성격이 이렇게 이용될 줄은 몰랐다.
“이런, 공작이 아니라 실망하셨나 봐요.”
“아쉽게도 페스텔리오 공작은 한동안 못 올 거야.”
어쩐지 가볍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카리나가 한 차례 눈을 깜빡였다.
뒤에 서 있던 남자가 팔짱을 낀 채 이스터의 옆에 섰다.
“……황태자?”
“오, 알아보네. 계속 다른 곳만 보고 있기에 안 보이나 싶었는데, 카리나 레오폴드.”
카리나의 얼굴에 당황이 깃들었다.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가 입은 옷은 황족의 것이다.
‘설마 황족이 이교도와……’
그녀가 천천히 손을 들어 제 얼굴을 쓸어내리곤 달빛을 등지고 선 이스터를 노려봤다.
“세렌을 돌려줘.”
그녀의 요구에 이스터가 화사하게 웃었다.
“아, 곤란하죠. 이걸 얻으려고 내가 오랜만에 머리를 얼마나 굴렸는데.”
이스터가 다정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세렌의 등을 쓸어내리며 조곤조곤 말했다.
그에게선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세렌은 반항하지도 울음을 터뜨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날 쫓아오는 건 허락해 줄게요, 카리나.”
달빛을 머금은 진분홍빛 눈동자가 샐쭉하니 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