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66)
>외전 22화>
* * *
“……제 아내와 아이의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레오폴드 백작 건도 마찬가지입니다. 폐하께서 신경 쓰실 일은 아닌 듯합니다.”
“병을 앓고 있다고 들었네. 안 사람이 소중하면 제대로 사람을 붙이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건에 관해선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이것 때문이라면 이만 가 봐도 되겠습니까? 카리나가 걱정 됩니다.”
“황태자가 자네라면 범인을 알 수도 있을 거라더군.”
이야기가 길어짐에 따라 밀라이언의 얼굴도 점점 딱딱하게 굳어 갔다.
사무적으로 대하고 있는데도 눈 앞의 황제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손아랫사람을 가볍게 상대하는 연륜이 느껴졌다.
“제가 말입니까?”
“그래. 혹시 접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자네의 충심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북부의 소문이 상세했지. 이상한 소문을 들은 것도 없나?”
“모릅니다. 설령 있더라도 북부의 일은 북부에서 알아서 처리합니다. 북부에서 난 쓰레기는 내 영역 안에서 전부 소각하니까요.”
밀라이언의 말에 황제가 턱을 매만졌다.
그가 무언가 뒤에서 손을 썼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밀라이언이 그리 귀중하게 아끼는 공작 부인이 신경 쓰였다.
지금 소문이 도는 것은 놀랍게도 치료에 관한 이야기였다. 불치병을 안고 있다는 그의 아내가 신경 쓰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혹여 걱정돼서 하는 말이네. 욕심에 눈이 멀지 말게.”
“차라리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말지,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녀를 살릴 수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는데. 세상에 없는 무엇이라도 가져다 줄 자신이 있었는데, 그것도 불가능했다.
“저게 다 뭐야?”
“세상에…… 징그러워라.”
“파란색…… 나비……?”
웅성거리는 소리 사이로 들린 목소리에 밀라이언의 귀가 쫑긋 거리며 움직였다.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황제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인 그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성큼성큼 걸어가자 테라스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파란색 나비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카리나였다. 밀라이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카리나! 젠장! 기다려!”
카리나는 제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아이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곤 무릎을 꿇고 아이를 품에 끌어안았다.
그 애절한 모습에 밀라이언의 눈이 크게 뜨였다.
“흐으…….”
당장 몸을 돌려 연회장 밖으로 나가려던 그의 귓가로 낮은 흐느낌이 들렸다.
밀라이언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가 붙잡은 테라스 난간에 콰득 균열이 생겼다.
“흐아아아앙!!”
서럽게 우는 아이의 커다란 울음소리에 밀라이언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가 돌리려던 몸을 다시 제자리로 하곤 그대로 주변을 둘러싸 구경하는 놈들을 노려봤다.
“……저리 다 꺼져.”
밀라이언이 그대로 테라스 난간을 밟고 가볍게 점프해 아래로 뛰어내렸다.
쿵!
정원 바닥이 움푹 파였다.
평범한 2층보다도 더 높은 높이에서 뛰어내렸음에도 밀라이언의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그는 곧장 카리나에게 달려가 당황한 듯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달래는 그녀의 곁에 몸을 숙이고 앉았다.
“카리나…… 괜찮…….”
그녀의 옆으로 와서 얼굴을 살피려던 밀라이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얼굴이 아프게 일그러졌다. 주먹을 꽉 쥔 밀라이언이 당황한 듯 보이는 그녀와 세렌을 제 품에 끌어안았다.
“밀라이언, 어쩌죠? 아이가 울음을 그치질 않아요.”
“……괜찮아. 쉬이, 세렌. 뚝 해야지. 왜 울어?”
다정한 목소리로 밀라이언이 카리나에게서 아이를 넘겨받았다.
세렌의 울음소리가 한층 더 커 졌다.
“……이런.”
“……교황 성하.”
“너…….”
다가온 교황이 굳은 표정으로 카리나와 세렌을 번갈아 봤다.
세렌의 시선이 카리나에게 고정 돼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가 성큼성큼 아이에게 다가갔다.
“흐아아아앙! 흐아앙!”
아이의 울음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신력을 좋아하던 아이가 그조차도 거부하는 듯이.
당황한 듯 카리나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세렌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으음, 내가 안 좋을 때 왔느냐?”
“아지다하카…….”
“네 몸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아서 왔다만……. 내 꼬맹이가 울고 있군. 대부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아지다하카가 성큼 다가가 세렌을 덥석 들어 품에 안았다.
흠칫, 놀란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서럽게 흘리던 눈물을 뚝 멈췄다.
그럼에도 맺혀 있던 눈물은 후드득 후드득 떨어져서 카리나가 괴로운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 뜨렸다.
“이런, 많이 놀랐구나. 꼬맹아.”
“……놀라요?”
“신력이 네 심장을 집어삼키는 꼴을 본 모양이구나.”
아지다하카가 손을 뻗어 카리나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그녀의 머리를 타고 붉은 마력이 스며들었다.
카리나의 황금빛 눈동자가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다시 푸른색으로 물들어 가는 그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운 광경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지켜보던 세렌이 그제야 완전히 눈물을 멈췄다.
여전히 히끅거리는 잔울음은 들렸지만 아까처럼 서럽게 울진 않았다.
“……당신은.”
“흐음, 신의 사자군.”
아지다하카가 교황을 힐끗 보며 말했다. 그러곤 카리나의 품에 세렌을 넘겨줬다.
세렌이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을 꼬물대며 카리나의 옷자락을 꽉 쥐고 그녀의 가슴팍에 얼굴을 팍 묻었다.
히끅, 히끅!
“그래서 누가 내 주인과 내 대녀를 이런 표정을 하게 만들었을까?”
아지다하카가 웃으며 물었다.
눈빛은 싸늘했지만 목소리와 표정은 어디까지나 다정했다.
카리나는 잠시 그 물음에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아이의 머리에 코를 박았다. 싸늘하게 식었던 손끝이 서서히 다시 원래의 온기를 찾아갔다.
“내 능력의 일부를 가져간 놈이요. 신력을 사용하던 그놈이…… 교주였어요.”
“……흐음.”
쿠웅!
지진이 울린 듯 땅이 크게 진동 했다.
“꺄아아악!”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리기 시작 하며 아지다하카의 주변으로 붉은 마력이 회오리쳤다.
휘우웅, 몰아치는 바람에 나무 와 풀들이 거세게 흔들렸다. 옷자락과 머리카락은 말할 것도 없었다.
카리나의 힘은 아지다하카의 것과 어느 정도 섞여 들었다.
그리고 아지다하카는 제 힘이 어디에 조각조각 나서 흩어져 있는지 추적하는 것이 가능했다.
“카리나, 고레든과 함께 저택으로 돌아가도록 해.”
“……당신은?”
“황제가 교주를 잡아서 이교도의 뿌리를 뽑아 달라고 해서. 금방 처리하고 갈게. 같이 있지 못해서 미안.”
“……괜찮아요. 다치지 말고.”
카리나가 아이를 한쪽 팔로 품에 안은 채 다른 손으로 밀라이언의 옷자락을 꽉 붙잡았다.
새하얗게 질린 그녀의 손을 맞잡은 밀라이언이 그녀의 손을 데워 주었다.
“그가 세렌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어.”
“……그래. 걱정하지 마.”
밀라이언이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천천히 감겼다 뜨였다.
“다시는 그대와 세렌이 그를 보는 일은 없을 거야.”
“응.”
“조심히 들어가.”
“늦지 마요.”
카리나가 밀라이언의 볼에 대답하듯 입을 맞추곤 천천히 몸을 돌렸다.
두 팔로 아이를 지키듯 끌어안은 그녀가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던 밀라이언이 천천히 검을 뽑았다.
“교황, 내가 지목하는 놈들이 맞는지 아닌지만 대답해.”
“너…….”
“대답하지 않으면…….”
밀라이언의 검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움직여 교황의 곁에 서 있던 칼란 디움의 목 바로 아래에 닿았다.
칼란 디움이 숨을 삼켰다.
“사지를 하나하나 잘라낼 거다.”
낮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괴물이 명령했다. 분노라는 감정조차 담기지 않은 싸늘하게 식은 눈동자와 목소리는 무감정했다.
방금까지 다정한 목소리로 재회를 속삭였던 사람이 맞는지 의아 할 정도였다.
교황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칼란 디움이 확 붉어진 얼굴로 주먹을 쥐며 그에게 한마디 던지기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 교황이 팔로 막았다.
“교황 성하……!”
“건드리지 마, 너 정말 죽는다.”
칼란 디움을 제지하고 한숨을 내쉰 교황이 밀라이언의 뒤를 따랐다.
제자리에 서 있던 아지다하카는 멀어져 가는 흐릿한 카리나의 힘과 뒤섞인 제 이질적인 힘의 위치를 파악하곤 입가를 비릿하게 끌어올렸다.
‘그러게 왜 건드려선.’
대체 뒤에 뭐가 있는 줄 알고 오만하게 굴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아지다하카가 퍽 즐거운 표정으로 밀라이언의 뒤를 따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