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70)
>외전 26화>
“땅으로 돌아갔지.”
“……어째서요?”
“꽤 오랜 시간 하론을 먹지 못 했잖느냐.”
“하지만 아지다하카가 있었잖아요. 계속 아지다하카가 마력을…….”
입술을 달싹이던 카리나의 동공이 잘게 흔들렸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아지다하카와 시선을 마주친 그녀의 눈동자가 이내 풍랑을 만난 배처럼 하염없이 흔들리더니 천천히 눈꺼풀 아래로 사라졌다.
“……그랬구나.”
중얼거리듯 읊조린 카리나의 얼굴이 천천히 구겨졌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눈으로 모이는 일기를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서 카리나는 그저 제 손을 들어 눈두덩이를 꾹 눌렀다.
“갈 때가 되었으니 간 것뿐이야, 그리 슬퍼하지 않아도 돼.”
손을 뻗은 아지다하카가 카리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근육질의 커다란 손이 어찌나 조심스럽게 머리를 매만지던지 도리어 그 행동에 왈칵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미안…… 미안해요…….”
“미안할 거 없다. 내 삶은 이미 몇백 년도 전에 끝났어. 네가 아니었으면 다시는 빛을 볼 일이 없었을 거다.”
새하얗게 뼈마디가 도드라진 얇은 손가락이 힘껏 제 눈을 누르 고 있었다.
그럼에도 막지 못한 것은 그녀의 손바닥에 고였다가 결국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네가 내 세상의 첫 빛이 되어 줬다. 세상을 둘러보고 하지 못했던 것을 해 봤어. 세계를 보고 누군가의 대부도 되어 봤다.”
카리나가 고개를 숙였다.
담담하게 읊조리는 목소리가 아팠다. 괴로웠다. 방법이 없음에 답답했다.
“인간의 아이가 자라는 걸 보는 건 무척 기쁘고 사랑스럽더구나. 왜 인간이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삶에 가족을 만들고 아이를 낳는지 알게 됐어.”
아지다하카의 표정은 홀가분했다.
울고 있는 카리나로선 볼 수 없 었겠지만 그는 큰 미련이 없었다. 단순히 조금 안타깝고 조금 아쉬울 뿐이다.
그러나 그것을 짧은 삶을 끝내고 돌아갈 아이에게 드러낼 정도로 그는 무르지 않았다.
“……너도 분명 그런 기분이었겠지.”
“……흐윽…….”
이제 스물일곱, 짧게 사는 인간의 생에서도 이 아이의 삶은 유독 짧았다.
짧기에 필사적이었다. 한 점 후회도 없이 살려고 노력하는 것을 곁에서 보다 보니 그저 마음이 아팠다.
혼자 둘 수가 없었다. 마력을 쥐어짜서 이곳으로 이동한 것이 아지다하카의 마지막 기력이었다.
남은 것은 간신히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마력과 산맥으로 돌아갈 마력 정도였다.
“세렌…….”
젖어 들어가는 가라앉은 목소리에 아지다하카는 그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고개를 푹 숙인 그녀는 더 이상 눈을 가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바닥으로 투둑투둑 떨어지는 눈물을 보며 그는 그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렌이, 밀라이언이…….”
“그래, 괜찮을 거다. 내 대녀는 강하니까. 분명 그놈 못지않은 강한 인간이 될 거야.”
잔뜩 멘 목으로 내뱉는 억눌린 목소리에 그가 웃으며 말했다.
“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사라져 가는 마력의 잔해를 느끼며 헤르타와는 가볍게 이별했다.
헤르타도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었는지 순순히 제 운명에 순응했다. 그건 아지다하카 역시 마찬가지다.
아지다하카의 말에 카리나가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말을 내뱉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가지 않아서 카리나는 한참이나 끅끅거렸다.
“한동안은 내 대녀랑 시간이나 보내야지.”
“네…….”
고개를 끄덕이는 카리나를 보던 아지다하카가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머리를 헝클어뜨리곤 몸을 돌린 그가 천천히 카리나의 방에서 빠져나갔다.
달칵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고 잠시 문에 기대선 아지다하카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엿듣기는 좋지 않을 텐데.”
“……내 방이야. 나와 카리나의 방이다.”
“그래, 침입해서 미안했구나.”
손을 뻗은 아지다하카가 밀라이언의 어깨를 한 차례 꽉 쥐곤 곁을 스쳐 지나갔다.
밀라이언이 이를 악물었다.
“카리나는 얼마나 더…….”
“모른다.”
“알려 줘, 부탁이니까…….”
아지다하카가 자리에 멈춰선 채 대답했으나 밀라이언이 곧장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밀라이언의 손에 힘줄이 돋아났다. 한계까지 꽉 쥐어진 그 손을 내려다보던 아지다하카가 한숨을 내쉬었다.
“모른다는 건 정말이다. 앞으론 그냥 그녀와 시간의 싸움일 거야.”
“그럼 대체 어떻게…….”
“내 마력은 이곳으로 오는 것으로 마지막이었다.”
아지다하카가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밀라이언의 붉은 홍채가 확장됐다. 그의 입술 끝이 잘게 떨렸다. 아지다하카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난 카리나의 삶에 기대어 태어 났다. 그 아이의 삶이 끝나면 내 삶도 끝나지. 그녀가 약해지는 만큼 나도 약해진다.”
그리고 그는 입을 다물었다. 더는 이어서 말하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이곳으로 오며 아지다하카는 죽음을 각오했고 미련은 없다. 아니, 없어야 했다.
“카리나의 몸에 ……당신이 준 마력은 얼마나 남았지?”
묻는 목소리가 벌벌 떨렸다.
밀라이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의 표정은 형용할 수 없이 구겨져 있었다.
괴로움에 점철된 그 표정을 보며 아지다하카는 망설였다.
“제발…… 더는 내게 숨기지 마…….”
“……우리에게 남은 것은 뛰고 있는 이 심장뿐이다.”
아지다하카가 간신히 말을 내뱉곤 그대로 계단을 내려갔다.
밀라이언이 그대로 벽에 기댄 채 무너져 내렸다. 그가 제 팔로 눈을 가리며 고개를 젖혔다. 뻑뻑하고 뜨거워진 눈을 애써 돌리기 위해 눈을 꽉 감고 마음을 다스렸지만 그뿐이었다.
도르르 흘러내리는 것은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체 왜…….”
대체 왜, 그녀가 뭘 잘못했다고.
밀라이언이 이를 악문 채 울음을 삼켰다. 들어갈 수가 없다.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말해 줄 자신도 없었다. 괜찮아질 거라는 거짓말은 더 할 수 없었다.
바라지 않았던 시간이 속절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라지 않았던 세계가 어느새 성큼 제 눈앞에 와 있었다.
손이 벌벌 떨렸다. 밀라이언이 여러 차례 주먹을 쥐었다가 폈지만 그뿐이었다.
“제발…….”
차마 내뱉을 수 없는 다음 말을 꾸역꾸역 목 안으로 삼키며 밀라이언은 고개를 떨궜다.
30분이 더 지나서야 간신히 감정을 추스른 밀라이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넘실거리던 감정이 어느 정도 잦아들어 표정은 평정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들고 있던 손수건으로 눈을 여러 차례 꾹꾹 누른 그가 목을 가다듬고 숨을 들이 켰다.
바닥에 주저앉아있기 시작한 지 한참 만에 밀라이언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똑똑.
노크 소리에 안쪽에서 조금 부산스러운 소음이 들렸다. 밀라이언은 굳이 문을 열지 않았다.
평소와는 다르게 그는 안쪽에서 허락의 말이 들릴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다.
“드, 들어와요.”
안에서 들리는 메인 목소리에 그가 애써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문고리를 돌렸다. 안에는 젖은 물수건과 눈 밑이 발갛게 짓무른 카리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침대에 앉아 있었다.
“일이 많아서 조금 늦었어.”
“아, 괜찮아요. 그…… 몸은 좀 어때요?”
카리나가 적당히 떠오른 말을 건네자 밀라이언이 낮게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의 곁에 앉았다.
그가 언제나처럼 카리나를 품에 끌어안고 볼에 입을 맞췄다.
“몸은 괜찮아. 다녀왔어.”
“다녀오셨어요.”
부드럽게 풀리는 그녀의 입가를 보며 밀라이언이 또다시 그녀의 입술 끝에 입을 맞췄다.
볼에 맞추고 목선에 맞추고 목덜미를 살짝 깨물었다가 어깨까지 입을 맞춘 그가 천천히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오늘은 어땠어?”
“세렌이 모래로 성을 만들었어요. 전…… 발작이 한 번 있긴 했는데 페리얼이 준 약을 먹고 금방 가라앉았어요.”
“……그래.”
“보여 줄까요? 세렌이 만든 모래성, 되게 귀여…….”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카리나가 움직임을 멈췄다.
어느새 그녀의 눈앞에 둥둥 떠있는 모래성 때문이었다.
바깥에 있어야 할 모래성이 눈 앞에 나타났다.
밀라이언이 놀란 듯 자리에서 일어나고 카리나는 굳어졌다.
“……카리나?”
“미, 미안해요. 제가 얼른 보여 주고 싶다고 상상해 버렸나 봐요. ……미안해요.”
당황한 듯 연신 사과한 카리나가 다급히 모래성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에 닿는 순간 바닥에 있어야 하는 모래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흙바닥이 된 방을 보며 카리나의 얼굴이 다시 당황으로 물들었다.
시선을 둘 곳을 모르고 한참이나 구르는 눈을 보던 밀라이언의 눈이 한층 어두워졌다.
“미…… 미안해요. 제가 치울…….”
다급히 쓸어 담는 것을 찾는 그녀의 눈앞에 무언가가 또 생겨났다. 쓰레받기였다.
카리나가 몸을 살짝 숙이려는 모양새 그대로 결국 굳어 버렸다.
“…….”
밀라이언이 상황을 보곤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그가 빠르게 제 표정을 갈무리하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가 카리나의 허벅지를 받쳐 안고 품에 안아 들었다.
그가 방을 나섰다. 천천히 복도로 나와 계단을 향해 걸어가며 밀라이언은 평정을 가장한 채 입을 열었다.
“괜찮아, 카리나. 그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사용인들을 시키면 되니까.”
“……네.”
간신히 대답한 카리나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숨기고 싶어도 숨겨서 될 일이 아니다. 이건 지금 숨긴다고 어떻게 해결될 것 같지가 않았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데 이렇게 숨겨서 될 일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카리나가 밀라이언의 어깨에 올린 손에 힘을 줬다.
“……미안해요.”
“그대가 미안할 건 없어.”
“미안해요. ……미안해요, 밀라이언.”
“괜찮아.”
“……미안해요. 나…… 나요…….”
카리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공포에 질린 것 같기도 하고 스스로의 상태에 두려움이 깃든 것 같기도 했다.
가쁜 호흡을 달래던 카리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지금…… 능력이 제어되지 않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