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74)
>외전 30화>
* * *
“예뻐요!”
“곧 여기서 꽃이 필 거야.”
멀리 가진 못하고 저택 뒤쪽 언덕에 있는 꽃밭에 자리를 펴고 앉은 카리나가 세렌에게 조곤조곤 설명했다.
아직 봄이라서 파릇파릇한 새싹 뿐이지만, 여름이 되면 화려한 꽃이 필 것이다.
“자, 이거 먹어.”
“엄마는 왜 안 머거여?”
“……엄마는 별로 먹고 싶지가 않아서? 우리 세렌이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불러.”
세렌이 샌드위치 하나와 목검 하나를 들고 또 어딘가로 도도도 달려갔다.
새싹 밭을 구르는 모습이 퍽 즐거워 보였다. 많은 인원을 데리고 오지 않은 나들이였다.
“카리나, 그대…….”
“신기해요. 태어나서 이렇게 홀가분한 느낌을 느낀 적이 없는데, 오늘은 너무 홀가분해요. 어제 잠도 자질 못 했는데 신기하죠.”
“……잠을, 안 잤어?”
“잘 수가 없었어요. 일도 있었지만, 자면…… 일어날 수 있을 지 의문이었거든요.”
“……그대, 죽는 건가?”
잔뜩 억눌린 채 아프게 흘러나온 목소리에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던 카리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밀라이언이 고개를 숙인 채 이를 악물고 있었다. 주먹을 꽉 쥔 채 벌벌 떨고 있다. 카리나는 그 위에 제 손을 겹쳤다.
“나는…….”
그 손등 위로 밀라이언의 눈물이 툭 떨어졌다. 뜨거운 그 감촉에 카리나의 눈이 크게 뜨였다.
“나는, 그대가 떠날 때 웃어 주려고 했어.”
벌벌 떨리는 목소리가 잔뜩 젖어 있었다.
카리나는 메이는 목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필사적으로 입술을 달싹이는 밀라이언을 보며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연습도 했는데……. 서로…… 읏…… 서로 웃으면서 헤어지자고. 약속했던 걸 지키려고…… 그랬는데, 그랬는데…….”
밀라이언이 잡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그녀를 붙잡았다.
“미안해, 나 그 약속…… 못 지킬 것 같아. 아파 죽겠어. 아파……. 아파, 카리나……. 죽지마…….”
쿵,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에 카리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괴롭게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카리나는 입술을 뗄 수조차 없었다.
“날, 나랑…… 세렌을 두고 가지 마…… 제발……. 제발…….”
아이처럼 우는 밀라이언을 보며 그녀는 목구멍이 아팠다. 누군가 주먹을 집어넣기라도 한 듯 한껏 벌어진 느낌이었다.
“제발, 카리나……. 다시 못 만 나는 건 싫어…….”
기어코 터져 나온 진심에, 오랜 시간 억눌렀을 그 마음에 가슴이 지끈거렸다.
자신의 어깨를 필사적으로 붙잡은 채 무너져 가는 남자를 보며 카리나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미안…… 미안해요…….”
카리나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소리 없이 떨어지는 그 물방울을 밀라이언이 멍하니 바라봤다.
“내가 날 소중히 여기지 않아서 그래. 내가, 내가…….”
카리나가 밀라이언을 끌어안았다.
자신이 조금 더 미래를 보고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겼다면…… 어쩌면 조금 다른 결말이 있었을 지도 몰랐다. 한순간의 충동을 이겨냈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죽기, 싫어요. 사실……. 세렌도 당신도 더 많이 보고 싶어. 시간이 너무 부족했어…….”
밀라이언이 눈을 크게 뜬 채 제게 매달리는 카리나의 떨리는 몸을 감싸 안았다. 닿아 오는 진심이 두려웠다. 피부에 닿는 모든 감촉이 현실임을 깨닫게 했다.
“두고 가는 게 무서워요. 죽는 게 무서워…….”
“……카리나.”
“우리가 함께했던 기억이 사라지는 게 무서워요. 세렌이 날 기억 못하면 어떡해요? 난, 나는…….”
“잊지 않아. 잊지 않을 거야. 잊을 리가 있겠어? 내가…… 세렌이, 당신을…… 어떻게 잊어.”
밀라이언이 그녀를 꽉 끌어안은 채 말했다.
“우리 결국 겨울 산맥 못 간 거 알아요?”
“……그러게. 가 볼걸 그랬어.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볼 걸.”
“엄마? 아빠?”
어느새 다가온 세렌이 불안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리나가 소매로 눈물을 닦곤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카리나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곤 꽉 끌어안았다.
“세렌. 세렌…….”
“네?”
“엄마가 많이 사랑해. 미안해. 더 오래 같이 못 있어 줘서.”
“엄마아…… 오늘 여행 가요?”
“……아마도.”
일그러진 표정으로 웃어 보이는 세렌을 보며 카리나가 밀라이언의 손을 꽉 붙잡았다.
세렌의 시선이 앞을 향하게 앉힌 카리나가 아이의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세렌, 겨울 산맥이라는 곳 알고 있니?”
“네! 아지 집이래요!”
“응, 그 너머에 굉장히 아름다운 게 있대. 앞을 봐 봐.”
“앞이요?”
“응.”
밀라이언의 손을 꽉 붙잡은 그녀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아지다하카에게 들었던 산맥 너머의 것을 천천히 머릿속에 그렸다.
이야기만 듣고 그리거나 상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을 하나 하나 섬세하게 머릿속에서 그려 나갔다.
“카리나……!”
카리나가 나무에 기댄 채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눈앞에 펼쳐 진 광경에 그녀가 옅게 웃었다.
거대한 산맥으로 가려진 곳은 드넓고 푸른 초원과 다양한 종류의 마수들이 뛰어 놀고 있었다.
사람은 없지만 난생처음 보는 동식물이 자생하고 있었고 온통 봄이 만연했다.
그 한가운데에 세 사람은 앉아 있었다. 그곳은 또 다른 작은 나라였다.
아름답기 짝이 없는 그 뒤로 늘어져 있는 것은 어쩌면 북부의 또 다른 보물이 될 것이다.
식물이 자라기 힘든 북부에서 비옥한 땅이란 흔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름 모를 수많은 열매가 흘러넘치고 각종 약초와 식물들 이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와아…… 예뻐.”
“엄마가 몰래…… 산맥에 구멍을 내어 놨으니까 나중에…… 아빠랑 놀러 가 보렴…….”
“정말요?”
“정말이지.”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느껴지는 탈력감에도 간신히 손을 든 카리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툭, 손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그녀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눈을 한 번 깜빡일 때마다 아이의 모습이 자꾸만 흐릿해졌다.
카리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카리나…….”
“당신이랑 꼭 가 보고 싶어서…….”
“응. 응…….”
“사실은 나도 옛날 생각 많이 했어요. 아…… 이랬으면 어땠을 까……. 이런 능력을 가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힘없이 작아지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밀라이언은 애써 웃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카리나가 손을 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밀라이언이 그녀의 손을 잡아 제 볼에 올려 줬다.
더듬거리는 손을 느끼며 밀라이언이 숨을 들이켰다.
그녀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시야가 어두워졌다. 손가락 끝에 감촉이 사라졌다. 덜컥 두려운 마음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밀라이언, 거기 있죠?”
눈을 뜨고 있음에도 초점이 맞지 않는 그녀를 보며 밀라이언이 입술을 깨물었다.
입 안으로 비릿한 피 맛이 느껴 졌다.
“응, 있어.”
“엄마……?”
“사랑해, 세렌. 밀라이언.”
“그래, 나도.”
“세렌도!”
두 사람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녀의 손이 천천히, 힘없이 떨어졌다.
다급히 밀라이언이 붙잡았지만 완전히 근력이 사라진 듯 그녀의 몸이 축 늘어졌다.
“사랑해…….”
마지막까지 입술을 달싹이는 카리나를 보며 밀라이언이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만들어 냈던 환영이, 겨울 산맥의 풍경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안개처럼 흐릿해지며 없어지는 광경을 세렌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밀라이언이 다시 카리나에게 고개를 돌렸을 때, 그녀는 이미 깊은 잠에 빠진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엄마?”
“…….”
“아빠, 엄마…….”
아이가 밀라이언의 옷자락을 붙잡더니 이내 허리를 한껏 꺾었다.
“엄마, 하양이도 빨강이도 없어여…….”
세렌이 당황한 듯 카리나의 가슴을 툭툭 두드렸다.
그녀의 심장에서 언제나 흐리게나마 빛나고 있던 두 개의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얼마 전에는 붉은 빛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본 걸 세렌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심장이 텅 빈 것을 바라보던 세렌의 눈망울에 순식간에 눈물이 맺혔다.
굵은 닭똥 같은 눈물이 투둑투둑 떨어진다.
밀라이언은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데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그 자리에 앉은 채 한참이나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이상하게도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움직일 것 같은 그녀는 미동도 없었다.
“아빠아!”
아이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이상하다고 엄마가 이상하다고 연신 우는 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밀라이언이 아이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
“세렌…….”
“네에?”
훌쩍,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의 모습이 퍽 안쓰러웠다.
“……엄마가 벌써 여행을 가 버렸네.”
밀라이언이 아이를 품에 안고서 고개를 젖히며 작게 읊조렸다.
하늘은 어찌나 새파란지, 분명 그녀의 말대로 나들이하기 무척 좋은 날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