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88)
시한부 엑스트라의 시간 특별 외전 13화
“……나는 이 능력을 써서 죽고 싶지 않아요. 당연하지만 기적을 쓸 마음은 없어요.”
“그런 거라면 해결해 줄 수 있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진에 올라가서 능력을 사용하고 그 진 안에 나를 대신할 대가를 넣어 두면 내 생명력을 뺏기지 않을 수 있어.”
이곳저곳을 보여준 카산이 손가락을 까딱하자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조각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러자 바닥에 문이 생겨났다.
“커흑…… 쿨럭.”
남자가 크게 비틀거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거의 무너질듯 미약한 숨소리에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이봐요, 괜찮아요?”
“……괜찮, 괜찮습니다. 모든 것은 대의를…….”
남자의 몸이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다른 사내들이 다가와 남자를 어깨에 대충 들쳐 멨다. 아직 가슴이 움직이는 것을 보아 숨은 분명히 붙어 있었다.
“의사를 불러야 해요.”
카리나의 말에 카산이 그녀의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그대는 상냥하기도 하군. 저자는 조각을 하는 예술가이고 이동의 기적을 가지고 있지. 능력을 쓸 때마다 폐가 점점 나빠졌는데 아마 한계인 모양이지. 의원을 불러도 살릴 순 없어. 슬슬 처분하도록 해.”
“처분이라니 미쳤어요? 아직 산 사람한테.”
“방금 말을 듣지 않았나, 저자도 원하는 일일 거다.”
골이 띵했다. 그녀가 말문이 막힌 얼굴로 한참이나 자리에 우뚝 서 있자 그가 그녀의 등을 가볍게 떠밀어 바닥에 생긴 입구로 밀어 넣었다.
“꺄악!”
아래가 훅 꺼지는 기분에 그녀가 비명을 지르자 카산이 낮게 웃었다.
“그대는 정말로 심약하군.”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왜 이런 짓을 하죠? 이런 아름답고 평화로운 나라에서요.”
“아름다워? 평화? 지금은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 역사는 그리 아름답지 않았어. 마물에게 침략받고 하루하루 간신히 선인장 수액 같은 걸 빼먹으며 살아가기만 하는 유목민이었거든.”
성으로 돌아온 카산이 이번엔 지하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녀를 이곳에 완전히 가두기로 정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치부로 생각될 수 있는 것들을 외지인인 카리나에게 보여 줬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예술의 신에게 축복을 받은 초대 샤께서 만든 이 나라는 이토록 강대하고 아름다운 나라가 되었어.”
분명히 초대 샤는 이 모든 것을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되었을 확률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분명하게도 잘못된 일이다.
태어나는 아이들은 하나의 가치로 자신에게 점수가 매겨지는 것을 감내하며 혹사당하고 있었다. 오로지 조각과 예술만으로 평가당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조각에 인생을 바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적이 발현되는 이유도 아마 그런 이유일 확률이 높았다.
“마치 수백, 수천 년은 된 것 같은 이 모든 문화도 초대 샤께서 시작하시어 현재까지 이어온 일들이야. 언젠가 나도 위대한 작품을 남길 것이다.”
“…….”
“그리고 이건 그대를 자유롭게 해 줄 장소지.”
지하 계단을 다 내려간 그가 문을 활짝 열며 말했다.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달콤한 향내가 거대한 광장 같은 곳에 가득 차 있었다.
“으어어…….”
바닥에는 거대한 진이 그려져 있었고 그 안에는 병자와 정신을 잃은 자들이 뒤섞여 약에 취한 듯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게 뭐예요?”
“내 생명력 대신 이들의 생명력을 기적의 대가로 바치는 것이다. 어차피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이니 의미없이 죽어가는 것보단 나라에 도움이 되는 것이 더 행복하겠지.”
“……미친 새끼.”
“……그대는 심약한 것에 비해선 입이 좀 험하군. 때때로 기분을 상하게 해.”
욕이 나오지 않게 생겼냐고 되묻고 싶었다. 지금 뭘 대가로 바치겠다는 건지 이 남자는 알고 있는 것일까?
“이건 모두 저들이 원한 일이야. 그대도 봤겠지만 원하지 않은 자들은 전부 지상에 있어. 이 향은 이들이 조금이라도 고통스럽지 않도록 환각제와 진통제를 섞은 것이고.”
이들의 생명이 이 땅에 스며든 것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광경이 역겹게 느껴졌다. 이토록 기분 좋은 향기를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하, 그래서 뭘 얻었는데요?”
“뭐가 말인가?”
“이렇게 많은 생명을 앗아 가면서 뭘 얻었어요? 아름다운 경관? 멋진 조각들? 그래서요? 그게 사람의 생명과 국민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가요?”
“……중요하지. 나라를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닌가?”
“그게 당신 목숨이 되어서라도 이렇게 쓰고 싶을까요?”
“물론이야,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내가 아름다운 하나의 예술 작품에 이바지했다고 생각한다면.”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왕이 미치니 국민도 미쳐 버렸다.
예술이 아닌 다른 행복을 찾을 수 있으면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많을 텐데 그들은 겨우 이것에 행복을 찾고 있었다.
“나는 그대가 마음에 들어. 그러니 그대도 내 나라를 사랑해 주었으면 해.”
카산이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카리나가 매정할 정도로 냉정하게 손을 빼냈다.
“여러 번 말했지만,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거 같으니 한 번 더 말할게. 나는 약혼자가 있어. 그리고 이런 방식에 찬성하지도 않아. 또 타인의 목숨을 무기 삼아서 내 그림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어. 알겠어?”
“……그대야말로 나를 전혀 이해해주지 못하는군.”
카산의 눈이 살짝 어두워졌다. 빛이 미묘하게 들어오는 탓에 음영이 져서일까? 분위기가 기묘하게 느껴졌다.
“나는 내 나라를 약소국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것뿐이야. 내 국민들이 이 사막을 벗어나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하고 싶은 거지.”
“그들을 혹사해서요? 예술병이라는 게 얼마나 비참한 줄 알면서 왜 이런 짓을 하죠?”
“그대는…… 아무래도 조금 교육이 필요하겠어. 좋아, 그렇게까지 저들이 걱정된다면 이곳에 있어 보도록 해. 그들이 얼마나 나라의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지 몸소 느끼면 알게 되겠지.”
“……무슨.”
“카리나, 나는 네게 잘해 주려고 노력했어. 네 능력을 아주 높이 사니까.”
손을 뻗은 카산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쓸었다. 서늘한 감각이 등줄기를 오싹하게 스쳤다.
“그들은 원해서 이곳에 있는 거야. 그리고 그대는…… 제국에서 너무 오래 살아서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아. 카리나, 너는 조금 더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어.”
카산이 말하며 그녀를 안쪽 깊숙이, 넓은 공간의 정중앙에 밀어 넣었다.
그가 몸을 돌렸다.
“그대는 위대한 예술가야. 그림을 그려야지. 창조하는 그대는 무엇보다 아름다울 거야.”
“……야.”
카리나가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부르며 느리게 눈동자를 굴렸다.
익숙하지 않은 발음을 몇 번이고 혀끝에 올려 속으로 읊조리다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배에 힘을 주고 딱 한 번 밀라이언이 자신이 없다고 생각해서 했던 말을 입에 올렸다.
“X까.”
“…….”
성큼성큼 다가간 그녀가 그를 밀어 내고 도리어 제 손으로 문을 닫아 버렸다.
“으아…….”
그러곤 냉큼 쪼그리고 앉아서 홧홧하게 달아오른 얼굴을 무릎에 푹 파묻었다. 심장이 쿵쿵 뛰고 해선 안 될 말을 한 것처럼 손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녀가 눈동자를 도르륵 굴렸다.
“내가 나쁜 건 아니니까.”
누가 봐도 이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 제정신이 아닌 것 아니겠는가.
카리나가 짧은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방에 미친 사람들이 가득했다. 무슨 냄새인지 퀴퀴한 냄새도 풍기는 것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단 밀라이언에게 합류하는 게 먼저겠지.”
아니면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게 먼저일까?
오지랖이기는 하겠지만, 이대로 두는 것은 그다지 옳은 방법 같지는 않았다.
예술병은 분명히 사라져야 할 병 중 하나였고 기적을 쓰기 위한 대가인 생명력을 이상한 곳에서 찾는 것은 해선 안 되는 일이다.
“뭘 어떻게 하면 좋으려나.”
이미 이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을 텐데. 그들에겐 어쩌면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일 수도 있었다.
“예술병을 없앨 순 없는 건가.”
이런 병 따윈 완전히 세상에서 사라지면 좋을 텐데.
‘아니,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사라지는 거였던가.’
평생 원하는 이것을 포기하기만 한다면, 자유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나저나 자세히 보니까 여기…… 서고인가?’
아주 커다란 책장들이 가득 있었다. 낡고 먼지가 가득 쌓인 책이 가득 쌓여 있었다.
“검을, 만들 순 없는 걸까?”
예술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검이나 신물이 하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걸 그려서 만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정보가 없었다.
툭.
고민하는 그녀의 근처로 책 한 권이 데굴데굴 굴러왔다. 카리나가 미간을 좁히며 책을 주웠다. 이렇게 각진 책이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굴러왔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한 권으로 끝내는 예술병과 기적? 저자 아틀리에?”
그녀가 조금이라도 밝은 곳에서 책을 보기 위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되게 투박한 책이네.”
멋없는 표지에 금박으로 된 제목만 떡하니 박혀 있었다. 먼지가 쌓인 다른 책에 비해 먼지도 별로 쌓여 있질 않아서 약간 의아함마저 들었다.
게다가 얇기는 얼마나 얇은지 모른다. 사실 이걸 책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조금 두꺼운 공책 수준밖에 안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예술병에 대해서 무척이나 잘 아는 존재이다. 기적도 잘 안다. 왜냐하면, 나는 위대하고 대단한 존재기 때문이다.혹시나! 예술병으로 인해 곤란에 처했거나 어디에 갇히는 위기에 처했거나 예술병으로 인해 죽는 미래를 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필독하기를 바란다.
제목에 써둔 것처럼 이거 한 권이면 예술병에 관한 모든 것이 끝난다.]
카리나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사이비 책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