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89)
시한부 엑스트라의 시간 특별 외전 14화
이렇게 얇은 한 권으로 끝나긴 뭐가 끝나겠는가. 카리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곳에 갇혀서 할 일도 없었다. 헛소리라도 어쩌면 쓸모있는 헛소리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그녀는 순순히 책장을 넘겼다.
[일단, 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간절한 사람이겠지.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기적을 발현할 수 있는 이들은 예술의 재능을 타고 나서 위대한! 예술의 신의 사랑을 깊이 받았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카리나가 입을 다물고 책을 덮은 뒤 앞을 살폈다.
“역시 사이비 종교 책인가?”
괜한 헛소리만 늘어놓으면 조금 짜증이 날 것 같은데. 카리나는 퍽 내키지 않는 낯으로 짧게 숨을 뱉었다.
“신의 사랑은 무슨…….”
그리 기쁘지 않다. 아무리 신이 자신을 사랑했다고 한들, 결국 제 삶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물론 그림을 그리는 건 즐겁고 기적을 사용하는 것도 황홀했지만, 그럼에도 그 기적이 제 생명을 깎아 내고 종국에 꿈에서 본 것처럼 행복해지려던 제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는 거라면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적이 있었기에 꿈속의 자신은 머나먼 북부로 움직일 용기를 내었다. 죽음 앞에서 용기를 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기적이라는 것은 카리나에게 애증일 수밖에 없었다.
이 힘을 놓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 힘이 그려내는 아름다움을 눈에 담으며 살고 싶기도 했다.
생각을 마친 카리나가 다시 책을 펼쳤다.
[창조는 신이 가진 권능 중에서도 가장 위대하고 대단한 능력이다. 특히나 위대한 예술의 신은 심미안이 무척이나 뛰어나기 때문에 결코 사람을 함부로 고르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 주길 바란다.특히 창조의 기적을 가진 이들은 모두 위대하신 예술의 신이 직접 선택하고 돌본 재능이 있는 자들이다.
신의 과한 애정은 때때로 인간에게 버틸 수 없는 짐이 된다는 것을 아쉽게도 위대한 예술의 신은 알지 못했다.]
카리나는 당최 뭘 얘기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는 책을 읽어 내려가며 한숨을 삼켰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고 있는 그대가 난감함에 처했다면 그건 위대하신 예술의 신이 원하던 본의는 아님을 알아주길 바란다.기적은 기본적으로 예술의 신이 내리는 축복이고 예술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예술을 삶의 무엇보다도 우선시 하는 이들에게는 드물게 기적이 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적은 기본적으로 신이 내린 권능이기 때문에 인간의 무른 몸으로는 견뎌 내기가 어려울 것이다.(물론 이것 역시 예술의 신이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예술의 신이 무엇보다 위대하고 대단하다고 한들 아쉽게도 완벽한 것은 아니라서 때때로 실수할 때가 있기도 하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예술의 신은 한 가지 대책을 마련해 두었다. 절대 급하게 마련한 것은 아니다! 이건 아주 오래전에 적혀진 ‘고대의 서’이기 때문에 이 기법도 아주 오래 전인 고대부터 줄곧 내려오고 있었으나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졌으리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는 예술의 신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모양인지 그를 감싸 주는 일에 급급해 보였다. 그렇다고 한들 결국 그 역시 인간일 테니 신에게 목소리가 닿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예술의 신을 감싸려는 노력이 퍽 가상해 보이기까지 했다. 어쩌면 예술의 신을 믿는 사이비 종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예술의 신은 이럴 때를 대비하여 신의 권능을 빼앗는 검을 세상에 남겨 두고 왔다.당연하지만, 이 검을 사용하게 되면 기적을 사용할 수는 없게 될 것이다. 예술병은 기적의 사용으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인 만큼 예술병의 치료 방안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무슨 검을 어디에다 두고 갔다는 거지?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검의 위치는 말해 주지도 않은 채 있다고만 적은 것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다만, ‘신의 권능을 빼앗는 검’은 예술의 신이 창조했기 때문에 같은 권능에 근원을 두고 있는 창조의 권능은 빼앗지 못한다.]카리나가 멈칫했다.
입술을 살짝 깨문 그녀가 다음 문장으로 일단 시선을 돌렸다.
[사실 예술의 신은 본래 무척 자유분방하고 아름다운 것을 찾아다니며 풍류를 즐기는, 운치가 있는 자로 인간계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그런 예술의 신이 인간에게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한 인간이었다. 그자는 아주 아름다운 예술품을 조각하는 여자였다.
예술의 신의 심미안은 신계에서도 아주 뛰어났는데, 그녀는 그런 예술의 신조차 감격하게 하는 조각을 하곤 했다.
그녀는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있었으며 터번을 두르고 사막을 횡단하며 작은 끌과 나무토막, 돌 따위로 조각을 하거나 때때로 마을에 머물며 작은 대가로 조각을 해 주는 유목민이었다.
한 번은 그녀가 예술의 신을 상상하며 조각한 적이 있었는데, 예술의 신은 그 조각상에 한눈에 반해 버렸다.
소년의 형상을 한 그 조각상은 장난기가 짙은 짓궂고 자유분방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황금빛 눈동자가 벌꿀처럼 아름다웠으며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그야말로 사랑스러운 외향이었다.
그것에 감격한 예술의 신은 여인이 상상해서 조각한 그 모습과 같은 형상으로 그녀의 앞에 강림하였다.
신이 강림했음에도 여인은 그저 가볍게 웃고 말았다.
“좋은 밤이네요, 신님.”
여인이 말했다.
“……너는 놀랍지도 않은 모양이구나.”
예술의 신은 의아함을 숨기지 않으며 대답했다.
“놀라긴 했지만, 늘 상상하던 모습으로 눈앞에 서 계시니 아주 익숙한 듯도 합니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드셨나요?”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이것을 가지고 싶다. 대가로 원하는 것이 있느냐? 나는 네게 선물을 해 주고 싶다.”
여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예술의 신은 그것을 내켜 하지 않았다. 이토록 위대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인간을 어떻게든 자신과 연결해 놔야 한다는 욕심이 생겼으니까.
예술의 신이 포기하지 않자 여인은 결국 입을 열었다.
“저희 같은 유목민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나라를 원합니다. 누구나 즐기며 조각을 하고 예술을 펼칠 수 있는 나라를요.”
여인과 여인의 친구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은 사막을 횡단하고 길거리를 집으로 삼는 유목민이었다. 그들은 긴 시간 정착할 수 있는 장소를 무척이나 원했다.
예술의 신의 집착에 못 이겨 여인이 바라는 것을 말하자 예술의 신은 크게 기뻐했다.
“그러하면 내가 네게 그런 힘을 주겠다. 네게는 내가 가진 권능 중 가장 강력한 권능인 ‘창조’의 힘을 주겠느니라.”
예술의 신의 도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예술의 신은 여인이 한곳에 정착해서 더욱 정진하여 멋진 작품을 만들어 주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예술의 신은 친히 연약하고 무른 인간들이 정착하고 살아가기 좋으며, 조용하고 타국에도 쉽게 침략당하지 않을 장소를 만들어 주었다.
오아시스 세 개에 둘러싸인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장소였다.
여인은 대단히 기뻐하며 말했다.
“이 나라의 신을 당신으로 삼아도 괜찮을까요? 신님.”
예술의 신은 본래 신도를 원하지 않았지만, 여인과 여인의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이 무척 즐거웠기 때문에 흔쾌히 허락했다.
“그리해도 좋다.”
여인은 무척 기뻐하며 예술의 신을 나라가 모실 신으로 삼고 온 힘을 다해 예술의 신을 조각하여 그의 신상을 나라의 한가운데에 세워 두었다.]
거기까지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빨려 들어가며 읽고 있던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퍼뜩 시선을 떼고 숨을 뱉었다.
“……이건, 카틀란 제국의 얘기인가?”
마치 옛 설화를 재현해 놓은 것 같은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사이비가 적은 이상한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옛날이야기가 제법 사실적으로 적혀 있었다.
‘이상하다곤 생각했어…….’
보통 오아시스라는 것은 한 개가 생기기도 무척 어려운 것인데 이 주변에는 오아시스가 무려 세 개나 있지 않았던가. 사막의 어디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강제로 만든 것이라면 있을 법한 일이었다.
‘초대 샤가 설마 여자였을 줄은 몰랐는데.’
카틀란은 남자가 더 권력을 쥐고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첫 권력은 여자가 쥐고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다. 이 제국이 그렇게 만들어졌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신이 진짜로 존재하기는 하는구나.’
이 이야기가 거짓말이 아니라고 했을 때 신이 존재한다면 왜 자신이었냐고, 이유를 묻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지은 죄가 없는데 죄인처럼 살아야 했던 이유를. 정말로 그 모든 불행이 다 예술의 신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인지를.
그러나 그에 대한 답은 누구도 해주지 않겠지. 그것을 알기에 카리나는 그저 차분히 다음 줄로 시선을 내렸다.
[여인의 작품은 세상 널리 알려졌다. 모두가 진가를 알아보았고 모두가 그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여인은 매년 예술의 신을 위한 제사를 지내며 그에게 그해의 가장 아름다운 조각을 신에게 바쳤다.예술의 신은 때때로 인간계에 강림해 여인의 작품과 여인이 양성하는 후배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돌아가곤 하였으며 늦은 밤, 여인이 시름을 앓고 있을 때 몰래 나타나 축복을 내려주고 사라지곤 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의 신이 그토록 보듬어 준 여인은 이른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여인은 나라를 건국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조각을 했고 창조의 기적을 행했기에 그녀의 이른 죽음은 나라에 혼란을 가져왔다.
국민들은 기적을 신처럼 떠받들기 시작했다. 기적에 눈이 먼 이들은 또 다른 창조의 예술가를 만들기 위해서 공물을 바치고 누이와 동생이 짝을 맺고 뛰어난 예술가와 뛰어난 예술가를 강제로 결합시켰다.
축복은 피에서 피로, 땅에서 땅으로 이어졌다. 카틀란의 인간은 감히 신의 축복을 땅에 가둬 버리려고 한 것이다.
섞여선 안 될 피와 피가 섞이고 슬픔과 슬픔이 뒤섞이며 기이한 방향으로 성장한 나라를, 예술의 신은 오랜 시간 잊고 말았다.
“허망하구나.”
예술의 신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예술의 신이 가장 처음 사랑했던 인간은 너무나도 강대한 권능을 견디지 못하고 영혼까지 부서져 내리고 말았기에 예술의 신은 큰 슬픔에 잠겼다.
예술의 신은 여인과 같은 뛰어난 인재를 찾기 위해서 인간계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많은 이들에게 축복을 내리고 여인처럼 활짝 날개를 펴기를 기다렸지만, 그토록 가슴을 울리게 하는 작품을 그리는 사람은 없었다.
예술의 신의 축복은 세계를 돌아다녀야 비로소 제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의 신의 본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한곳에 오래 고여있는 축복은 썩고 썩어가며 이윽고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것이다.
창조자들은 병들 것이고 권능은 약해지며, 이윽고 권능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독이 될 것이다.
이것은 예술의 신이 바라던 바는 아니었다.
……결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