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96)
시한부 엑스트라의 시간 특별 외전 21화 (완)
‘새롭네.’
전생에서는 보통 이런 일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환생해서도 몇 번 기를 눌러 주었던 어린 시절을 제외하곤 그가 높은 위치에 오른 뒤로는 전혀 만나 보지 못한 케이스였다.
“야, 강한솔. 너 왜 그래?”
“아니 맞잖아요. 리나 누나 이제 겨우 스물넷인데, 저쪽은 못해도 서른쯤 되어 보이고요. 리나 누나 착하시니까 걱정돼서 그렇죠.”
백사후가 입술을 비뚜름하게 올렸다.
‘걱정은 무슨.’
누가 봐도 사심이 그득하게 들어 있는 시비가 아니던가.
이 작은 애송이의 시비가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는 어쨌든 마수와 싸웠던 전생의 기억이 있고 이곳에서 쌓아온 연륜이 있으니까 말이다.
“너는 이 와ㄲ……. 아니, 이 얼굴이 어떻게 서른으로 보여?”
“복장도 올드하고 차도 올드한데요.”
가만히 듣기만 하던 리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가 표정을 굳히곤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강한솔, 너 대체 무례하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보다 한참 나이 많은 사람이고 내 애인이야. 네가 뭔데 그런 말을 해?”
그녀의 말에 척 보기에도 어리숙하게 생긴 소년이 얼굴을 확 찡그렸다. 당황한 듯 입을 꾹 다문 것이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저는 그냥 누나가 걱정돼서…….”
“좋은 사람이고 설령 나쁜 사람이라고 한들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야.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문제니까.”
“……죄송해요.”
그녀가 평소와는 다르게 강하게 나가자 강한솔도 당황한 듯 어물거리며 결국 입을 꾹 다물었다. 살짝 발갛게 물든 눈가를 백사후는 어렵지 않게 발견했다.
‘곧 울겠군.’
그가 몇 마디 더 해서 눌러 주는 것도 체면을 죽이는 일이었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다물었다. 뭣보다 그녀가 자신을 위해서 나서 주었다는 사실이 이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리나, 난 괜찮으니 이만 가지. 레스토랑을 예약해 뒀어.”
“아, 네. 그럼 난 이만 가 볼게.”
“개강 날 나와~! 리나 애인 분, 다음에 기회 되면 모델 한 번 부탁드려요!”
그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가자.”
그가 보란 듯이 그녀의 허리에 팔을 휘감고 차로 걸어갔다. 흘긋 소년을 보자 주먹을 꽉 쥐고 시뻘겋게 물든 표정이 고스란히 보였다.
‘저렇게 어리숙해서야.’
그런 어린애에게 괜한 질투를 하는 제 꼴도 썩 말이 아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고.
“학교는 잘 다니고 있는 것 같군. 친구는 많이 사귀었나?”
“네, 그럼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재밌지만, 친구들이랑 노는 것도 즐거워요.”
“친구들이랑 자주 놀러 다녀도 괜찮아.”
그가 안전벨트를 매어 주며 말했다.
“정말요?”
“그래, 남자들만 없다면.”
그의 말에 그녀가 어색하게 웃었다.
“한솔이가 불쾌하게 해서 죄송해요. 본래 그런 애가 아닌데, 저를 좋아하는 거 같거든요. 그래서 기분이 좀 상했을 거예요.”
제 안전벨트를 매단 그가 멈칫했다.
그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 남자애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고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알고 있었나?”
“네, 평소에도 티를 많이 냈거든요.”
“……제대로 눌러 줄 걸 그랬군.”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가 편을 들어 준다고 물러나는 것이 아니었다. 짧게 혀를 찬 그가 핸들을 잡았다.
“하지만 제대로 한번 말해 둘게요.”
“그래.”
그가 액셀을 밟자 그녀가 바짝 긴장하며 슬쩍 차 문을 잡는 것이 보였다. 그가 설핏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처럼 거칠게 가진 않을 거야. 아깐 그대가 급한 것 같아서 서두른 거였으니까.”
“아, 네.”
그녀가 슬쩍 손을 놓았다.
그가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켰다. 목적지는 오늘 그들의 관계를 부쩍 가깝게 해 줄, 5성급 호텔이었다.
* * *
“와, 화려하네요.”
“최근에 오픈한 호텔이야. 내 계열사의 호텔이고 제법 돈이 들어갔지. 인테리어부터 시작해서 작은 가구나 대리석까지 전부 최고급 자재로만 만들었어.”
유해물질이 최대한 나오지 않게 했고 힐링을 할 수 있도록 호텔 옥상에는 정원도 마련했다. 각 방마다 풍경이 다 달랐으며 방 안에서도 뭐든지 할 수 있도록 마련했다.
헬스장 수영장 볼링장 골프장 등 없는 것이 없었고 스파부터 마사지까지 고객을 위한 서비스도 완벽했다. 그리고 전시회가 열릴 수 있도록 작은 회장이 마련되어 있었으며 바깥으로는 풀빌라도 있어서 도심 속에서 완벽한 휴양을 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심지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아틀리에가 딸린 룸도 존재했으며 호텔 내부에는 각종 미술 자재도 판매되고 있었다.
그뿐이랴, 호텔에 고용된 요리사들은 모두 세계에서 이름을 날린 이들로 룸서비스 음식 하나조차 맛이 없는 것이 없었다. 그가 하나하나 전부 맛을 보고 평가를 했고 수준에 맞지 않는 이들은 전부 내친 탓이었다. 서비스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전부 베테랑들이 근무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세계 각국에서 힘들게 고용된 만큼 그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월급을 책정하고 있었다.
사실 적자와 손해를 감수하고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해서 만든 호텔이었다.
방 하나하나의 가격이 상당히 높았지만, 의외로 재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터라 생각보다 큰 적자는 나지 않고 있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 유명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퍼지고 있는 모양이니 아마도 대단한 흑자를 낼 순 없어도 적자를 보진 않을 듯했다.
이곳은 카리나가 조금이라도 더 편한 환경에서 조금 더 즐겁게 작업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멀리 가지 않고도 이곳에서 푹 쉴 수 있도록 만든 곳이었다. 적어도 그녀가 그가 볼 수 있는 곳에 있었으면 했다.
“안내서는 따로 주겠지만, 그대는 언제든지 와서 이용해도 괜찮아. 이곳의 방 하나는 그대의 거니까. 시설 이용도 전부 무료야.”
“……세상에, 이건 너무 과해요.”
“애초에 그대를 위한 곳이었어. 안내서를 가져다주라고 할 테니 읽어 보고 언제든 이용해. 이곳엔 아틀리에도 여러 곳 있고 전시회를 할 전시장도 있어. 유명 예술가들도 아마 많이 묵으러 올 테니 도움이 될 거야.”
전생에 그녀의 그림에 대해 전혀 몰라준 것이 아쉬웠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림에 대해 깊게 배우려고 노력했다. 어쨌든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다고 한들, 작품을 평가할 눈을 만들고 그녀가 느끼는 감정을 어쭙잖게나마 느낄 수 있도록.
“……정말요?”
“그래, 내가 직접 안내해 주고 싶지만, 식사 시간이 다가와서.”
그가 그녀를 조심스럽게 잡아끌었다.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호텔 내에 있는 정갈한 한식당이었다. 그녀는 식사하는 내내 감탄사를 족족 흘려 댔다. 먹고 싶은 것을 원하는 만큼 먹는 그녀를 보며 그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렸다.
늘 소식만 해도 음식을 게워 내던 모습이 눈에 선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때의 그녀가 아닌데도 그는 그녀가 당장에라도 쓰러지거나 침대에서 눈을 감을 것만 같았다.
“오늘은 호텔에서 잘 건데 괜찮아?”
“네, 좋아요!”
한층 밝아진 얼굴로 그녀가 대답했다.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던 그가 결국 성큼성큼 다가가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에 짧은 입맞춤을 했다. 충동적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움직임을 뚝 멈췄다.
“미안하군. 하지만, 그대는…… 너무 귀여운 것 같아.”
그의 말에 그녀가 눈을 끔뻑였다.
식사를 마치고 막 일어나는 도중이었던 터라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리나가 주변을 훑어보더니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당신…….”
“미안.”
벌겋게 달아오른 카리나의 목덜미를 보며 밀라이언이 으득 이를 갈았다.
움찔움찔 떨리는 카리나의 손끝이 눈에 들어왔고 유독 새하얀 그녀의 가느다란 목이 탐스럽게 보였다.
“…….”
“다음은, 방에 가서 해도 될까?”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어깨를 움찔 떤 그녀가 눈가까지 새빨갛게 물들어서는 거의 울 것 같은 낯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이윽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주 미세한 끄덕임을 확인한 그가 냉큼 그녀를 품에 안았다.
“사랑해, 카리나.”
그가 그녀의 귓가에 작게 속삭이곤 그대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호텔 최상층의 룸에 들어간 그가 그녀에게 급히 입을 맞췄다.
사방이 뻥 뚫린 유리로 되어 있는 호텔의 최상층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그녀의 시선을 빼앗았다. 창밖의 풍경은 다른 건물이 전혀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높이 뻗어 있었다.
“으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