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203)
모든 장례가 끝났다.
세레누스는 밀라이언의 시신을 카리나의 옆에 안치했다.
많은 이들이 방문했다가 떠났다. 마지막까지 무덤 앞에 남아 있는 것은, 세레누스 뿐이었다.
한동안은 엉엉 울며 식음을 전폐했고 정신을 차린 뒤엔 장례를 준비했고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 장례가 끝이 났다.
모든 일이 정신없이 바삐 흘러가고 무덤 앞에 혼자 선 끝에야 세상에 혼자 남았음을 실감했다.
세레누스는 술 한 병과 함께 무덤에 기대어 앉아 어머니의 편지가 담긴 노트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
갑작스러운 이별을 하게 됐을 때, 펼치라고 한 그 페이지를.
[안녕, 세레누스.네가 이 페이지를 펼쳤다는 것은 너도 예상치 못한 이별을 겪었다는 거겠지. 아마도, 아빠의 죽음이 아닐까?
일단, 상심이 클 거라고 생각해. 여린 너는 분명히 크게 슬퍼했겠지. 어쩌면 아빠를 닮아서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고 강한 척을 했을 수도 있어.
알고 있단다. 누군가의 죽음이 아무렇지 않을 순 없지. 특히나 소중했던 사람이라면 더욱더 말이야.
하지만, 세렌. 생각보다 너는 잘 이겨내고 말 거야.
사실, 엄마도 아빠도 부모이기 이전에 너와 같이 작은 시절을 보냈어.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서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없어서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단다.
그러니까, 세렌은 그러지 않았으면 해서 아빠는 필사적으로 노력했을 거야.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너에게 전부 줬을 거 란다.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지금은 분명히 혼자가 된 슬픔에 울고 있겠지.
강인하게 컸더라도 가족을 아주 많이 사랑하는 여린 아이로 자랐을 걸 알고 있어. 아픈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고 다친 동물에게 손을 뻗을 거야. 네 아빠처럼 말이야.
세렌, 지금은 이별이 너무도 크게 느껴지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것 또한 추억이 될 거란다.
별로 위로가 되진 않을 수도 있겠지만, 엄마도 아빠도 언제나 곁에 있을 거야. 정말로.
괜찮아질 거야.
언젠가 세렌의 옆에도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눠 줄, 엄마에게 아빠 같은 존재가 생길 거야.
네가 울고 있으면 달려와서 안절부절못하며 서툴게 널 달래 주고 네가 위험에 처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날아와서 검을 휘두를 사람이.]
세레누스가 코를 훌쩍였다.
공작저에 들어가면 보는 눈이 많아서 쉽게 울 수 없으니 여기서 한껏 울고 들어갈 생각이었
다.
읽어도 읽어도 그리움만 커졌다.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벅벅 문지르는 순간이었다.
“세렌! 허억, 헉, 헉…….”
“……하란?”
“어, 어…… 왜, 왜 우시는……. 자, 잠시만요. 여기 손수건이……. 어라? 어디에 있더라. 분명히 있었는데, 자, 잠시만요!”
허둥지둥 주머니와 가방을 뒤지기 시작하는 하란의 모습에 세레누스의 표정이 설핏 일그러지더니 이윽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뭐하는 거야……. 신사 실격이네, 너.”
“아, 아닙니다! 여기 있습니다. 여기요……. 왜, 왜 혼자 우십니까.”
“다들 비웃으면 어떡해. 난 공작인데.”
“……누가 비웃습니까? 제가 전부 때려눕히겠습니다.”
“내 사용인들을 네가?”
“……아뇨, 그럼 저를 불러 주세요. 언제든 달려오겠습니다. 혼자 울지 마세요. 세렌이 혼자 울면,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란이 안절부절못한 낮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세레누스의 눈이 커졌다.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면, 더는 외롭지 않을 거야.내 소중한 세렌에게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구나.
네가 언제나, 생을 다 채우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행복하기를.
세상의 모든 행운이 전부 네게 쏟아지기를. 네가 걷는 모든 길에 축복만이 가득하기를.
엄마는 감히 언제나 바라고 있단다.
사랑한다, 세렌.]
세레누스가 천천히 노트를 덮었다.
술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 때문에 분위기가 다 깨졌어.”
“……죄, 죄송합니다. 제가 뭘 잘못했나요? 저는 단지 세렌이 혼자서 울지 않았으면 해서…….”
세레누스가 흘긋 곧 울 것 같은 낯의 하란을 보았다.
“내가 울고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올 거야?”
“네? 물론이죠. 우시는 이유까지 전부 참수하겠습니다.”
“과격하네.”
세레누스가 키득키득 웃으며, 천천히 무덤가를 벗어났다.
저택으로 돌아가는 세레누스의 발걸음에는 더이상 그림자가 드리워 있지 않았다.
오늘도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쉼 없이 돌고 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그렇게 세상은 여전히 움직인다.
>시한부 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