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4)
>4 화>
아벨리아는 열넷의 어린 나이다. 한창 어리광을 피울 나이긴 했다.
그러나 카리나는 그 나이에 늘 아픈 아벨리아와 바깥에서 매일 매일 다쳐오는 페르던에게 모든 관심을 빼앗겼다.
아벨리아의 맑은 웃음에 추한 질투심과 원망이 피어올랐다. 그래서는 결코 안 될 일인데.
“언니이, 진짜 안 돼요? 네?”
녹턴이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아벨리아의 어깨를 붙잡고 카리나에게서 그녀를 떼어 냈다.
“리아,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는 속상하군요. 오늘 건강 검진을 하라는 백작님의 명령을 받고 온 것인데요.”
“……하지만.”
아벨리아가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카리나를 바라봤다.
카리나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 같은 기분으로는 무슨 말을 해도 말실수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카리나 아가씨는 중요하고 급한 일이 있다고 들었어요. 리아가 떼를 쓰면 곤란할 거예요.”
“……아, 그래?”
아벨리아의 아쉬움 넘치는 시선이 카리나에게 향했다.
그녀는 입을 여는 것보단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언니는 맨날 밖으로 나가서 좋겠다…….”
틀를거리며 투정을 부리는 아벨리아가 실망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울컥, 속에서 무언가 치고 올라왔다.
아벨리아는 카리나에게 집착했고 그 때문에 그녀는 언제나 아픈아벨리아의 곁에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카리나는 변변한 친구 한 명도 사귈 수 없었다.
다과회를 연 것도 한 손에 꼽을 정도였고 참석한 것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꽉 쥔 주먹이 잘게 떨렸다.
그녀 역시 친구와 놀러 가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들을 원망하지 않으려고 다른 데 관심을 두려고 했던 날도 있었다.
“그 대신 시장에서 파는 맛있는 거 사다 주세요! 왜 꼬치나 주스 같은거요! 먹어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아벨리아가 곧 장난기 짙은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든다.
“알겠어.”
자리를 빨리 뜨고 싶었던 카리나가 미간을 좁힌 채 성마르게 대답했다.
기묘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녹턴에게 감사의 의미로 살짝 고개를 숙이곤 그녀가 몸을 돌렸다.
‘토할 것 같아.’
계단을 내려가는 그녀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아벨리아에 대한 미안함과 동시에 느껴지는 질투.
자신이 혐오스럽고 역겨웠다.
그녀의 걸음이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 * *
“카리나, 미안하다. 인프릭이 낙마를 했다고 해서 급히 아카데미로 가 봐야겠구나. 우리 딸은 착하니까 괜찮지?”
“하지만 오늘은 카리나의 생일인 걸요…….”
“오빠가 다쳤을지도 모르잖니.”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먼저 아카데미로 갔단다. 생일 선물은 집사에게 말해 두렴. 파티는 다음에 하자꾸나. 괜찮지?”
어둠 속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연극배우처럼 덩그러니 떠오른 레오폴드 백작 부인과 어린 카리나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의 네 살 생일의 이야기였다.
결국, 그날 백작 부인은 카리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급히 몸을 돌려 저택을 나섰다. 어린 카리나는 그저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순식간에 장면이 뒤바뀌었다.
“와아, 작아요! 제 동생이에요?”
“그래, 카리나의 동생이란다. 이제 카리나는 언니이고 누나이니까 동생들을 잘 돌봐야 한다. 알았지?”
“네!”
쌍둥이 동생이 태어나던 날 카리나는 무척 행복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들이 꼬물거리는 것을 난생처음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행복했다. 귀여운 아이들이 제 뒤를 뽀작뽀작 쫓아다닐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그러나 쌍둥이가 태어나는 것과 동시에 모든 관심은 갓 태어난 아이에게 돌아갔다. 아벨리아가 무척 약한 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안 돼! 이건 내 거야!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거라고……!”
이제 막 바닥을 기어 다니는 작은 아이의 손가락 힘이 어찌나 세던지, 소중한 곰돌이 모양의 지갑을 빼앗긴 카리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 꽉 쥔 손아귀에서 제 물건을 찾으려다가 쌍둥이가 넘어져 엉엉 울음을 터뜨린 것도 작은 소녀가 원하던 일은 아니었다.
“세상에, 카리나! 대체 뭐하는거니? 누나가 되어서는!”
“하지만…… 제 물건을 페르던이 가져가서…….”
“네가 양보해야지. 누나잖니! 누나는 어른스러워야 해. 그래야 동생들이 보고 배우지. 일단 페르던에게 주렴. 착하지, 카리나?”
“…….”
“좀! 말 좀 잘 들으렴. 떼쓰지 말고. 대체 나이가 몇인데…… 말을 듣지 않으면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크게 혼을 낼 거야.”
“이건 싫은…….”
“애처럼 굴지 말고.”
기어코 백작 부인은 카리나의 손에서 지갑을 빼앗아갔다. 그 것을 손에 쥔 페르던이 좋다며 까르르 웃었다.
그 지갑은 혼자 보냈던 네 살 생일날,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준 소중한 선물이었다.
눈이 잔뜩 붉어진 카리나는 서립게 울고 있는 페르던에게 억지로 지갑을 빌려줘야 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것은 너덜너덜해져서 카리나의 품으로 되돌아왔다.
또다시 장면이 뒤바뀐다.
“……어머니, 저 머리가 어지러워요.”
“뭐? 이런, 열이 나는구나. 지금 아벨리아도 열이 올라서 의원이 살피고 있단다, 그 뒤에 널 봐달라고 하자. 일단 방으로 가자꾸나. 엄마가 데려다줄게.”
“네.”
오랜만에 어머니의 품에 안긴 카리나가 조용히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드물게 제 눈을 마주 보고 안쓰럽게 끌어안은 어머니의 품은 무척 따뜻했으나 그 행복이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마님, 진찰 오신 의원께서 아벨리아 아가씨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 드릴 게 있다고 잠시 와 달라고 하십니다.”
“뭔가 문제가 있다니? 일단, 알았다. 금방 간다고 전하렴.”
레오폴드 백작 부인은 미안한 표정으로 카리나를 내려놨다.
“카리나, 미안하다. 시녀를 부를 테니 그녀를 따라 방에 가서 쉬고 있으렴. 일이 끝나면 의원과 함께 찾아오마. 카리나는 언니니까 혼자 가 있을 수 있지?”
“……어머니가 데려다주시면 안 돼요?”
“넌 건강하잖니.”
카리나의 투정에 백작 부인이 한숨처럼 말했다.
“동생이 더 아프니까 언니인 네가 조금 양보해 주렴, 카리나.”
모든 것은 카리나의 위주가 아니었다.
“우리 딸, 착하구나.”
칭찬은 오로지 그녀가 원하는 것을 참았을 때 주어졌다.
몸이 아픈 동생을 둔 언니여서, 사고뭉치 동생을 둔 누나여서, 타지에 떨어져 사는 오빠의 동생이라서.
다정함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열 살이 됐을 때, 그녀는 더 이상 누군가를 찾지 않도록 노력했다.
대신 그녀는 조금 다른 취미를 들였다.
그녀는 혼자 있을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선을 긋고 색을 입히면 생동감 있는 그림이 완성됐다. 그제야 충족감이 속에서부터 들끓었다.
장담하건대 카리나는 그 능력이 ‘기적’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동시에 그런 종류의 힘이 제 생명력을 깎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더욱 몰랐다.
레오폴드 백작가는 대대로 무인을 배출한 집안이었다.
예술이라고 불릴 만한 계통에서 유명한 사람은 없었다. 자연히 예술병은 흔하지 않은 병이었다.
그녀가 만약 아틸렌 가문이나 칼로스 가문 같은 뛰어난 예술가를 많이 배출한 가문에서 태어났다면 자연스럽게 그런 종류의 검진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온힘을 다해 그린 나비 한 마리가 생명을 얻어 도화지 밖으로 나와 날아가는 것을 보며 무척 놀랐다.
나비는 포르르 방안을 돌아다니다가 이윽고 사라져 버렸다. 어린 카리나는 곧장 부모님께 향했다.
“어머니! 아버지! 저, 그림을 그렸는데요……!”
“카리나! 들어 보렴, 인프릭이 아카데미에서 열린 검술 대회에서 일등을 했다는구나. 조기 졸업을 할 것 같다고 한다.”
“그…… 역시 오라버니에요! 그런데, 어머니 저도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에서 나비가 날아올랐다고, 무척 신기했다고, 한 번만 봐 달라고, 그렇게 얘기할 생각이었다.
“그림? 아, 잘 그렸구나.”
도화지에 닿은 시선은 몇 초 머무르지 않고 떠나갔다.
오라버니가 보낸 편지를 몇 번이고 곱씹어 읽는 두 사람에게 그녀가 그린 그림은 닿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번 주말에 인프릭이 돌아온다고 하니 작은 연회를 열까 한단다. 오즘 아벨리아의 몸 상태도 꽤 좋고 기쁘네. ”
“…….”
어린 카리나의 혀끝에서 맴돌던 말은 결국 바스러져 사라졌다. 소녀는 몸을 돌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깨우치며 카리나는 더욱 그림에 몰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