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53)
>53 화>
“금기요? 아뇨…….”
페리얼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 예술을 정식으로 배우게 되거나 이쪽 계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너무 협소한 생활을 해 온 카리나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왕래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을 테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접하는 정보도 줄어 들었을 거다. 그렇다고 페리얼은 그 부모가 그림을 보여 준 그녀에게 그런 설명을 해 줬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조금만 관심을 줬어도……’
하다못해 그녀에게 미술 선생 하나만 붙여 줬더라도 그녀가 이 날 이때까지 모르진 않았을 이야기였다.
“흔히 사용하는 사람은 없고 사용하면 거의 즉사를 하는 경우뿐이라서 아마도 손을 대지 않으셨 던 것 같긴 하지만…….”
세상에 백퍼센트는 없다.
어쨌든 그녀가 알아 두면 좋을 이야기이기도 했다.
카리나는 이쪽에 발을 들이고 있으면서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일단 예술병의 정의부터 조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페리얼이 이젤 앞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카리나가 멀뚱히 서 있다가 그의 손에 이끌려 의자에 앉혀졌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페리얼의 눈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아지랑이를 그리고 싶었다.
조금만 더 지켜보고 있었다면 빠져들었을 것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 었는데.
그녀가 입맛을 다시자 페리얼이 웃었다.
“그림은 나중에 그리는 걸로 해요.”
“아…… 네.”
생각을 읽힌 것에 당황한 카리나가 얼굴을 푹 숙이며 대답했다. 욕망과 의욕으로 점철된 눈을 보면 누구든 모를 리가 없다.
그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일단 예술병의 근본을 찾아가 보자면, 그건 사실 병이라기보단 대가를 바탕으로 한계점을 뛰어 넘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계를 뛰어넘다니…….”
“우리가 예술을 통해 일으키는 기적에는 한계점이라는 게 있습니다. 저만해도 일정 이상의 상처는 치료하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치료할 수도 없습니다.”
페리얼이 차분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카리나는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에 눈을 끔뻑였다.
“이건 사실 잘 알려진 이야기가 아니라 아마 아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어쨌든 예술병에 걸린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그겁니다. 한계점의 유무죠.”
페리얼의 말에 카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이 한층 진 지해지자 페리얼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래도 각자 능력에 따라서 불가능한 건 있습니다. 그건 한계점이라고 하기 보단 사실 가지고 있는 최대치의 차이죠.”
“음…… 네.”
“그중에서도 우리는 금기라는 게 있습니다. 한번 기적을 일으키는 것으로 가지고 있는 대가를 전부 잃는 종류의 금기입니다.”
페리얼의 조곤조곤한 목소리에 카리나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윈스턴도 그런 얘기는 해 주지 않았다. 물론 그로선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였기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지만.
“네.”
“첫째는 섭리를 거스르면 안 됩니다.”
“섭리요?”
“네, 죽은 자를 되살리거나 시간을 되돌리는 일 등입니다. 이미 정해진 과거를 기적을 통해 바꾸는 일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페리얼은 사뭇 진지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카리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가 갑작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알아서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았다.
“둘째는…… 사실 이건 창조자 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긴 합니다.”
“네.”
“인간을 만드는 겁니다.”
페리얼의 말에 카리나의 등이 조금 딱딱하게 굳었다.
허벅지 위에 올려 둔 손으로 주먹을 꽉 쥔 카리나가 페리얼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식물이나 동물, 마수 등은 상관없지만…… 인간은 신의 피조물입니다. 신에게만 허락된 창조물이 바로 인간이죠.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은 해선 안 됩니다.”
“…….”
“인간을 창조한다는 것은 없는 인간을 만들든 있는 인간을 복제하든 똑같습니다.”
“……네.”
카리나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페리얼은 가만히 그녀를 살피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부디 그녀가 금기를 범한 일은 없길 바랄 뿐이다.
“마지막은 기적을 이용해 살생을 하는 경우입니다.”
“살생이요?”
“네. 보시다시피 기적이라니, 정말 놀라운 능력이 아닙니까. 하지만 그것을 이용해서 살생을 하면 안 됩니다.”
금기는 그렇게 많지 않았으나, 확실히 지켜지지 않으면 여러모로 문제가 많이 생길 것이 분명해 보였다.
카리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페리얼이 웃었다.
“……만약 금기를 어기면 어떻게 되나요?”
“보통은 바로 그 자리에서 가지고 있는 대가가 소멸됩니다. 즉, 죽거나…… 영원히 예술을 하지 못하게 되는 거죠.”
“예술병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금기를 어기면요?”
“그들은 한계점이 있어서 애초에 그런 일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여태까지도 없었고요, 덧붙이는 페리얼의 말에 카리나가 입을 닫았다.
즉, 예술병을 걸린 사람들은 한계점이 풀리는 대신 압도적인 힘을 또 한 차례 가지게 된다는 거다.
“금기가 금기인 이유는 우리 같은 인간의 몸으론 그 능력의 대가를 지불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렇군요.”
“기록에도 시간을 되돌리려고 했던 사람이나 죽은 사람을 살리려고 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전부 팔다리를 잃거나 시력을 잃었지만요.”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야기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금기라니. 금기라는 게 존재했을 줄이야. 그녀의 얼굴이 한층 가라앉았다.
“카리나.”
“네.”
“지금 내가 말한 금기 중에 혹시 시도해 본 것이 있습니까?”
페리얼의 말에 카리나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한참이나 아무런 말을 하지 않더니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담담하게 내뱉어지는 말을 들으며 페리얼이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되지가 않는 것이다. 그녀의 비정상적으로 빠른 예술 병의 진행 속도가.
“정말입니까?”
“……네.”
긴 눈꺼풀이 아래로 길게 내려 앉으며 짙은 음영이 드리워졌다.
페리얼이 이마를 짚었다.
그녀의 말대로 금기를 어긴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거지?
‘하긴…… 만약 금기를 범했다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지.’
페리얼이 턱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창조자들이 금기를 어긴 경우, 살아남았다는 기록은 없다. 그들은 목숨 자체가 대가였으니까.
물론 기록 자체가 많지 않으니 무조건이라고 확정할 순 없었다.
“창조자들이 단명한 이유는 기적을 너무 많이 일으켜서 많은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그건 아시지요?”
“네.”
“하지만 그들은 적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십수 년 동안 최소한 하루에 한 번씩은 기적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카리나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녀가 조금 당황한 눈으로 페리얼을 쳐다봤다. 페리얼이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마주본 채 마저 입을 연다.
“그들은 작품을 완성하는 것에 쾌감을 느끼고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으니까요.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셨던 모양이죠.”
그들이 광기를 보이고 난 뒤론 더욱더 심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더 빠르게 생명이 소모 되고 빠르게 죽어 갔다. 서른을 넘긴 경우가 없다는 건 그 때문이었다.
“기적을 일으킨 예술품은 사라 지기 때문에 남은 작품은 거의 없지만요.”
페리얼이 설명했다.
“사실 사람은 큰 사고가 없다면 최소 70년까진 살 수 있습니다. 창조자들에겐 그 70년이라는 시간 자체가 말 그대로 기적을 위한 먹이인 겁니다.”
그것을 수년에서 십수 년에 걸쳐 쉬지 않고 매일매일 사용해대니 닳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생명은 무한하지 않고 그들은 그 유한한 것을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하지만 카리나는 너무 빨라요.”
페리얼의 가장 의문스러웠던 점을 입에 을렸다.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 그린 작품이 채 200장이 안된다고 한다면, 그건 지금까지 우리 역사서에 기록된 창조자들 사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예요.”
“그게 무슨 의미예요?”
“아무리 기적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것이라고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단명하진 않는다는 말이에요.”
스물에 죽은 창조자는 없다.
물론 그보다 빠르게 죽은 이는 한 사람 정도 있었지만 그건 그가 짧은 시일 내에 미친 듯이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광기에 미쳐버린 그 창조자를 제외하면, 이 정도로 빠르게 생명을 갉아 먹힌 창조자는 없었다.
겨우 200장으로 없어질 생명이 아니다.
“그래서 물어본 겁니다. 혹시 금기를 범한 적이 있는 것은 아니신지.”
페리얼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다시 그녀의 시선을 바라봤다.
카리나는 여전히 아무런 말없이 조용히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조용히 입을 다문 카리나를 보며 페리얼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다른 원인이 있는지 조금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만약 이유를 찾으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페리얼?”
“…….”
안개가 어슴푸레 피어나는 잔잔한 호숫가처럼 들려오는 목소리는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비스듬히 돌린 채 조용히 물어오는 초연한 모습에 페리얼은 잠시 넋을 잃었다.
“솔직하게요.”
“……가능성은 낮아요.”
“지금껏 창조자라는 사람 중에서 생존자는 있었고요?”
“…….”
페리얼의 말문이 턱 막혔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카리나가 부러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페리얼, 나 부탁이 하나 더 있어요.”
“……부탁이요? 밀라이언에게 숨겨 달라는 것 같은 어려운 부탁은 더 이상 수용하기가 힘들 것 같아요.”
페리얼이 쓰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에게는 친우가 부탁한 일에 거짓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이미 제법 양보한 터였다.
그나마도 카리나의 의지가 단단하고 그녀가 오로지 밀라이언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방법을 있는 힘껏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양보한 것이다.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닐 거예요. 물론 얼마든지 거절해도 되고요.”
“뭔데요?”
“‘카리나’를 세상에 남기고 싶어요.”
그녀가 아주 천천히 말을 덧붙였다.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쓰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조금씩 깨달았다. 가족에게조차 언젠가 잊힐 거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자고.
그녀에겐 그런 힘이 있었다.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신이 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아름다운 기적을 일으키는 양날의 검.
기적을 일으킬 때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그 풍경을 세상에 각인시키고 싶었다.
언젠가 그 황금빛을 잃더라도 영원히 그 모습이 남도록.
“카리나 레오폴드도, 레오폴드 백작가의 장녀도, 아벨리아의 언니도 아닌…… 카리나라는 사람의 이름을 남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