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58)
>5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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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빠져나온 카리나가 입을 가린 채 빠르게 2층으로 올라갔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심장이 아프고 속이 울렁거려서 게워 내고 싶은 것을 힘껏 참아야 했다.
‘갑자기 또 왜……’
한동안은 분명히 괜찮았었는데.
방으로 뛰어 올라간 카리나가 문을 잠그고 화장실에 달려 들어갔다.
먹은 것이 전부 역류했다. 음식을 게워 내고 나니 머리가 띵하다.
그녀가 대충 뒤처리를 끝내고 힘없이 침대 위에 무너져 내렸다.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다. 핏기가 빠져나간 얼굴은 이미 정상적이지 않았다.
“괜찮아.”
아직은 괜찮다. 윈스턴도 페리얼도 있으니까. 조금만 쉬면 괜찮아지겠지.
혼잣말로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카리나는 심장께를 부여잡았다.
“아직 괜찮아.”
시간은 남아 있다.
죽을 날은 차근차근 다가오겠지만, 아직 시간은 있었다. 그녀가 손을 뻗어 협탁 밑 서랍에 넣어 둔 하론을 꺼내 손에 꽉 쥐었다.
‘밀라이언……’
그의 다정함이 돌에도 스며든 것일까?
천천히 심장이 편해지는 것도 같았다. 울렁거리던 속이 가라앉는 느낌에 카리나가 흐릿하게 웃었다.
분명 나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그래도 그가 곁에 있는 것 같아서 충분히 만족스럽다.
“하고 싶은 목록 적어야지.”
이제 두 번째 걸 이뤘다.
손을 잡고 싶어서 손을 잡았고 그것으로도 행복했지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했다.
한층 진정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펜을 손에 쥐고 2번째 목록에 긴 줄을 그어 지웠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간단했다. 저택에 전달할 편지를 쓸 때 정했으니까.
[작품으로 유명해지기.] [레오폴드 백작가에 돈 변제하기.]이건 스스로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이기적으로 정한 것이다.
누군가 과한 처사라며 손가락질해도 어쩔 수 없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들은 평생 자신에게 해 준 것이 많다고 생각하겠지. 어릴 때조차 유모의 손에 길렀다는 것을 완전히 잊은 채로.
“다섯 번째는 뭘 하지.”
그녀가 조심스럽게 고민했다.
하나하나 이뤄가면 얼마나 뿌듯할까. 유명해져서 돈을 갚고 남은 돈은 전부 밀라이언에게 주고 싶었다.
‘무덤에 가지고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포슬포슬 웃다가도 제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웃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인정하고 이해하고 체념했어도 그럼에도 심장이 묵직해지는 것까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시간이 조금 더 늘어나진 않겠지?”
밀라이언과 조금 더, 지금껏 못 해 봤던 것을 다양하게 해 보고 싶었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경험하고 싶다.
고민하던 그녀가 천천히 다음 줄로 펜 끝을 내렸다.
[친구 사귀기.]페리얼이 친구를 하자고 해줬지만, 그래도 같은 성별의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했다. 물론……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페리얼은 모든 걸 다 아니까.’
그러니까 큰 부담 없이 그의 친구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의 병을 알고 있다.
윈스턴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느릿하게 다음 줄로 내려갔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해 주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도시락 싸주기.] [좋아하는 사람과 포옹해 보기.]해 보고 싶은 것이 순식간에 머릿속에 우르르 떠올랐다.
하나둘 쓰는 것도 벅찰 지경이다. 카리나가 멍하니 종이를 내려다 봤다. 쓰고 싶은 것이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빼곡하게 채우라면 채울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곤란하네.”
하고 싶은 게 전부 밀라이언과 연관되어 버렸으니.
똑똑.
노크 소리에 카리나가 퍼뜩 몸을 떨며 노트를 닫아 빠르게 서랍으로 집어넣었다.
그녀가 잠갔던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살짝 연 문틈으로 단단한 손가락이 들어오더니 문을 힘주어 열었다. 밀라이언이었다.
“뭘 하기에 문을 잠그고 있어?”
“아, 미안해요. 잠시…… 뭘 좀 했어요.”
밀라이언을 본 카리나의 입가가 또다시 허물어졌다.
뭐가 좋은지 눈매를 반달로 접은 채 사르르 녹아내리는 미소에 밀라이언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놈이 웃는 거랑은 확실히 다르군.’
밀라이언이 옅게 마주 웃었다.
“뭔가 할 말이라도 있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 오는 카리나의 모습을 밀라이언이 말없이 바라봤다.
“그녀가 네가 알길 바라지 않아.”
페리얼이 전해 준 단호한 한마디와 말랑말랑해 보이는 그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분명히 일전에도 자신을 피했다.
“아니, 곧 떠날 거라 그대를 한번 보러 왔을 뿐이야.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았으니 확인도 할까 해서.”
밀라이언의 말에 카리나가 웃었다.
“괜찮아요, 멀쩡하고. 밀라이언이 준 목걸이도 있으니까요.”
카리나가 냉큼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보여 주며 말했다.
반짝반짝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밀라이언이 손을 뻗어 그녀의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넘겨 줬다.
“무리하지 말고 잘 있도록 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 두고 갈 테니 팽에게 거리낌 없이 말하고.”
“네, 알겠어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래, 다녀오지.”
이런 종류의 배웅을 사용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받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기묘한 느낌을 애써 털어 내며 밀라이언이 몸을 돌렸다.
“아, 그놈, 페리얼 칼로스가 혹시나 허튼수작하면 칼로 찔러도 좋아.”
“……네?”
“아. 좀 과격했나.”
카리나가 당황한 얼굴로 눈동자를 도르르 굴리자 밀라이언이 조금 곤란한 눈으로 제 입술 끝을 매만졌다.
“발로 차도록 해.”
“네?”
어디를?
그런 눈으로 눈을 끔뻑이자 밀라이언이 시선을 내렸다가 빙긋 웃었다.
그의 시선이 다리 사이에서 한 번 멈췄다가 다시 카리나를 향해 올라왔다.
“…….”
“힘껏 무릎으로 찍어 올리면 그 놈도 물러날 거야.”
떨떠름하긴 하지만 그가 하는 말이 걱정이라는 것을 알기에 카리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허튼수작이 뭔데?’
그것에 대한 정의를 찾지 못했다.
“내일 보지.”
“내일, 언제쯤 와요?”
“빨라도 저녁……이 아니라, 점심때쯤엔 올 수 있겠지.”
저녁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축 처지는 입꼬리와 눈꼬리를 본 밀 라이언이 황급히 말을 바꿨다.
‘……미쳤군.’
말을 해 놓고도 후회했다. 점심 때쯤이라니, 무리도 이런 무리가 없다.
그냥 솔직하게 말했으면 됐을 일을 왜 저도 모르게 말을 바꿨는지도 모를 일이고.
순간 심장이 덜컹 떨어지는 느낌에 반사적으로 말을 바꿔 버렸다.
그가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가 카리나를 향해 시선을 내렸다.
“…….”
순간 밀라이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쓸데없는 생각이 순식간에 풍화되어 사라졌다.
눈이 녹아 봄이 찾아온 것처럼 화악 밝아진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기다릴게요, 다녀오세요.”
“……그래, 다녀오지.”
휴식 없이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도 마수를 찾는데 변수가 많다는 것도, 그때만큼은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뻣뻣해진 몸을 돌리며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밀라이언의 미간은 좁아진 채 펴질 기미가 없었다.
멀어지는 밀라이언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리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조금 더 다양한 말을 해 주고 싶었는데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말주변이 조금만 더 있었어도.”
무슨 걱정이 있는지 마지막에는 미간에 깊은 골까지 새겨진 채였다.
“충분히 말주변 있던데요, 카리나.”
“……페리얼?”
“하도 즐겁게 대화를 나누기에 이제 끼어드네요.”
페리얼이 한쪽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모퉁이에 있었던 모양이다.
카리나가 조금 당황한 기색을 내보였다가 이내 부끄럽다는 듯 볼을 붉혔다.
“왔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요.”
“꿀이 뚝뚝 떨어져서 언제쯤 마르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으, 그러지 마세요.”
제 볼을 이리저리 꾹꾹 누르며 카리나가 한숨을 삼켰다.
그녀가 눈치를 보더니 제 방으로 쏙 들어가 페리얼을 바라봤다. 안으로 들어오라는 것이 분명한 제스처였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페리얼의 물음에 카리나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몸…… 상태가 좀 안 좋아진 것 같아서요.”
“왜 그렇게 느꼈어요?”
“방금, 사실 먹은 걸 전부……음.”
카리나가 화장실을 살짝 눈짓하며 말끝을 흐렸다.
아픈 상황을 얘기하고 싶지 않지만 말을 해야 어쨌든 윈스턴에게 전해질 테고 페리얼이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페리얼과 윈스턴에게만큼은 몸 상태에 대해 거짓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음식이 몸에 받지 않습니까?”
“여기 온 뒤로 괜찮았는데 오늘 갑자기 또 그러네요.”
“윈스턴이라는 주치의를 데리고 와 봐야겠네요. 의원인 그가 현재 상태를 살피는 데 더 도움이 될 겁니다.”
페리얼의 말에 카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인 건 그래도 몸이 아픈 것에 대해 말을 할 상대가 있다는 것이다. 저택에서 혼자였던 때와는 달랐다.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앞으로도 내겐 숨김없이 말해야 해요.”
“그럴게요.”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는 어때요?”
“그리고 싶어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그리고 싶었다.
계속 그리고 또 그려서 그 기적 속에 파묻히고 싶다는 욕망도 분명히 존재했다.
아마도 백작저에 계속 있었으면 그렇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네.”
“……기적은 제어할 수가 없는 건가요?”
카리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의 질문에 페리얼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볼을 긁적이던 그녀가 다시 덧붙여 입을 열었다.
“그림으로 제 이름을 알리려면 기적을 쓰지 않는 작품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요?”
“맞습니다.”
“기본적으로 예술병이라는 건 병이다 보니 제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림을 완성하면 무조건 기적이 일어나고 대가를 내죠.”
페리얼의 설명에 카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약간 비겁한 수단을 쓸 수 있습니다.”
“비겁한 수단이요?”
“네, 작품을 완성 직전에 멈추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