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6)
>6 화>
* * *
저택으로 돌아간 그녀를 맞이 한 것은 2 층으로 올라가려던 남동생 페르던이었다.
반짝거리는 금빛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 머리카락만 기르면 아벨리아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누나! 어디 갔다 왔어?”
“페르던.”
계단을 올라가려던 소년이 냉큼 계단을 뛰어내렸다.
“우와, 맛있는 냄새.”
짐승처럼 예민한 후각을 가진 녀석답게 코를 킁킁거리며 다가온 페르던이 냉큼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낚아챘다.
“누님, 무겁지? 내가 들어 줄게.”
“이럴 때만 누님이지. 가서 아벨리아랑 먹어. 아벨리아가 돌아 오면서 사다 달라고 했거든.”
“야호! 고마워, 누나!”
볼에 쪽, 입을 맞춘 페르던이 손에 들고 있던 종이봉투를 냉큼 가지고 계단을 올랐다.
카리나가 말없이 꼬치 냄새가 밴 제 옷의 냄새를 맡고는 천천히 2층으로 올랐다.
‘옷이나 갈아입자.’
오랜만에 움직였다고 기력이 상당히 닳았다.
그녀가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에 애써 힘을 주며 방으로 향했다. 피곤함이 극에 달했다.
방에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문을 잠근 카리나가 무너져 내렸다.
* * *
“……리나!”
눈부셔…… 그리고 시끄럽다.
“카리나 레오폴드!”
수면 밑에 깊이 가라앉아 있던 카리나가 굉음처럼 들려오는 제 이름에 반사적으로 눈을 번쩍 떴다.
비몽사몽간 정신을 추스르며 그녀가 고개를 들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아버지?”
카리나가 잠이 덜 깬 의아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던 몸을 바로 세웠다.
창밖을 보니 아직 아침이 아니었다.
‘이제 저녁이 조금 넘은 건가?’
창밖으로 대강의 시간을 파악한 카리나가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어쩐 일이세요?”
단순히 식사를 권유하러 왔다고 보기엔 무척 화가 난 표정이다. 불안한 느낌이 그녀의 등줄기를 스쳤다.
그녀의 아버지, 레오폴드 백작의 뒤로 안절부절못하는 페르던이 보였다.
카리나의 입이 꾹 닫혔다.
“카리나, 네가 아벨리아에게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을 사다 줬느냐?”
“네, 잠시 볼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들어오는 김에요.”
“하아…… 카리나!”
레오폴드 백작이 언성을 높였다.
카리나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찔 떨렸다. 그녀가 애써 떨리는 어깨에 힘을 줬다.
“아벨리아의 몸이 안 좋은 걸 알지 않느냐. 함부로 음식을 먹여선 안 되는 걸 몰랐다고 하진 않겠지!”
“…….”
머리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짚으며 레오폴드 백작이 엄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카리나의 얼굴이 굳었다.
오랜만에 제 방까지 찾아와서 무슨 말인가 했더니 이보다 더 실망스러울 순 없었다.
카리나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힘겹게 굴렸다. 아마도 아벨리아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듯했다.
가장 먼저 죄송하다는 말이나 아벨리아는 괜찮으냐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사다 달라고 해서 사다 준 것뿐인데.’
“……아벨리아에게 무슨 일 있어요?”
“음식이 잘못되어 체했는지 먹은 걸 전부 게워 내고 탈수 증상까지 왔다. 너는 대체 언니가 돼서 어떻게 그렇게 생각이 없어!”
노성이 머리를 댕댕 울렸다.
피곤한 몸에 잠이 덜 깬 머리에 지친 체력까지 포함해 머리가 어지러웠다. 속이 울렁거리는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말이 맞다. 이제 어른이 됐잖니, 대체 왜 그렇게 생각이 없니.”
“그건 리아가…….”
저를 탓하는 목소리에 속이 울렁거렸다.
억지로 깨워져 울리는 머리는 또 어떤가. 이마를 부여잡으며 그녀가 설명하기 위해 입술을 열었다.
“변명하지 말거라!”
언제나와 다르지 않은 상황에 카리나는 설명하길 포기했다. 그녀가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아버지, 어머니! 누님께서는 그냥…….”
“……그래서요?”
카리나가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들어 페르던의 말을 끊어 냈다.
참아야 한다는 건 안다. 언제나처럼 그저 죄송하다고 말하며 끝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저 자주 앓는 아벨리아가 걱정돼서 그런다는 것도 카리나는 알았다. 탓할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왜?
왜 탓할 사람이 자신밖에 없는 것인가.
“……뭐?”
카리나의 반문에 레오폴드 백작이 놀라 눈을 크게 뜨며 그녀를 바라봤다.
머릿속으론 안다, 알고 있다. 수십 수백 번 다짐했다, 이해하자고.
‘하지만 내가 언제까지 참아야 돼?’
1년 뒤에 죽을 때까지? 그녀가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그렇게 죽고 나면 그 마음을 누가 알아주는 걸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겠지.
평생 카리나 레오폴드는 미련하게 착하고 답답하면서 철이 없던 사람으로 남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속이 뜨거워지고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너 지금 뭐라고 했느냐.”
“그래서 어떡할까요, 라고 여쭸어요.”
“지금 예의 없게……!”
“전 아벨리아가 밖에서 꼬치랑 주스를 사다 달라고 해서 사다 준 것뿐이에요.”
카리나는 웃음기 하나 없는 싸늘한 표정으로 건조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런 건 아벨리아한테 당부하셔야죠. 몸이 안 좋을 수도 있으니 이런 음식은 먹으면 안 된다고.”
“도대체 동생한테 얼마나 관심이 없으면 그런 것도 모를 수 있느냐.”
“저는 아벨리아가 사다 달라고 해서 괜찮은 줄 알았어요.”
말을 할수록 억울했다. 아벨리아의 상태에 대해 매번 보고를 받는 것도 아니다. 뭘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었던가?
카리나는 늘 눌러 담았던 말이 입 밖으로 술술 새어나가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조소했다.
레오폴드 백작은 물론 뒤따라 왔던 페르던과 백작 부인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카리나 레오폴드가 어떤 사람이던가. 어떤 일이든 선하게 웃는 배려가 많은 아이였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순순히 사과하고 그저 잘못을 인정하는 아이.
그런 카리나가 저렇게 차가운 얼굴을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머리 아파.’
사실 아픈 건 그녀도 마찬가지다. 머리가 아팠고 속도 울렁거렸다. 당장 변기통에 얼굴을 처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카리나, 대체 갑자기 이게 무슨 말버릇이냐.”
레오폴드 백작이 짐짓 엄한 말투로 말했다,
“말버릇이라니요. 제 의견을 말씀드린 것 외에 예법상 잘못한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음식을 가져다줄 때는 주치의의 허락을 받았어야지.”
그런 음식이 무슨 음식이란 말인가. 다들 멀쩡히 먹고 있는 음식이었고 심지어 그녀도 장사꾼이 한 입 권하기에 먹었다.
“저도 먹어 보고 사 온 거라서 괜찮은 줄 알았어요. 다음부턴 주의할게요, 아버지.”
“……정말이냐?”
“네.”
“……그래, 알겠다. 제발 주의하거라.”
레오폴드 백작이 카리나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녀의 순순한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용건이 끝나 몸을 돌리려던 레오폴드 백작이 걸음을 멈칫하며 카리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가 잠시 머뭇거리다 입술을 뗐다.
“……네 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잖니. 알고 있지? 카리나.”
“네.”
“그리고 너는 건강하잖으냐. 그러니 이해해 주렴.”
그놈의 건강.
자신만 건강하게 태어났던가. 인프릭과 페르던 역시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왜 항상 건강하게 태어난 것이 죄라도 되는 것처럼, 그들은, 항상, 자신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가.
카리나는 손등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이불을 꽉 쥐었다가 고개를 툭 떨구며 손에서 힘을 뺐다.
“네, 알고 있어요.”
울컥 솟는 감정을 익숙하게 짓밟아 죽이며 그녀는 시선을 피한 채 무심히 대답했다.
백작 부인이 앞으로 나와 레오폴드 백작을 두둔했다.
“네 아버지도 리아가 쓰러져서 너무 흥분해서 그랬을 거란다.”
“네.”
“건강하게 태어난 게 얼마나 축복이니. 카리나, 혹 마음이 상한 건 아니지?”
비웃음이 튀어나올 것 같아 카리나는 입술에 힘을 줬다.
기대할 것이 없었는데 굳이 상할 마음이 어디 있겠는가. 카리나는 뒤에서 전전긍긍하는 페르던과 시선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것을 무시했다.
그 대신 몸을 돌리려는 레오폴드 백작과 백작 부인을 보며 카리나가 입을 열었다.
“할 말은 그것뿐이세요?”
“뭐?”
“할 말은 그것뿐이신가 해서요.”
“……그렇다만?”
의아한 레오폴드 백작의 반문에 카리나의 입가에 조소가 맺혔다가 바스라졌다.
“제 방은 알고 계셨네요, 어머니 아버지.”
“당연히 알고 있지 않겠느냐.”
백작이 미간을 좁힌 채 뭘 그런 것을 묻느냐는 듯 대답했다.
“지난 몇 년 한 번도 찾아오질 않으시기에 잊으신 줄 알았지요.”
카리나의 말에 레오폴드 백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