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65)
>65 화>
녀석에게서 살의가 넘실거렸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무언가를 죽이고 싶은 충동에 휩쓸리기라도 한 듯했다.
“싸우고 싶어?”
크르르-.
대답하듯 목을 울린 헤르타의 목소리에 카리나가 숨을 삼켰다.
녀석이 죽이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인지 아니면, 같은 동족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능도 그대로 남는 건가?’
아니면 자신이 그린 게 싸우는 모습의 살의에 휩싸인 헤르타였기 때문인가?
카리나가 숨을 삼켰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나무 밑에 날 내려 줘.”
헤르타가 높게 도약했다.
녀석이 밟은 성벽 위가 소리를 내며 부서져 내렸다.
그녀가 그린 헤르타는 무척 호전적인 듯했다. 녀석은 나무 그늘 밑에서 몸을 낮췄다.
“사람은, 인간은 절대 공격하면 안 돼. 알았지?”
헤르타의 탁한 눈동자가 카리나를 향해 한 차례 굴러 오더니 이윽고 천천히 다른 마수들을 향했다.
까득-
헤르타가 줄곧 숨기거나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있던 발톱을 길게 뽑았다.
카리나에게 보여 줬던 것은 장난이라는 듯 길게 뽑힌 발톱은 위협적이었다.
헤르타가 콧김을 훅 뿜으며 그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헤르타가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땅이 쿵쿵 울렸다. 다른 헤르타에 비해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그녀의 헤르타 주변으로 살기가 넘실거렸다.
쿠웅-
병사들을 쫓는 또 다른 헤르타를 향해 뿔을 들이박았다. 옆구리를 맞은 헤르타가 멀리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죽인다.
머릿속을 파고드는 전음에 카리나의 몸이 굳었다.
쇠로 또 다른 쇠를 긁는 것처럼 낮고 낮은 목소리였다. 오로지 악의로 가득한 그 목소리에 카리나가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죽여서, 차지한다.
눈앞이 번쩍이며, 시커먼 어둠이 보였다.
정확히는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샛노란 눈동자가. 카리나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어디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인지 짐작됐다.
“……헤르타?”
헤르타의 목소리였다. 놈이 다른 헤르타들에게서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다.
녀석이 자신이 날려 버린 놈에게 달려들어 두 앞발을 들어 올렸다.
날카롭게 벼려진 발톱이 번뜩이며 그대로 배를 드러낸 무방비 상태의 다른 헤르타에게 내리꽂혔다.
푸욱-
날카로운 발톱이 등껍질로 둘러 싸이지 않은 여린 살을 파고들었다.
끼에에에에엑-!
끼에엑-!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비명 같은 울음에 병사를 상대하던 헤르타들이 모두 그녀가 만든 헤르타에게 시선을 돌렸다.
헤르타에게 파고든 녀석의 발톱이 천천히 배를 가르듯 움직였다. 다른 발로는 발버둥치는 헤르타를 제압한 녀석은 그대로 마수의 배를 갈라 버렸다.
힘없이 발을 허공에 휘젓던 헤르타의 육중한 다리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툭, 제 발 위에 닿은 죽은 헤르타의 다리를 쳐낸 녀석이 유유히 시선을 내렸다.
녀석이 가른 뱃속에 얼굴을 박으며 내장과도 같은 것을 씹어 삼켰다.
“…….”
우적거리는 소리와 그 경악스러운 광경을 모두가 멍하니 바라봤다.
덩치가 큰 헤르타 한 마리가 다른 헤르타의 배를 가르고 정확히 무엇인지 모를 내장을 먹고 있었다.
-없다. 다른 것을 먹어야 한다.
무언가를 찾는 듯 뱃속을 헤집으며 내장을 씹던 녀석이 코 뿔로 죽은 헤르타를 멀리 던져 버렸다. 허공에 피가 튀었다.
-찾지 않으면, 죽는다.
귓가에 계속해서 들리는 목소리는 흡사 광기에 휩싸인 듯 위험하게 들렸다.
숨을 삼킨 카리나가 어둠을 향해 걸어가는 녀석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죽는다니?”
그림으로 그려 낸 생명체가 그런 사고를 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는 건가?
카리나가 멍하니 눈을 끔뻑이는 것과 동시에 녀석이 다른 헤르타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와아아아아-!
어둠 속에서 들리는 거대한 울음소리에 등이 쭈뼛했다. 악의가 넘실거리는, 말 그대로 그것은 포효였다. 병사들이 굳었고 카리나의 몸도 굳었다.
콰앙-!
끼에엑-!
그 와중에 들려온 소리에 카리나가 고개를 돌렸다.
고레든 단장이 헤르타 한 마리에게 상처를 입히는 데 성공한 듯 했다. 그녀가 숨을 삼킨 채 다시 녀석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모두가 섬찟한 감각에 얼어붙은 가운데, 움직이는 것은 고레든과 카리나가 그려 낸 헤르타뿐이었다. 녀석이 다른 헤르타에게 달려들었다.
크와앙-!
어디선가 들린 포효에 굳은 듯 움직이지 못하던 헤르타가 황급히 몸을 뒤로 물리며 고개를 숙여 고개를 낮췄다.
쿵-!
헤르타 한 마리가 녀석의 돌진을 막아 냈다.
두 개의 코 뿔이 까드득 거리는 소리를 내며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콰득-
균열이 생기며 쨍-!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공격당한 헤르타의 코 뿔이 부러졌다.
때를 놓치지 않고 녀석은 헤르타를 코 뿔로 들어 올려 뒤집었다. 그리고 날아간 놈에게로 곧장 도약해 그대로 발톱을 세워 배를 갈랐다.
끽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은 헤르타를 바라본 녀석이 그대로 얼굴을 가른 배에 박고 이번에도 내장을 헤집었다.
-찾았다.
희열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녀석이 무언가를 씹어 삼켰다.
씹어 삼키는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무언가가 달빛에 비춰 반짝이는 것이 엿보였다.
헤르타의 샛노란 눈이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움직였다. 녀석의 눈이 조금씩 움직이더니 이내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무언가를 향했다.
쿵, 쿵, 쿵-!
땅이 울렸다. 어둠 속에서 다른 헤르타들의 두 배는 되어 보일 정도의 거대한 헤르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달빛 아래로 드러난 거대한 헤르타는 등껍질은 물론, 코 뿔이나 다리에 오래된 흉터들이 가득 했다.
그리고 다른 헤르타에게서 느껴지는 느낌보다 훨씬 더 섬뜩했다.
순수한 악의와 살기에 휩싸인 듯 했다. 놈은 화가 나 있었다. 아마도 그녀가 만들어 낸 헤르타로 인해서.
크르르, 크릉-!
거대한 헤르타가 낮게 울었다.
대화라도 하는 듯한 울음소리였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헤르타들도 녀석의 기세에 눌렸는지 한 층 공격성이 옅어진 듯했다.
-내 주인은 따로 있다.
크릉-!
-네놈의 것, 내가 먹겠다.
무언가 대화를 하는 듯하긴 했다. 상대의 말을 그녀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겠지만.
마주 본 두 헤르타가 한껏 몸을 낮춘 채 그대로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콰아아앙-!
두 개의 뿔이 맞부딪치며 거대한 굉음과 모래 폭풍을 만들었다.
쿠구구구-
땅이 울리고 바닥이 흔들렸다.
휘몰아치는 모래 바람에 멀리 떨어져 있던 카리나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녀가 나무를 붙잡은 채 흔들리는 시선으로 모래 폭풍의 중심을 보려 애썼다.
그 뒤론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겁에 질린 헤르타들이 뒤로 물러나고 쉼 없이 몰아치는 폭풍에 병사들도 더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두 개의 뿔이 계속해서 굉음을 내며 부딪쳤다.
쉽게 부러졌던 다른 헤르타의 뿔과 다르게 덩치 큰 녀석의 뿔은 부러질 기미가 전혀 없어 보였다.
도리어 그녀의 헤르타가 밀리는 듯 보이기도 했다.
크와아앙-!
거대한 헤르타가 또다시 짧게 포효했다.
끼에에에엑-!
어디선가 들리는 헤르타의 비명에 모두의 시선이 다시 돌아갔다. 방심하고 있던 다른 헤르타를 고레든이 한 마리 더 죽인 것이다.
쿵-!
거대한 헤르타가 분노한 듯 거 세게 발을 굴렀다. 아마도 그가 헤르타들 사이의 대장인 듯 보였다. 놈이 한 걸음 뒤로 물러갔다.
크와아아악-!
헤르타가 포효했다. 놈이 포효 하자 다른 헤르타들이 순식간에 뒤로 물러났다.
대장은 그녀의 헤르타를 한참이나 살기등등한 시선으로 노려보더니 결국 다른 헤르타들이 몸을 돌리고 난 후 뒤따라 몸을 돌렸다.
-도망은 없다.
녀석이 낮게 중얼거렸다.
다시 한껏 몸을 낮추는 헤르타를 바라보던 카리나가 결국 녀석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배에 힘을 줬다.
“헤르타, 멈춰!”
있는 힘껏 소리치자 도망가는 무리에게로 달려 들려던 녀석이 뚝 걸음을 멈췄다. 불만스러운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지만 다행히 놈은 더 쫓으려고 하지 않았다.
흠칫-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시선에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어둠 속에 색이 탁한 샛노란 눈동자가 보였다. 그녀의 짙푸른 눈동자와 거대한 헤르타의 샛노란 광기 어린 눈동자가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가 숨을 삼키자 놈이 천천히 몸을 돌리며 멀어져 갔다.
크릉-
헤르타가 낮게 울며 몸을 낮췄다. 코앞까지 다가온 녀석의 시선에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헤르타의 눈 사이를 손바닥으로 살살 쓸었다.
“……헤르타! 너, 대체 뭘 먹은거야?”
카리나가 놀란 목소리로 타박하자 헤르타가 시선을 피하며 느리게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더니 이윽고 무언가가 생각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육중한 몸에 비해 가뿐하게 일어난 헤르타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고레든이 서 있는 곳을 향했다.
대검을 땅에 박아 둔 채 매무새를 다듬고 있던 그가 비스듬히 고개를 들어 제게 곧장 다가오는 헤르타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모두가 긴장한 채 검을 쥐고 있 는데, 유일하게 고레든만이 움직이지 않았다.
고레든은 대검을 힐끗 쳐다보곤 헤르타를 가만히 직시했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 줄 알았던 남자는 굳건히 서 있었다.
쿵쿵거리며 무서운 기세로 걸어가던 헤르타는 고레든을 유유히 지나쳤다.
헤르타는 고레든이 쓰러뜨린 두 마리의 헤르타에게 다가갔다. 아까처럼 배를 가르고 내장을 헤집더니 머리를 처박고 무언가를 또 우걱우걱 씹어 삼켰다.
고레든이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하론?”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헤르타 가 걱정되어 뒤따라온 카리나가 작게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미간을 좁혔다.
“하론?”
카리나의 목소리를 들은 고레든이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자리 잡았다.
“위험하다고 말씀드려…… 눈 색이 바뀌셨군요.”
“눈 색?”
카리나가 손등으로 제 눈을 꾹꾹 눌렀다. 눈 색이 바뀌었다는 게 무슨 뜻이지 ? 황금색으로 바뀌었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