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68)
>68 화>
* * *
밀라이언의 품에 안긴 카리나는 놀람에 소리조차 내뱉을 수 없었다.
그보단 통증이 훨씬 더 강했다. 시트를 잃어버린 그녀는 밀라이언의 어깨 부위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그러면서도 구석을 찾는 어린아이처럼 한껏 몸을 웅크리고 웅크렸다.
더 도망갈 구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통증에서 도망이라도 치려는 듯이.
그 행동이 밀라이언을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쉽게 아프다는 소리도, 힘들다는 소리도 하지 않는 여자였다.
카리나는 이곳에 와서 아쉬운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수도보다 불편한 것이 많은 생활일 텐데도 불구하고,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단 한 번 봤던 타지의 약혼자를 찾아와서도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카리나, 괜찮아.”
귓가에 속삭여지는 따뜻한 목소리에 몸을 웅크렸다.
그대로 밀라이언에게 파고든 카리나가 그의 가슴팍에 이마를 비볐다.
“아프면 울어, 아프다고 소리쳐도 돼.”
밀라이언은 차마 그녀에게 큰 반동이 갈까 봐 빠르게 뛰어 내려가진 못하면서도 계단을 내려 가며 카리나의 등을 계속해서 쓸어내렸다.
“아무도 널 탓하지 않을 거다.”
숨을 끅끅 삼키는 카리나를 보다 못한 밀라이언이 애절하게 말했다.
숨이 넘어갈 것 같은데도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는 그녀가 안쓰러 웠다.
속이 쓰렸다.
몰래 숨어들었던 그때, 그녀의 가족과 그녀의 사이가 어떤지 깨달았기 때문에.
이 버릇이 어디서,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시작했는지 감이 잡혔다.
“……신경 쓰게 해도 돼.”
밀라이언의 품에서 이를 악문 채 색색 숨을 내뱉던 카리나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풍랑을 맞은 배처럼 흔들렸다.
“내가 네 일에 관여할 수 있게 해 줘.”
“귀찮…… 흐읍…….”
간신히 입을 열었던 카리나가 또다시 썰물처럼 들이닥치는 끔찍한 통증에 울음을 삼켰다.
“카리나, 그런 걸 일일이 말하지 마렴, 녹턴에게 말해서 약 받아서 먹으면 해결되잖니. 리아랑 페르던 때문에 정신없으니 약 받으면 얼른 방에 가고.”
그의 다정함에, 다정하지 않았던 기억이 도리어 떠올랐다. 카리나가 이를 악물었다.
“쉬이, 괜찮아.”
그가 다정하게 귓가에 속삭였다. 등을 쓸어내려 주는 손길이 따뜻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페리얼이나 윈스턴은 어디에 있지?”
“페리얼 님께선 아직 응접실에…… 세상에, 아가씨께서 문제가 있으신가요?”
“발작 같다. 윈스턴을 데려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고통을 버티는 것은 끔찍했다. 차라리 죽고 싶었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겨우 그의 품에 안겨 있을 뿐인데 버틸 만한 고통이라고 생각되다니.
카리나의 입술 사이에서 저도 모르게 비식거리는 웃음이 새어 나갔다. 인간이란 간사하기 그지없다.
“페리얼 칼로스!”
“깜짝이야, 간 떨어질 뻔했…… 카리나?”
“예술병으로 인한 발작 같은 것 같은데, 좀 봐 봐.”
밀라이언이 그녀를 응접실 소파에 눕히며 말했다.
그가 다급히 웅크린 몸을 펴지도 못한 채 숨만 헉헉 들이마시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카리나, 어디가 어떻게 아픕니까?”
“심장이…….”
그녀가 말을 제대로 끝맺지도 못한 채 다시 숨을 삼켰다.
호흡 자체가 힘이 든 것인지 숨을 깊게 삼켰다가도 쉽게 내뱉지 못하곤 얼굴이 벌겋게 변할 때까지 참았다가 숨을 내뱉길 반복했다.
“……그 헤르타 때문입니까?”
“헤르타……? 정원에 있는 거 말인가?”
뜬금없이 나온 헤르타의 이름에 밀라이언의 눈이 매서워졌다. 그가 손을 뻗어 페리얼의 어깨를 붙잡았다.
“기적엔 대가가 따라. 헤르타는 거대한 기적이야. 실제로 캔버스를 두 개나 썼을 정도로 큼직한 그림이었을 거고.”
페리얼이 웅크린 그녀의 몸을 조심스럽게 펴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더 아파지는 느낌에 카리나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뱃속의 태아처럼 몸을 웅크린 그녀가 손톱을 세워 가죽 소파를 긁어내렸다.
“……죽이고 오지.”
밀라이언이 응접실 한쪽에 놓인 장식용 검을 손에 쥐며 말했다. 카리나가 고개를 저었다.
“다녀올 테니 그녀를 돌봐.”
“소용없어.”
“뭐?”
“이미 일어난 기적이야.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마수는 이미 그녀의 통제에서도 벗어 났지.”
“씨발! 어쩌라고!”
콰앙-!
투두둑.
짜증스럽게 소리를 지른 밀라이언이 주먹을 쥔 채 응접실 벽을 거세게 내려쳤다.
굉음을 내며 균열이 생긴 벽에서 잘게 부서진 벽돌이 우수수 쏟아졌다.
똑똑.
노크 소리에 밀라이언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허락의 말을 내뱉었다.
응접실 문을 열고 윈스턴이 다급하게 들어왔다.
소파 위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카리나를 본 윈스턴의 얼굴이 낭패감에 물들었다.
밀라이언이 쉬이 움직이지 못하는 윈스턴을 보며 숨을 삼켰다.
“그대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인가?”
“예술병으로 인한 통증은, 환상통에 가까워.”
“환상통?”
“그녀에겐 끔찍한 통증이지만 웬만해선 어떤 약도 통하지 않아.”
밀라이언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그런 병이 세상에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약이 통하지 않는다면 지금 괴로워하는 그녀의 통증은 누가 가라앉혀 주는가.
“그딴 병이 세상에 어딨나.”
“네 눈앞에 있잖아.”
“그대도 같은 의견인가?”
밀라이언이 매서운 눈으로 윈스턴을 바라보며 말했다. 윈스턴이 쓰게 웃으며 대답 대신 허리를 굽혔다.
“미쳤군.”
“이런 경우는 수면제를 처방할 수밖에 없는데…… 통증이 심하면 수면제도 효과가…….”
윈스턴이 말끝을 흐렸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카리나를 보는 것은 그로서도 괴로웠다.
예술병은 이것이 문제였다.
말 그대로 대가이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밤에는 최대한 잠을 잘 잘수 있는 약을 처방했는데.’
이런 식으로 불현듯 찾아오게 되면 방법이 없었다. 통증이 시작되고 난 뒤엔 손을 쓸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카리나, 빌려 갔던 하론이야.”
페리얼이 주머니에서 가죽 끈에 달린 작은 돌멩이를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카리나가 눈을 크게 뜨더니 구원줄이라도 잡은 듯 하론을 손에 꽉 쥐었다.
“……하악……I”
그녀의 숨이 크게 터져 나왔다.
카리나가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아까보단 숨을 쉬는 것이 편해졌다.
확 트인 숨에 그녀의 얼굴이 한층 편안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통이 가라앉은 것은 아니다.
아까보다 약간 통증이 덜해졌을 뿐이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그녀로선 물속에서 만난 산소 같은 느낌이었다.
“역시…….”
페리얼이 낮게 중얼거렸다.
“카리나, 통증이 좀 덜한가요?”
그녀가 차마 입을 열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페리얼이 그제야 천에 감싸두었던 플루트를 꺼내 들었다.
“아, 나머지는 귀 좀 막는 거로.”
그가 눈을 접어 살갑게 웃어 보였다.
찰랑거리는 은발에 화사한 외모의 사내가 짓는 웃음은 무척 치명적이 었다.
윈스턴이 멍한 눈을 했다가 이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홱 돌렸다.
윈스턴이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밀라이언은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카리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이윽고 페리얼이 느리게 연주를 시작했다.
울려 퍼지는 음악은 잔잔했고 마치 눈앞에 선율이 떠다니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듣는 이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할 터였다.
그러나 밀라이언은 질리도록 들어봤던 선율이었다.
‘여전히 저를 닮은 노래군.’
한없이 달콤하고 산뜻한 음악이었다. 어딜가든지 누구에게든지 입 안의 혀처럼 구는 그 다운 노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무른 것은 아니었다.
밀라이언이 애초부터 강한 인상이나 몸으로 부딪쳐 상대의 진심을 알아본다면, 페리얼은 오히려 달게 굴어서 제게 해가 되는 자를 내치는 사람이었다.
음악을 듣는 카리나가 서서히 눈꺼풀을 감기 시작했다.
무겁게 감기는 그녀의 눈꺼풀을 보던 밀라이언이 그녀에게 성큼 성큼 다가갔다.
“자도록 해, 카리나.”
“……네.”
꺼질 것 같은 낮은 목소리를 들으며 밀라이언이 그녀의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윽고 숨소리가 편안해지며 카리나가 잠이 든 듯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