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74)
>74 화>
심장이 기묘하게 찌르르 울려서, 그 또한 묘한 기분이다. 카리나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화내지 않을 거죠?”
“아픈 것으로 화를 내진 않아.”
한참 만에 진정한 두 사람이 그제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눴다.
여전히 홧홧하게 달아오른 얼굴이었지만 어쨌든 두 사람 모두 아무렇지 않은 듯 평정을 가장할 이성은 남아 있었다.
“……음, 일곱 번이요.”
“뭐?!”
밀라이언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 졌다. 카리나가 화들짝 놀라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토끼눈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카리나를 본 밀라이언이 그제야 아차 싶은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아니, 일주일 동안 7번이 아팠다고?”
“……으음……. 그래서 말하기 싫다고 했잖아요.”
말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을 그는 굳이 말하라고 했다.
사실 음식도 먹으면 먹는 대로 대부분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최대한 소화가 편한 음식을 위주로 골라 먹고는 있지만 몸에도 한계가 느껴졌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그래도 그 하론이라는 거, 품에 끌어안고 있으면 좀 덜해서 괜찮아요.”
끔찍한 통증이 파도처럼 몰아닥칠 때마다 기댈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은 무척 다행이었다.
하론은 그런 의미에서 제법 많은 고통을 반감해 주는 효과가 있었다. 물론 여전히 밤이 오는 것이 두렵긴 했지만 그것만큼은 다행이었다.
통증은 참 신기하게도 대개 밤에만 찾아왔다. 그래서 밤이 두렵다. 마치 낮에 쓴 대가를 밤에 지불하라는 것처럼.
물론 이러다가 나중에는 점차 낮에도 통증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나중에는 침대에만 누워서 지내는 게 아닐까 걱정되긴 하네요.”
카리나가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농담처럼 건넨 말이었지만 마주 웃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돌리자 밀라이언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죽을 병에라도 걸린 것 같잖아요.”
“그대가 나라면 걱정되지 않겠나?”
밀라이언의 낮은 목소리에 카리나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비교하면 그녀도 할 말은 없다. 그는 꼭 제 말문을 탁탁 틀어막는 재주가 있었다.
“걱정될 거예요.”
“같은 거야. 너무 자주 아픈 거 아닌가?”
“……그러게요.”
밤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과 싸우는 것도 곤욕이었다.
그림을 그리면 나을 것이다. 기적을 일으키면 통증이 덜해질 거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그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고 싶다면.
충동질하는 본성과 이성이 싸우는 것을 견디는 것이 끔찍할 정도로 괴롭다.
카리나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최대한 웃었다. 그가 걱정하지 않길 바랐다.
“괜찮아요. 하론이 있으니까요.”
“그 돌, 가공해서 팔찌 같은 것으로 만들어 주지.”
“네?”
“아예 몸에 착용하고 있으면 더 좋은 것 아닌가?”
“음, 밤마다 깨서 돌을 끌어안는 수고는 덜하겠네요.”
어차피 통증이 심하면 깨게 되어 있으니 사실 카리나로선 어느 쪽이든 상관이 없긴 했다.
밀라이언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팔을 뻗어 카리나를 덥석 안아 들었다.
“뭐 하는…… 밀라이언!”
카리나의 발버둥에도 그녀를 두 팔로 안아 든 밀라이언은 심각한 표정을 했다.
한참 만에 그가 천천히 카리나를 다시 바닥에 내려 뒀다.
“살도 빠졌군.”
“사……, 살 안 빠졌는데요.”
“빠졌어. 저번보단 확실히 가벼워.”
밀라이언의 심각한 목소리에 카리나가 입을 다물었다.
안 빠졌다고 하기엔, 제대로 먹지 못하고 토해 낸 음식들이 생각났다.
차마 그런 거짓말까지 하기는 싫었던 카리나가 입을 다물었다.
“삼시 세끼 다 챙겨 먹고 있지 않나?”
“웬만하면 먹으려고는 해요.”
물론 먹으려고 하는 것뿐이다.
먹으면 역류하는 것이 두려워서 음식을 입에 넣기도 사실 괴로웠다.
밀라이언과 있으면 최대한 잘 먹는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힘든 일은 없나?”
“네.”
“정말로?”
“네, 정말이요.”
백작저에 있을 때보다 많이 아프지만 공작저에 있는 것이 훨씬 더 살만했다. 마음이 편하니 몸이 조금 불편해도 버틸 만했다.
이곳에는 아프면 괜찮으냐고 물어 줄 사람들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말해도 괜찮지 않을 게 분명하다고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 다정한 사람을 만나서 그녀는 충분히 행복했다.
“아, 이거 줄게요. 밀라이언.”
카리나가 책상 위에 올려 둔 종이 한 뭉치를 꺼내 그의 손에 쥐여 줬다.
밀라이언의 미간이 좁아졌다.
종이에는 입구가 긴 삼각 유리병에 기묘한 액체가 담긴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붉은색 액체가 찰랑거리는 그 그림은 당장이라도 물약이 출렁거릴 것처럼 생생했다.
“이게 뭐지?”
“음…… 약이에요. 같은 걸 20개 정도 그렸어요.”
“이걸 왜?”
“이 약은 다친 몸을 낫게 해 주는 약이에요. 어떤 상처도 낫게 해 주고 혹시 신체가 절단됐을 때 빠르게 신체를 붙이고 그 위에 이 약을 뿌리면 절단된 신체도 금세 붙을 거예요.”
밀라이언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런 종류의 약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들은 적이 있다. 옛날 전설이나 신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물약이 아닌가.
“그런 약이 정말 있다고?”
밀라이언의 물음에 카리나가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이것은 그녀의 창조물이다. 창조 신화 중 하나에 그러한 만능 물약이 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은 피 같은 붉은색의 액체였으며 먹으면 모든 내상이 나았고 뿌리면 절단된 상처라도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숨이 끊어져 가는 이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다고.
“하지만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거나 혹은 세상의 섭리에 따라서 죽어 가는 사람을 되살리는 건 불가능해요.”
“……그렇군.”
하지만 이것은 위험하다.
혹시나 바깥으로 새어 나가기라도 하면 그녀는 순식간에 모든 위험 속에 노출될 것이다.
물론 밀라이언에게는 그녀를 지킬 능력이 충분했다.
“사실 이대로 드리는 건 아니고 제가 완성해서 물약의 형태로 드릴 거예요.”
“그대의 능력을 쓰겠다고 나한테 통보하는 거군.”
카리나가 한 말의 의미를 어렵지 않게 깨달은 밀라이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방금까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당당하게 하겠다고 말하는 그녀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밀라이언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본 카리나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이건 별로 힘이 안 들어요!”
“뭐?”
“음…… 살아 있는 게 아닌 경 우에는 큰 힘이 안 들어요.”
카리나가 빠르게 대답했다. 그 녀의 표정이 어찌나 다급해 보이는지 모른다.
‘……그렇게 무서운가?’
밀라이언은 제 얼굴을 손으로 매만졌다.
딱히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거나 위협하는 표정을 지은 것 같지는 않은데.
상대의 표정만 보면 자신이 무슨 마수보다도 더한 괴물이 된 것만 같다.
“예를 들어서……, 음. 아직 제 눈은 황금색이에요?”
“약간. 푸른색과 황금색이 섞여 있는 것 같아.”
기이한 눈동자다. 반짝이는 금가루를 뿌려 놓은 눈동자 밑에는 짙은 바다가 있었다.
바다 위에 뿌려진 금가루는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그 위에 입을 맞춰 보고 싶을 정도였다.
‘……사랑스러워?’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던 밀라이언이 흠칫 놀라며 그녀의 눈에서 시선을 뗐다.
사랑스럽긴, 뭐가?
뭐에 입을 맞추고 싶어?
그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미친놈.’
이제 곧 남이 될 사이다. 파혼 서류까지 서로 주고받은 사이였다.
심지어 아픈 환자이기까지 하다. 병을 앓고 있는, 지켜 줘야 할 사람이었다.
어쩐지 이 비슷한 생각을 얼마 전에도 한 것 같지만.
“그럼, 제가 그린 나비들의 대부분이 아마 사라졌을 거예요.”
“……그런가?”
“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살아 있지 않은 것은 사라지지 않아요.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죽지 않는 거죠. 그리고 몸에 부담도 별로 없고요.”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기적을 일으켰을 때 가장 큰 대가를 치르는 것은 생명에 손을 댔을 때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르는 것은 인간의 생명에 손을 댔을 때였다.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말고 가져가 주세요. 밀라이언이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난 그대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충분히 강해.”
“알아요. 밀라이언이 무사히 돌아올 것도 알고요. 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자는 거예요.”
그가 사용하지 않는 한 물약은 언제든 남아 있을 거다.
10년이 지나도 100년이 지나도 병이 깨지지 않는 한 물약은 어떤 상처도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이 되겠지.
“그대는 지금, 그대가 얼마나 위험한 물건을 내게 쥐여 주고 있는지 알고 있나?”
“위험한 물건이요?”
“그대의 말을 듣자면 이건 만병통치약이야.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상처도 치료할 수 있다는 거잖아.”
“네, 하지만 오래된 상처는 치료할 수 없어요.”
카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이 약에 대한 기록을 읽은 결과 그 약은 이미 상처가 나으며 생겨 버린 흉터를 치료할 수 없고 이미 절단되어 아물어 버린 상처도 치료할 수 없다.
물론 내상의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지만 말이다.
“이걸 욕심낼 사람들은 끝도 없을 거다.”
“전 밀라이언에게만 줬어요.”
“사람의 입은 가벼워. 병사들 중 누가 어떻게 소문을 낼지 장담할 수 있나? 그러다 멀리 알려지면 그대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몰려들 거다. 그대에게 어떤 위협이 닥칠
줄 알고는 있어?”
비단 욕심 많은 자뿐만이 아니다. 당장 황실에서도 저 물약을 가지고 싶어서 탐을 낼 거다.
돈이 많은 것들은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자신이 가진 것을 놓지 못해서 더 오래, 더 건강하게, 더 길게 살고 싶어 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오래도록 누리고 싶어 했다.
그래서 지금도 그들은 영생을 살 수 있는 명약이나 갓난아이의 뼛가루 같은 것들을 찾아 먹는 비인도적인 일을 서슴지 않는다.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네요.”
카리나가 아차 싶었다는 듯 볼을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하지만 밀라이언에게 그런 말을 들어도 어쩐지 무섭지 않았다.
“밀라이언 옆에 있어서 그런지 별로 무섭지 않다고 하면…… 화 낼 거예요?”
그가 굳이 지켜 주지 않아도, 그가 수호하는 이성에만 있어도 누구 하나 감히 자신을 잡으려 들지는 못할 것 같았다.
어떤 견고한 요새보다도 밀라이언의 곁은 안전하게 느껴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