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78)
>78 화>
* * *
욱신-!
슬슬 연회 준비를 위해 방으로 내려가던 카리나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통증에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녀는 황급히 주변을 살피곤 숨을 멈춘 채 가슴에 손을 올렸다.
‘주기가 짧아졌어……’
예전에는 주기가 짧아졌는지 의아할 정도였다면, 지금은 확연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크고 작은 통증이 짧게나 혹은 길게 오곤 했다.
여전히 강하고 오래 가는 통증은 밤이 대부분이었지만 낮에도 슬슬 증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윈스턴이, 길어야 1년이랬지.’
그 말은 즉…… 그보다 훨씬 짧아져도 이상할 건 없다는 거다.
어느 날 갑자기 한 달 남았다는 말을 듣게 돼도 문제는 없다는. 카리나가 얼굴을 찡그린 채 숨을 몰아쉬었다.
지끈, 지끈-.
끔찍한 통증에 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숨을 몰아쉬면 몰려오고 다시 숨을 멈추면,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통증이 서서히 잦아 든다.
마치 이대로 숨이 멎어 버리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림을 그릴까?’
통증이 왔을 때 기적을 만들어 내면 통증이 잦아든다. 또 다른 생명을 대가로 통증을 가라앉혀 주듯이.
“방으로 일단…….”
얼굴을 찌푸린 그녀가 난간을 더듬어 가며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내려왔다.
조금만 삐끗해도 미끄러질 거다. 긴장에 손이 땀으로 축축해 지기까지 한다.
“……카리나?”
흠칫.
들려온 목소리에 카리나의 몸이 뻣뻣해졌다.
지금 가장 듣기 싫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녀가 눈을 질끈 감았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하기 위해 그녀가 가슴께에서 힘겹게 손을 내렸다. 그녀가 옅게 미소 지었다.
“밀라이언? 여긴 어쩐 일이에요?”
심장이 떨렸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들렸기를.
목소리가 부디 떨리지 않았기를 바랐다.
계단을 올라오던 밀라이언이 대답 없이 성큼성큼 카리나의 앞까지 다가왔다.
“발작이 온 건가?”
“네……?”
“언제 왔어? 통증이 심해?”
밀라이언이 그녀를 그대로 품에 안으며 말했다.
호숫가에서처럼 어린아이를 안 듯 카리나를 안아 든 그가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
카리나가 입을 다물었다.
숨길 생각이었다. 귀찮다면 그는 모른 척할 거라고 생각했고 기왕이면 그래 줬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눈치채지 못하길 바랐다.
제 못난 꼴을 굳이 그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치부라면 치부인 것이 아니던가.
아픈 것은 죄가 아니지만 카리나에게 통증은 언제나 죄였다.
그 때문에 그녀는 이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다.
“오늘 페리얼도 없지 않나?”
“네…….”
이를 악문 카리나가 통증을 참아 내며 대답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이 반사적으로 가슴을 향해 올라가려고 한다. 눈치 없는 제 손을 다른 손으로 꾹 누르며 그녀가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말하지 마.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충분해.”
“…….”
밀라이언이 곧장 카리나의 방으로 걸어갔다.
어찌나 빠른지 주변 풍경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 였다.
그는 굉장히 급해 보였다. 마치 자신이 대신 아프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은 일그러진 채다.
“어떻게…… 알았어요?”
“그대의 숨기는 것엔 이골이 났어. 그냥 보면 알아. 그대가 지금도 참고 있다는 걸.”
“…….”
도대체 이 남자는 어디까지 자신을 꿰뚫어 볼 생각인 것일까?
20년을 함께 산 가족조차 알아 주지 않았던 것들을 겨우 몇 달도 되지 않아 그는 전부 알아줬다.
“……정말, 불공평하네요.”
밀라이언은 참 불공평한 사람이다.
자신의 마음을 어디까지 얼마나 뺏어 가야 직성이 풀리는 것인지.
얼마나 자신을 그에게 기대게 만들어야 만족할 것인지.
카리나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등이 축축했다. 핏기가 손가락 끝으로 빠져나가는 듯 정신이 멍하다. 눈앞이 흐릿하고 세상이 한 바퀴 도는 것도 같다.
철컥.
방문을 걸어 잠근 밀라이언이 그대로 카리나를 침대 위에 눕혔다.
눕혀 주긴 똑바로 눕혀 줬으나 통증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카리나가 공벌레처럼 둥글게 몸을 말았다.
“아프면 소리 질러도 돼.”
“……흡…….”
소리는 어떻게 지르는 거더라?
한 번도 질러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지르면 되는지, 지르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어떤 통증이 어떻게 밀어닥치는지는 몰라도, 아픔에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이를 악문 채 벌벌 떠는 카리나를 보며 밀라이언이 얼굴을 확 일그러뜨렸다.
“이 상한다. 차라리 소리를 질러.”
그가 침대 위에 올라와 몸을 둥글게 만 카리나를 품에 끌어안으며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러면서도 협탁에 올려 둔 하론을 가져와 그녀의 품에 안겨 주기까지 했다.
“흐윽…….”
히끅거리며 숨죽인 울음소리는 나도 소리를 지를 기미는 전혀 없었다.
보다 못한 밀라이언이 카리나의 입술을 엄지로 느릿하게 문질렀다. 그가 조심스럽게 카리나의 입 안으로 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으득 소리가 날 정도로 힘껏 깨물고 있는 터라 정말 이가 상할까 걱정됐다.
“하악……!”
벌어진 입술 사이로 그나마 신음다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하론을 끌어안고서야 조금 제정신이 든 카리나가 그제야 입 안을 파고든 이물질을 깨닫고 숨을 몰아쉬며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하지……!”
하지 말라고 말하려던 순간 또 다시 심장을 누가 쥐어뜯는 듯 끔찍한 통증이 밀어닥쳤다.
콰득-!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이를 악물던 카리나가 입 안에 씹힌 단단하면서도 말캉한 무언가에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놀란 듯 밀라이언을 바라봤다.
“쉬이, 괜찮다.”
밀라이언은 제 손가락에 통증이 온 것도 모른다는 듯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그녀의 등을 쓸어 주기 바빴다.
카리나가 고개를 저으며 그의 손을 밀어내려고 했다.
“됐어, 이까지 상하면 어쩌려고. 그대가 깨무는 걸론 간지럽지도 않으니 걱정하지 마.”
카리나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이제 좀 괜찮아졌나?”
다정한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안 그래도 흐릿한 시야가 한층 더 흐릿해졌다. 카리나가 주먹을 꽉 쥐었다. 통증보다도, 눈앞의 그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당신은 왜 이렇게 한없이 다정한가.
속이고 있는 자신이 혐오스럽고 싫을 정도로 그는 다정했다. 난생처음 느껴 보는 다정함에 순식간에 빠져들 것처럼.
“왜…….”
왜 그렇게 잘해 주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그가 자신에게 잘해주는 이유에 뭐가 있을까? 차라리 뭔가를 바라는 것이라면 더 나으리라.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 사실이 더욱 속을 뒤집어 놨다.
투둑.
흐릿해진 시야에서 떨어진 눈물이 볼을 타고 시트 위로 흘러내렸다.
툭, 투둑.
투두둑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에 밀라이언이 당황함을 숨기지 못하곤 눈동자를 굴렸다.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그녀는 소리 없이 울었다.
“그렇게 심각하게 아픈가?”
밀라이언이 그녀의 입술 사이에 서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빼내곤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서툴게 등을 토닥이는 그의 행동에 둑이라도 넘친 듯 카리나의 눈물이 양을 늘려 갔다.
“카, 카리나. 윈스턴을 불러올까?”
“흡…….”
울음을 삼키려는 듯 끙끙 앓는 그녀의 얼굴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작은 몸에서 대체 무슨 물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비라도 내리는 것처럼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이 순식간에 그의 어깨를 적셨다.
곧 있을 파티를 위해 갈아입은 옷이긴 하지만 그것이 더러워지는 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카리나.”
밀라이언이 냉큼 그녀를 품에 안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린아이라도 달래는 듯 그가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방 안을 8자로 이리저리 뱅뱅 돌기 시작했다.
“쉬잇, 울지 마라. 많이 아픈가?”
밀라이언의 말에 카리나가 고개를 저었다.
통증은 잦아든 지 오래다.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통증은 또 소리 소문 없이 이렇게 사라지곤 했다. 그러니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미안, 미안하다.”
밀라이언이 이제는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몰라도 그녀가 서럽게 우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카리나.”
“……흐.”
그가 조금 진정되는 카리나의 등을 열심히 쓰다듬었다.
누군가 달래 준 기억이라곤 아주 어릴 때 아버지가 품에 안아 줬던 것뿐이었다. 그 외의 기억은 딱히 없다.
제법 오래된 기억이지만 거의 반사적으로 어릴 때와 비슷하게, 그는 그녀를 달래고 있었다.
카리나가 밀라이언의 품으로 파고들며 몸을 웅크렸다.
다정한 사람이지만 그 다정함이 독처럼 느껴졌다.
“이제 좀 괜찮나?”
“네…….”
울어서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카리나가 조용히 대답했다.
축 처진 목소리에 밀라이언이 그녀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목소리만 축 처진 게 아니라 고개도 축 처져 있다.
“많이 아팠어?”
그가 최대한 다정하게 물으려고 노력했다.
얼마나 아팠으면 맨날 괜찮다는 사람이 서럽게 눈물을 뚝뚝 흘렸을까 싶다. 밀라이언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괜찮아요.”
힘없는 대답이었다.
밀라이언이 조심스럽게 카리나를 침대에 앉히고 그 밑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